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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문 (悲獸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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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패론
작품등록일 :
2019.07.10 00:12
최근연재일 :
2019.12.0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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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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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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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2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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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파문(波紋) (2)

DUMMY

#2

동하가 객잔 밖으로 나온 시각은 이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곧바로 동하는 발길을 재촉하여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약 일 각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봄 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언덕 위에 앉아 그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덕의 경우, 비록 그 높이가 그리 높진 않아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나 넓은 범위의 지대를 훑어볼 수 있어 주변의 상황을 살피기엔 전혀 손색이 없는 곳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하가 지금 이 언덕을 찾은 이유는 경치를 감상하겠다거나 마을의 모습을 살피고 싶다는 등의 그런 한가로운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동하에게 있어 이 곳은 그에게 가장 소중한 이들의 모습을 한번이라도 더 눈에 담기 위한 장소였다. 그리고 그 시작을 알린 건 지금으로부터 약 일 년 전, 춘풍객잔(春風客棧)을 찾은 두 손님 사이에서 흘러나온 다음과 같은 내용의 대화였다.


"그러고 보면 명선장(銘腺莊) 장주는 참으로 뿌듯하기 그지없겠소이다. 그토록 영특한 아드님에다 어린아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 미모의 따님까지 두었으니 말이오."

"하하, 마치 그 아이들을 직접 보기라도 한 것 같이 말씀하시는구려?"

"암, 보았고 말고요. 내가 설마 보지도 않고 그리 말하는 사람으로 보이시는 게요?"

"아니, 그럼 정말 그들을 본 게 사실이란 말입니까? 도대체 어디서 말이오? 명선장 장주 내외가 아이들을 너무나도 끔찍이 아껴, 지금껏 그 아이들의 모습이 외부로 노출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얼마 전까진 그랬지요. 하지만 아이들도 점차 성장해가고 있는 지금, 그들을 이렇게 장원 내부에만 가둬놓는 것 또한 그리 좋지 못한 영향을 줄 것이란 의견이 대두되었다는 것 같소. 그래서 그 결과, 이제부터는 매달 초하루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 주변의 언덕으로 나들이를 나가기로 했다 하오.”

“오, 그렇게 된 것이로군요. 그런데 귀하는 그 사실을 어찌 아셨소이까?”

“사실, 명선장에서 일하는 자들 중 아는 이가 있었다오. 그 덕분에 장주 가족의 첫 나들이 예정 날짜와 장소, 그리고 시각 또한 미리 알 수 있었던 거구요”

“하하, 그래서 어찌 되었소? 그 시간에 맞춰 그 언덕으로 나가신 겝니까?”

“뭐, 아시다시피 내가 호기심이 좀 많은 성격이지 않소이까? 그런데 아뿔싸! 거기 나가보니 나 말고도 미리 그에 관한 얘기를 전해들은 자들이 벌써 삼십 명이나 와 있지 않았겠소? 결국 사람들이 그렇게 붐비다 보니 아쉽게도 장주 일행을 호위하던 자들에게 바로 쫓겨나고 말았지 뭐요.”

“에이, 그러면 그 아이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던 거 아니오?”

“흠흠... 뭐, 엄청 자세하게 관찰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호위들 어깨 너머로 아이들 모습을 약간이나마 지켜볼 수 있었던 게 어디오? 어디 내 말이 틀리오이까? 더군다나 그 정도만으로도 그 아이들이 얼마나 영특하고 또 얼마나 예쁜지를 파악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소이다.”

“하하하, 어련하시겠소? 그나저나 본디 명선장 장주가 힘으로서 사람들을 대하는 자가 아니라고 들었었는데, 역시 아이들 문제에 한해선 그 또한 어쩔 수 없이 예민해질 수 밖에 없는 것 같구려.”

“그러게나 말이오. 게다가 첫 나들이 당시 언덕 위에 모여있었던 사람들 때문에 아이들 안전을 더욱 더 걱정하게 되어버린 것인지, 다음 나들이부턴 아예 어호대(御虎隊)까지 동원해서 언덕 위로 사람들이 일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을 계획이라 하오. 시각 또한 저녁에 가까운 늦은 오후로 변경되었다고 하구요.”


그 당시, 우연히 점소이들에게 볼일이 있어 식당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었던 동하는 자신의 귓가를 스친 ‘명선장’과 ‘아이들’이라는 단어에 흠칫 놀라 곧바로 두 사람의 대화를 유심히 듣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곧 자신이 원하는 여러 정보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동하는 매달 초하룻날, 시간에 맞춰 언덕을 찾음으로써 두 아이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봐 왔다. 그 과정에서 장주 일행을 호위하는 어호대의 존재 따윈 그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동하가 마음을 먹으면 그 어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었으니깐. 이는 동하가 정신을 집중할 때마다 그의 심장 부근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기운의 존재에 기인하는 것이었는데, 이 기운은 상황에 따라 동하가 먼 곳을 볼 수 있게 하거나 미세한 소리를 잡아낼 수 있게 해주었고, 지금과 같은 경우엔 폐와 근육을 감싸며 그에게서 날 수 있는 모든 소리들을 억제해 주었다. 사실 동하가 이와 같은 자신의 능력을 깨달은 지는 삼 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부터 재미 삼아 꾸준히 단련한 결과 지금은 꽤나 숙련되게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여하튼 이와 같이 오늘도 동하가 언덕 아래를 바라보며 어서 장주 일행이 접근해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언덕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숲으로부터 다수의 무림인들이 튀어나와 어딘가로 달려가는 모습이 동하의 시야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던 동하였지만, 문득 다시 생각해보니 왠지 모르게 뭔가가 마음에 걸렸다. 현재 무림인들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에는 바로 명선장이 존재한단 사실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동하는 이러한 자신의 예감이 너무 과한 넘겨짚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그래도 당장에 이 불안함을 해소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것 같아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언덕 아래로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동하가 무림인들의 뒤를 쫓아 달린 지 얼마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문득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불쾌한 느낌이 온 몸에 엄습하는 것을 느끼며 발길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 때, 갑자기 동하 바로 옆 나무 위로부터 세 개의 인영이 튀어나와 그를 덮쳐왔다. 다행히 동하는 미리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조금이나마 마음의 준비를 했었던 덕분에 그들의 첫 번째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 곧바로 쏟아진 다음 공격에는 미처 대처하지 못한 채 결국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 동하의 몸 위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세 명의 사람들. 곧이어 그들 중 가장 젊어 보이는 사내가 제일 먼저 허리를 숙여 동하의 몸을 결박한 뒤 입을 열었다.


“이 녀석,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우선, 왜 우리 뒤를 쫓아온 건지 한 번 물어볼까요?”


그러자 그의 뒤에 서 있던 다른 사내들 중 한 명이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그런다고 그 놈이 순순히 진실을 말한다는 보장이 없잖느냐. 우리 뒤를 쫓아온 걸로 봐서는 뭔가 정보를 캐내려 한 것 같은데, 뒷탈이 없으려면 그냥 제거하는 게 낫겠지.”

“음... 하지만 사파 측에서 보낸 첩자라고 하기엔 우릴 추격하는 방식이 너무 서툴지 않았습니까? 지닌 바 무공 또한 너무 빈약한 것 같고요.”

“아니면 혹시 명선장에서 온 놈일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명선장 쪽으로 이동하는 걸 눈치채고 따라온 것 같기도 하니 말이야. 만약 이 놈이 명선장에서 온 것이라면 더더욱 어쩔 수 없지. 명선장에 소속된 사람들은 모두 제거하라는 문주님의 명령도 있었으니...”


이에 맨 처음 입을 열었던 사내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다시 동하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어이, 애송아, 비록 너에게 큰 악감정은 없지만 넌 여기서 좀 죽어주어야겠다. 네 정체는 잘 모르겠으나, 생각해보면 겁 없이 우리 뒤를 따라온 너의 잘못도 있으니, 너무 우릴 크게 원망하지 말도록.”


사내의 말에 동하는 결박당한 몸을 억지로 움직이려 애쓰며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들! 지금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겁니까? 도대체 명선장에 어떤 짓을 하려고!”

“하하, 역시 명선장 놈이었나? 좋다. 마지막이니 내 특별히 얘기해주도록 하지.”


잠시 말을 멈추고 살기 어린 눈빛으로 동하를 내려다보던 사내는, 곧이어 다시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오늘 명선장은 우리 손에 의해 최후의 날을 맞을 것이다.”

“...!”


사내는 동하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춤의 검을 뽑아들었다. 검에서 반사된 노을빛은 마치 핏빛처럼 동하의 얼굴을 비추었고, 그 바로 다음 순간 한 줄기 붉은 선이 그의 가슴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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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마수(魔獸)의 길 (3) NEW 19시간 전 30 0 8쪽
25 마수(魔獸)의 길 (2) 19.12.01 53 1 8쪽
24 마수(魔獸)의 길 (1) 19.12.01 46 1 7쪽
23 파문(波紋) (10) 19.11.17 74 3 11쪽
22 파문(波紋) (9) 19.11.17 63 3 12쪽
21 파문(波紋) (8) 19.11.09 125 3 12쪽
20 파문(波紋) (7) 19.11.07 103 4 7쪽
19 파문(波紋) (6) 19.11.04 109 5 9쪽
18 파문(波紋) (5) 19.11.02 139 4 9쪽
17 파문(波紋) (4) 19.10.27 163 5 13쪽
16 파문(波紋) (3) 19.10.24 164 4 11쪽
» 파문(波紋) (2) 19.10.20 175 5 9쪽
14 파문(波紋) (1) 19.10.16 210 5 8쪽
13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7) 19.10.13 227 5 11쪽
12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6) 19.10.11 285 6 8쪽
11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5) 19.09.30 253 6 7쪽
10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4) 19.09.27 256 6 9쪽
9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3) 19.09.05 294 5 7쪽
8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2) 19.08.13 402 7 8쪽
7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1) 19.08.03 497 7 9쪽
6 내게 남은 것 (5) 19.07.24 530 8 13쪽
5 내게 남은 것 (4) 19.07.21 567 8 7쪽
4 내게 남은 것 (3) 19.07.17 600 8 12쪽
3 내게 남은 것 (2) 19.07.14 702 9 8쪽
2 내게 남은 것 (1) 19.07.11 912 9 8쪽
1 서 (序) +2 19.07.10 1,056 8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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