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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문 (悲獸問)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드라마

오패론
작품등록일 :
2019.07.10 00:12
최근연재일 :
2019.12.10 23:05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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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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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7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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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파문(波紋) (9)

DUMMY

그런 초문의 한쪽 팔에는 동하가 들려있었다. 곧이어 동료가 쓰러지는 모습을 본 나머지 두 명의 사내들까지 검을 뽑아 초문에게로 돌진해왔지만, 초문은 그러한 공세를 어렵지 않게 회피하며 오히려 역으로 그들의 훈혈(暈穴)을 짚어 기절시켰다. 그리고 나서 그는 동하를 바닥에 내려놓고 결박을 풀어준 뒤 물었다.


"왜 네가 여기에 있는 게냐? 이쪽은 명선장(銘腺莊)으로 가는 길인데... 잠깐...! 설마?"


그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내 다시 얘기를 이어갔다.


"동하 네가 우리 춘풍객잔(春風客棧)에 모습을 드러낸 게 지금으로부터 칠 년 전의 일이었지, 아마... 그리고 정확히 그 때쯤 명선장에선 장주 부부가 두 명의 아이를 입양하였다고 공표해왔고. 그렇다면 혹시 네가 매달 주기적으로 시간을 내어 보러 갔었던 이들이 바로 그 아이들이었던 게냐?"


그러자 동하가 절실한 눈빛으로 초문을 올려다보며 답했다.


"아저씨, 지금 저 세 명의 무림인들이 속한 단체에서 명선장을 노리고 있어요. 저들 말로는 오늘 명선장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 예정이라고 해요. 그러니 아저씨... 제발 제 동생들을 구해주세요. 부탁 드립니다."


초문과 인연을 맺은 이래 동하는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며 초문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이에 초문은 그런 동하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약속하마. 무슨 일이 있어도 네 동생들만큼은 구해내겠다고."


그와 동시에 그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동하를 향해 내밀었다. 오래된 헝겊에 싸인 작은 물체. 동하가 그것을 받아든 후 겉의 헝겊을 벗겨내자, 군데군데 녹이 슬었음에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은가락지 하나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은가락지의 표면에는 파도의 형상을 본뜬 듯한 파문(波紋)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초문은 그 문양들을 바라보며 아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젊을 적, 사랑하는 여인에게 청혼할 때 주고자 만들었던 반지다. 표면에 새겨진 파문과 같이 언제나 좋았다, 나빴다, 끊임없이 변하며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 놈의 인생... 그 속에서 그나마 둘이 함께한다면 어떻게든 서로 의지하며 중심을 유지할 수 있지 않겠냐고, 그렇게 얘기하려 했었지. 그러나 이젠 이 말을 너에게 해주고 싶구나. 동하야, 지금보다도 더 마음을 열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 보거라. 여전히 너를 괴롭히는 그 번뇌라는 것도, 더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조금씩 희석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이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일렁이는 그 어떠한 파도도 너를 흔들 수 없게 될 게야. 정작 이 말을 하는 나조차도 여전히 번뇌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너는 나와 다르게 여전히 많은 가능성을 지닌 아이니 언젠가 꼭 행복해질 수 있을 게다. 자, 그런 의미로 이 반지를 너에게 맡기마."

"아저씨..."

"그리고... 나중에 이 모든 사건들이 일단락 되고 나면, 꼭 다시 명선장의 장주를 찾아 우리 은혜를 그에게로 데려다 주렴. 반드시 그렇게 해서, 내가 이 생에서 차마 못다 이어준 부녀의 끈을 네가 대신해서 연결해주길 바란다. 하하, 뭐, 그렇게 하기 위해선 우선 내가 명선장 장주와 네 동생들을 구해내야 하겠지만 말이야."


초문은 마지막으로 동하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인 후, 곧바로 등을 돌려 명선장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등에 대고 동하는 고래고래 악을 쓰듯 소리쳤다.


"전 그렇게 못해요! 그러니 저한테 부탁하시지 말고, 반드시 끝까지 살아남으셔서 직접 아저씨 손으로 원하는 걸 행하세요!"


이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걸어가는 초문. 그러나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하하, 그 놈 성질머리 하곤... 어떻게 마지막 순간까지 말대꾸를 하는 게냐?'


다음 순간 초문은 어느 새 자신의 가슴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따뜻한 무언가를 느끼며 중얼거렸다.


"고맙다, 동하야."


#7

초문이 명선장 앞에 다다랐을 땐 이미 장원 내부까지 토곡(㫦谷)과 해진검문(獬進劍門)의 무인들이 침입하여 공격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비록 어호대(御虎隊)가 적들을 맞아 분전하고는 있었지만, 수적인 차이가 워낙에 컸던 만큼 조금씩 방어에 빈틈이 생겨나고 있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천하를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무력을 지녔다고 알려진 두 문파였다. 아무리 어호대가 웬만한 중소문파들은 그냥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그 상대가 토곡과 해진검문이라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곧이어 명선장을 지키던 남쪽 방어진이 완전히 뚫리며, 그 쪽으로 토곡과 해진검문의 무인들이 한꺼번에 몰아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여파로 다른 방향에서의 방어진들까지 점차적으로 무너져 갔고, 결국 어호대를 비롯하여 명선장 내외곽을 지키던 모든 이들이 적들의 손에 최후를 맞이하였다.


생각보다 빠르게 무너져 버린 명선장의 모습에 마음이 급해진 초문은, 서둘러 담장을 넘어 명선장 안으로 들어간 후 주위를 둘러보며 장주 가족을 찾기 시작했다. 그 도중에 그를 명선장 사람으로 오인한 무인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초문은 손쉽게 그들을 제압하며 빠르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던 그 때, 한 노인이 처연한 표정으로 건물의 입구를 가로막은 채 죽어있는 모습이 초문의 시야에 들어왔다. 죽어서도 외인(外人)의 출입을 한사코 막겠다는 듯 두 팔을 옆으로 활짝 벌린 그의 모습에 초문은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울컥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초문은 뭔가에 이끌리듯 노인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 그 낡은 건물 앞에 섰다. 아마도 노인을 죽였던 자들조차 그 건물을 단순히 오래된 창고라고만 여겼던 것인지, 노인 사후(死後) 다른 사람이 건물 안에 들어갔던 흔적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이곳에 무엇이 있길래 이 노인은 이렇게도 필사적으로 입구 앞을 막아 섰던 걸까?'


초문은 노인의 시체를 안아 들어 평평한 바닥에 조심스레 눕힌 후, 곧바로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당초의 예상대로 그 안에는 낡은 물건들이 곳곳에 쌓여있었고, 그 외에 별다른 이상한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초문이 우연히 시선을 아래로 향했을 때, 그는 갑자기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그 원인이 먼지 하나 쌓이지 않은 바닥 일부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건물 내의 다른 장소들에선 먼지가 수북이 쌓여 한 눈에 보더라도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이 그곳을 들락날락하지 않았단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던 반면, 입구에서부터 시작해 구석의 한 서가에 이르기까지의 어느 경로 위에선 바닥에 먼지 하나 없이 매우 깨끗한 상태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먼지 위에 누군가의 발자국이 찍힌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아예 바닥을 쓸어 흔적을 없애버린 건가?'


초문은 곰곰이 생각에 잠긴 채로 서가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서가 주변의 어느 지점에선 먼지가 다른 곳보다 더 높이 쌓여있다는 것을 발견하곤 의아함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건물 안이라 바람이 들 리도 없을 테고, 그렇다면 먼지가 평평하게 쌓여있어야 정상일 텐데? 음... 그럼 혹시?"


먼지 위에서 물체를 움직이면 주변의 먼지가 다른 곳으로 밀려 더 높은 형태로 쌓일 수 있단 사실을 떠올린 초문은 힘을 주어 서가를 한 번 움직여 보았다. 그러자 서가가 치워진 자리에 떡하니 그 모습을 드러내는 바닥의 철문 하나. 그제서야 초문은 이 곳이 지하의 비밀통로로 이어지는 입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분명 장주 가족이 이 통로를 통해 몸을 피했을 것이란 직감이 초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자, 그는 빠른 속도로 철문을 들어올린 후 곧바로 통로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 이후에 그가 취한 움직임은 사실상 너무나도 단순한 것이었다. 최대한의 경공을 전개하여 지하통로 안을 달렸고, 그 끝에서 마주친 출구를 나와 무특산(無特山)을 올랐다. 짧으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론 짧지 않았던 그 시간 동안, 초문은 그 어떠한 생각조차도 머릿속에서 지운 채 그저 달리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가 무특산 정상에 올라섰을 때, 그곳에선 벌써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해진검문의 문주인 진석호(進晳昊)와 토곡의 소곡주 여운도진(麗雲跳振), 그리고 그들 각각을 둘러싼 채로 무기를 휘두르는 어호대 대원들... 그러나 정작 초문이 찾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장주와 그의 가족들은 어디 간 거지?'


그러던 그 때, 세 개의 인영이 산의 내리막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 초문의 시야에 들어왔다. 안력을 높여 더 자세히 살펴보니, 그들 중 성인 남성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등에 각각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도 하나씩 업혀있는 상태였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초문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모두들 아직 무사했구나.'


하지만 그들의 모습을 발견한 건 비단 초문 뿐만이 아닌 듯싶었다. 즐거워 보이는 표정을 한 채 어호대를 향해 초식을 전개하던 여운도진이 갑자기 얼굴을 굳히며 포위진을 빠져 나와 도망자들을 쫓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에 깜짝 놀라 급히 여운도진의 뒤를 추격하는 초문. 그러나 초문의 무공이 아무리 고결하다 한들 천하제일의 경공이라 불리우는 요적파람보(窈赤破濫步)를 능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결국 초문은 여자아이를 업은 사내가 여운도진의 공격을 피하다 비탈길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그저 지켜만 볼 수 밖에 없었다.


그 순간, 초문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동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감이었을까, 아니면 아이마저도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여운도진의 광폭함에 분노하였음일까?


잠시 후, 초문은 아무 말없이 경공을 전개하여 여운도진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즈음 이미 명윤 부부에게로 다가선 여운도진은 어느새 다음 공격을 위해 신형을 날리고 있었는데, 그 일격은 금방이라도 부부의 몸을 산산조각 낼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초문이 더 빨랐다. 그는 여운도진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이미 그의 측면으로 파고들고 있었고, 다음 순간 초문의 수공(手功)이 여운도진의 오른팔을 절단하였다. 그리고 이 순간 초문의 눈은 이십오 년 전 악인(惡人)들을 처치하던 그 당시의 눈빛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그토록 피를 싫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여인의 한마디에 의해 무인(武人)의 길을 택하였던 청년. 그로부터 수많은 세월이 흘러 어느 새 흰머리가 가득한 모습이 되어버린 상태였지만, 그 청년, 아니 초문은 사랑하는 이들의 소중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이번에도 또다시 무인이 되어야만 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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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마수(魔獸)의 길 (3) 19.12.07 86 3 8쪽
25 마수(魔獸)의 길 (2) 19.12.01 88 3 8쪽
24 마수(魔獸)의 길 (1) 19.12.01 80 3 7쪽
23 파문(波紋) (10) 19.11.17 99 4 11쪽
» 파문(波紋) (9) 19.11.17 89 4 12쪽
21 파문(波紋) (8) 19.11.09 150 3 12쪽
20 파문(波紋) (7) 19.11.07 126 4 7쪽
19 파문(波紋) (6) 19.11.04 131 5 9쪽
18 파문(波紋) (5) 19.11.02 165 4 9쪽
17 파문(波紋) (4) 19.10.27 189 5 13쪽
16 파문(波紋) (3) 19.10.24 190 4 11쪽
15 파문(波紋) (2) 19.10.20 200 5 9쪽
14 파문(波紋) (1) 19.10.16 240 5 8쪽
13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7) 19.10.13 257 5 11쪽
12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6) 19.10.11 314 6 8쪽
11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5) 19.09.30 281 6 7쪽
10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4) 19.09.27 285 6 9쪽
9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3) 19.09.05 328 5 7쪽
8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2) 19.08.13 437 7 8쪽
7 칠 년 후: 비극의 서막 (1) 19.08.03 534 7 9쪽
6 내게 남은 것 (5) 19.07.24 567 8 13쪽
5 내게 남은 것 (4) 19.07.21 606 8 7쪽
4 내게 남은 것 (3) 19.07.17 640 8 12쪽
3 내게 남은 것 (2) 19.07.14 754 9 8쪽
2 내게 남은 것 (1) 19.07.11 982 9 8쪽
1 서 (序) +2 19.07.10 1,130 8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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