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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세 명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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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신강욱
작품등록일 :
2019.07.0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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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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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06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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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세 명의 황제 (1)

DUMMY

1부, 세 명의 황제

< 세 명의 황제 >




시대는 21세기, 현대인 이곳. 이곳은 황제를 국가의 어른으로 모시며, 정치는 황제가 아닌 다른 사람, 즉 내각이 하고 있다. 정치적 실권이 내각에게 있다고는 하나 황제는 국가의 어른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의무를 수행해야한다. 이 의무가 심적 부담이 장난이 아닌 듯하다. 이곳은 인종황제 승하 이후 십 년도 안 돼서 두 번째 황제가 즉위했고, 이 황제마저 선위(禪位, 왕위를 물려줌)하고자 하니까.


*


“황상, 안에 있는가.”

“예. 들어오십시오, 형님.”


태황제(太皇帝, 상황. 선위한 황제) 왕정(王政)이 황제의 처소 태극전(太極殿)을 찾았다. 정이 오자 황제는 들어오라 말했다. 황제는 태황제 왕정의 동생, 왕인(王仁)이다. 인종황제의 둘째 아들이며, 재위한지 꼭 3년째다. 황태제 시절 사별한 황후 사이에서 아들을 얻었으나 황태자(皇太子)로 책봉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동생인 왕연(王然)을 황태제(皇太弟)로 책봉하였다.


“근심이 있다 들었다. 내게 말해보아라. 무슨 근심인가.”

“황제 자리가 참 힘이 듭니다. 어쩜 이리 버거운지 모르겠어요. 형님은 황태자 이십 년, 황제 오 년, 그 의무로 가득한 반오십 년을 어떻게 버텨오셨습니까. 저는 황태제 사 년, 황제 삼 년도 힘들어서 미칠 지경인데.”

“다 버티게 되는 순간이 있는 법. 무던해지는 순간이 있는 법일세. 그래서 어쩌려고. 설마 황상 자네, 선위라도 할 참인가?”

“그럴 생각입니다. 황제자리, 너무 버겁네. 애당초 내 자리도 아니었어.”


하루가 다르게 사람이 야위어져간다. 하루가 다르게 사람 신경이 예민해져만 간다. 담배는 미친 듯이 피우게 된다. 잠은 잘 수가 없다. 잔다 해도 자는 것이 아니었다. 태극전 침상을 몇 번이고 손으로, 발로 때렸는지 모른다. 아프긴 했지만, 잠을 못 자는 고통에 비하겠는가. 그만큼 미칠 듯이 괴로웠다. 힘들었다. 그런 자리였다.


반면에 동생 연은 황태제가 된 걸 기뻐하며 그 책임과 의무를 즐기고 있다. 오히려 그걸 고통이 아닌 행복이라 느끼는 듯하다. 뭐지, 쟤. 미친 건가. 그런 눈빛으로 보기도 했지만, 잠깐. 생각을 달리해보았다. 황위를 연에게 넘겨준다면? 안 그래도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형 정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그 관심이 인 자신을 향하고 있다. 인이 황위에서 물러난다면 다시 대중의 관심은 연에게 향하지 않겠는가. 마침 연과 가희 내외는 대중이 좋아하는 만화 속 황제와 황후의 모습. 딱이다.


“사무총장님, 황제폐하를 모시고 있는 양대헌 실장입니다. 황상께서 뵙고자 하십니다.”

“태극전으로 가면 됩니까?”

“아니요. 밖에서 뵙자고 하십니다.”

“밖에서요? 알겠습니다.”


양 실장은 사무총장에게 만날 장소가 적힌 메모지를 건네주었다. 메모지를 건네받은 사무총장은 시간과 장소를 확인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무슨 일로 보자고 하는 것인가. 일을 비서실을 통해 처리하는 황상이건만, 어째서 직접 보자고 하는 것인가. 그만큼 일이 막중하다는 것은 아닐까.


한 여자가 잇몸을 다 드러내며 웃으면서 궁을 걸었다. 황태제비 신가희. 무슨 이유로 저러는 것일까. 비서진들은 그의 모습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몇몇은 반쯤 공포에 질린 모습이다. 가희는 궁 동쪽의 작은 건물로 들어갔다. 황태제 왕연이 그를 맞았다.


“태제비, 말도 없이 어디 갔다가 오는 겁니까.”

“도심에 나갔다 오는 길입니다. 모처럼 친구들이 보자고 해서. 근데 전하, 소식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식?”

“황제폐하께서 선위하신답니다.”

“누가 뭘 한다고? 황제폐하께서 선위를 하신다고?”

“왜 그러세요? 좋잖아요, 전하. 황제자리에 오르시는 것, 꿈꿔오지 않으셨습니까.”

“······. 일단 태제비전으로 돌아가 있어봐. 나중에 대화하고.”


가희는 태제비전으로 들어갔다. 푸른색 대례복을 입고 큰머리를 얹은 채로 즉위식장에 들어선다. 황제폐하, 황후폐하 만세가 연호된다. 눈을 꼭 감고 황후가 될 그날을 상상하는 가희다. 멋진 황후가 될 것이다. 훌륭한 황후가 될 것이다.


*


도심의 한 카페. 일부러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았다. 또 복장도 일반 사람들과 똑같이 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니까. 궁 안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바깥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말이 세어나갈 위험 역시 적으니 최적이다. 대놓고 황제가 밖에 나온다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못하지. 인이 카페에 앉아 사무총장을 기다렸다. 또각또각 발소리가 들렸다. 사무총장이다. 인은 사무총장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사무총장은 인의 앞에 앉았다.


“커피나 한 잔 마시세요. 마시고 이야기하자고.”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내 돈으로 산다는 소린 안 했습니다.”

“폐하도 참······.”


그래. 어디 저 위인이 제 돈으로 뭘 사줄 사람인가. 사주면 개과천선한 것이나 다름없다. 원래 남에게 자질구레한 돈 따위 잘 쓰지도 않는 이이니까. 저런 시답잖은 소리, 그가 친왕(親王, 황제의 아들) 시절부터 줄기차게 들었던 것이다. 사무총장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서 가져왔다. 인은 사무총장에게 서류를 건넸다. 살짝 긴장하는 사무총장.


“선위교서(禪位敎書)입니다. 이미 국회 및 정부와 논의는 끝났으니, 이제 사무총장이 대외적으로 공포하기만 하면 됩니다.”

“예?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선위라 하셨습니까?”

“그래요. 선위라고 했습니다. 발표만 해주세요.”


사무총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선위라니. 일 추진은 얼마나 빠른지 벌써 국회, 정부와 이야기가 끝났다. 오 년 전 정이 인에게 선위할 때 이렇게 급속도로 처리하지는 않았다. 한데 이번에 인은. 빨라도 너무 빨라. 팔 년 동안 세 명의 황제가 즉위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인의 선위교서를 읊었다. 생중계로 진행된 선위교서 발표. 국민들은 자못 충격을 받은 반응이었다. 그 어느 황제보다 열정적으로 국민 앞에 다가섰던 인이다. 그런 인이 뒤로 물러나겠다고 했으니 얼마나 큰 충격일꼬.


선위교서가 읊어지자마자 연은 태극전을 찾았다. 연이 양 실장에게 눈치를 주자, 양 실장은 안쪽을 향해 외쳤다.


“폐하, 황태제전하께서 찾아계십니다.”

“가라 이르시게. 가서 내일 있을 즉위식이나 준비하라 하시게.”


밖에 서서 듣고 있던 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즉위식 준비. 하기는 해야지. 하지만 형님. 그 전에 이야기는 하셨어야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제게 황위를 넘길 수 있단 말입니까. 속으로 외치지만, 그걸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이상 그 의중을 알 리 없다. 아니. 인은 안다. 다만, 그걸 무시하는 것뿐이다.


가희는 신이 났다. 황태제비(皇太弟妃)에서 황후(皇后)가 된다. 아무 것도 없는 집의 자식이 남자를 잘 만나 영광을 누린다. 마치 드라마 속의 여자주인공이라도 된 마냥 크게 웃으면서 즉위식을 상상했다. 그 어느 순간보다 기뻤다. 재벌가 며느리? 그것보다 더 존귀한 황후다. 온갖 영광은 모두 나의 것이다. 이 나라 독보적인 퍼스트레이디. 얼마나 아름다운가! 눈앞에 있는 푸른색 적의(翟衣, 황후의 의례용 복장)와 떠구지머리(조선조 가체모양 중 하나로 예식 시 했던 모양)를 한참 응시하는 가희다.


다음날. 본궁의 태화전(太和殿). 궁 안의 모든 사람과 정부, 국회, 경제계 등 나라 내 내로라하는 모든 사람들이 태화전을 찾았다. 이곳 태화전에서는 연의 황제 즉위식이 열린다. 본래 정과 인 모두 십이장복(十二章服, 열두 개의 문양이 새겨진 황제의 예복)을 갖춰 입어야 한다. 하지만 황제로 즉위하는 연이 돋보이도록 하려고 정장 차림으로 즉위식장 맨 위, 월대(月臺, 전각 앞에 놓이는 넓은 대) 위에 앉았다.


“황제폐하 납시오.”


사무총장의 구령과 함께 연과 가희가 천천히 태화전 안으로 들어왔다. 장복(章服)과 면류관을 갖춰 입은 연. 푸른색 적의와 떠구지머리를 한 가희. 두 사람은 규(圭, 옥으로 만든 홀)를 들고 천천히 월대 위에 올랐다. 월대 위에 올라서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연은 긴장한 표정이지만, 가희는 웃음이 만발했다.


*


“태상황제폐하, 황제폐하와 황후폐하께서 아침문안인사 하시고자 드셨습니다.”

“모시세요.”


정은 태상황제(太上皇帝)가 되었고, 인은 태황제가 되었다. 정의 처소 자성전(慈聖殿) 안. 정과 인이 자리한 가운데 연과 가희가 아침 문안인사를 올리고자 들렀다. 정은 모시라고 했다. 밖에 있던 연과 가희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본전에 들지 않았다 들었느니라. 어째서 아직 동궁에 있는가.”

“아직 저희가 준비를 끝마치지 못하여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문안 후에 본전으로 들 것입니다.”

“그래. 앞으로 잘 버티시게. 나나 태상은 일찍이 사별하여 옆이 허전한 채로 있지 않았는가. 반면에 황상은 내전(內殿, 황후)이 있으니 큰 힘이 될 게야.”

“폐하······.”

“아침인사가 길면 지치니라. 동궁으로 돌아가 수라를 든 후에 본전에 들도록 하시게. 태상은 따로 할 말이 없다 하니 돌아가도 좋아.”

“그러면 들어가 보겠습니다. 쉬십시오.”


연과 가희가 문안인사를 올리는 동안 인은 한참 가희를 쳐다보았다. 눈빛과 손짓, 전반적인 행동.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두 사람이 물러나고, 정은 인을 보았다.


“너는 왜 그렇게 내전만 바라보고 있었어.”

“저 아이의 행동이 이상해서. 형님은 이상하다 안 느낍니까?”

“아직까진 모르겠다. 내가 너만큼 사람에 대한 촉이 좋지 않아서.”


정이 물 흐르는 대로 살겠다는 사람이라면, 인은 물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려야 하는 사람이다. 이런 성격 때문에 인이 사람에 대한 촉은 좋다. 좋다 못해 무섭도록 뛰어나다. 귀신적인 감각이다.


가희는 황후의 처소 경인전(景仁殿) 안으로 들어갔다. 황후의 공간답게 넓고 아름답다. 천장에 수식된 수십 마리의 용들. 금과 옥으로 도배된 벽지와 가구들. 가희는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입에 힘을 주며 활짝 웃었다.


한편 연은 태극전에 앉아 모든 것을 인수인계 받느라 분주했다. 사무국과도 연락하고, 비서실과도 연락하고, 경호실과도 연락하고.... 거기다가 국무총리와 국회의장에게도 연락해야 하고, 새 황제 즉위라며 해외 군주들에게서도 연락이 오고. 돌아버릴 지경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연은 태극전을 나와 후원으로 걸어갔다. 어디선가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돌아보니, 웬 여자가 달려오고 있었다. 피하려고 했는데, 늦은 것 같다. 턱. 제법 세게 부딪히면서 나자빠졌다. 연은 옷을 털고 여자 쪽으로 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이 궁에서 뭐 그렇게 급한 게 있어서 뛰어 다닙니까. 조심하셔야지.”

“죄송합니다.”


여자는 고개를 들어 연을 보았다. “폐······ 폐하”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데 연이 그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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