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선재림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택경澤鏡
작품등록일 :
2019.07.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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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9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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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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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선재림 - 01 한량, 돌아오다(2)

DUMMY

“후욱. 후우욱. 후욱···.”


유성은 거의 한 달을 체력 단련으로 보냈다.

장원 주변을 쉼 없이 달리고, 어두워지면 방에서 중량운동을 해 근력을 기르고 지구력을 키웠다.


“저 짓이 얼마나 가겠나?”

“글쎄, 일주일 정도?”

“이 주일에 닷 전.”

“난 일 주.”


처음엔 모두가 그를 비웃었다. 진가장의 녹을 받는 하인들까지도.

그러나 유성은 그만두지 않았다. 쉬는 듯하다가도 다음 날이면 멀쩡히 나와 단련하는 모습에 사람들이 당황했다.


“아니, 우리 한량 도련님이 어쩐 일이야?”

“낸들 아나?”

“그래도 하루씩 빼먹는 것을 보니 그 게으름이 어디 가지는 않는 모양인데.”


물론 오해들과는 달리 유성이 하루걸러 하루 모양으로 운동을 하는 것은 매우 체계적인 연구에 의한 것이었다.

신체에 큰 부하를 주어 온 근육을 찢은 후, 휴식을 취하며 제대로 회복하도록 해 몸을 키우는 것.

죽기 직전까지 몸을 혹사시킨 다음 하루를 통째로 쉬며 회복시키기를 수차례, 그의 몸은 차돌처럼 단단한 근육으로 아름다워졌다.


‘몸이 좀 올라온 것 같다.’


-불끈!


그는 주먹을 힘껏 쥐어 봤다. 육체의 힘이 수련을 놓았던 사람치고는 상당했다.

어떤 공부라도 일정 수준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짧다는 것, 본인이 저주라고 생각했던 축복이 큰 힘이 되는 것이 우스워 유성은 살짝 실소를 뱉었다.


-피식.


‘이제 내공을 회복할 때가 되었어. 뭘 익히는 것이 좋을까?’


그는 태청기공(太淸氣功), 벽해심공(碧海心功), 기기무상공(奇奇無常功) 등. 두 번의 전생을 통해 배우고 익혔던 신공절학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즉시 고개를 저었다.


‘역시 완전무결심공(完全無缺心功) 이상 가는 기공이 없어. 효율, 호환, 어디에 갖다 붙여도 한 손에 꼽힐 테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공의 순도가 높은 태청기공, 축적되는 내공의 양이 많은 벽해심공, 그 둘은 평범하지만 어느 검법, 창술 등의 무공과도 호환된다는 장점을 지닌 기기무상공과 달리, 완전무결심공은 모든 영역에서 우수하다는 점이다.


‘뭘 해도 적당적당히 잘하는 나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무공이지. 허허.’


그럴 수밖에 없다. 완견무결심공은 천마와의 일전을 위해 그가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어 창안한 기공이었으니까.

살아남아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모인 그와 동료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 낸 절학이라고 할 수 있었다.


‘좋아. 축기를 시도해 본 뒤에 가문의 무예와 얼마나 어울리는지 확인해 봐야겠군.’


그렇다고 대뜸 완전무결심공만을 익힌다면, 어디서 무공 도둑질을 해 왔냐는 등 귀찮은 의심을 살 터. 가문에 있는 무공이 가진 특유의 색깔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는 가전무공과 완전무결심공을 어떻게 엮을 수 있을지 한참 연구했다.

기본공인 오화심결(五花心訣)부터 적뢰공(赤?功) 등의 진가장 기공과 완전무결심공을 조화시키는 과정이었다.

밤이 깊고, 별빛들만 남아 대화를 나눌 때까지 진유성이 머무는 방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


“그래, 유성이가 수련을 한다고?”


진훤이 아들의 시종, 소은에게 물었다.


“네. 수련이라기에는 조잡한 체조 따위이긴 합니다만, 전처럼 무기력하게 지내지는 않으십니다.”

“체조?”

“연무장을 달리고 몸을 꺾으며 유연성을 기르는 중입니다. 꼼수 같은 것은 없고, 그저 몸을 키우는 것에 열중하는 것 같습니다.”

“뛰어난 무인인 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흠···.”


중독에서 막 깨어난 아들의 근황에, 진가주가 오묘한 침묵을 유지했다.

그에 소은이 물었다.


“혹, 후계구도를 뒤집으실 생각이십니까?”

“녀석이 원한다면.”


진훤은 진가장 식구 수백 명이 골머리를 앓으며 조율 중인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언급했다.

소은이 나직하게 말했다.


“몸이 완성되면 다시 무공을 익히려고 하실 겁니다. 아마 후계자 자리에도 눈을 돌리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렇겠지. 아무쪼록 지금처럼 잘 살펴 주게.”

“네, 가주님.”


가벼운 당부에 대답한 소은이 자리를 떠나고, 진훤이 혼자 남아 중얼거렸다.


“기질이 온순하고 배려가 많아 깜냥이 되지 않는다 생각했거늘. 복심이 있었는가?”


날 때부터 똑똑했던 아들. 세간의 시선을 의식하여 얼간이 행세를 했다지만 그 오성이 어디에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쓰러진 그의 처소에 밤마다 몰래 찾아가 추궁과혈이며 진기도인을 했던 것이 아니던가?


“장녀는 이미 검으로 일가를 이뤄 차기 맹주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차남은 명문대파의 제자이니 그곳에 뼈를 묻는 것이 맞다. 후후. 원치 않는다면 모를까, 원한다면 이 진가를···, 아니, 하북 제일의 문파를 물려 줄 것이다.”


그러니 계속 정진하길···.

평소 느긋하고 묵직한 검군자 진훤이 아닌, 야망 넘치는 노련한 사내의 눈빛이 방을 가득 채웠다.


***


-씨익.


유성이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렸다.


‘훌륭하다.’


완전무결심공과 진가장의 천화심법(天花心法)을 합친 심법을 개발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생각보다 빠르게 체득할 수 있었던 것은, 완전무결심공의 대단함인가, 진가장 무공에 대한 내 적성인가?’


어쨌든 눈에 보이는 성과에 유성은 순수하게 기뻐했다.

또한, 동공을 통해 심법을 체화했다. 꾸준한 수련만 뒷받침한다면 뛰어난 효능을 보일 것이었다.


‘다변(多變) 다능(多能)을 추구하는 진가장의 무공에 접목하기도 좋고, 내공의 성질도 흡사하다.’


근 몇 주를 골머리를 앓은 결과물이 그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전생에 비해 턱없이 약한 몸뚱이가 문제라면 문제이지만, 지금처럼 단련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강해질 터.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유성은 그런 것에 신경 쓰기보다 새로 만들어 낸 심법의 성능과, 검법 등 술기와의 호환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는 닫힌 문 쪽을 향해 소리쳤다.


“밖에 누구 있나?”


-드르륵.


문이 열리고 시녀 소은이 들어왔다.


“예, 도련님.”

“목검 하나만 챙겨 줘. 연무장에 가 봐야겠으니.”

“예, 도련님.”


마른 대답을 남기고 소은이 어디선가 잘 깎인 목검 하나를 가져왔다.

유성은 그것을 들고 진가장 연무장으로 향했다.


“화화섬(華花閃)! 합! 하압!”

“트핫! 조화괴괴(造花乖乖)!”


한낮의 연무장에는 각기 수련하는 무인들로 활기가 넘쳤다.


‘좋군.’


그도 한구석에 서서 목검을 바르게 들었다.


‘일단 검법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론상으론 괜찮지만, 혹시 모르니.’


유성은 자연스럽게 팔을 끌어올려, 진가장 검술의 기본 공부인 오화검법(五花劍法)을 펼쳤다.


-슷! 스스슷!


일화(一花) 화뢰(花?)에서 시작해, 만개(滿開), 점점(漸漸), 향람(香濫)을 지나 오화(五花) 낙화(落花)까지.

변화무쌍하고 화려하면서, 때로는 격정적인 검로가 이어졌거늘, 휘두르는 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고 펼치는 유성의 얼굴은 평온했다.

내공의 흐름과 검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들었다가, 땀이 아예 나지 않은 것을 알고 멋쩍게 손을 내렸다.


‘뭐지?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적은데. 기공의 효과가 왜 이리 뛰어난 것인가?’


자신이 만들었지만, 터무니없이 대단한 효율의 심법이 놀라워 내심 감탄한 유성이었다.

그는 수련을 마치고 심법에 멋들어진 이름을 하나 지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이! 반푼이!”

“응?”


무공을 점검하고 체력의 소모량과 근육의 부하를 확인하는데, 어디선가 시비 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성은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얼굴 뵙기 힘든 분께서 어쩐 일로 연무장에 계신가? 춤이라도 추고 싶었는가 보지? 푸하핫!”

“아, 유돈이구나.”


오랜만에 보는 얼굴의 정체는 진유돈. 그의 숙부인 진두홍의 외동아들로 그와 동갑인 사촌 형제였다.

밖에서 어울리던 친구 무리를 끌고 들어와 연무장까지 안내하다가, 유성을 발견하고는 실실거리며 다가와 시비를 걸어온 것이다.

체면도 떨고, 평소 마음에 들지 않는 유성을 모욕할 생각이었다.


“간만에 나오셨는데 펼친다는 게 고작 오화검법이야? 그래서 운동이나 되겠어?”

“푸하하! 진가장 다 됐네. 장남이라는 사람이 저 나이에 기본공이나 하고 말이야.”

“어허, 이 친구. 유돈이가 있지 않은가?”

“아 그렇군. 어차피 같은 항렬에 진 소협이 있으니 무능해도 상관없겠군. 하하!”


유성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의 면면을 살폈다.


‘감묵상단(紺墨商團) 이공자 감곡중. 도농원(圖農院) 원주 장장토의 외동아들 장사웅. 다 고만고만한 녀석들이군.’


별 놈들은 아니다.

집안도 한미하고, 이름도 없는 이들. 감히 진가장의 장자에게 까불거릴 급이 아닌 이들이다.

하지만 똥이 무서워서 피하겠는가? 그저 상대할 시간이 아까웠던 터라, 그는 속으로 혀를 한 번 찬 후에 대꾸했다.


“그래. 오랜만에 수련하는 것이니 기본공부터 했다. 갈 길 있으면 빨리 가도록 해라.”

“허, 지금 축객하는 거야? 나를?”

“그런 게 아니라···.”

“반푼이 주제에. 쯧.”


비웃으며 모욕하는 말에 유성이 화를 눌러 참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소은이 한 발 나서며 빽 소리를 질렀다.


“무례하십니다! 같은 항렬이라도 유성 공자님은 가주의 직계······.”

“뭐야? 어디 시비 년이 이 집 주인의 식구한테 건방지게 굴어! 죽고 싶어?”

“잠깐, 잠깐.”


항의하는 소은에게 유돈이 달려들 기세로 소리 지르자, 유성이 그 사이를 가로막았다.


“참아라, 유돈아. 얘가 뭘 몰라서 그런 거니까.”

“미친. 반푼이 놈 아니랄까 봐, 제 형제가 아니라 시비를 감싸? 됐으니, 비켜! 내가 저 천한 년을···.”


-턱!


화가 난 유돈이 유성의 가슴께를 밀치고 소은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시간이 아까우니 그냥 내가 처리해야겠구나.’


유성은 뒤로 넘어지는 척, 팔을 크게 휘저으며 소리를 냈다.

장마당 광대가 봐도 속아 넘어갈 훌륭한 연기였다.


“어, 어엇!”


그리고는 손날을 세워 유돈의 턱 끝을 살짝, 빠르게 가격했다.


-툭.


“야, 이리 오라니···, 어?”


-털썩.


살짝 스친 공격을 인지하지도 못한 유돈은, 소은에게 다가가려 하다가 별안간 털썩 주저앉았다.

턱에 타격을 허용했기에 골통이 흔들려 균형감각을 상실한 것이다.


“아이고, 미안. 실수했다. 난 이만 볼 일이 있어서.”

“뭐, 뭐야! 왜 다리가 안 움직여! 야, 진유성! 무슨 짓을 한 거냐!”

“소은아, 가자.”

“예? 아, 예, 도련님.”


유성이 발걸음을 옮겨 내원 쪽으로 향했고, 소은이 당황하며 종종걸음으로 쫓았다.

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는 유돈은 무시한 채였다.


‘두 얼간이들이 잘 챙겨 주겠지.’


아마 감곡중과 장사웅이 상황을 적당히 수습할 것이었다.


“소은아, 속은 통쾌했다만 다음에는 그냥 넘기도록 해라.”


그는 걷는 도중, 소은에게 말했다.


“하지만 도련님······.”

“네가 아무리 일류 무인이라고 해도, 위장한 신분이 신분이니 만큼 조심해야 하지 않겠느냐?”

“어, 어떻게?”


소은의 정체는 비밀 호위 겸 감시역. 시녀로 위장한 채 그를 보호하고 행적을 가주에게 보고하는 무인이었다.

그녀는 공자에게 정체를 들켰다는 것이 당혹스러웠다.


‘어떻게는. 지난 생에 봤으니 알지.’


당연히 이미 겪어 봐서 알고 있었지만, 유성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둘러댔다.


“다른 가솔들처럼 종종걸음으로 걷는 척하는데, 그 중심이 잡혀 있으니 무게를 옮기는 수련을 꾸준히 한 결과이고. 내 전담 시녀라 할 일이 많지 않을 터인데, 손바닥 경혈마다 굳은살이 빼곡하더구나.”

“으읏······.”

“이래 뵈어도 무인이라고 수준 정도는 가늠할 수 있다. 후후. 답이 되었느냐?”

“네, 도련님.”

“아마 아버님께서 수신호위로 내게 붙이셨겠지?”

“정확합니다.”

“들켰다고 보고는 드리되 보직 이동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굳이 사람 바꾸고 싶지는 않아.”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딱딱하게 반응하지 마. 겉으로는 시녀 노릇을 해야 하잖아?”


유성은 그녀의 정체를 밝혀낸 직후, 눈에 띄게 딱딱해진 말투를 가지고 희롱했다.


“어휴···. 네, 도련님.”

“가주실로 갈 거야.”

“네.”


두 남녀가 천천히 내원을 걸었다.

하나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하나는 속으로 의문을 가득 품고.


***


진가장의 가주 집무실, 두 중년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가주, 이제 정하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유성과 유돈이 지학(志學)이고 일을 맡을 때가 됐습니다. 유현도 열셋이니 제 앞가림을 할 나이지요. 소가주 공표를 더 미룰 수가 없습니다.”

“두홍아. 너는 서홍이와 달리 꼭 나를 가주라고 부르더구나. 아무리 모친이 다르다고 해도 너무하지 않으냐?”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잖습니까? 어찌 말을 돌리십니까?”


진가장의 총관이자, 가주 진훤의 배다른 아우인 진두홍이 말했다.


‘서자인 네놈에게 내 형이라 부를 성싶으냐? 돌림자도 못 받은 주제에···. 유돈이가 소가주가 되고, 나아가 가주의 위를 차지하면 네놈의 핏줄을 모조리 날려버리고 하북 진가의 혈통을 정돈할 것이다.’


요구와 회피가 반복되던 그때, 문 앞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아버님, 소자 유성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음? 들어오거라.”


-드르륵.


문이 열리고 진가의 장남, 진유성이 집무실에 들어왔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 가주 진훤의 앞에 서 용건을 말했다.


“아버님을 뵙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요.”

“이놈! 어른이 보이지도 않으냐! 어디 예의 없이···.”

“아, 숙부님. 강녕하셨습니까. 그게 아버님, 오화검법 외에 다른 검보를 좀 얻으려···.”


명백히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에 진두홍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놈이···!”


-쿵쾅쿵쾅!


그가 벌떡 일어나 화를 내려던 찰나, 마룻바닥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웬 소년이 불쑥 집무실에 쳐들어와 소리를 쳤다.


“진유성 이 개자식아! 어딜 도망가는 거냐!”

“음?”


진두홍의 아들 진유돈이었다.


“유돈이가 아니냐? 무슨 일이기에 이 난리를 피우며 들어오느냐?”

“백부님! 진유성 저 자식이 감히 무고한 저를 공격하고 도주했지 뭡니까! 아무런 기척도 없이 공격하고 도망치는데, 무릎이 풀려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 사악한 사술을 익힌 것이 분명합니다!”


진훤이 의문을 표하자, 진유돈이 답했다. 물론 자신의 잘못은 숨기고 유성의 행동만 부풀린 거짓 진술이었다.


“뭐라? 유성이 네 이놈! 그게 무슨 경우 없는 짓이더냐! 당장 사과하거라!”


아들의 말에 대로한 진두홍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한껏 붉어졌던 얼굴이 터질 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저는 사과할 일을 만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유돈이 소은에게 사과를 하면 했지요.”

“이, 이놈이 어른한테 어디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쾅쾅!


“그러는 너는 어디 가주 앞에서 목청을 높이느냐.”


상황을 살피지 않고 소리 높여 문책하려는 두홍의 태도를 본 진가주가 책상을 두드려서 소란을 잠재웠다.


“아니, 가주. 그런 것이 아니라···.”

“됐다. 어차피 정황을 물어봤자 서로 유리한 이야기를 할 터. 둘의 은원은 둘이 풀게 두어라. 애들 싸움에 어른이 끼는 것이 얼마나 꼴사나우냐?”

“끄응···.”


‘제 자식이라고 편을 드는 것인가? 망할 놈.’


“한 판 붙거라.”

“예?”

“아버님?”


진두홍의 입을 다물게 한 진훤은, 두 소년에게 근엄하게 명을 내렸다.


“무인은 힘으로 말한다. 두 놈 다, 일 각을 줄 터이니 필요한 것을 챙겨 연무장으로 오거라. 지는 놈이 사과한다. 이기는 놈에게는 내가 상을 주마. 어떠냐?”

“알겠습니다, 아버님.”

“흥.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할 거다, 진유성.”


유성과 유돈이 자리를 뜨자, 진훤이 일어서 진두홍에게 말했다.


“뭐 하느냐? 우리도 가야지?”

“쯧···. 굳이 그렇게 하셔야 합니까? 누가 봐도 명명백백한 상황을···.”

“아, 주전부리를 조금 챙겨야겠는데. 두홍이 너는 주방에 들렀다 오거라. 옥수수 두어 개 삶아서.”


방금까지의 엄격하고 근엄한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다시 정신머리가 꽃밭에 가 있는 모습을 보이는 진가주였다.


‘구렁이 같은 놈···. 제기랄. 지금은 고개 숙이고 따라 주마. 유성이 놈이 박살 나고 가솔들의 마음이 유돈이에게 몰리면 천한 네놈의 시대도 끝이야.’


두홍은 음흉한 속내를 감추며 천천히 주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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