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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딸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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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마요이
작품등록일 :
2019.07.04 20:48
최근연재일 :
2019.09.13 1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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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91
추천수 :
492
글자수 :
460,152

작성
19.07.3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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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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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1쪽

개학

DUMMY

동네가 참 좁다는 걸 느낀다. 정말 먹고 싶어져 저녁에 나와 맥도날드를 들렸건만 거기서도 마주쳐버렸으니 말이다.

그냥 포장해서 집으로 가져갈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햄버거를 받은 상태다. 할 수 없이 그들의 눈에 띄지 않는 1층으로 내려가려 등을 돌렸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가요?”

“···············.”


일 층으로 내려가 너희를 피해 편하게 한 끼를 때우려 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저 태연하게 유린이를 보며 말했다.


“어··· 너도 있었어?”

“네. 오랜만에 친구들 봤으니 좀 놀고 싶어서요.”


개학일이다. 유린이는 방학 내내 집에서, 그러니까 내 집에서 죽치고 놀다가 겨우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학교에 간 날이다. 겨우 자유를 찾았나 싶더니만 이런 데서 만난다.


“이리 와요. 같이 먹어요.”

“아니 니 친구들은···. 괜찮겠어?”


유린이의 수많은 친구들이 테이블을 붙여 깔깔거리며 대화 중이었다. 고작해야 아이들이지만 어쩐지 불편한 기분이 들어, 나는 유린이와 그 아이들을 피하려 했다.


“괜찮아요. 같이 먹어요.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어제도 봐놓고 뭔 인연이야. 정말 질릴 정도로 자주 보는구나.

할 수 없이 2층으로 올라와 유린이에게 이끌려 아이들 앞에 섰다.


“내 오빠야. 모두 인사해.”


내 인상이 뭐가 어때서. 종잡을 수 없지만 유린이의 친구들은 흠칫 놀랐다가 이내 웃음이 터져서는 내게 새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둘러봤지만 민희는 없었다.

어색하게 자리에 앉았다. 바로 옆엔 모르는 여자아이가 있다. 맞은 편엔 유린이가 앉아 있었다. 아이들의 질문을 받아넘기며 불편한 기분으로 감자튀김을 먹었다.

유린이 남자친구냐, 몇 살이냐, 돈 많이 버냐 등등 어이없고 오해 가득한 질문들이 내게 이어졌다.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아이들은 나의 무뚝뚝한 대답에도 빵 터져 시끄럽게 웃곤 했다.


“왜 햄버거는 맨 마지막에 먹어요?”

“이게 내 순서야.”

“여자 친구 있어요?”

“없······ 있······ 아니 노코멘트.”

“어디 살아요?”

“알아서 뭐하게.”


모두 튕겨내며 묵묵히 콜라의 빨대를 입에 넣었다. 쭉 들이키곤 푸하, 하고 숨을 뱉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신경 쓰여서 할 수가 없었다.

금방 질린 장난감처럼 나는 곧 아이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져 혼자 묵묵히 식사를 했다.


“그럼 나 먼저 가볼게.”


일어섰다. 빨리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유린이가 무어라 말했지만, 손을 흔들며 계단을 내려왔다. 밖으로 나오며 한숨을 쉬었다. 시간을 잘못 골랐다. 걸음을 옮기려하니 뒤에서 팔목이 잡혀 돌아보았다.


“같이 가요.”

“친구들은?”

“괜찮아요. 오빠랑 같이 가고 싶어요.”


따라 나온 유린이와 손을 잡고 걸었다.


“어차피 오빠 집에 들를 예정이었고.”

“그렇겠지.”


유린이의 가방은 1학년 때와 다른 것이었다. 아빠를 졸라 새 가방을 샀다고 한다. 이게 요즘 여자아이들 사이의 트렌드라나. 걸을 때마다 연분홍색의 가방에 달린 고양이 귀가 흔들리고 있다.


“민희랑 다른 반이 됐어요.”

“진짜?”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할 리는 없겠지만 무심코 물어보고 만다. 유린이는 고개를 끄덕인 후 담담히 말했다.


“그야 인기인인 저는 어딜가도 친구가 있지만 민희와 떨어지는 건 마음 아픈 일이에요.”

“그래 아쉽네.”


그럼 민희와 유린이가 붙어 다니는 광경을 보는 것도 점점 줄어드는 걸까.


“그래서 아쉬운 대로 새로운 반에서 제 파벌을 만들었어요.”

“에?”

“저를 주축으로 하는 모임이에요.”

“그런 게 다 있냐······.”

“물론 농담이에요. 새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는 말이에요.”


파벌이라니, 무서운 말이다.


“그치만 제 생각에 언젠가 그런 게 필요할 날이 올 것 같아요.”

“어디에 필요한데?”

“맘에 안 드는 얘를 혼내주거나···.”

“부탁이니까 왕따나 친구를 괴롭히는 일은 하지 마.”

“저를 뭘로 보시는 건가요? 그런 일은 안 해요. 저는 반의 수호자라고요. 항상 다 같이 놀 수 있게 친구들을 모아서 피구도 하고··· 혼자 있는 아이한테 다가가기도 해요.”

“그래. 잘했어.”

“엄마가 그랬어요. 친구는 많을수록 좋은 거라고요.”

“그런가.”


나는 거의 없지만. 있으면 뭔가 좋은 게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오히려 다른 얘들을 괴롭히는 아이를 혼내준다고요.”

“그래, 알았어.”


네가 짱이야. 분개하는 유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치만 정말로 알 수 없는 아이가 있어요.”

“그래?”

“그 애가 정말로 혼자 있고 싶어하는건지··· 아님 친구가 필요한건지 모르겠어요.”

“흠···.”


대부분은 후자라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소수에 한해서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이에게는 일부러 다가갈수록 안 좋은 결과만 나오는 것이다.

그런 내 생각을 말해주어도 유린이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치만 친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뭐 그거야··· 때에 따라 다른 거지. 필요할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고··· 혹은 학교가 아니어도 어딘가에 다른 친구가 있고 그것만으로 충분한 경우라던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아이에 대해 유린이와 추측해보며 길을 걸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문앞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내가 먼저 떼어 확인해보니 올망졸망한 글씨체로 ‘왔다감’ 이라는 짤막한 글자만이 쓰여 있었다.


“이거 누가 쓴 건지 알겠어?”

“민희네요.”


길게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유린이는 말했다.


“뭐야, 없으면 전화라도 걸던가.”

“집 앞에서 계속 기다렸던 걸까요?”

“뭐 그 애는 집 번호 모를 테니까.”


모르겠지? 불안을 느끼며 안으로 들어왔다. 민희가 왔다 간 흔적은 보이지 않았으나 유린이는 거실에서 곳곳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소파부터 티비 근처, 베란다의 커튼까지.


“뭔가 알겠어?”

“아뇨.”


그렇겠지.


“향수 냄새도 안 나고.”

“민희가 그런 걸 쓴다고?”

“아마도?”

“어휴···.”

“그치만 전에 민희가 엄마꺼 가져와서 자랑했단 말이에요.”

“그런 거 안 써도 너흰···.”

“너흰?”

“아냐. 하여튼 간에 아예 이사를 가던가 해야지.”


집안이 털린다면 범인은 둘 중 한 명이다.


“그건 그렇고 오빠, 제가 어제 배운 게 있어요.”

“뭔데?”

“이리. 소파에 누워봐요.”

“왜···?”

“하여간에 의심만 디립따 많다니깐. 제가 오빠 나쁜일 하겠어요? 빨리 누워봐요.”


미심쩍어하며 나는 소파에 엉거주춤 앉는다. 앞에 선 유린이가 손을 뻗어 내 눈가를 문질렀다.


“다크서클 봐. 잠 좀 푹 자요. 쉴 땐 쉬고.”

“자택근무라 그리 불편한 건 없는데.”

“온종일 컴퓨터만 보고 있잖아요. 눈가가 판다 같아요.”


최근 거울을 본 기억이 없다. 그렇게까지 절어 있었나.


“얘들이 오빠 다크서클 보고 웃은 거에요. 3일 내내 회사에 갇혀 있다 온 사람 같다고 했어요.”

“그런 뒷담화를.”

“이상하니까 그렇죠. 제가 피곤을 푸는 마사지를 해드릴게요.”


그렇게 말하며 유린이는 나를 눕혔다. 엎드린 나의 허리에 유린이가 조심스럽게 다리를 걸쳐 앉는다. 조그만 손이 허리에 닿는 게 느껴진다. 조물조물하며 옆구리를 눌러주는 촉감. 무슨 마사지 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자코 눈을 감았다.


“사실은 오일 같은 게 있어도 좋지만 그런 건 없으니까.”

“어디서 본 거야?”

“어제 잡지에서···. 물론 그 후에도 인터넷으로 여러 가질 봤어요. 그러니까 괜찮을 거에요.”

“초보티가 팍팍 나는데.”

“그럴 리가 없어요. 아빠는 좋다고 해줬어요. 펑펑 눈물을 흘리긴 했지만.”

“············.”


형으로 이미 경험을 쌓은 유린이는 내 어깨를 양 엄지로 눌러주었다. 나도 모르게 크하 하고 깊은숨을 내뱉었다. 조그만 손바닥은 어깨를 훑고 등줄기를 꾹꾹 눌러가며 밑으로 내려가고 엉덩이 부근으로···.


“야, 잠깐만.”

“왜요?”

“아니 그 밑은 좀.”

“여기도 하는 거예요.”

“누가 그래.”


그 후로 유린이와 마사지의 마지노선에 관해 옥신각신 논쟁을 벌였다. 겨우 이긴 나는 한숨 돌리며 몸을 일으켰다. 등쪽에 선 유린이가 내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뻗었다.


“흐앗!”


하고 소리를 지를 정도로 놀랐다. 팔과 티셔츠의 틈새로 들어온 유린이의 양손이 내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어쩐지 성추행당하는 기분이었다.


“가만있어요!”

“하얏! 으앗, 야! 이건 좀···! 간지러!”


뒤에서 꽉 안아오는 유린이가 나의 몸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깻죽지까지 올라와 누르기 시작한다. 거기는 굳이 셔츠 안에 손을 넣지 않아도 되잖아. 그렇게 말해도 유린이는 진지하게 마사지를 하고 있다. 한숨을 쉬며 아이에게 몸을 맡기기로 했다. 이상한 혈을 눌러서 죽는 일이라도 없는 한 괜찮겠지. 그러나 지독하게 간지러웠다.

하햣, 흐햣, 히앗. 하고 바보 같은 소리를 토하며 움찔거리자 귓전에서 속삭이는 유린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좋아요 오빠?”

“엄청··· 수치스러운데.”

“견뎌봐요.”

“누굴 위한 마사지야.”

“그야 오빠를 위한 거죠.”


조그만 손가락들이 마구 내 피부를 훑고 스쳐 지나갈 때마다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 반응에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한 유린이는 더욱더 날 유린하기 시작했다.

그런 말장난을 하고 싶을 정도로 나는 정신이 없었다.


“후··· 됐어요. 은근히 힘든 일이네요.”

“나도···.”


양손이 자연스럽게 셔츠에서 스르르 빠져나온다.

축 늘어진 나는 멍한 기분으로 허공을 올려다본다.


“오빠 아직 정신 놓을 때 아니에요.”

“또 있어?”

“마지막이에요. 어때요, 피곤이 싹 풀리죠?”

“어 뭐···.”


풀렸다기보다 피곤을 잊어버린 기분이다. 오히려 이런 상태가 더욱 진이 빠진 게 아닐까.


“다음은 발마사지.”

“휴우.”


바닥에 앉은 유린이는 내 다리를 쥐었다.


“이거는 더 편할 거에요. 아빠도 좋다고 했어요.”

“믿을 수가 없어···.”


당혹스러울 일은 없으니 다행이다. 다리를 주물러주는 유린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왜요?”

“아니. 좀 신기하다 싶어서.”

“뭐가요?”

“아냐.”


피식 웃은 유린이가 종아리를 꾹꾹 눌러준다. 가만히, 시체가 된 듯 꼼짝않고 있었다. 지금까지 중에서는 제일 나은 것 같았다.


“오늘은 제가 오빠를 돌봐드릴게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고마워.”


정말이다. 그리 나은 마사지는 아니지만 유린이가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마사지가 끝나고선 반강제로 유린이의 무릎베개에 누웠다.


“이건 반대 아니냐.”

“가끔은 이렇게도 해요.”


미소를 지으며 내 이마를 덮은 머릿결을 쓰다듬어준다. 신기하게도 이러고 있으니 조금씩 졸려오기 시작했다.

조그맣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유린이를 보고 있으니 눈이 감겨왔다.


“잘자요.”


대답은 하지 못했다. 상냥한 목소리에 이끌리듯 잠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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