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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문 (悲獸問)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드라마

오패론
작품등록일 :
2019.07.10 00:12
최근연재일 :
2019.12.10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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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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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8,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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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3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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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1)

DUMMY

#1

어느 허름한 사원의 내부. 그곳엔 총 여덟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다섯 구의 시체와 세 명의 살아있는 사내들이라 해야 옳을까? 더군다나 그 살아있는 세 명의 사내들조차 단지 목숨이 붙어 있다는 점만 동일했을 뿐, 그 행색이나 상태는 저마다 각양각색이었다.


먼저, 불상을 등진 채로 칼을 늘어뜨리고 있는 사내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옷은 여기저기가 찢기고 베어져 상처부위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끊임없이 새어 나오는 피로 바닥이 흥건했다. 원래는 백의(白衣)였을 무복 또한 피로 흠뻑 물들어 어느 새 혈의(血衣)가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게다가 긴 시간 동안 피와 땀을 과도하게 흘렸음일까? 사내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심하게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날카로운 시선만큼은 줄곧 앞에 고정된 채 그 어떤 흔들림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선이 향한 곳에선, 나머지 두 사람이 여유로운 모습으로 서서 혈의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청색 도포를 걸친 중년인과 회색 권갑(拳甲)을 착용한 흑의 청년. 처참한 몰골의 상대와는 달리 이 두 사람의 몸에는 그 어떤 생채기조차 나 있지 않은 상태였다. 오직 청년의 권갑에서 떨어지는 선명한 핏물들만이, 그 또한 방금 전 전투의 직접적인 당사자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었다.


혈의 사내를 향해 청년이 발걸음을 내디디려 하던 바로 그 순간.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서있기만 하던 중년인이 그것을 제지하고는 나지막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문 조장, 이제 그만 포기하게나.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자네 힘만으로는 무리라는 것을..."


중년인으로부터 문 조장이라고 불린 혈의 사내는 분노가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따져 묻듯 외쳤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 어떻게 우리에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지금껏 당신을 존경하고 따랐던 그 모든 이들을 배신하려 하시는 것입니까?“

“허허, 배신이라... 자네 스스로도 그 말이 너무 염치없다고 생각하지 않나? 똑똑히 기억해 두게. 배신을 한 건 내가 아닌, 그대들, 아니 이 무림 전체라는 것을 말이야.”

“설마... 그 일 때문이십니까? 하지만 그 일은 이미 당신도 이해해 주시기로 한...”

“그 입 닥치지 못할까!”


사원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며 소리치는 중년인.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을 뿐, 그는 곧바로 다시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가며 말했다.


“그 날 이후,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갔다네. 주변의 공기는 마치 지옥불의 열기처럼 나를 옥죄어 왔고, 내리는 빗물은 마치 만 개의 비수처럼 내 몸과 마음을 난도질했지.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순 없었다네.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아있었거든. 그리고 드디어 그 일을 위한 준비가 모두 끝났다네. 이제 그대들에게도 내가 겪은 그 지옥을 느끼게 해줄 순간이 도래한 듯싶구먼."


이에 혈의 사내는 한 차례 한숨을 길게 내쉰 후, 사정하는 듯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당신의 분노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에 휘말려 죽게 될 수많은 일반인들은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무슨 이유가 됐든, 당신의 그 복수심으로 죄 없는 사람들까지 죽게 만드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혈의 사내의 말에 장내에는 침묵만이 감돌 뿐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후, 중년인은 슬며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답했다.


"그런 감성 팔이 따위는 그만 두시게나. 그 옳고 그름이란 것도 결국엔 인간의 굴레 안에서 정해지는 것. 어차피 이 길을 선택한 순간부터, 나는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네. 그리고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지. 이젠 나와 이 무림 중 어느 하나가 완전히 파멸할 때까진 그 화살 또한 멈추지 않을 걸세. 허허, 그러고 보니 잡설이 너무 길었구먼. 자, 이제 자네도 피곤할 테니, 그만 편히 쉬시게나."


중년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권갑을 착용한 청년이 문 조장을 향해 다시 걸음을 내디뎌오기 시작했다. 그런 청년의 모습은 아랑곳하지 않고, 문 조장, 아니 문석(紋碩)은 자신의 근처, 다섯 구의 시체로 화해 있는 그의 부하들을 슬픈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불과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즐겁게 웃으며 자신과 농언을 나누었던 부하들이었다.


'능력이 부족한 상관을 만나 고생만 하다 가는구나. 내세에선 의좋은 형제로 태어나, 빌어먹을 무림인 같은 거 하지 말고, 그저 평범하게 우리들이 좋아하던 술 마음껏 마시면서 살아가도록 하자‘


눈물을 참아내기 위해 다시 고개를 들어올리는 문석. 마치 머릿속에서 과거의 일들을 훑고 있는 듯 그의 눈빛에는 아련함이 깃들어 있었다.


#2

정파(正派) 최고의 정보조직, 벽성방(劈省幇). 그곳에는 총 세 개의 당이 존재했다. 그 중 추사당(追邪堂)은 일명 사파(邪派) 세력들의 동향 파악에 그 목적을 두고 있는 곳이었고, 이러한 추사당을 구성하는 열 개의 조 중 칠조(七組)의 조장을 맡고 있던 자가 바로 문석이었다.


최근 들어, 추사당 내부의 모든 이들은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절천문(折天門)과 목유제가(木類制家) 등을 필두로 한 사파의 대표 세력들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였는데, 언제부턴가 문석은 이 정보들에 대한 몇 가지 이상한 점들을 인식하고 의문을 가지게 된 상태였다.


우선, 그가 느끼기에 정보의 유입속도가 너무나도 빨랐다. 명색이 정파와 함께 천하를 양분하고 있다는 사파,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한 세력을 구축해 온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경계망을 뚫고 접근해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하기까지는, 아무래도 꽤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절천문과 목유제가의 경우는 간자를 심기도 어려웠다. 애초에 목유제가는 집성촌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다른 외부인의 출입을 완전히 배척하였고, 절천문 또한 충성도를 시험하는 관문을 열 개나 통과해야 할 정도로 엄중하게 사람들을 가려 들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들리는 소문으로는 절천문에는 문주에게 무조건적으로 충성하게 만드는 사술이 존재하여 이것을 시전 받지 않은 사람은 신분을 막론하고 그 내부로 발조차 붙이지 못한다는 말까지도 있었다.


그런데도 최근 벽성방 내로 날아들고 있는 정보들의 유입속도는 위의 얘기를 무색하게 할 만큼 무척이나 빨랐다. 아무리 벽성방의 정보력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이토록 말도 안 되는 신속함으로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들 세력 내부의 누군가가 일부러 그 정보들을 흘리고 있지 않은 이상은...


또한, 그러한 새로운 정보들이 모두 연통을 통해서만 유입되고 있다는 것도 이상했다. 벽성방 내로 들어오는 정보들의 경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정보원이 조장이나 당주를 만나 직접 전달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연통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오고 있는 새로운 정보들 중에서 정보원이 직접 벽성방 내로 들어와 보고한 것은 단 한 건도 없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그 정보가 담긴 연통들을 달고 오는 전서구들의 상태에서도 이상한 점들이 발견되었다. 누군가에게 꽉 붙잡혔다가 풀려난 듯 온 몸의 깃털들이 듬성듬성 빠져있었고, 특히 등쪽에서는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리거나 베인 듯한 상처들까지도 발견되었던 것이다.


'비상식적으로 빠르게 날아들어오는 정보들과 그것이 오직 연통을 통해서만 전달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가져오는 전서구들의 상태까지... 누군가가 날아가는 전서구들을 붙잡았다가 그 정보들을 바꿔 치기 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이 추측에 대한 확실한 물증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각 전서구들이 날아온 쪽의 정보원들에게 실제로도 이런 정보들을 보낸 적이 있는지 물어본다면 가장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을 테지만, 그거 하나 물어보려고 그들에게 모든 임무를 다 제쳐두고 이곳으로 오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벽성방은 '본 방에서 먼저 사람이나 전서구를 보낼 땐 당주 이상 지위자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라는 규칙을 시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보원들의 위치가 혹시라도 적들에게 드러날 것을 염려하였던 탓에...), 직접 사람이나 연통을 보내 알아보는 것에도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었다.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사실, #2를 완료한 후에야 업데이트를 하려했는데,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일단 끊어서 올리기로 했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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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마수(魔獸)의 길 (4) 19.12.10 49 3 10쪽
26 마수(魔獸)의 길 (3) 19.12.07 86 3 8쪽
25 마수(魔獸)의 길 (2) 19.12.01 88 3 8쪽
24 마수(魔獸)의 길 (1) 19.12.01 80 3 7쪽
23 파문(波紋) (10) 19.11.17 99 4 11쪽
22 파문(波紋) (9) 19.11.17 88 4 12쪽
21 파문(波紋) (8) 19.11.09 150 3 12쪽
20 파문(波紋) (7) 19.11.07 126 4 7쪽
19 파문(波紋) (6) 19.11.04 131 5 9쪽
18 파문(波紋) (5) 19.11.02 165 4 9쪽
17 파문(波紋) (4) 19.10.27 189 5 13쪽
16 파문(波紋) (3) 19.10.24 190 4 11쪽
15 파문(波紋) (2) 19.10.20 200 5 9쪽
14 파문(波紋) (1) 19.10.16 239 5 8쪽
13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7) 19.10.13 256 5 11쪽
12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6) 19.10.11 313 6 8쪽
11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5) 19.09.30 281 6 7쪽
10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4) 19.09.27 285 6 9쪽
9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3) 19.09.05 328 5 7쪽
8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2) 19.08.13 437 7 8쪽
»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1) 19.08.03 534 7 9쪽
6 내게 남은 것 (5) 19.07.24 567 8 13쪽
5 내게 남은 것 (4) 19.07.21 606 8 7쪽
4 내게 남은 것 (3) 19.07.17 640 8 12쪽
3 내게 남은 것 (2) 19.07.14 754 9 8쪽
2 내게 남은 것 (1) 19.07.11 981 9 8쪽
1 서 (序) +2 19.07.10 1,130 8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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