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역사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알신더
그림/삽화
경배
작품등록일 :
2019.07.16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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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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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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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화

DUMMY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경치를 즐기던 상문은 서호전이 알려준 숙소로 가서 잠을 청했다. 텁텁한 남자들만 득시글거리는 곳이었지만 건양문과 마찬가지였기에 상문은 거리낌 없이 몸을 뉘었다.


다음 날 아침, 누구보다 일찍 일어난 상문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금강권과 역근경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고선 자신을 찾아온 서 서기를 만나 가볍게 인사를 나누더니 일하기 전에 금 행수를 만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내가 직접 모시는 행수님은 아니지만, 연락은 넣어보겠네.”


일에 관한 이야기라면 상문이 자신에게 말했으리라 생각했기에 서 서기는 중요한 이야기임을 눈치채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서호전이 금 행수가 머무는 전각으로 가 하인에게 연락을 넣었고, 상문은 감사 인사를 전했지만, 그는 손을 저었다.


“고생하는 것도 아닌데 감사는 무슨 감사인가. 아직 아침 안 먹었을 테니 같이 드세.”


그 말과 함께 서호전은 상문을 객잔으로 데려갔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객잔 안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아는 사람이 나왔는지 그는 몇몇과 인사를 나누고선 양손 가득 음식을 받아왔다.


“국수는 맑은 국물이고 만두는 조금 뻑뻑하지만, 맛은 확실하게 보장하지. 여기서 든든히 먹어둬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거든. 맛이 없으면 못 해 먹지.”


서호전의 호언장담대로 객잔의 음식은 맛있었다. 아침이라 맛이 진하지도 않은 데다가 면의 탄력이나 만두의 식감이 일품이었다.


단숨에 식사를 마친 상문과 서호전은 객잔 밖으로 나와 다시 본장으로 되돌아갔다.


“오늘은 나랑 같이 배에서 일하세. 어제 일한 것을 보아하니 흔들리는 배 안에서도 잘 움직일 수 있겠더군.”


이미 내린 물건을 옮기는 것이나 배에서 직접 물건을 내리는 것이나 다를 건 없다고 생각했지만 흔들리는 배 안에서 움직이는 것 또한 색다른 경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상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본장에 도착한 상문과 서호전은 금 행수가 보낸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은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한 서호전이었지만 금 행수가 두 사람을 다 들여보내라는 말을 듣자 조금 전까지 느슨하던 분위기를 다잡았다. 마음을 다잡았다기보다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지만 안내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두 사람을 안내했다.


“제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아침부터 거하게 식사했는지 방 안에서 음식 냄새가 진하게 풍겼지만, 상문은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들어갔지만, 상문 역시 빠르게 말을 전하는 편이 좋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뵌 분께서 소향상단과의 거래를 끊는 편이 좋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자 금주성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소향상단과의 거래는 달콤했다. 천주에서 물건을 받아 합강항에 내려주는 쉬운 일을 해주면서도 쏠쏠하게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상대 역시 깐깐하게 점검했지만, 거래가 이어질수록 믿음이 쌓이자 소향상단에서도 영금장을 믿고 거래량을 늘렸으니 만족스러웠다.


‘소향상단의 높은 사람과 아는 사이라는 보고가 들어오긴 했지만 소림의 삼대제자가 복건의 중견 상단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영금장주 역시 소림의 이대제자인 법현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기에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쏠쏠한 이득을 가져다주는 소향상단의 사람과 만난 다음 날 곧장 거래를 끊으라는 말을 하자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돈 냄새의 정체인 건가? 돈 앞에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지만, 정보가 너무나도 부족해.’


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돈을 움직인다면 선견지명이지만 무턱대고 돈을 움직인다면 도박이었다. 게다가 소향상단과의 거래를 밀어붙인 공로로 행수의 자리에 오른 금주성이기에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문을 오래 붙잡아둘 수는 없기에 고민을 잠시 뒤로 미루고선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 혼자서 결정하기에는 너무나 큰일입니다. 지금 당장 손을 쓸 수 없음을 용서해주시지요.”


점창파의 삼대제자가 소림에 찾아와서 법회를 멈추라는 소리를 한다면 경계하면서도 조사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상문은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무거운 이야기가 오갈 줄은 몰랐는데.’


금 행수를 존경하긴 하지만 갑작스럽게 거래처와의 거래를 중단하라는 무거운 이야기가 나오자 상인으로서 갈고닦은 생존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나무아미타불.”


마침 상문이 불호를 외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긴장한 채 분위기만 살피던 서호전 역시 상문을 따라가려 했다. 하지만 그가 발을 떼기도 전에 금주성의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서 서기님은 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가시지요.”


“넵. 알겠습니다.”


상문이 나가자 금주성은 서호전에게 자리를 권하고선 아무 말도 없이 천장을 바라봤다. 그가 고민하고 있음을 눈치챈 서호전은 그를 방해하지 않도록 숨 쉬는 소리조차 작게 하며 긴장을 풀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말할 것은 많지만 우선 여쭤볼 것부터 하도록 하죠. 오늘 스님을 어디로 보내실 생각입니까?”


“오늘은 저와 함께 직접 배로 들어가 물건을 내릴 생각입니다. 오늘은 저희 쪽의 배가 많은 만큼 스님과 함께한다면 일을 빨리 마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문과 이야기해둔 것을 질문받자 서호전은 막힘없이 말할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준비한 것처럼 대답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금주성의 푸짐한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좋군요. 훌륭한 선택입니다.”


시간은 돈이었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항구를 빌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뜯기는 돈이 많아졌다. 다른 상단의 물건을 대신 하역하고 보관한다면 그 상단에서 비용을 지불하지만, 오늘처럼 본장 소속의 물건이 많이 들어오는 날은 영금장에서 돈을 지급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상문처럼 상식을 벗어난 고수가 물건을 내린다면 하역시간이 대폭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짐을 빨리 내린다면 세금 명목으로 뜯기는 돈이 줄어들 것이고, 같은 물건이라도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으니 효율적이었다.


그렇기에 금주성은 돈 생각에 환하게 미소를 지었고, 그와 동시에 속으로 서호전의 평가를 높였다.


‘셈이 약하다는 평가가 있지만, 돈을 버는 감각은 있는 것 같네. 사환이나 서기라면 셈이 중요하지만, 그 위로 갈수록 감각이 중요해지지. 아직 자격은 부족하지만, 곁에 두고 키워볼 가치는 있어 보여.’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은 채 사환에서부터 행수까지 유례없을 정도로 빠르게 올라선 금주성이었지만 잡음 없이 장주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세력이 필수적이었다. 그렇기에 소질이 보이는 자들에게 은근히 손을 내밀었고, 서 서기 역시 그런 자 중의 하나로 선택했다.


머릿속 한쪽으로 그런 생각을 몰아둔 금주성은 칭찬받아 부끄러워하는 서호전의 눈을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쭤볼 것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하셨기에 길게 말할 필요가 없었군요. 다음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서호전은 기회와 위기는 언제나 같이 찾아오는 것임을 잘 알고 있지만 지금 동아줄을 잡지 못한다면 자신은 앞으로도 서기에 머문 채 끝나리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렇기에 그의 말을 한 글자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자세까지 고치며 집중했다.


“아까 들으셨겠지만 소향상단에 문제가 생긴 듯합니다. 하지만 정보가 없어 쉬이 판단할 수 없군요.”


말을 전부 한 것은 아니지만 서호전은 그가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제가 정보를 모아오겠습니다.”


답을 떠먹여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처음이니만큼 자세히 설명했다. 제법 눈치가 좋다는 평가 외에도 하역장의 분위기를 북돋아 준다는 평가답게 적당히 활기차면서도 단호하게 말하는 모양새가 제법 호감을 줬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은 서 서기님께 맡기겠습니다.”


서호전은 절도 있게 인사한 후 방에서 빠져나왔다. 그 후로 일하면서도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해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조 서기, 오랜만일세. 자네가 남서쪽에 있어서 잘 알 텐데, 요즘도 복건청 구하기가 힘든가?”


상인이기에 그들이 취급하는 상품에 대해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서호전은 오랜만에 복주로 온 지인에게 넌지시 운을 띄웠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자네도 알다시피 겨울에 쪽을 구하는 것부터 어려운 일인데 복건청을 어디서 구하겠나.”


아무리 복건성의 겨울이 따뜻하다고는 하지만 여름에 수확해 염료로 만드는 복건청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다. 그 후로도 조 서기의 푸념이 이어졌지만 서호전은 머릿속에 번뜩이는 것이 떠올랐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급한 일이 생각나서 이만 일어나겠네. 미안하네. 내가 다음에 술 한 잔 사겠네.”


서호전은 곧장 일어나더니 창고로 향하는 행렬에 끼어들어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는 덜커덩거리고 행렬을 이끄는 서기의 목소리가 시끄러웠지만 서호전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머리를 굴렸다.


‘다른 곳에서 염료를 가져와 복주로 들여온 다음 복건청으로 둔갑 시켜 전국으로 판매하는 건가?’


광동 역시 복건과 마찬가지로 겨울에도 따뜻한 곳이 많았기에 그런 곳에 몰래 밭을 만들어두고 쪽을 재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들을 수확해 반쯤 제조한 염료를 천주와 복주로 넘겨 소향상단에서 완성한 다음 명품으로 취급받는 복건청의 이름으로 전국에 판매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유통한다면 더 큰 돈을 만질 수 있을 텐데 왜 우리를 통해 옮기는 거지?’


하지만 상인인 서호전의 머리로는 돈을 더 벌 기회를 왜 차버린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고민을 멈출 수 없었다.


서호전 말고도 금주성 역시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지만, 마찬가지로 왜 영금장을 거쳐 번거롭게 움직이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거래를 끊어버린다면 상인으로서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신뢰가 박살 나는 것이기에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물량을 조금씩 줄여가며 거래를 이어나갔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뒷조사를 이어나갔다.


상문이 하역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다음 창고로 물건을 가져오는 상단을 상대하거나, 영금장 소속의 상점에 물건을 배달하는 등 다양한 일을 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는 동안 두 사람은 소향상단의 부정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처음에는 상문의 말로 인해 시작한 조사였지만 조사를 하면 할수록 의심스러운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닌 데다가 성혈정화교와 관련된 무림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기에 두 사람은 더욱더 노력했다.


그 노력이 결실을 보았는지 금주성은 소향상단이 소유한 밭이 복건성에 없음을 확인했고, 서호전은 처음부터 반쯤 만들어진 상태로 배달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필사적으로 노력해가며 정보를 모았음에도 범현룡이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실례합니다. 여기가 영금장이 맞습니까?”


영금장의 문지기는 뻔히 현판을 보고도 여기가 영금장인지 묻는 상대의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누구라도 예의를 잃지 말라는 장주의 엄명이 있었기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실례지만 무슨 일로 영금장에 찾아오셨습니까?”


“장주님을 뵙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청년은 정중한 태도로 포권했다. 풍채가 좋고 말투에 자신감이 잔뜩 묻어있으며, 포권하는 모습에서도 드높은 기개가 엿보였기에 누가 보더라도 명문대파 출신의 후기지수라고 판단할만했다. 그러나 문지기는 갑자기 찾아와 장주를 찾는 자 치고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을 보지 못했기에 속으로 경계하면서도 겉으로는 여전히 정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장주님과 약속을 하고 오신 겁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화급을 필요로 하는 일이니, 기별을 넣어주시겠습니까?”


그렇게 문지기와 실랑이를 벌이던 청년은 대문이 열리자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대문을 통해 나오는 커다란 몸집의 산적 두목처럼 생긴 대머리를 확인하자마자 곧장 검병에 손을 얹고선 사나운 기운을 내뿜었다.


“오랜만입니다.”


하지만 적의를 뿜어내는 상대와는 다르게 상문은 저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해내지 못했다. 당당한 풍채와 의기가 높아 보이는 태도 그리고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은 어디서 본 것 같았지만 근래 만난 사람들의 개성이 너무 강해서인지 그의 인상이 흐릿했다.


“나무아미타불. 죄송합니다. 어디서 뵀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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