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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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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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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3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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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화

DUMMY

정우가 이 자리에 온 이유는 천 지부장의 지시 때문이었다.


전날, 천 지부장이 나카하라 국장과 통하했다고 알려 오자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천하의 경무국장이 우리와 일시적이라마 협력한다니! 라디오 방송에 나와 그들 모두에게 엄격한 법집행을 가하겠다고 선포하던 경무국장이 총독을 엿먹일 계획에 동참한다니!


“그거, 함정 아닙니까?”


항상 의심이 우선인 명수가 얼떨떨한 얼굴로 물어보았다.


“내가 느낀 바를 말하자면, 국장은 진심이었다.”


천 지부장이 그 질문에 확언했다. 지부장은 수화기를 통해 들리는 목소리에서 상당한 떨림을 느꼈다. 자신의 신념이 허망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고픈 열망, 그리고 그 열망을 위해 가장 싫은 자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거부감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에, 그럼······”


대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히로쨩 백부님이 우리 편이 될수 있단 겁니까?”


“야. 그건 아니지.”


재호가 옆에서 핀잔을 주었다.


“우리 다 때려 잡겠다고 공언한 국장 나리인데 어떻게 그러겠냐?”


“물론 국장이 우리를 놓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천 지부장이 재호의 말을 거들었다.


“그러나 국장이 우리를 잡는 데 소극적으로 나서게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지.”


지부장의 표정의 의미심장해졌다. 혜월 스님이 이때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지부장님. 빈승이 보기에, 나카하라 국장은 지금 국가와 체제에 대한 충성과 자신의 정의관이 서로 충돌하고 있음을 알아 버렸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결코 악재가 아니지요. 그자는 강직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지금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사람일 수록 지금 최대한 흔들어 놓아야 합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스님. 아군으로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적으로만 둘 수는 없지요.”


이때 민호가 끼어들어 너스레를 떤다.


“그 멸치대가리가 도움이 될 때도 있군요. 어떻게 그런 결정으로 뱃속이 충성심으로 가득 찬 국장나리를 흔들어 놓는단 말입니까?”


그 말에 다들 가볍게 웃었다.


“히로히토 씨는 국가 정의의 실현보다는 다치는 사람을 최소한으로만 한정짓는 방법을 택했다. 말썽이 일어나는 것 자체를 바라지 않았던 게지. 누군가는 그 결정을 합리적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국장에게는 아니었을 게다.”


스님의 해설이었다.


“그리고 결국은 나라를 좀먹어들어가게 하는 방법이지요. 그러한 결정이 쌓이고 쌓여서 종국에는 일본을 망치게 만들 겁니다. 국장은 그 꼴을 볼 수 없어서 저와 통화한 것이죠.”


천 지부장의 눈이 빛났다. 새로운 계획을 생각해 냈다는 증표였다.


“내일 점심에 체호프에서 국장과 만날 것이다. 국장은 레코드만 받고 바로 돌아갈 생각이겠지만, 내가 계속 말을 걸어볼 것이다. 히로요시 군의 백모님 가지고 협박한 문제를 사과하면 반응을 보일 것 같구나. 이 문제는 솔직히 내가 국장에게 사과해야 할 문제기도 하고.”


“하지만, 국장과 말이 통할까요?”


조용히 있던 종팔이 한마디 한다. 그 말은 다들 머리를 갸우뚱하게 할 문제였다. 그 나카하라 가즈오 경무국장이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설득될 것인가?


“내가 우선 국장을 흔들어 놓겠다. 우리의 논리를 그대로 보여주며 국장의 논리를 설복할 수 있도록 해 봐야겠지. 하지만 너희들 사모님이 내게 여러 번 잔소리했듯이, 나는 변설객 노릇은 참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나간 뒤로 이 방면에 더 재능 있는 사람이 들어가야겠지.”


그리고 천 지부장은 정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상처가 꽤 아문 정우는 환자복 차림을 한 채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내일 혹시 괜찮겠느냐? 무리는 아니겠느냐?”


정우는 흔쾌히 대답했다.


“지금 회복 속도라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일까지 쉬면 가볍게 돌아다니는 데는 문제없을 거라고 의사가 그러더군요. 그리고 히로의 백부님이 오셨는데, 인사드리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요.”


“좋다.”


천 지부장은 가장 말이 부드러우며 모난 말을 하는 걸 상상할 수 없는 정우를 자신의 다음 차례로 정하였다. 이후 그 다음은 누가 들어갈 것인지, 국장이 혹시 경찰 병력을 끌고 올지도 모르니 감시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정우는 계획에 따라 아침에 일어나 상처가 제법 아물었음을 확인한 후 백작 행세 할때 쓰던 양복으로 갈아입고는 체호프에 가서 천 지부장이 방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 들어간 것이었다.


나카하라 국장은 갑자기 들어온 이 청년의 생김새가 낯이 익었다. 어디서 본 듯한 느낌도 들도 아닌 듯한 느낌도 들었다. 기억을 더듬어본 국장은, 저 정중한 품성의 젊은이가 누구인지 기억해 냈다.


“카라스마 준이치로 백작. 맞는가?”


그의 얼굴은 종로경찰서에서 제출했으며 전국에 수배령을 내리기 위해 복사 중이었던 몽타주와 동일했던 것이었다. 카라스마 백작, 그러니까 정우는 옅은 미소를 띈다.


“그렇습니다. 일본 사람으로 행세할 때는 그 이름을 쓰지요.”


“하지만 합법적인 화족이기도 하지.”


나카하라 국장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 또한 카라스마 준이치로 백작의 신상명세 조사서를 받아본 터였다. 불온하기 짝이 없는 주장을 여러 차례 하고 간도로 도주한 카라스마 세이지 백작의 양자. 법적으로 문제 없이 백작위를 계승하여 앞으로 5년 정도 후면 자동으로 귀족원 의원의 직이 부여될 예정의 화족. 하지만 그 정체는 불령선인임이 지극히 의심되던 자.


“강도의 우두머리가 오더니 이번에는 사기꾼이 오셨군.”


국장이 차가운 말을 내뱉었다. 저 젊은이의 말투와 표정에는 적대감이라고는 없고 온후한 느낌을 풍겼으나, 국장은 따스한 태도를 보여줄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뭣하러 왔나? 자네 혀로 날 구워삶기라도 할 작정인가, 젊은이?”


그러나 이리 거칠게 말해도, 정우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평소 연장자를 대하듯이 예의바르고 차분하고 예의바른 태도를 취할 뿐이다.


“그저 인사드리려고 온 것입니다.”



“인사? 내게? 허, 참!”


나카하라 국장이 기가 막혀서 헛기침을 한다.


“불령선인 사기범죄자가 경무국장에게 인사라? 자네 상관도 그렇고 자네도 참 대담무쌍 하시구먼! 그래, 내게 정중히 인사라도 하면 자네 현상수배를 철회할 거라고 생각이라도 한 건가? 착각 마시게나! 난 그러려고 찾아온 놈들 죄다 직접 결박해서 유치장으로 보낸 사람이야! 그게 누구던 간에! 그러니 엉뚱한 소리는 그만 두게!”


그 말에 정우는 차분히 대답한다.


“전 그럴 생각으로 온 것이 아닙니다. 그저 오셨다기에 인사드리러 온 겁니다.”


“왜? 자네가 내게 왜 인사를 하나? 무슨 목적으로?”


성가시다는 듯 따져묻는 국장에게, 정우는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말한다.


“히로의 백부님이시니까요.”


그 대답에 국장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히로는 국장님과 자신이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국장님이 존경할 만할 분임을 계속 말해주었습니다. 사심 없이 오직 공의를 위해 일하시는 분이라고 말이죠. 이번에도 그 때문에 참지 못하시고 우리와의 협력을 감수하신 거고요. 그래서 찾아오셨다기에 인사도 드리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여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국장은 “다른 생각 없는 것처럼 말하지 말게!”라고 소리치려 했으나,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을 보고 있는 그 빛나는 눈빛에 어떠한 티도, 어떠한 잡스런 것도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차마 그 얼굴에 심한 말을 던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국장은 “으음.”하고 신음 한번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가 내지에 있을 때 조직원을 죄다 체포해 직접 신문한 극좌 사회주의 조직의 청년들도 비슷하게 순수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음을 기억해 내자, 태도가 다시금 엄격해진다.


“젊은이가 그래도 예의를 안다는 건 잘 알겠네. 딱히 의도 없이 본관에게 말을 거는 것도 알겠고. 하지만 그 때문에 내 몇 마디 해주어야겠어.”


국장은 이상가 열정에 가득차 무산계급혁명을 부르짖던 좌익조직 청년을 꾸짖을 때처럼 말한다.


“ 자네가 생각이 있다면 이 짓을 당장 그만두게! 앞길 창창한 친구가 대체 뭐하는 건가? 그것도 자네는 경위가 어찌되었던 간에 적법한 작위계승자야! 시간이 흐르면 자동적으로 귀족원 의원 자리가 내려진단 말일세! 자네는 보기에 행동거지도 똑바르고 사람도 순수해 보이는데, 왜 범죄의 길을 간다는 말인가? 자네의 상관인 천남건 때문인가? 아니면 그 위에 있는 김구 때문인가? 그렇다면 자네는 속고 있는 걸세!”


국장의 태도는 순전히 열정적인 선생이 불량학생을 계도하는 자세가 되었다.


“그들은 사익을 위해 내지인과 조선인의 사이를 분열시키려는 자들에 불과하네! 자네들의 순수한 열정을 교활하게 이용하는 거야! 자네들이 말하는 대로 합방이 부적절한 과정을 통해 진행되었다고 치세.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여전히 사람들은 질서 아래 삶을 영위하고 살아가네. 대일본제국의 법질서 아래에서 보호받고 평온한 삶을 누린단 말일세. 자네의 행위가 정의감의 발로라 할 지라도······.”


국장의 입에서 말이 끊긴 때는 그때였다. 국장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정우의 입에서 미소가 일순간 사라졌었다. 단지 상대의 표정이 굳어져서만은 아니었다. 그의 맑은 눈에서 일순간 더할 나위 없는 슬픔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제국의 법질서 아래에서 보호받고 평온한 삶을 누린다고 하셨지요?”


정우입에서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나왔다.


“직접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국장님. 저는 그 법질서의 보호를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전 그 법질서에 의해, 많은 것을 잃어버렸지요.”


“그.······ 그건 무슨 말인가?”


“조금 옛날 얘기입니다. 제 어린 시절 이야기지요.”


정우의 눈이 우수로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저는 간도 태생입니다. 용정촌에서 조금 멀리 외따로 떨어진 마을에서 나고 자랐지요. 아주 어릴 때부터 제가 나라 잃은 조선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에서 직접적인 슬픔이나 괴로움을 느끼진 못했었습니다. 그것은 어른들의 일이었고, 부모님은 아직 나이어린 제게는 그걸 벌써 겪게 하고 싶지 않아 하셨으니까요. 어른들이 국장님께서 비적이라 부르실지도 모르는 독립군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진 않았지만, 그 때문에 그저 아버지에게 학문을 배우고 집안일을 돕고, 친구들과 놀고, 그리고 훗날 제 양부가 되실 백작님에게 우리 밖의 세계가 어떤지 이야기를 듣는 것 외에는 평온히 지나가는 삶에 무슨 일이 닥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때였습니다.”


“그 얘기가, 자네가 하고 있는 범죄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국장이 날카롭게 묻는다.


“과거에 불우한 일이 있다고 하며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범죄자들은 숱하게 봐 왔네. 본관에게는 통하지 않아.”


그러나 정우는 물러남이 없다.


“그저 옛날 일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얼마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겁니다. 부디 아량을 베풀어서 들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국장은 이러니 또 할 말이 없어져버리고 말았다. 불우한 과거지사를 들이대며 비굴하게 굴어 동정심을 사서 자비를 구하려는 자, 또는 자신의 잘못을 사회의 탓으로 돌리려는 자만을 봐왔다고 생각한 국장이었다. 그런데 눈 앞의 이 불령선인 청년은, 그저 덤덤하고 차분하게 옛날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말을 끊으면 자신이 소인배처럼 보일 게 분명하였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헌병대의 한 장교가 백작님을 찾아왔었죠. 그 장교는 백작님에게 불령선인들이 이 마을에서 자금과 식량을 얻어가는 것을 다 알고 있으니, 이 일에 협조하는 자들의 이름을 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작님은 굴하지 않으시고, 평소처럼 겸허하게 상대를 대하지도 않으셨죠. 감히 화족의 일에 끼어드는 거냐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말이죠. 그 장교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마을을 떠났습니다.”


“아니, 그럼······.”


국장은 오재두 경부보가 제출한 보고서 속 내용이 떠올랐다. 제19사단 헌병대의 아라키 히로아키 특무대위가 카라스마 세이지 백작이 의사로 활동하던 그 조선인 마을과 불령선인 비적두목 홍범도와의 연관성을 알아내기 위해 백작을 수사했지만, 백작이 화족의 권위를 내세워 그를 쫓아냈었다고 말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백작님이 어디선가 온 왕진 요청에 마을을 비운 밤, 마적떼가 마을을 습격했습니다. 마적들은 벽돌로 지은 백작님의 의원을 제외한 모든 집에 불을 지르고, 집을 뛰쳐나오는 사람에게 사정없이 총을 쏘고 칼로 내리쳤습니다. 제 부모님을 비롯해서요. 제가 그 현장에서 살아남은 건 일종의 기적이었죠.”


“뭐, 뭐라고?”


국장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가 느끼기에도 시궁창 같은 인생을 살아온 조직범죄 가담자들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살던 마을이 통째로 불타고 마을 사람들이 단체로 살해당했다는 사례는 처음 들어본 것이었다.


“너무 충격이 심했는지 어떻게 제가 그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었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 마적들의 중심에 일전에 온 그 장교가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국장은 할 말을 잃은 채 보고서 속 내용을 떠올렸다. 그곳을 불령선인의 소굴로 판단한 아라키 대위가 소탕작전을 개시했다고. 그 아라키 대위는 불령선인 천남건의 무자비한 보복으로 목이 잘렸고, 천남건은 봉천 주재 영사관에 그의 목을 던져넣는 만행으로 도발을 감행했다고. 그런데 마적을 동원했었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리고 비적소굴에 대한 소탕이라고 했지, 민간인 마을에 대한 파괴와 학살은 아예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국장은 당혹감에 젖어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군이 개입한 민간인 학살의 생존자를 마주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 일에 무던히도 차분한 말투로 말하는.


“국장님께서는 일본제국의 법질서가 평범한 이들의 평안을 보장해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유년시절 자체가 불타버렸던 제게, 그리고 나라를 잃었다는 것이 뭔지를 부모님의 피로 깨달았던 제게, 그 법질서를 지키라고 말씀하시는 건······.”


정우는 잠깐 목이 잠겨서 말을 끊었지만, 다시 입을 열었다.


“다소 가혹한 말씀이 아니었을까요?”



“이, 이보게······. 본관은······. 나는······.”


국장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불령선인 행위를 정당화할 사연을 꾸며내지 말라고 호통을 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저 청년은 자신의 끔찍한 과거를 말하면서도, 그걸 진실되게 보이게 하기 위하여 눈물을 보이지도 않고 우는 목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듯 얘기할 뿐이었다. 그러나 어떠한 꾸밈도 없이 그저 조용히 그 일을 말하는 것 만으로도, 국장에게는 충분히 진실되게 다가오고 있었다.


내 꼴이 뭐란 말인가? 국장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그렇게 수호하려 한 제국의 법질서로 인생이 뒤틀려버린 사람에게, 그 질서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었다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이란 말인가! 누군가 이런 자신을 봤다면, 나를 무정한 괴물이라고 비난할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저 인사만 드리려고 했는데, 너무 심각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네요.”


그러면서도 저 청년은 이리 예의바르게 처신하고 있는데, 내가 여기서 더 심한 말을 해야 하는가?


“아, 아니, 아닐세. 이건······ 그러니까······”


지극한 당혹감에 말을 못하던 국장은, 넋이 반쯤 나간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자네 동기는······ 복수인가?”


“아닙니다.”


정우가 단호히 말했다.


“그저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면 안된다고 느끼고 생각했기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우리나라의 독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행동할 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국장은 더 이상 반박할 힘을 잃어버렸다. 그 말에 무엇으로 반박할 수 있단 말인가? 제국의 통치가 옳다는 어떠한 말을 해도 충분히 상처 입은 젊은이의 가슴에 또 상처를 후벼파는 격이 될 터인데!


그때였다.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살짝 열린다. 문틈으로 누군가 빼꼼 고개를 민다.


“저, 실례할게요. 지금 들어가도 괜찮아요?”


국장은 멍한 표정으로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보았다. 아직 스물도 되어 보이지 않은 세라복 차림의 여학생이 불쑥 들어오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저도 인사드리러 왔는데요.”


주리가 멋쩍은 표정을 짓고 땋은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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