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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문 (悲獸問)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드라마

오패론
작품등록일 :
2019.07.10 00:12
최근연재일 :
2019.12.10 23:05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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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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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2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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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波紋) (3)

DUMMY

#3

소박하지만 정갈하게 꾸며진 어느 방 안. 그 곳에는 세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서로 마주보고 앉은 중년인과 장년인, 그리고 중년인의 뒤에 시립해 있는 한 명의 청년까지. 그리고 그 중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백색 장삼을 걸친 장년인이었다.


"드디어 해진검문(獬進劍門)과 토곡(㫦谷)이 행동을 개시하였소."

"오오, 드디어 시작되었는가?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겠구먼."


장년인의 말에 즐겁다는 듯 미소를 피어 올리며 답하는 중년인. 그런 그를 향해 장년인은 퉁명스러운 어조로 대꾸하였다.


"흥! 아주 능구렁이가 따로 없구먼. 어차피 당신이 짜놓은 판 위에서 그대로 흘러갈 터인데, 뭐가 그리 재미있을 것 같다 능청을 떤단 말이오?"


그러자 갑자기 중년인의 뒤에 서 있던 청년이 격앙된 목소리로 따지듯 말했다.


"부디 말씀을 가려서 하시지요! 주군께서는 좌 대인이 그렇게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뭐라고? 이 놈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어디 감히 키우는 개새끼 주제에 주인들 얘기에 버릇 없이 끼어드느냐! 그리고 정작 이 무림 자체를 부정하려 하는 건 네 주인인데, 내가 왜 무림의 법도에 따라 네 주인을 공경해야 한단 말이냐? 어디 내 말이 틀렸느냐?"


장년인은 청년을 향해 노호성을 지른 후, 고개를 다시 중년인 쪽으로 돌리며 물었다.


"자, 한 번 말해보시오. 당신, 나한테 그리 대접받고 싶으슈? 내가 당신한테 예의를 안 차리는 것 때문에 기분이 나빠 못 견디겠냔 말이오."

"허허, 난 괜찮다네. 성율아, 너도 어서 좌 공께 사과 드리거라. 어서!"

"죄송... 합니다, 좌 대인."


중년인의 명령에 마지못해 허리를 깊이 숙여 보이는 청년. 그러나 그는 아직까지도 분을 삭이지 못한 듯 피가 날 정도로 자신의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청년의 표정을 미처 보지 못한 장년인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중년인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아마 해진검문과 토곡에서 파견된 인원들이 명선장에 다다를 즈음이면 저녁에 가까운 늦은 오후가 될 것 같다던데, 그건 또 왜 그렇게 설계하신 게요?"

"응? 방금 늦은 오후라 하셨는가? 새벽이 아니라 늦은 오후라고?"

"뭐요? 당신 계획 상에 있었던 내용이 아니었단 말이오?"


중년인은 그 물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갑자기 박장대소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장년인. 그리고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나, 겨우 웃음을 진정한 중년인이 장년인을 향해 말했다.


"하하하, 역시 연도휘, 그 아이는 남다른 구석이 있구먼. 참으로 대단한 아이야. 하하하!"

"연도휘? 그럼 지금의 상황들이 모두 암성연가의 소가주에 의해 주도적으로 진행되고 있단 얘기요? 다시 말해, 당신은 지금의 상황을 전혀 당신 마음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있단 거고?"

"허허, 아무리 나라도 어찌 그 세세한 일정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는가? 난 그저 상황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하기 위한 큰 틀을 짤 뿐이지. 비록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해선 연도휘, 그 아이의 결정대로 따라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 계획의 큰 틀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으니 너무 그리 염려할 것 없네. 더군다나 지금의 경우는 오히려 내 계획을 도와주는 격이라 할 수 있으니..."

"염려하긴, 누가 염려한다고 그러오? 착각하지 마시오. 난 내가 원하는 것만 확실하게 얻을 수 있다면 이 일이 어찌되든 전혀 상관없소."

"하하하, 알겠네."


겉으로는 관심 없는 척 얘기하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호기심만큼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었는지, 결국 장년인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중년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늦은 오후에 명선장을 치는 선택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는 거요? 오히려 급습에 불리해서 안 좋은 거 아니오?"

"그에 관해 설명하기에 앞서, 방금 전 내가 왜 이번 경우가 오히려 내 계획을 도와주는 격이라 말했었는지부터 얘기해둘 필요가 있겠군. 자네, 이번에 정파 측으로 하여금 명선장을 공격하게 만드는 계획에 있어 가장 핵심이 되는 게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중년인으로부터 뜬금없는 질문을 받고 고민하던 장년인은, 잠시 후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그야 뭐, 최대한 상대를 빨리 제압하는 게 아니겠소? 어차피 명선장은 사파 측을 확실히 끌어들여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 괜히 시간을 지체했다가 정파 측에 쓸데없는 전력누수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이후 정사 대전이 일어났을 때 양측 간 힘의 균형이 흐트러져 전황이 한쪽으로 기울게 될 가능성도 있으니 말이오."


그러나 중년인은 장년인의 말이 틀렸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닐세. 진정한 핵심은 명선장 사람들 중 남은 생존자가 전혀 없어야 한단 사실이지."

"...?"

"최근 정, 사파의 주요 세력들 내로 쏟아져 들어오는 대량의 정보들. 그 정보들 속에는 단 하나의 거짓이 섞여있지만 그와 동시에 아흔아홉 개의 진실 또한 품고 있어,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이 무뎌지도록 만든다. 더군다나 평상시보다 월등히 빠른 정보 유입 속도는 각 세력 수장들의 이성적인 사고와 합리적인 판단을 마비시키므로,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접한 정보 속 거짓마저도 진실이라 믿을 수 밖에 없게 된다.

한편, 정, 사파 양측이 각각 보유하게 될 총괄적인 정보의 내용은 서로 상이하며, 그로 인해 양측 간에는 심한 오해와 갈등이 발생하여 결과적으로 전쟁으로까지 치닫게 된다."


천장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리던 중년인은, 곧이어 시선을 다시 장년인 쪽으로 향한 채 말을 이어갔다.


"자네도 알다시피, 이것이 바로 지금껏 우리가 설계해왔던 계획이었다네. 그리고 이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정, 사파 양측에서 각각 믿게 될 그 '거짓"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거겠지."

"그럼 혹시?"

"그래. 현재 정파와 사파가 믿고 있는 거짓은 모두 명선장과 관련된 것이라네. 정, 사파 양측이 서로의 말을 더더욱 믿지 못하게 된 현 상황에서 그 '거짓'을 증명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명선장 자신들 뿐. 만약 이대로 명선장이 완전히 멸할 경우, 정, 사파는 각자가 알고 있는 내용을 진실이라 믿은 채 서로를 향해 이를 갈게 되겠지. 허나, 만약 명선장 사람들 중 생존자가 한 명이라도 생기게 된다면, 이는 그 '거짓'을 증언할 수 있는 자들 또한 만들어질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네. 지금 당장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으로 인해 아무리 명선장 측에서 떠들어댄대도 귀담아 듣는 이가 없겠지만, 얼마 후 사람들이 조금 더 냉정한 사고가 가능해졌을 때 그 얘기를 다시 듣게 된다면 결코 그 내용들을 쉽게 무시할 수 없을 걸세. 특히 정, 사파의 중소 문파들일수록 더더욱 말이야."


이에 장년인은 이제야 알겠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그는 아직 자신의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한 듯 다시 미간을 찌푸리며 중년인에게 쏘아붙였다.


"음... 듣고 보니 그렇군. 그런데 그게 명선장을 늦은 오후에 공격하는 거랑은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하하, 아직 눈치 채지 못한 겐가? 어둠은 예상치 못한 기습을 가능케 하여 변수를 만들어내는 데 유리하지만, 그 변수는 공격의 대상이 되는 상대뿐 아니라 직접 공격을 실행하는 자신들에게까지도 작용할 수 있는 법이라네. 그리고 이번 일의 경우, 그 변수란 바로 상대를 한 명이라도 더 놓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겠지. 다시 말해, 연도휘, 그 아이가 아직 해가 완전히 지기 전을 공격 시기로 잡은 것에는 명선장을 몰살시킬 생각이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게야. 그 어느 누구도 살아서 명선장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말일세. 방금 전, 내가 지금의 상황이 우리의 계획을 도와주는 격이라고 말했던 것 또한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네."


하지만 장년인은 아직도 뭔가가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는 듯한 말투로 대꾸했다.


"허나 뭔가 이상하지 않소? 우리 입장에서는 앞서 당신이 말해준 대로 명선장을 완전히 멸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연도휘, 그 자에겐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을 텐데 말이오."

"싹을 아예 잘라버릴 생각이겠지."

"싹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사파 측과 모의하여 정파의 뒤통수를 치려고 한 자들의 말로가 어찌 되는 지를 분명히 보여줌으로써 혹시 있을지도 모를 배신자들의 싹을 잘라버리고 동시에 정파 전체의 사기를 진작시킨다. 또한, 살아남은 이들이 복수를 목적으로 힘을 모아 미래에 자신을 향해 그 이빨을 드러낼 가능성까지도 완전히 배제시킨다. 아마도 이 두 가지 목적의 발로가 아닐까 싶네."

"허어... 그 동안 어리다고 얕잡아 봤건만, 이토록 무서운 심계를 가진 자였을 줄이야..."


그렇게 혀를 끌끌 차며 한동안 말이 없던 장년인은, 잠시 후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뭐, 그건 아무럼 나랑 상관없는 일이고, 어쨌든 당신은 약속했던 거나 꼭 지켜주시오."


자신의 용건은 끝났다는 듯 곧바로 돌아서서 문가로 다가가는 장년인. 그렇게 문을 열고 방을 나서려던 찰나, 그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중년인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이유가 뭐요?”

"무슨 말인가? 이유라니?"

"명선장을 선택한 이유 말이오. 왜 하필 당신의 계획 상에서 그 희생되는 역할을 맡은 곳이 명선장이 되어야 했던 거요?"

"하하하, 딱히 아무런 이유도 없네."

"...?"

"그저 계획을 구상하던 중 우연히 명선장이 내 눈에 띄었을 뿐이지. 이용하기에 적합한 하나의 말로서 말이야. 그 외의 다른 이유는 전혀 없다네."

"이런 미친..."


곧이어 장년인은 질렸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재빨리 방을 나섰다. 그렇게 문이 닫히고 약 반 각 가량의 시간이 흐른 뒤. 중년인은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무 그렇게 혐오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날 바라보지 말아 주게나. 어차피 자네 또한 머지않아 명선장의 뒤를 따르게 해줄 터이니."


그와 같이 말하는 중년인의 얼굴에는 이미 아까 전의 그 온화한 미소가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 사라진 미소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건 오직 세상을 통째로 얼려버릴 것처럼 냉담한 그의 무표정뿐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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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마수(魔獸)의 길 (2) 19.12.01 83 3 8쪽
24 마수(魔獸)의 길 (1) 19.12.01 75 3 7쪽
23 파문(波紋) (10) 19.11.17 93 4 11쪽
22 파문(波紋) (9) 19.11.17 84 4 12쪽
21 파문(波紋) (8) 19.11.09 143 3 12쪽
20 파문(波紋) (7) 19.11.07 122 4 7쪽
19 파문(波紋) (6) 19.11.04 126 5 9쪽
18 파문(波紋) (5) 19.11.02 157 4 9쪽
17 파문(波紋) (4) 19.10.27 182 5 13쪽
» 파문(波紋) (3) 19.10.24 184 4 11쪽
15 파문(波紋) (2) 19.10.20 195 5 9쪽
14 파문(波紋) (1) 19.10.16 234 5 8쪽
13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7) 19.10.13 249 5 11쪽
12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6) 19.10.11 305 6 8쪽
11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5) 19.09.30 275 6 7쪽
10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4) 19.09.27 280 6 9쪽
9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3) 19.09.05 323 5 7쪽
8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2) 19.08.13 430 7 8쪽
7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1) 19.08.03 524 7 9쪽
6 내게 남은 것 (5) 19.07.24 558 8 13쪽
5 내게 남은 것 (4) 19.07.21 598 8 7쪽
4 내게 남은 것 (3) 19.07.17 632 8 12쪽
3 내게 남은 것 (2) 19.07.14 745 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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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 (序) +2 19.07.10 1,119 8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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