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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작품등록일 :
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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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0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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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화

DUMMY

해군육전대 중대장의 생뚱맞은 물음에, 기타무라 소좌부터 말단 통신병에 이르기까지 자기들이 잘못 들은게 아니냐는 표정이 되었다. 불령선인들이 군경충돌을 유도하고 1개 헌병 분대를 섬멸한 이 판국에 ‘물 좋은 데’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때 문 바깥으로 화가 잔뜩 나 얼굴이 시뻘개진 얼굴이 나타났다. 미즈노 해군대위였다.


“귀관은 정신이 있나 없나? 왜 이 상황에 그딴 질문을 하는 건가!”


“에이. 오면서 말씀드렸지 말임다.”


마쓰우라 중위가 실실 웃으며 대위를 본다. 그는 분명 상대가 상급자인데도 그다지 존중한다는 눈빛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애들 단체외박 나와 요시와라에서 질펀하게 놀려고 막 들어가 시작하려던 참에 갑자기 소집 걸렸지 말임다. 다들 그래서 씩씩대고 있는데, 우리더러 수송기 타고 경성으로 가라는 검다. 해군성 나리들의 결정에 졸지에 외박 짤리고 무장한 불령선인 잡겠답시고 난데없이 여기서 뺑이치게 생겼는데, 그 전에 애들 좀 풀어줘야 할 것 같지 말임다.”


“뭐, 뭐라?”


미즈노 대위의 점잖은 얼굴이 울그락푸르락해진다. 흡사 칠면조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


“지금은 긴급상황이다! 건함예산이 불령선인 테러분자들의 손에 넘어갔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부터 하는가! 귀관은 폐하의 명예로운 황군이라는 자각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미즈노 대위가 벽력같이 몰아붙이는데도 마쓰우라 중위는 여전히 헤헤거린다.


“저와 우리 애들은 상하이 거리에서 구르고 기면서 지나놈들을 수도 없이 걸레짝으로 만들었슴다. 피냄새, 화약냄새와 부서진 벽돌과 쪼개진 와륵으로 가득한 곳에서 굴렀단 말임다. 목숨 걸고 그짓해서 그 보상으로 놀아볼까 하는데 갑자기 또 뺑이 치라 하니, 물 좋은데 가고 싶지 않겠슴까? 아, 나리께서는 올해 1월에 특수경찰대 사무실에 있으셨으니 잘 모르실수도 있겠슴다.”


마쓰우라 중위는 노골적으로 미즈노 대위를 비꼬고 있었다. 그는 1월에 있었던 상하이 사변에 참전했음을 드러내며 실전경험을 과시함을 동시에 미즈노 대위를 책상물림이라 놀리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나 미즈노 대위는 이 손에 피묻힌 해군육전대 중위에게 졸아들 생각은 하나도 없다.


“본관과 귀관의 경험유무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중차대한 임무를 가지고 경성에 파견되었음을 모르는가? 귀관의 중대를 정비하고 상시 출동할 대비를 갖추는 게 귀관의 의무······.”


그런데 미즈노 대위의 말이 끊긴다. “푸하하하하!”하는 폭소가 상황실을 매웠기 때문이었다.


“이야! 이 새끼 마음에 드는데!”


폭소를 터트린 장본인, 기타무라 소좌가 다가가 마쓰우라 중위의 어깨를 탁탁 친다.


“일리 있는 말을 했다, 육전대! 역시 땅에서 싸울 줄 아는 놈이군! 좋다. 딱 24시간 주지!”


소좌는 친절하게도 벽에 걸려 있는 경성부 지도에 지휘봉을 가져다댄다.


“여기가 용산이고, 저기 동쪽에 코가네마치라고 보이나? 거기서 남동쪽으로 이렇게 조금만 가면 신마치라고 나오네. 거기 나도 여러 번 갔는데 물이 괜찮아. 외출증 끊어 줌세.”


이 생각치도 못한 호의에 마쓰우라 중위가 헤벌쭉 웃는다.


“헤헤헤! 소좌 나리는 역시 뭘 좀 아시지 말임다! 원하신다면 후기도 말씀해 드리겠슴다!”


물론 미즈노 대위는 이 상황 자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언성을 높인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리실 수 있습니까? 당장 우리 쪽에서도 병력을 배치해 놈들을 추격해야 하는데 어찌······.”


“이봐, 미즈노 씨. 수사본부장은 본관이야.”


기타무라 소좌가 실실 웃는다. 이예 계급명도 붙여서 불러주지 않는다.


“상하이에서 그렇게 싸운 장병들인데 갑자기 여기 와서 뺑이치라고 하니 열을 좀 식힐 필요가 있지. 안 그런가? 거 왜 생판 그런 데 한번도 안 가본 것 처럼 그러나? 혹시 경험 없나?”


“그게 지금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우리는 여기 임무를 수행하러······.”


그러나 소좌는 미즈노 대위가 열띄게 말하는 원칙론을 들어줄 생각 자체가 없다.


“아, 됐고. 본부장 직권으로 외출증 끊어 줄테니 늦지 말고 복귀나 해. 귀관도 머리 식히던지 아니면 수사기록 열람하던지 맘대로 하고.”


“소좌님!”


미즈노 대위가 버럭 소리를 지르지만 기타무라는 개의치 않고 “아, 나가라니깐 뭐 하나?”라며 입꼬리를 올린다.


해군 수사관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지만, 결국 이를 악물과 경례를 붙이고는 나가고 만다. 관동군 헌병대의 시라키 대위는 이 상황에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괜찮겠습니까? 이러다가 나중에 책이라도 잡히면······.”


“거 귀관은 걱정도 많군! 오히려 이건 윗분들이 원하는 거라는 걸 모르나?”


기타무라는 여유롭기 이를 데 없는 태도로 담배를 빼어문다.


“생각해 보게. 물개들이 괜히 육전대 애들을 1개 중대씩이나 보냈겠나? 10명도 안되는 불령선인 잡으려고? 놈들 목적은 그게 아니야. 대놓고 우리를 견제하겠다는 거지! 겨우 저 얼뜨기 같은 수사관 하나 보내고 손 놓을 정도의 바보들이 아니거든! 그런데 우린 참 운이 좋아! 육전대 중대장이 저런 재밌는 또라이니 말이야!”


소좌는 그가 보기에 지극히 건방진 물개 대위보다는, 대놓고 유곽 가게 외출보내달라는 육전대 중위를 더욱 마음에 들어하는 티를 드러낸다.


“보아하니 저 육전대 놈은 불령선인 체포니 자금회수니 그런 건 하나도 관심 없고 그저 놀고 먹을 생각만 하는 놈 같은데, 그럴수록 우린 좋지! 그리고 비록 놈들을 놓쳤다지만 우린 부릴 수 있는 수단이 여전히 많아. 육전대 병력 없어도 일은 돌아간다, 그 말일세.”


“그야 그렇습니다만······.”


시라키 대위는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이다. 아무리 해군육전대가 파견된 의도가 명확하더라도 엄연히 비상사태에 수사본부에 배속된 부대인데 외박을 허가했다는 것이 역시 책임추궁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가시지 않는 것이다.


“거 걱정 말고 우리 일이나 하자고. 물개놈들 치워버리니 얼마나 좋아?”


시라키 대위의 걱정은 역시 기타무라 소좌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아니었다.


한편 미즈노 대위는 몸을 떨고 있었다. 여전히 웃음을 흘리고 있는 마쓰우라 중위의 면상에 한방 먹이고 싶어서였다.


“거 얼굴좀 푸시지 말임다. 가서 좋은 년 있으면 대위 나리께 먼저 드리겠슴다.”


“지금 그게 문젠가!”


미즈노 대위가 뺵하고 소리를 지르니 복도에서 지나가던 헌병들이 웬 해군장교가 저기서 시끄럽게 하냐는 투로 눈을 흘긴다.


“임무를 먼저 생각하게! 우리가 여기 왜 왔는지 잊었는가?”


“땅개들 헛수작 못하게 막으라는 거 말임까? 에이, 아직 땅개들이 불령선인들 잡지도 못했는데 뭘 벌써부터 안달이심까? 그건 그때 가서 우리가 단기관총이라도 들이밀면 되는 거지 말임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유곽이 뭔가, 유곽이! 장교로서 체면도 없나!”


“체면이고 자시고 군바리에게 먹는 거하고 여자 안는 거하고 빼면 남는게 뭐가 있슴까?”


미즈노 대위는 가슴으로부터 치밀어오르는 거센 한숨을 참느라 애를 써야 했다. 처음 임무를 하달받을 때, 이 해군육전대 중위가 희대의 골칫거리가 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해군성 특수경찰대 본부는 미즈노 대위를 4월 28일부로 경성에서 벌어진 희대의 자금탈취 사건의 주임수사관으로 임명했다. 그가 맡은 임무는 표면상 육해군 합동수사본부의 해군 대표로서 관할 육군헌병대와 사건을 공동으로 논의해 처리하고 탈취당한 자금을 회수해 오는 것이었다. 물론 이면에서는 다른 지시가 내려졌다. 육군헌병대가 그 자금을 빼돌려 관동군에 넘길 가능성이 있으니, 헌병의 수사에만 따라가지 말고 독자적으로 수사를 진행하는 동시에 반드시 자금을 직접 확인하고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또한 특수경찰본부는 그를 포함한 수사관 다섯명 만으로는 담당 헌병대의 기세에 눌릴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해군군령부에 요청하여 해군육전대 1개 중대를 함께 파견해 헌병을 견제하겠다는 게 본부의 계획이었다. 그 해군육전중대는 상하이 사변에 파견되어 혁혁한 전공을 세운 부대로 명성이 있었기에, 실전경험이라고는 무장한 사상범이나 불령선인 한둘 상대해 본게 전부인 헌병을 상대로 상당한 위압감을 주어 헌병이 허튼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할 것이란 게 군령부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미즈노 대위는 분명 군령부와 특수경찰본부 모두 급하게 병력을 차출하느라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협의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주임수사관인 자신이 마쓰우라 중위의 중대에 가할 수 있는 권한이 불명확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식의 육해군 합동수사본부 결성은 물론이고 육군헌병을 견제할 목적으로 해군육전대 병력을 별도로 보낸다는 상황은 유일무이한 사태였다. 이에 관해 명확히 규정된 사안이 없어서 임기응변으로 파견인원을 구성한 것이 명백했다.


미즈노 대위는 이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해군 내 범죄를 수사해 온 그의 경험상, 해군형무소에서 몇 년을 꿇을 정도의 대형사고를 친 자들은 수병보다는 해군육전대원이 대다수였다. 해군병학교 시절 항상 성적이 하위권이고 학업태도가 불량한 자들이 해군육전대로 흘러가게 되는 걸 본 것도 육전대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인식에 큰 몫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쓰우라 중위와의 만남은 그의 인식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그는 해군육전대 장교가 그 껄렁껄렁한 태도로 경례를 붙였던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마쓰우라 중위는 대대장으로부터 해군 특수경찰 수사반의 수사를 ‘지원’하라고 지시받았을 뿐, 그의 명령을 따르라는 지시는 받은 적이 없다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했다. 파견인력 구성과정에서 특수경찰본부에서는 미즈노 대위가 상급자이니 마쓰우라 중위가 어련히 명령을 잘 들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미즈노 대위는 지휘관계를 명확히 해 달라고 정식으로 상부에 요청하려 했으나, 그러기도 전에 이미 수송기 출발 시간이 정해졌다는 통보를 받고 말았다. 해군성에서는 육군이 자금을 멋대로 빼돌리기 전에 몇 시간이라도 빨리 수사본부에 해군 인력을 합류시켜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미즈노 대위는 김포비행장으로 향하는 해군수송기 안에서 내내 인상이 구겨져 있었다. 완전군장을 한 채 그들의 제식병기인 독일제 MP28 기관단총을 설렁설렁 들고 수송기에 탑승한 해군육전중대 병력은 중대장부터 이등병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입에서 험한 말과 천박한 표현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막 요시와라 유곽에서 놀려던 차에 갑자기 소집을 당했다고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하다가, 상하이 사변 당시의 혼란상황에서 어떻게 지나 여자들을 길거리에서 잡아 취했는지를 소재로 끊이지 않고 음담패설을 내뱉으며 낄낄거렸다. 해군병학교에서 명예로운 제국해군의 군인이자 바다의 신사로서 교육받아 왔다는 자부심이 있는 미즈노 대위에게는 정말로 이 해군육전대 대원들은 참아주기 힘든 존재들이었다. 아무리 급하기로소니 왜 군령부에서 명확한 지휘관계 확립도 없이 이들을 붙여주었던 말인가!


“귀관의 비행이 어떻게 보고될 지 귀관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겠지?”


미즈노 대위가 한 차례 윽박질렀으나, 마쓰우라 중위는 재밌다는 듯 입술을 씰룩거린다.


“전 수사본부장인 그 땅개 소좌 나리에게 정식으로 허가받고 외박나가는 거지 말임다. 비행이라 하면 좀 이상하지 않겠슴까?”


이런 식으로 나오니 미즈노 대위는 그저 입술을 앙다물 뿐이다.


“신마찌로 다른 수사관 나리들 데리고 오던지 말던지 맘대로 하시지 말임다. 저는 애들 먼저 보내놓고 딴데 좀 들렀다가 갈 겁니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슴다.”


중위는 그러며 능청맞게 경례를 붙이고는 휙 하고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나 버린다. 미즈노 대위는 저 망할 놈을 언젠간 해군형무소로 보내버리고 말겠다며 속으로 이를 간다.


이렇게 특수경찰대 주임수사관의 머리를 아프게 만든 마쓰우라 중위는 조선군헌병대에서 임시로 비운 숙소에서 군장을 푸는 중대원들에게 외박허가를 받아냈다고 하여 부하들의

크나큰 환호를 받았다.


중위는 자신은 따로 들를 데가 있으니 중대 부관의 인솔하에 다 같이 먼저 갔다 오라고 하고는 주머니 속에 있는 약도상의 행선지로 향했다. 조선총독부 의원이었다. 그가 출발 전 사건에 관한 기본자료라며 내무성에서 받은 정보에서 기가 막힌 것을 하나 본 이후, 그는 경성에 도착하자마자 여유를 얻으면 총독부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그 의원을 찾아가겠다고 생각했다.


어찌어찌 길을 찾아서 총독부의원 건물에 들어간 그는, 접수계에서 마쓰우라 신노스케 순사가 어디에 입원해 있는지 물었다. 입원실을 찾아간 마쓰우라 중위는, 넋두리하듯 절규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불능이라니······. 내가 불능이라니······. 이 불령선인 놈들! 이건 말도 안돼. 말도 안된다고!”


마쓰우라 중위는 이 절규에, 웃겨 죽겠다는 듯 배꼽을 잡고 폭소하고 말았다. 병상에서 죽을 상이 되어 신음하던 마쓰우라 순사가 그 웃음소리를 알아본다.


“혀······ 형님이 여긴 어떻게 왔수?”


마쓰우라 곤베에 해군육전대 중위는 마쓰우라 신노스케 순사의 사촌형이었다.


“사연이 길어서 대충 알려주지도 못하겠다. 이 새끼 영 좋지 않은데 당했다더니, 정말 그렇게 되었구나!”


마쓰우라 중위는 사촌동생의 불행을 위로해주지 않고 오히려 놀려먹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그는 출발 전 받은 기본정보에서 이 불령선인들이 함정을 파서 고등계 형사 4명을 폭탄으로 한 방에 날려버리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음을 통보받았다. 그리고 그 폭발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하복부에 깊은 상처를 입은 자가 바로 그의 사촌형제임을 알았다. 군령부에서는 마쓰우라 중대의 전투력을 높이 사서 파견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의 가족사항을 파악하고 있던지라 사촌형제가 불령선인에게 크게 당했다는 것을 알면 추적과 전투에 더 열의를 다할 것도 기대하였다.


그러나 군령부에서 한 가지 잘못 안 것은, 이들의 우애가 그닥 깊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너 방금 불능이라고 했냐? 거기 영영 못쓰게 된 거야? 야!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냐? 이 새끼 맨날 여자 안은거 자랑질하더니 이젠 앞으로 그러지도 못하겠네!”


해군육전대 중위는 그러며 재차 좋아 죽겠다는 듯 폭소를 터트린다. 마쓰우라 순사는 “날 놀리러 온거요!”라고 버럭 역정을 내다가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격렬한 통증에 “으어어!”하고 신음을 내뱉는다.


마쓰우라 순사는 엄청난 폭발음과 섬광 이후 병실에서 눈을 떴다. 주치의는 아직 마취약이 풀리지 않아 몽롱한 상태의 그에게 긴급히 응급수술을 하여 폭탄파편을 빼냈다고 전해 주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몽혼한 상태에서 정신이 번쩍 들고 말았다. 파편이 박혔던 곳이 하필이면 그의 지극히 중요한 부위였다는 게 아닌가!.


그는 다시는 남자로서 구실을 할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다. 시쳇말로 불능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절규하고 또 절규했다. 날이 멀다 하고 여자를 갈아치우고 불령한 여학생을 취조실에서 욕보이는 걸 즐거움으로 삼아온 그에게 이만한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더 어디있겠는가?


“이 새끼 인생 종쳤구나, 아주! 숙부님하고 숙모님 아시면 아주 기절하시겠네? 참 어쩐다냐? 그렇게 여자 좋아하던 네가 이젠 아무것도 못하게 되었어. 불쌍타, 불쌍타. 이런 재수터진 녀석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냐?”


곤베에는 신노스케를 위로해줄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사촌동생이 당한 이 불행을 지극히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여기며 놀릴 생각만 가득하다. 사촌형의 성격을 잘 아는 사촌동생은 그저 파르르 떨지만, 흥분하면 상처가 터져 더욱 문제가 생길 게 두려워 참고 또 참는다.


마쓰우라 곤베에는 사촌동생을 계속해서 조롱하고 놀렸지만, 사촌이 끙 하고 계속 입을 다물며 상대를 안해주자 지루해졌다.


“아무튼 얼굴 봤으니 난 간다. 몸조리 잘해라. 근데 몸조리 잘한다고 그게 다시 생기진 않겠다만.”


사촌형은 그렇게 낄낄대며 마지막 말을 남기고 병실을 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사촌동생이 그를 잡는다.


“형님! 그 망할 요보 새끼 족치러 온거면, 빨리 족쳐 주시오! 날 이렇게 만든 놈 죽여달란 말이오!”


마쓰우라 중위는 사촌동생의 증오어린 부탁에 고개를 슬쩍 돌리더니 다시 낄낄댄다.


“쯧쯧. 아우야. 안 그래도 그럴 거니 넌 그냥 누워 있기만 해라. 이 형이 다 알아서 해결해 주마.”


그러다가 중위는 생각났는지 마지막 말을 덧붙인다.


“그리고 난 지금 신마찌인지 어디인지 좋은데 간다. 갔다와서 후기 자세히 들려주마!”


사촌형이 마지막까지 이러자, 사촌동생은 확 불타오르는 분노와 함께 상처가 터지는 고통을 동시에 맛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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