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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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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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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8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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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화

DUMMY

헌병사령관실에서 돌아와 졸도한 상태의 한 참의를 억지로라도 정신을 들게 만든 기타무라 소좌는 알고 싶은 사항을 다 알았다. 한 참의가 부들부들 떨며 증언하기를, 작년 12월에 자신의 고향 청주에 요양갔다온 이후 애가 우을증세를 보이며 모든 것에 거부감을 보이며 이유 없이 울음을 터트리기 일쑤였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3월 중순을 넘어가자 괜찮아지더니, 시집가기 전에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싶다며 학교를 결석하고 놀러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무 의심도 없이 학교 빠지라고 했다 그겁니까? 이야. 좋은 아버지시네.”


기타무라 소좌의 비웃음이 한 참의의 가슴을 무자비하게 후벼판다. 소좌는 무슨 상황인지 눈치챘다. 부잣집 자제가 그런 우울증세를 보이다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것은 전형적인 사상범의 길을 걷는 정조였으니까. 분명 자기보다 못살고 하루 벌어야만 살수 있는 자들의 생활을 보고 견디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공산당 선언』같은 거라도 접하면 그날로 빨간 물이 들어버린다. 소좌는 이미 코민테른과의 접촉이 확인된 조선공산당원이나 일본공산당원이 그런 경로로 적화된 것을 여러 차례 보았다.


게다가 우을증이 사라진 후 학교 결석하고 놀러다니겠다는 것은, 그 불령선인들과 접촉할 시간을 늘리면서 의심을 피하려는 술책이 틀림없었다. 시집가기 전에 다소 풀어주고픈 부모 마음을 적절히 사용한 것이리라.


그리고 소좌는 이 아가씨가 약혼자와 함께 총독이 주최한 만주사변 참전 군인들을 위한 위문행사에 참석한 것도 안다. 시점상 한주리 양은 사령부 강당에 있다고 술에 취한 채 부주의하게 군사기밀들을 떠들고 다니는 장교들 틈을 기웃거리며 각종 기밀정보들을 머리에 새겼을게 분명하다. 이시와라 간지 중좌가 추종자들을 불러모아 은밀한 이야기를 하려던 것도 여기서 알았을 게 뻔했다.


“저는······. 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주리가 그럴 수 있습니까? 제 딸이 어떻게요!”


한 참의의 손이 머리를 쥐어뜯는다. 기타무라 소좌는 실실 웃으며 빈정거린다.


“그렇게 딸자식 간수 잘 하셨어야죠. 따님께서는 어마어마한 민폐를 끼쳤습니다. 참의 나리 따님이 어울리는 그 불령선인들이 받는 혐의가 장난 아니에요. 강도만 수십건에, 총독 각하 암살모의에, 장교에 대한 상해에, 간첩행위에, 그리고 참의님에 대한 사기까지. 관동군 장교 나리에게 시집보내게 생겨서 마음 놓으셨던 모양인데, 이런 광대노릇이 또 어디있겠습니까?”


소좌의 이런 태도에도 한 참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이 한 참의의 모든 것을 휘감고 있다. 몇 시간 전 까지만 해도 세계적인 석유재벌이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건만, 카라스마 준이치로 백작과 미쓰이 사토시 사장은 불령선인 사기꾼이라 한다. 그리고 애지중지 키운 딸은 그 사기꾼과 눈이 맞아서 이 아버지를 파멸시키는 공작에 동조했다.


더 절망적인 것이 있었다. 앞으로 자신이 어찌될 지 미래가 너무 훤하게 보인다. 지금 저 소좌가 자신을 불령선인으로 만들지 않고 조사를 끝낸다 해도,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똑바로 쳐다보려 하는 데에도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미래였다. 이미 회사 주식은 똥값이 되어 한 없이 추락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발을 빼고 은행들은 융자금 상환일자가 아직 많이 남았더라도 바로 상환을 요구할 것이다. 거래처들은 이런 사태에 거래를 끊으려 들 거고. 분기탱천한 이사들이 주주총회를 소집해 자신을 해임하려 들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극도로 부족해지는 금액은 이제까지 곳곳에 은닉해 둔 재산으로 어찌어찌 해결은 가능하겠지만, 이미 신뢰를 상실한 이상 언 발에 오줌누기나 다름없다.


중추원 참의 직함의 유지도 장담할 수 없다. 기실 불령한 일에 가담했던 중추원 참의 자제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주리는 총독 암살모의에 가담한 자들과 한패였다. 암살모의범의 아버지가 중추원에서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회의에 참석하고, 총독에게 정해진 자문안을 권고할 수 있단 말인가?


사업가로서, 그리고 나름 정치가로서의 한덕만 참의는 파탄에 이른다. 그게 정해진 미래였다.


몸 속에서 확확 타오르는 불이 몸의 모든 기운을 앗아가기라도 했는지, 참의는 그저 힘 없이 축 늘어져서 소좌의 웃음기 가득한 얼굴을 마주대하지도 못한다.


“걱정하지는 마십쇼. 가정부 감사장 가지고 참의 나리를 사상범으로 만들 생각은 없으니. 딱 봐도 참의님 조롱하려고 보낸 겁니다, 이거. 그리고 또 알고 싶은건 다 알았습니다. 참의 나리 따님은 위험한 사상범이 될 전조를 충분히 보여줬고, 상하이 가정부의 공작원들에게 넘어가 간첩행위를 비롭한 위험한 범죄행위들을 저질렀습니다. 현재로서는 미남계에 넘어갔다고 보는게 적절하겠군요. 당신네들 속담에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있다더니, 딱 그겁니다요.”


소좌는 그러며 작별을 고한다.


“가서 머리나 식히시지요. 필요하면 또 부르겠습니다. 아, 그러기엔 그쪽이 너무 바쁘시려나요? 이곳저곳 불려갈 데 참 많을테니 말입니다.”


한 참의에 대한 조사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참의는 헌병대 조사실을 나서고도 다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다가, 헌병사령부 담장에 기대어 주저앉고 말았다. 정문 경비가 한번 교대될 때까지.


소좌는 이후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 한주리 양의 몽타주가 그려지는 동안, 종로경찰서에 휘하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가다시피 들어갔다. 순식간에 고등계 제1과 전체가 전멸당한 초유의 사태에 이른 혼마 서장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소좌를 맞이했다.


“서장 나리. 그쪽 고등계가 수사하던 그 탈쓴 불령선인들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다 넘기셔야겠수다. 따지고 싶으면 우리 사령부에 따져 보시고.”


소좌의 무례한 태도에도 혼마 서장은 반발 한번 하지 않았다. 서장은 벌벌 떨며 대답했다.


“알겠소. 다 가져가도 좋소. 본관은······ 본관은 이제 더 이 수사를 할 생각이 없소.”


“아, 그럼 일이 쉽게 풀리겠군. 고맙수다.”


소좌는 서장이 순순히 허락하자 등을 돌리고 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서장이 절규하듯 말한다.


“하지만 내 경고하겠소! 이건 역귀들린 사건이오! 이 사건에 얽매이면 결국 다 망하고야 말 것이오! 난 이걸로 시달리다 무능하다고 낙인찍히고 공작 나리의 압력을 받아야 했소! 우리 서 애들 몇년 동안 이놈들 때문에 생고생을 했소! 게다가 불쌍한 고등계 제1과장과 그 부하들은 오늘 그렇게 죽고야 말았소! 그쪽도 잘못하다가는, 아니 어떤 처신을 하던간에 그렇게 될지도 모르오!”


한 참의와 마찬가지로 단 몇 시간만에 온 몸에 힘이 다 빠진 혼마 서장은 그저 이런 넋두리 외에는 하며 심정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들이 모두 폭발에 휘말려 죽었다는 보고를 들은 순간, 서장은 눈 앞이 캄캄해지고 말았다. 예감이 이상하긴 했지만 이런 식의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혼마 시게노부는 이젠 더 이상 저들과 연관되기 싫었다. 천남건이나 카라스마 준이치로란 이름 자체를 또 한번 들으면 경기를 일으킬 것 같았다.


“역귀? 역귀이? 푸하하하!”


소좌는 서장의 경고 따위 그저 예전에 본 웃기는 라쿠고의 한 장인 것처럼 웃어넘긴다.


“그 역귀 잘 받도록 하겠소! 난 그런 걸 씹어먹는거 아주 좋아하거든!”


소좌는 그렇게 말하고 서장실을 나갔다. 휘하 헌병 수사관들은 소좌의 지시 아래 이제 아무도 없어진 고등계 제1과 사무실을 마구잡이로 뒤졌다. 축적된 수사기록들이 헌병대원들의 손에 들려 트럭 한대에 모두 실렸다.


몽타주 배포는 그날 저녁부터 시작되었다. 기존에 경찰이 배포한 천남건의 현상수배서 옆에 세장의 현상수배서가 같이 걸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을 주목케 한 것은 역시 딱 봐도 곱게 자란 어염집 아가씨로 보이는 여학생이 현상수배범의 얼굴이 된 것이었다. 군사기밀을 팔아넘긴 간첩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다사다난했던 하루가 저물고, 다시 해가 떴다.


4월 29일, 쇼와 천황의 생일 천장절이었다.


정동에 긴급배치된 제6헌병대 소속 헌병대원들은 투덜대며 아침을 맞이했다. 이 경사스러운 천장절이면 재수없게 근무자인 자를 제외하면 천장절 특식을 먹고 노는 날인데, 총독 암살모의에 간첩행위를 한 불령선인들이 소련 총영사관으로 도망친게 유력하다며 정동 일대의 모든 길거리와 골목을 봉쇄하고 철저히 검문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불령선인들이 총기를 보유하고 있음이 유력하니 긴장 단단히 하라는 상황전파에 실탄 수령하고 착검한 채 트럭에 실려 우르르 쏟아져 내려왔다. 그들 모두 눈을 부라리고 물샐 틈 없는 경계를 서려 노력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불령선인들은 저 하얀 총영사관 건물에서 나올 것 같지도 않다 보니 슬슬 경계감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불령선인과의 총격전을 각오했건만, 배치된지 24시간이 지나다 보니 그냥 상황이 빨리 종료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서서 다들 풀어지기 시작했다. 2시간씩 돌아가며 교대로 총들고 근무서자니 여간 짜증나는 일이 아니었다.


야간에는 거의 돌아다니는 사람도 차량도 없다 보니 그저 심심풀이로 만만해 보이는 민간인을 겁주거나, 무리지어 돌아다니는 이화여전 여학생들 상대로 휘파람을 불거나 히야까시를 하거나, 그러면 경멸감을 애써 숨기며 고개를 획 돌리는 이화여전 학생을 어떻게 해보고 싶다거나 유곽에서 어떤 여자가 죽여줬는지 등의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시간을 죽일 뿐이었다. 그 외에는 이 사람 열받게 하는 불령선인들을 잡으면 신나게 패주고 포상을 챙기겠다는 말이 공공연히 오고간다.


그러나 소련 총영사관은 쥐죽은 듯 조용하기만 하고 아주 가끔 자동차가 오갈 뿐이었다. 헌병대원들은 당연히 작은 붉은 깃발을 단 차들을 검문하였으나, 상부에서 너무 철저히 조사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오는 바람에 트렁크를 열어보거나 차량에 탄 사람들을 다 내리게 하는 등의 행위는 하지 못했다. 이 러시아인들에게 딱히 수상해 보이는 점이 없어서

그저 할일 끝났으니 가보라는 신호만 보냈다.


그 외에는 정말 걸리는 게 없는 민간차량 뿐. 연이어 아무것도 나오지 않다 보니 헌병대 병사들도 슬슬 검문을 꼼꼼히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아침 6시 30분, 이른 아침이라 오고가는 사람도 차도 없는 정동교회 앞 삼거리에서 경비를 서던 병사들은 트럭 한 대를 마주대하게 되었다.


“뭐야, 저건?”


제6헌병대 3분대 2분견대 소속 병사들은 오가는 사람도 차량도 없다 보니 담배나 빼물고 가로수 아래 앉아서 노가리를 까다가 트럭 한 대가 털털거리는 엔진음을 내며 천천히 이쪽으로 오는 걸 보고 급하게 일어났다. 피던 담배를 퉤 하고 바닥에 뱉고 착검한 38식 소총 총구방향을 굴러오는 트럭을 향해 지향한다.


정지하라는 헌병 군조의 수신호에 트럭이 멈춰선다. 짐칸을 방수천으로 가린 트럭이었다.


“신원을 밝혀라!”


군조가 날카롭게 소리치자, 운전석에서 운전수가 문을 열고 뛰어내려온다.


“아이고, 나리님들. 수고 많으십니다.”


얼굴에 곰보자국이 살짝 있고 콧수염을 기른 것이 나잇대가 있어 보이는 느낌을 주는 자였다. 그는 조선어 억양이 살짝 있는 일본말로 말하고 있다.


“넌 뭐하는 놈이냐?”


군조가 그의 별반 고급스럽지 못한 옷차림을 보고 바로 반말이다. 운전수는 고압적으로 나서는 군조를 상대로 사근사근하게 군다.


“저는 영국 총영사관에서 이 녀석을 몰며 고용살이하는 놈입니다요.”


“뭐? 영국 총영사관?”


외교공관 소속 차량이라는 말에 헌병들이 멈칫한다. 그러고 보니 본네트에 자그마한 유니온 잭 깃발이 매달려 있다. 하지만 군조가 바로 날카롭게 캐묻는다.


“이런 시각에 영사관 소속 차량이 어디로 가는 거지? 영사관 소속인 건 맞나?”


이 추궁에 운전수는 눈 하나 깜짝 안한다.


“못 믿겠으면 한번 영사관에 전화해 보십쇼. 트럭 번호판 대 주면 영사관 차량이라고 확인해 줄 것입니다요.”


그러고 보니 이 트럭의 번호판은 외교공관 차량의 번호판 양식을 따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정말 영국 총영사관 소속 트럭인 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군조는 혹여 상부에서 영국 총영사관 소속 트럭이라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그냥 보내줬다고 견책을 듣지 않으려면 더 자세히 조사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었다.


“행선지는 어디인가?”


“마포나루입니다요.”


“마포? 거긴 왜?”


“영사관에서 있을 만찬장에 해산물들을 올려야 합니다요. 그래서 마포에서 사서 가져오려는 것입죠.”


“그런 거 사려고 거기까지 가나?”


군조가 눈을 날카롭게 뜬다. 그러나 운전수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막힘없이 얘기한다.


“시내 시장통에서는 아무래도 원산지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시간이 걸리고 안팔리고 오랫동안 바깥에 나와 있다 보니 조금 신선도가 떨어집죠. 그래도 마포에서 파는 건 바다에서 바로 잡아서 오는 거라 영사관에 계신 영국인 나리들이 더 선호합니다요. 그래서 거기서 직접 사서 영사관 주방으로 가져옵니다요.”


“음. 그런가?”


납득이 안 가는 설명은 아니었다. 군조는 부하 상등병에게 그 내용을 수첩에 받아적게 한다.


“짐칸엔 뭐가 실렸나?”


“해산물을 보관할 얼음상자입니다요. 그 냉장고인가 뭐시꺵이인가 하는 요상한 기계로 물을 얼려 한여름에도 얼음을 만드는데 지금 봐도 참 신기방기합니다요.”


“조수석에는 누가 타고 있나?”


“그야 제 조수입죠. 어이! 군인 나리들께 인사드려라!”


그 말에 조수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사내 한 명이 꾸벅 인사하는 게 보인다. 군조는 그 조수는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이 영국 영사관 소속 운전수라는 자와 이 트럭은 딱히 수상한 기색은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확인도 안하고 보고했다가는 욕먹을 게 분명했다.


“기다려 봐라. 영사관에 전화해보겠다.”


군조는 다른 부하에게 시켜서 영국 총영사관에 전화해 차량 번호를 대고 해산물 구입 목적으로 정동을 떠나는 게 맞는지 확인하라고 한다. 상등병이 공중전화에 대고 전화할 때, 운전수는 어수룩한 웃음을 지으며 주머니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낸다.


“나리. 수고 많으십니다요. 아침나절부터 웬 고생이십니까요? 쉬실 때 이걸로 좋은 거라도 사 드시고······”


“험험. 이럼 곤란한데.”


군조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사양 하나 하지 않고 5원 정도의 지폐를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군조는 이 운전수가 제법 군인 대할 줄 안다고 생각하여 얼굴에 살짝 웃음을 짓는다.


이때 전화로 뭐라 통화하던 상등병이 돌아와 보고한다.


“영사관 차량이 맞다고 합니다. 행선지도 마포가 맞습니다.”


“아, 그래?”


신원이 학인되자 군조는 나름 표정을 부드럽게 하고 한발짝 뒤로 물러난다.


“가서 일 보쇼. 나중에 또 볼 땐 인사라도 하고.”


“예. 예. 수고 많으셨습니다요.”


운전수는 꾸벅 인사하고 좌석으로 뛰어오른다. 다시 털털거리는 엔진음과 함께 트럭이 앞으로 나아간다. 헌병 병사들은 트럭이 가자 다시 쥐죽은듯 조용해진 거리에서 의미없는 잡담으로 시간을 죽이기 시작했다.


운전수가 “다신 볼 일 없을거다, 멍청이들.”이라며 조선말로 중얼거리는 건 못들은 채. 그 말을 한 직후, 운전석과 짐칸 사이의 뒷창문이 열린다.


천남건 지부장의 얼굴이 그곳을 통해 드러난다.


“수고 많았다. 인천까지 가며 계속 경계 유지하도록.”


“알겠습니다.”


가짜 콧수염을 붙인 재호가 시원스레 대답한다. 조수석의 종팔은 거리에서 누가 이걸 보고 있는지 창 밖을 꼼꼼하게 살핀다.


천 지부장은 고개를 돌리고 아까까지 방아쇠에 걸쳐 둔 검지를 풀었다. 헌병이 방수천을 걷은 순간 거침없이 당길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관단총에서 손을 떼진 않는다. 그것은 다른 대원들도, 마우저를 양손에 꽉 잡고 있던 주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막 포위망의 첫 번째 고리를 벗어났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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