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활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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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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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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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9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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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화

DUMMY

분개한 나카하라 국장은 당장 총독 집무실로 찾아가려 하였다. 최근 1달 간 피가 끓고 고혈압 증세가 나타날 뻔한 일들은 많았다. 그러나 이번처럼 심화로 가득하여 열화와 같은 분노를 토로하고 싶은 적은 없었다. 조선 전체의 책임자인 총독이 관동군을 통해 아편밀매 조직들과 검은 거래를 하였다. 감청한 대화내용만으로는 그 전모를 파악하기 힘들었지만, 총독과 사령관 간 대화 속의 암시만으로도 확신을 가져다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런데 여기에 더 울화통이 터질 일이 발생했다. 어제 개성경찰서에서 경기도경찰부를 통해 올린 보고를 지금에서야 확인한 것이었다.


“이런 정신나간! 헌병 놈들이 미쳐버렸단 말인가!”


국장은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발포 이후 갑자기 개성역 바깥에서 100여명 정도의 헌병 병력이 트럭들에 분승한 채로 질주해와 하차해 기관총과 소총을 순사들에게 겨누었다. 이 헌병들은 경찰과 총기를 겨누고 대치하면서 철도헌병 객차로 들어가더니 철도헌병을 모두 연행해 트럭에 태워 개성을 빠져나갔다는 것이었다. 개성경찰서 소속 경찰들은 자칫 헌병과 무력충돌이 일어날 시 화력에서 너무 압도되는 관계로 차마 대응하지도 못하고 눈뜬 채 용의자들을 빼앗겼다는 것이었다.


국장은 패검을 뽑아들어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집무실의 집기를 다 부수고 베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어떻게 이리 방약무인할 수 있단 말인가! 경찰의 정당한 법집행을 이런 식으로 방해해 용의자를 채가는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철도헌병의 사격이야 우발적인 것이라 치더라도, 이건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 아니었던가!


분노가 활화산처럼 솟구치게 된 국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우가키 총독과 하야시 사령관에게 이게 다 무슨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난 거냐고 따져도 단단히 따질 작정이었다.


그런데 총독 집무실로 가던 중 의외의 인물을 마주쳤다. 흑색 해군정복을 뻣뻣하게 다려입고 금줄 견장을 찬 50대 초입에 접어든 온후한 인상의 사내였다. 해군 고위장교처럼 보이는 이 사람은 나카하라 국장을 보자마자 웃음을 띄우고 악수를 청한다.


“국장님. 다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나카하라 국장은 머리가 뜨거운 와중에도, 손을 내민 이 부드러운 웃음을 띈 사내가 진해요항부사령관 요나이 미쓰마사 해군중장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요나이 중장의 악수를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는 국장은 예의 바르게 손을 맞잡았다.


“조만간 오신다 했는데 오늘 오셨군요, 제독님. 경성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국장님. 그간 격조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예의 횡령자금 문제 때문에 오신 겁니까?”


국장의 물음에 요나이 제독의 얼굴에서 웃음이 가신다.


“그렇습니다. 이 문제로 총독 각하와 조선군사령관, 또 관동군 쪽 사람을 만나서 우리 쪽의 의견을 전달하고 저쪽 의견을 들어보자 하여 이리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이때 요나이 중장이 목소리를 낮춘다.


“그나저나, 혹시 용의자들을 확보하셨습니까?”


그 질문에 나카하라 국장의 표정이 지극히 침통해진다.


“죄송합니다. 헌병이 용의자들을 먼저 확보해 버렸습니다.”


“예?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나카하라 국장은 요나이 제독에게 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요나이 제독의 얼굴은 놀람에서 충격으로, 충격에서 분노로 바뀌었다.


온화한 성격과 뛰어난 사교성으로 이름난 사람이 바로 이 요나이 미쓰마사였다. 부하들의 실수에 어지간하면 화 한번 내지 않고, 한직인 진해요항부사령관으로 발령났다는 통보에 씁쓸한 웃음조차 짓지 않았으며, 신년 행사에서 마주친 육군 인사들에게도 항상 친절하고 신사적이었기에 해군에 적대감을 가진 육군 장성들이 나쁜 감정을 가지지 않는 그였다. 그런 요나이 제독이 얼굴이 붉어지고 호흡이 거칠어진다는 것은 정말로 그가 화났다는 징표였다.


“육군이 미쳤군요.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요나이 제독의 분노 섞인 한 마디에 나카하라 국장이 동의한다.


“이 만행을 조선헌병사령부에서 허가한 거라면 조선군사령부와 헌병사령부 양쪽이 다 책임을 져야 마땅한 거고, 설령 현장 지휘관의 독단행동이라면 부하 관리도 제대로 못한 놈들인 겁니다. 이 문제로 당장 각하를 뵈려고 가는 중입니다.”


그 말에 요나이 제독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 그건 당장은 곤란할 것 같습니다. 총독 각하께서는 일단 우리 장교들끼리 사태를 논의하자고 하고 계십니다. 아무래도 이건 군의 일이니까요. 일단 우리 회의가 끝난 후에 각하를 뵐 수 있을 겁니다.”


“장교들끼리요? 다른 사람들도 모입니까?”


“그렇습니다. 하야시 조선군사령관하고, 또 관동군 쪽에서 한 명 내려온다는데, 솔직히 이건 혼조 사령관이 직접 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임감이 있다면 그렇게 하겠죠.”


총독이 이 문제를 군부 인사들하고만 논의한다는 것이 더욱 나카하라 국장을 자극한다. 이 사건은 경찰이 수사해오는 사건, 상하이 가정부와 연관된 것이 의심되는 연쇄강도 불령선인 수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경찰의 수장인 자신을 제외한다는 것은 용의자도 뺐긴 경찰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이 건에 대해 저도 참으로 면목이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카하라 국장은 요나이 제독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다. 반드시 용의자를 잡아서 해군 특수경찰대에 넘겨주기로 약속했는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다행히 요나이 제독은 그저 허허 웃고 만다.


“아, 신경쓰지 마세요. 이미 끝난 일을 더 어쩔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른 헌병이 문제이지, 경찰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요나이 제독이 관대하게 나서자 오히려 더 부끄러워지는 쪽은 경무국장이었다.


“논의가 끝나고 다시 뵙겠습니다. 그럼 이만.”


제독은 경무국장에게 정중히 경례하고 총독 집무실로 향했다. 나카하라 국장은 너무나도 뜨거워져서 이마에 계란을 풀면 익어 버릴 것 같은 머리를 식히려고 얼음주머니라고 가져다 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몇분 후, 총독 집무실에 모일 사람이 다 모였다. 잔뜩 굳어진 얼굴의 우가키 총독이 회의용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하야시 센쥬로 조선군사령관도 먼저 도착해 그 멋들어진 콧수염을 초조하게 꼬고 있었다. 그다음으로 도착한 사람은 관동군참모장인 하시모토 도라노스케 소장이었다. 도라(호랑이)라는 이름이 붙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용맹함은 느껴지지 않는, 짙은 눈썹과 짙은 콧수염의 사나이였다.


전직 육군대장 한명과 현직 육군중장 한명, 조만간 중장으로 진급할 예정이지만 지금은 현직 육군소장이 자리에 이질적인 존재는, 역시 마지막에 들어와 총독에게 경례를 붙인 요나이 미쓰마사 해군중장이었다.


“제독. 진해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소.”


그 말대로였다. 요나이 제독은 전날 밤에 출발해 기차에서 선잠을 잔 후 철도호텔에 여장을 푼 것이었다. 그럼에도 피곤하다는 기색은 하나도 없었다.


요나이 중장은 우가키 총독에게 정중하게 감사를 표하고는, 하야시 사령관 맞은편에 앉은 사람의 계급장이 육군소장인 것을 확인하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사령관 각하께서는 오시지 않은 모양이오?”


“예. 그렇습니다.”


하시모토 소장이 입을 열었다.


“사령관 각하께서는 이미 정해진 국경시찰 일정을 바꾸시기 곤란하신지라, 본관이 참모장으로서 대리해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거 국경시찰 한번 대단하게 하시는구려. 소련군이 당장 남하할 기미라도 보인다는 것이오? 아직 10개 사단도 안 되는 병력으로? 최소한 내가 알기로는 지금 만소 국경지대는 아주 평온하다고 들었소만.”


요나이 중장의 말에 노골적인 비꼼이 달려 있었다. 이에 하시모토 소장이 뜨끔한 기색이 얼굴에 드러나면서도 지지 않으려 든다.


“로스케 놈들은 사단 수가 얼마든 언제나 남침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국경은 워낙 넓은지라 사령관께서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어디에선가 빈틈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예정된 일정에 따르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그러시구려. 사령관께서 이리 솔선수범하시니 국경의 평안이 보장되겠소이다. 제국해군을 대표해 찬사를 보내는 바요.”


그리고 “다른 문제에도 솔선수범하시면 좋으련만······.”이라고 덧붙인다. 하시모토 소장의 얼굴에 수치심이 떠오르지만, 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입술을 굳게 다문다.


“제독. 기분은 이해하오만 지금은 그런 문제로 입씨름할 때가 아니오.”


우가키 총독이 말했다.


“해군성은 이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소? 그리고 어떤 해결을 원하오?”


“우리 쪽 입장은 간단합니다.”


요나이 제독의 눈이 번쩍였다.


“우리는 이 말도 안되는 횡령 사태에 개입한 모든 인사들이 응분의 책임을 지기를 바랍니다. 가장 말단부터 가장 위까지요! 이를 위한 진상조사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대체 누가 이런 계획을 꾸몄는지, 누가 이런 계획을 승인했는지, 그리고 누가 자금을 옮기는 데 참여했는지 전부 알기를 원합니다. 사라진 예산의 회수는 물론이고요!”


요나이 제독의 목소리는 아주 단호하였다.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 백일하에 진상을 드러내고 책임자를 모두 처벌하며 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조선에 주둔한 모든 해군전력의 책임자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는 그였다.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사가 엿보인다.


이때 하야시 센쥬로 조선군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그것은 제독의 뜻이오, 아니면 해군성의 뜻이오?”


“두말할 것도 없이. 해군성의 뜻입니다.”


“횡령된 예산의 규모가 해군 건함계획에 차질을 빚을 정도요?”


“다행이도 그 정도는 아닙니다. 횡령한 자들이 예산소요를 부풀린 후 남는 금액을 빼돌린 것이라 전력획득에 지장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야시 사령관이 이런 말을 한다.


“허면, 따지고 보면, 해군에 심각한 피해가 간 것도 아니잖소. 그런데 굳이 일을 크게 만들어야 하겠소?”


그 발언에 요나이 제독은 잠깐 할 말을 잃은 듯 몇 초간 침묵하다가, 얼굴에 웃음을 짓는다. 물론 평소에 짓는 그 온화한 미소는 절대 아니었다.


“참 태평하게도 말하십니다. 더 값진 일에 쓰일 수 있는 예산이 그런 식으로 날아갔어요! 국민의 세금으로 된 예산이요! 그런데 굳이 일을 크게 만들어야 하냐고요? 사령관께서 한번 입장바꿔 생각해 보십시오!”


“그게 아니라, 이 정도 일 가지고 굳이 파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오.”


하야시 사령관이 콧수염을 다시 꼰다.


“예산이 그런식으로 사라진 건 우리 쪽에서도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바요. 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해군성에서 우리가 밝힌 진상에 만족할지 다소 의문이란 거요.”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애석하게도 해군 쪽에 우리에게 적대감을 품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잖소? 이 조사 과정과 책임자처벌 요구에 그러한 감정이 개입한다면, 누가 책임을 지던간에 더 많은 사람에게 책임을 지게 해서, 관동군의 인선에 공백과 혼란을 일으킨다면 적만 좋아할 일이 아니겠소?”


“어떻게 그런 발상이 나오십니까?”


요나이 중장이 기가 막혀서 버럭 소리를 지른다.


“제국해군이 사적인 감정으로 일하는 곳인 줄 아십니까? 어떻게 폐하의 해군을 그런 식으로 모독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아니, 본관은 그저 가능성을 말한 것이오. 이렇게 분개할 것 까진 없잖소.”


요나이 제독이 거세게 말하니 하야시 사령관은 물러나는 모습을 보인다. 우가키 총독이 입을 연 때는 그때였다.


“제독. 우선 관동군 쪽의 1차 진상조사 보고서를 한번 보고 판단하시오.”


“예? 벌써 조사를 했단 말입니까?”


“하시모토 참모장 말로는 그렇다는군.”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하시모토 소장이 서류철 하나를 내민다. 몇 명이 이미 펼쳐본 흔적이 있는 서류였다. 아마 우가키 총독과 하야시 사령관이 보았을 것이리라. 요나이 중장은 보고서를 쭉 흩어보고는, 얼굴이 더욱더 시뻘게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보고서를 다 보지 않고 하시모토 소장에게 시선을 확 돌렸다.


“참모장. 지금 본관과 장난하자는 거요?”


요나이 제독의 입에서 평소 나오지도 않은 거친 말들이 튀어나온다.


“참모부의 하급참모 셋과 경비대 중대장이 다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거라고? 기껏해야 중위 4명이? 대체 뭐하는 친구들이오? 얼마나 대단하기에 일개 중위들이 이런 담대한 계획을 모의할 수 있단 말이오? 그리고 참모부 작전과, 군수과, 정무과는 멍청이들만 모인 조직이오? 이런 일이 벌어지는걸 사전에 막지도 못하고?”


“어, 어디까지나 우리 쪽 헌병의 1차 조사에 불과합니다. 더 조사해 보면 이보다 더 자세한 진상을 밝힐 수 있을 겁니다.”


하시모토 소장의 변명은 요나이 제독의 화를 가라앉히기에는 극히 불충분하였다.


“어찌 이리 비열하고 어찌 이리 비겁할 수 있소? 혼조 사령관도 당신도 다 그러고도 사내대장부라 할 수 있소? 앞길 창창한 젊은 친구들에게 다 뒤집어씌우고 안전해지시겠다? 하! 본관은 납득 못하오! 해군대신 각하께서도 납득하실 것 같소? 이런 언어도단, 당장 집어치우시오!”


“제독!”


요나이 미쓰마사는 집무실에 메아리친 호통에 더 말을 하지 못했다..


“이곳이 본관의 방임을 명심하였으면 하오!”


우가키 총독이 그를 지긋이 쳐다보자, 해군중장은 하는 수 없이 흥분을 가라앉히려 부단히 애를 쓴다.


총독의 낮은 목소리가 요나이 제독을 향한다.


“제독이 그리 화내는 것도 이해하오. 본관이 그 위치에 있어도 그랬을 것이오. 확실히 사내다운 짓은 아니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그저 임무라고 생각하여 명령을 수행한 자들에게 모든 것을 다 짊어지게 하고······. 누가 봐도 손가락질할 일이오.”


“각하!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이 한심한 보고서를 받아들이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우가키 총독의 짐짓 침울한 목소리에, 요나이 제독이 더욱 목소리를 높인다.


“이건 오히려 관동군 전체가 이 사태에 관련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명백히 이 건을 마무리지으려면 대대적인 감찰과 수사의 필요성을 폐하께 상주하는 것이······.”


“제독. 미안하오만.”


우가키 총독이 순간 눈을 피했다.


“본관은 그렇게 못하오.”


요나이 제독은 그 대답에 얼어붙었다.


“이 일로 많은 사람이 다치게 되오. 하야시 사령관이 지적했듯이, 지금 만주로 확장된 제국의 영유권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관동군의 수뇌들이 조사와 감찰을 받느라 제 업무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지나와 소련만 좋은 일을 해주는 격이나 다름없다고 보오. 그 젊은이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그들만 없어져 준다면 다치는 사람이 최소한으로 줄어드오. 그러니 제독, 더 어른답게 이 일을 바라보는게 좋다고 생각하오.”


요나이 제독이 그 발언에 더욱 분개한다.


“각하! 소관은 각하께서 그런 생각을 하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수두룩한데 전부 다 구명해주고 단 네 사람에게 다 뒤집어씌운다고 하셨습니까? 그러면 다치는 사람도 없고 조용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제독. 당장 본관의 뜻에 동의하라 하진 않겠소. 하지만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 보시오. 제국육해군은 지금 해야 할 일이 산더미요. 육군은 북방의 위협에 대비해야 하고, 해군은 런던해군조약 문제로 여러 날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오? 이런 마당에 서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힘을 뺄 수는 없소. 지금 소련이 5개년 계획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실질적인 위협으로 대두되고 있으며, 지나는 만주를 다시 손에 넣기 위해 이를 갈고 있는 상황이오. 우리가 이런 문제로 씨름하다가는 적에게 뒤처지게 되오. 제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라도, 사소한 문제로 갈등을 부추기는 행위는 피해야 하오.”


요나이 제독은 치솓아오르는 심화를 가라앉히느라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보아하니 총독과 조선군사령관, 관동군사령관은 모두 이 문제를 덮어두는 쪽으로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물론 그로서는 절대 납득할 수 없었다. 젊은이 넷을 희생양으로 삼아 버리고 숨겠다는 것이 말이나 된단 말인가?


“소관은 아무리 시간을 주셔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 보시오, 제독!”


하야시 사령관이 역정을 낸다.


“조용히 끝낼 수 있는 걸 왜 해집지 못해 안달이오! 이거 이적행위요! 황군의 전투력을 약화시키려는 이적행위란 말이오!”


“이적행위는 육군이 했습니다! 해군 전투력과 직결되는 건함예산을 빼돌린 쪽이 누군인데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요나이 제독이 맞받아치고 말을 잇는다.


“소관은 총독각하께서 그러한 말씀을 하셨다고 해군대신께 곧바로 보고를 올릴 것입니다. 해군성은 결코 이 문제를 조용히 끝내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진상을 밝히기 위해······.”


제독의 말이 노크 소리로 끊어진 때는 그때였다. 총독의 비서가 문을 열고 급히 들어왔다.


“지금 회의 중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요나이 제독의 태도에 얼굴이 계속 일그러지고 있던 총독이 비서에게 화를 내었다. 그러나 비서는 그럼에도 계속 총독에게 다가온다. 잘 접힌 종이 하나가 올려진 쟁반을 조심스럽게 들고서.


“각하. 시종무관장실에서 이 전문을 보냈습니다.”


“뭐, 뭐라?”


그 말에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고위 장성들의 눈이 일제히 휘둥그레졌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얼마나 엄청난 의미인지 알기 때문이다.


“폐하의 성지(聖旨)가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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