정신을 차려보니 행성이 파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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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뒷BOOK
작품등록일 :
2019.07.01 17:16
최근연재일 :
2019.10.1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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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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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괴물 (2)

DUMMY

옵저버가 동굴 안을 빛으로 밝혀준 덕에 어두운 동굴을 걸어가는 데 별 지장은 없었지만, 통로가 워낙 긴 탓에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일 기미가 없었다.


한 20분쯤 걸어갔을까, 저 멀리서 옵저버의 불빛에 무언가가 반짝였다. 체스트는 무슨 물건인지 확인하기 위해 반짝이는 물체에 가까이 다가갔다.


“으악!?”


체스트가 소스라치게 놀라자 옆에 있던 체르타까지 주춤거렸다.


“뭡니까? 깜짝 놀랐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체르타가 물체 가까이 다가갔다.


“이건... 해골이군요.”


그는 충격에 빠진 체스트를 뒤로하고 해골 주위에 쌓여있던 흙을 털어내었다.


“...응?”


그는 해골의 손에 쥐어져 있는 너덜너덜해진 수첩을 발견했다.


“뭐예요?”


해골이 무서우면서도 체르타가 발견한 건 궁금한 듯 체스트가 물었다. 체르타는 수첩 안에 있던 내용을 훑어본 뒤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거... 좀 놀려볼까?’


그는 곧장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뒤에 있던 체스트를 쳐다봤다.


“이거 어쩌죠?”


“뭔데 그래요?”


체르타는 대답 대신 수첩을 체스트에게 건넸다. 체스트는 넘겨받은 수첩을 펼친 뒤 안에 쓰인 글을 읽어봤다.


[원주민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난 이 동굴로 들어왔다. 분명 이곳으로 들어오는 입구는 하나였고 통로도 하나였다. 그러니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면 곧장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난 똑같은 곳만 계속 맴돌고 있었다. 뒤늦게 이곳에 마법이 걸려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안으로는 더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반대편에 출구가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더욱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곳에 있던 건 출구가 아닌 미로였다. 그때 난 예전에 들었던 미로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미로의 한쪽 벽면을 따라가기만 하면 어떤 미로든지 벗어날 수 있다는 것. 나는 그 방법대로 미로 속을 헤쳐나갔다.


하지만 결국엔 다시 미로의 입구로 돌아와 버렸다. 거기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딱 하나였다.


‘이 미로의 출구는 없다.’


이제 가져온 물과 음식도 다 떨어졌고, 난 여기서 죽을 것이다. 부디 이 수첩을 다른 사람들이 읽지 않길 바란다.


이걸 읽었다는 말은... 당신도 절대 빠져나오지 못할 감옥에 갇혀버렸단 소리니까.]


체스트는 마지막 구절을 읽었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설마...”


그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 나가봤다.


“이럴 수가...”


체스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1시간이나 걸어갔음에도 동굴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수첩에 적혀있던 대로 같은 곳을 계속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이곳에 마법이 걸려 있나 보네요.”


체르타가 옆에서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체스트는 문득 아까 봤던 해골을 떠올렸다.


‘어떡하지...? 이제 나도 그 해골처럼 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체르타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네요.”


“뭐가요?”


체스트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그 수첩에 적혀있는 날짜를 보면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이에요. 하지만 리샤 군관님의 남편분이 나갔다가 실종된 날짜는 겨우 일주일 전이잖아요. 그러니까 저 해골이 남편분일 리는 없을 테고. 이곳에 인기척이 아예 없는 거로 봐선 남편분은 여기 없다고 봐요.”


“그렇다는 말은...”


“남편분은 이곳을 빠져나가 황금 나라로 갔다는 말이죠.”


체르타의 말에 체스트가 탄성을 내질렀다. 그의 말은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이 있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럼...”


체스트는 자리에서 다시 일어났다.


“이럴 시간 없겠네요. 빨리 방법을 찾아보죠. 그 해골처럼 되기 전에.”


그렇게 말하는 체스트의 눈빛이 반짝였다.






둘은 동굴 깊숙한 곳에 있는 미로의 입구 앞에 섰다.


“일단, 이 미로에 출구가 정말 없는지부터 확인해볼게요.”


체스트는 미로의 지형을 알아내기 위해 옵저버 몇 개를 작동시킨 뒤 정찰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체르타가 입을 열었다.


“뭐 한 가지 물어봐도 됩니까?”


“뭔데요?”


“아까 동굴 입구로 걸어갈 때도 그냥 옵저버를 썼으면 되지 않았나요? 왜 안 쓴 거죠?”


“아, 그거요?”


체스트는 주머니에서 옵저버 하나를 더 꺼내 손에 쥐었다.


“확실히 옵저버에게 정찰을 시키면 편하긴 한데 진짜 필요할 때 빼곤 잘 안 쓰는 편이에요. 옵저버 안에 있는 마법석 덕분에 얘가 움직일 수도 있고 빛도 낼 수 있는 건데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간 마법석 안에 있는 마나가 모두 닳게 되어있거든요. 그래서 잘 안 쓰는 거예요.”


“그렇군요.”


체르타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그때 체스트가 그렇게 말하자 체르타가 속으로 움찔했다.


“네. 그럼요. 뭐가 궁금하죠?”


“의뢰를 얼마나 많이 수행하면 정식 수행원이 될 수 있어요?”


사실 우여곡절 끝에 첫 번째 의뢰를 힘들게 완수한 체스트에겐 이보다 더 궁금한 건 없었다.


“설마 1,000개 이상 해야 하는 건 아니겠죠?”


그가 마른침을 삼키며 체르타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 제가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군요. 원래 임시 수행원 계약할 때 말씀드려야 했던 건데.”


“그래서... 얼마나 해야 하죠?”


체스트가 다시금 물었다.


“모든 의뢰에는 난이도라는 게 존재합니다. SSS급에서부터 C급 난이도까지 있죠.


난도가 높은 의뢰를 클리어할수록 평가점수는 더욱 많이 받습니다. 만약 SSS급 난이도인 의뢰를 클리어했을 때는 곧장 정식 수행원이 될 수도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높은 난도의 의뢰를 받는 게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한번 맡은 의뢰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으니까요. 수행원이 지켜야 할 원칙 중 하나가 한번 맡은 임무는 끝까지 완수하는 것입니다. 만약 맡은 의뢰를 표기하면 그 즉시 수행원 자격을 박탈당하게 되죠.


실제로 무작정 SSS급 의뢰를 수행했다가 포기해서 정식 수행원이 되길 포기한 사례가 많아요.”


“임시 수행원들도 꼭 지켜야 하는 건가요?”


“당연하죠. 수행원이 될 자질을 평가하는 건데 원칙을 지키지 않는 임시 수행원이라면 평가할 필요도 없이 탈락이에요.”


체르타가 경고하듯이 말하자 체스트가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SSS급 의뢰가 찾아오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체스트 씨가 SSS급 의뢰를 스스로 하겠다고 결정하지 않는 이상, 제가 난도가 좀 더 낮은 의뢰를 체스트 씨에게 드릴 거니까요. 별주부전 때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체스트 씨의 의뢰 수행능력은 생각보다 좋아요. 체스트 씨가 첫 번째로 클리어한 의뢰 있잖아요. 그게 난이도가 무려 S급이었어요.”


“S급이요?”


체스트가 소스라치게 놀라자 체르타가 싱긋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단순하게 누군가를 처리하라는 의뢰 같으면 난도가 별로 높진 않지만, 차별을 없애라는 의뢰는 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문제를 풀어야 하는 거니까 난도가 비교적 높을 수밖에요.”


“잠깐만요, 그럼 첫 번째 의뢰 끝나고 나서 점수 꽤 얻었겠네요?”


“네 뭐, 한 10% 정도 채웠어요.”


그 말에 체스트의 얼굴에 화색 빛이 감돌았다.


“진짜요? 그럼 첫 번째 의뢰랑 비슷한 거 9번 정도 더하면 정식 수행원이 되는 거예요?”


“네. 뭐... 할 수만 있다면요.”


어느새 불안한 표정을 하고 있던 체스트는 벌써 수행원이 된 것처럼 들떠있었다.


위잉-


때마침 옵저버들이 정찰을 마치고 돌아왔다.


체스트는 옵저버들이 구해 온 지형자료를 조합한 다음 미로의 구조를 홀로그램 화면으로 띄웠다. 예상대로 출구는 없었다.


“이건...”


하지만 꽤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아내었다.


“아무리 봐도 마법진 같은데요?”


체스트의 말대로 미로의 구조는 마법진과 모양이 거의 흡사했다. 체스트는 방위대 안에서 마법을 공부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게 무슨 마법진 인지 손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동 마법진이랑 모양이 똑같다... 그렇다면...’


그는 옵저버에게 안내를 시킨 뒤 미로의 정중앙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던 체르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대단하네. 이곳의 비밀을 저렇게 쉽게 알아내다니...’






어느새 체스트는 미로의 정중앙에 다다랐다. 하지만 그곳엔 별다른 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미로 자체가 하나의 이동 마법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


‘마법진과 매개체, 그리고 주문. 이 중에서 마법진은 이미 있고, 매개체도 옵저버 안에 있는 마법석을 쓰면 된다. 하지만...’


“어떤 주문을 외워야 하는 거지?”


그게 문제였다.


분명 수행원들이 황금 나라로 가는 마법진을 만들 때 정해둔 주문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체스트는 그걸 모른다.


“트로펫.”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순간이동을 쓸 때 말하는 주문을 외웠지만 역시 아무 반응이 없었다.


“드날드로그.”


그때 옆에 있던 체르타가 아무렇지도 않게 주문을 외웠다.


우우웅-


그의 주문에 반응하듯 미로 전체가 밝게 빛났다.


“...응?”


체스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체르타를 쳐다봤을 때 이미 그는 미로의 빛에 감싸진 채로 그곳에서 사라졌다. 체스트도 정신을 차리고 얼른 그를 따라 주문을 외웠다.





체르타를 따라 이동한 곳은 동굴 입구 주위와 마찬가지로 나무들이 즐비한 어느 숲속이었다.


“예? 이미 알고 계셨다고요?”


그곳에서 체스트가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연하죠. 여기가 수행원들 사이에서 얼마나 유명한 곳인데요. 들어가는 방법을 모르는 게 더 이상하죠.”


“그럼 아까 그 수첩을 읽고 난 뒤에 지었던 그 난처한 표정은...”


“당연히 연기였죠.”


체르타가 태연하게 싱긋 웃으며 말했다.


“...사람 놀리니까 재미있어요?”


“놀리다니... 말이 지나치시네요, 전 다만 평가관으로서 당신의 재량을 파악하기 위해 모르는 척 연기했을 뿐입니다.”


그 말에 체스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요? 지금 표정 보니까 꽤 재미있었다는 표정인데?”


그 말에 체르타는 한동안 알 듯 말 듯 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주위에 있던 나무들 사이로 잽싸게 달아났다.


“잠깐! 어디 가요! 대답은 하고 가야죠!”


체스트도 그를 따라 빠르게 숲속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체르타가 숲이 끝나는 곳에 멈춰 섰다.


체스트는 체르타가 정말로 자신을 놀리려는 심보였는지 대답을 듣고 말리라는 생각을 품고서 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분명히 체르타는 그곳에 가만히 서 있었음에도 체스트는 체르타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른 곳에 시선을 빼앗겨버렸다.


“애초에 여긴 그런 시답잖은 말싸움을 하는 곳이 아니에요.”


체르타의 말에 체스트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의 발밑 아래 죽 펼쳐져 있는 땅이 햇빛에 반사되어 샛노랗게 빛나는 광경에 넋을 잃었다. 시선이 가는 곳마다 온통 황금으로 도배된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황금도시’


이 말만큼 이곳을 더 잘 표현해주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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