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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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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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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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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화

DUMMY

“좋소. 그렇게 큰 문제는 없군.”


나카하라 국장은 황해도 경찰부장의 보고를 듣고 이만하면 되었다는 신호를 보냈다. 전반적인 범죄율이 감소하고 검거실적도 좋았다. 부장은 속으로 국장의 깐깐한 평가를 통과한 데에 크게 안심하는 동시에, 이제 요정으로 가서 총독과 그 수행원들에게 눈도장을 더 찍고, 평소 자신을 대책 없을 정도로 녹이던 그 집의 기생과 놀아볼 생각에 신이 났다.


그러나 그때, 옆에서 같이 보고하던 해주경찰서장이 나선다.


“국장님. 오늘 두 불령선인 체포 건 외에 또 다른 체포 작전이 있었습니다.”


부장은 요정 가는 시간이 늦어질까 봐 빨리 끝내라고 눈짓한다. 국장은 흥미를 보이며 보고하라고 한다.


“텐진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지나 폭력조직 점창파(點蒼派)가 항만에서 아편을 밀거래한다는 첩보가 입수되었었습니다. 형사기동대를 배치해 잠복시키고 있다가 지나 조직과 조선 조직이 거래하는 현장을 급습했습니다. 총기로 저항하던 범인 3명을 사살하고 총 34명을 체포했으며 그중 16명이 지나인입니다.”


“첩보 입수 경위는?”


“황해도경찰부에서 점창파에 침투시켜 놓은 정보원의 첩보였습니다.”


그 말에 국장이 부장에게 고개를 돌려 치하한다.


“음. 그러고 보니 지난 정기보고 때 관련 내용이 있었지. 잘 했소.”


부장은 칭찬에 인색한 편인 국장이 이런 말을 해 주니 기분이 좋지만, 역시 빨리 요정에 가는편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아편은 얼마나 나왔소?”


“10상자 정도 나왔습니다.”


“수고했소. 아편 밀거래는 항상 골치지. 계속 수사해서 그 조직들 윗선 다 파악하면 베이징 영사관 경찰부 등지에 통보하여 잡아넣도록 하시오. 어제 작전 참가자에게는 포상과 휴가를 아끼지 말고.”


부장은 보고가 끝나가는 것 같으니 이제 요정으로 달려들 생각이다. 그런데 서장이 이런 말을 한다.


“저, 그런데. 조금 석연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음? 무엇이오?”


서장의 답변은, 잠깐 사무실 안에 정적을 불러일으켰다.


“체포한 지나인들 중에 자기가 관동군 장교라고 주장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국장과 부장 모두 서장 얼굴을 멀뚱히 쳐다본다. 몇 초 후, 부장이 코웃음을 친다.


“그런 정신 나간 소리를 믿는단 말이오?”


국장도 황당하단 얼굴로 거든다.


“그자에게 군번줄이나 아니면 군인 신분을 증명하는 서류라도 있었소?”


“없었습니다.”


서장도 상당히 난감하단 눈치였다. 부장이 재차 코웃음을 친다.


“그놈이 관동군 장교면, 난 육군참모총장이겠군. 그런 건 뭐하러 보고하오? 알아서 장교 사칭까지 죄목에 추가하면 될 것이지.”


그런데 표정을 바꿀 만할 소리가 서장의 입에서 나오고 말았다.


“신분증명할 서류가 없긴 했지만, 분명 옷은 지나 옷인데 내국인 수준으로 국어를 구사했으며, 자기 군번과 소속을 매우 구체적으로 말했습니다. 자신이 관동군 하얼빈 특무기관 소속이고 전화만 할 수 있으면 상부와 연락할 수 있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아니 그럼······.”


황해도 경찰부장의 얼굴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설마 정말 관동군 장교일 수 있단 말이오?”


그런데 서장의 대답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것이 또 그렇게 말하기가 힘듭니다.”


“아니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지 왜 그렇게 헷갈리게 만드오?”


황해도 경찰부장이 짜증을 내는데, 나카하라 국장이 굳은 표정으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어떤 이유로 그렇소?”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자가 장교 신분임을 증명해 주는 자기 증언 말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게다가 정보원의 첩보와 심문 중에 토설한 조직원에 의하면, 그자는 점창파의 4인자에서 3인자쯤 되는 고위간부라는 겁니다.”


“갈수록 이상해지는군!”


황해도 경찰부장이 황당하단 얼굴이 되었다. 이제 그의 머릿속에서 요정 가서 기생과 질펀하게 놀겠다는 생각이 싹 사라져 버렸다. 관동군 특무기관의 장교인 동시에 중국 폭력조직 간부라는 자가 있다니. 이게 말이 될 소리인가?


나카하라 국장이 묻는다.


“그자가 주장하는 군번이나 여타 정보를 관동군 쪽에 보냈소?”


“아닙니다. 이 문제는 우선 보고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해서 일단 보류하고 있습니다.”


“흐음.”


나카하라 국장이 잠시 침묵한 채로 생각에 빠졌다. 그 새 황해도 경찰부장이 질문한다.


“그자가 관동군 장교라고 친다면, 대체 무슨 이유로, 또 어떻게 지나 폭력조직에서 간부 행세를 한단 말이오?”


“취조해 봤는데, 그 문제만 나오면 군사기밀이라며 입을 안 엽니다.”


“거 참 황당하군. 우리 경찰에서 순사를 폭력조직에 잠입시켜 수사하는 전례가 적지 않긴 한데, 대체 왜 육군 특무기관이 그래야 한단 말이오?”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그 점창파가 지나 국민정부나 소련, 또는 제3국과 연결된 간첩 조직이라도 된단 말이오?”


“아닙니다. 점창파는 그냥 폭력조직이고 타국 정부와 관계는 없습니다.”


“그럼 특무기관이 왜 그런 일을 하오?”


“저도 모르겠습니다.”


부장과 서장 다 답답하단 얼굴이었다. 그때 나카하라 국장이 질문을 던진다.


“그자가 점창파에 언제 들어왔다 하오?”


“그것도 이상합니다. 정보원에 따르면 6개월 전에 조직에 입문했다는 겁니다.”


“들어오자마자 바로 간부가 되었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조직 내 중요 행사나 회의에 꼬박꼬박 빠지지 않고 참석했는데, 두목조차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실세 중의 실세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카하라 국장이 눈치챘다.


“그 말이 참이라면, 내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자가 아편거래 수사 목적이나 아니면 방첩 목적으로 비밀 조직원으로 들어간 것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소. 그런 목적으로 침투시켰으면 조직에 들어오자마자 실세 간부가 되었을 리가 없소. 말단 조직원이 되어서 조용히 활동했겠지.”


“저 그 말씀이라면······.”


황해도 경찰부장이 망설이며 말을 꺼낸다.


“관동군과 점창파 사이에 뭔가 있다는 겁니까?”


그때 국장의 눈이 번뜩이었다.


“그게 내 생각이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어째서······.”


“관동군 특무기관의 정보공작과 관련된 일이 아닐까요?”


서장이 의견을 제시한다.


“점창파를 지나 내부 정보수집과 공작에 활용하려고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걸 지금부터 알아야 하오. 의문점이 한둘이 아니오. 그가 정말 관동군 장교라면, 무슨 임무가 있기에 폭력조직에 들어가 간부까지 올라갔다는 거요? 그리고 어떻게 조직 실세까지 올라가 두목의 권위까지 침해할 수 있었다는 거요? 그리고 서장 말대로 정보공작 목적이라 해도······.”


국장이 이맛살을 찌푸린다.


“이건 월권행위로 볼 수 있소. 조선 관내 치안, 그것도 아편밀수와 연관된 조직에 관동군이 개입하고 있다면, 문제 소지가 작지 않소.”


“하지만, 이 건으로 관동군이 자기들 군사기밀에 개입했다고 항의하면 어쩌죠?”


“항의는 우리 쪽에서 해야 하오, 부장.”


나카하라 국장의 얼굴에 불쾌함이 서린다. 비록 관동군은 아니지만, 그는 평소에 조선군 헌병 특무대가 계속해서 경찰의 사상범 수사에 개입하거나 공적을 가로채려 드는 데에 짜증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육군 헌병대의 그런 행동도 심기가 불편한데, 관동군 특무대까지 자기 관할구역에 간섭하려 든다 생각하니 불쾌하기 이를 데 없다. 사전에 정보공유라도 했다면 모를까 아무것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더욱 불쾌하다.


“딴 조직도 아니고 아편밀수 조직이오. 아편 같은 마약이 우리 관할구역 내에 유통되는데, 관동군이 그걸 막기는커녕 이용하려 들고 있잖소. 관동군이 군사기밀을 들먹이며 수사를 방해하려 한다면 우리 경찰을 무시하는 것과 진배없소. 게다가 그런 조직에 요원을 보내 간부까지 오르게 하다니.”


국장이 혀를 끌끌 차고는 서장에게 시선을 돌린다.


“신원확인은 해야 하니 그놈 관등성명과 군번은 하얼빈 특무기관으로 보내시오. 그럼 분명 관동군 헌병대에서 자기들이 수사하겠다고 사건 이첩하라 할 건데, 그럼 내가 아직 허가를 안 내렸다고 하고 시간을 버시오. 그동안 무슨 수를 써서든 최대한 실토하게 만드시오. 진전이 있거나 관동군 쪽에서 연락 오면 바로 보고하시오.”


이것이 나카하라 국장이 해주경찰서에서 마지막으로 내린 구두 지시였다. 국장과 부장은 총독과 도지사 등등이 즐기고 있는 주연 자리에 막바지에 참석하였다. 요정에서는 우가키 총독이 유진만에게 당한 스트레스를 풀었는지 허허 웃으며, 예복 윗단추를 풀어헤치고는 아양을 떠는 기생의 잔을 받고 있었다. 총독의 주변에는 도지사를 비롯한 관리들이 둘러앉아 낯간지러울 정도의 아부를 떨고 있었다. 국장과 부장은 여러 잔을 마셨지만, 둘 다 술맛을 즐기지 못하였다. 둘 다 경험과 관록이 있는 경찰이었다. 모종의 음모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관동군 사령부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꾸며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계속 들었다.


다음 날, 사무실에 출근한 국장은 무라타 경부보에게 전날 황해도경찰부에서 보고 온 것이 없는지부터 물었다. 마침 황해도경찰부장이 전화로 찾았었다고 하니 바로 연결했다.


- 국장님.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관동군 사령부에 문의했는데, 그자는 하얼빈 특무대 소속 장교가 맞다고 합니다.


“그렇군. 관동군에서 사건 이첩하라고 안 하오?”


- 예. 관동군의 문제이니 관동군에서 처리하는게 맞는다고 합니다만······.


“우리 조사 끝나고 이첩할 것이니 그리 알라고 전하겠소.”


- 저······. 그런데······.


황해도 경찰부장의 목소리가 난감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낸다.


- 헌병대에서 이미 인수인계할 수사관들 파견했으니 용의자 넘기고 이첩할 준비 하라는 전문을 받았습니다.


“아니 뭐요!”


나카하라 국장은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엄연히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인 자신과 상의하나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헌병 수사관들을 파견해 용의자를 데려가겠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 저, 어떡할까요?


“어쩌긴 뭘 어쩌오?”


나카하라 국장은 관동군의 일방적인 일처리를 전혀 존중해 줄 생각이 없다.


“헌병대에서 오기 전에 용의자를 경성으로 호송하시오! 관동군에 이 사건은 경무국에서 직접 담당할 것이니 그리 알라고 전하시오!”


전화를 끊은 국장은 “관동군이 아주 제멋대로군!”이라며 역정을 낸다. 그도 관동군이 저지른 만주사변을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았으나, 아무리 큰 공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조직 간 협조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설치고 다니는 것이 대체 있을 법할 일인가 하고 생각하니 성이 난다. 동시에 강한 의문이 든다. 대체 관동군은 뭘 숨기고 싶어 하길래 이렇게 구는 건가?


국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당장 총독에게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보고하고, 총독의 허가 아래 관동군 사령부로 항의 공문을 보낼 생각이었다. 엄연히 특무기관장은 물론이고 관동군 사령관과 참모장의 군 선배인 우가키 총독이 이를 묵과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무라타 경부보가 경악에 가득 찬 얼굴로 뛰어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국장님! 큰일 났습니다!”


완전히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경부보는, 관동군의 일방적인 행위 만큼 큰일이 있냐고 생각하며 “무슨 큰일?”이라고 묻는 국장에게 “들어 보시면 압니다!”라고 하며, 책상 위의 트렌지스터 라디오를 작동시켰다.


라디오에서 들리는 소리에, 나카하라 국장은 순식간에 관동군 일을 잊어버리고 입이 딱 벌어져 “이런 세상에······.”라고 뇌까리고 말았다. 경성방송국의 간판 아나운서, 사와고에 마코토의 듣기 좋은 미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런 말을 하며 말이다.


-역대 수많은 폭군이 그리되었듯이, 강도 일본의 통치도 끝날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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