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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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알신더
그림/삽화
경배
작품등록일 :
2019.07.16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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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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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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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화

DUMMY

상문에게 무자비한 패배를 맛봤던 화문철은 십만대산으로 돌아가자마자 아버지이자 회주인 화문의인과 마주했다.


“네 소식은 들었다.”


회주실이 아니라 집에서 마주 앉았지만 방 안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화문철은 돌아오면 크게 혼나리라 생각했건만 아버지의 부드러운 태도에 의아하면서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열지 못했다.


“고개를 들어라.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는 말도 있지 않으냐. 너는 아직 젊다. 그러니 낙심하지 말고 다시 일어서야 패배를 갚아줄 것 아니냐.”


부드럽게 아들을 격려했음에도 떨어진 고개를 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화문의인은 조용히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지금까지 패배를 모르고 승승장구하던 아들이 처음 꺾였기에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조용히 있다가 차를 전부 비우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나는 너를 믿는다. 나가보마.”


자신이 직접 일으키는 것보다 스스로 패배를 극복한다면 더 큰 인물이 될 수 있다고 여겼기에 화문의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하지만 제 아비의 생각과는 반대로 화문철은 낙담하지 않았다. 소림에서 내려와 십만대산까지 오는 동안 패배를 곱씹을 시간도, 마음을 다잡을 시간도 충분했다. 그런데도 화문철은 자신에게 실망했음을 떨쳐내지 못했다.


제대로 초식조차 펼치지 못한 채 일격에 패퇴한 것도 실망했지만 상대를 경시한 채 겉멋만 부린 것에 크게 실망했다.


‘나는 칠영(七英)의 한 사람이자 차기 회주인 화문철이다.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지금은 칠대지파에서 손꼽히는 후기지수인 칠영 중 한 사람이지만 훗날 숭뢰회의 회주가 될 몸이며 더 나아가 십만대산의 주인이 될 것이라는 포부를 지녔기에 이처럼 허무한 패배를 당한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날 무시하던 버러지들에게도 이 몸이 누구인지 다시 알려줘야지.’


돌아오는 길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던 만큼 안 그래도 오만했던 성정이 더욱 삐뚤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명성을 되돌리고 다시 우뚝 서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화문철은 몇 가지 방안을 생각하고선 자리에서 일어나 회주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아들이 자신을 찾아온 것도 좋았지만 의지로 가득 찬 눈빛을 보며 흐뭇해하면서도 짐짓 모른척했다.


“무슨 일로 회주실까지 온 것이더냐.”


집에서는 부자 관계였지만 숭뢰회에서는 회주와 후기지수의 관계였기에 화문철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고선 의기를 한껏 드러냈다.


“성혈정화교를 토벌하는 후기지수의 자리에 제가 내정되어있던 것을 무효로 돌리고 경합을 통해 선출하자는 제안을 하러 왔습니다. 이는 제가 숭뢰회의 이름을 더럽혔기에 벌을 받고자 함이며, 숭뢰회의 결속을 다지는 방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숭뢰회는 회주인 화문의인을 정점으로 강철같은 결속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강력한 화문의인의 권력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차기 회주의 자리를 선보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성혈정화교 토벌 참가를 포기한 채 경합으로 선출한다면 그 파장이 심상치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승리한다면 화문세가의 숭뢰회 지배가 더욱더 공고해질 뿐만 아니라 실추된 아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기에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흔들리는 기강을 다잡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 있어서 비무 대회만큼 좋은 건 없지. 좋은 생각이구나.”


부족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과 반목하는 문파들이 적극적으로 따를지도 문제였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문파들을 설득하는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아들이 일을 잘 마무리한다면 설득 정도는 쉬운 일이었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름 후에 대회를 개최하겠다. 충분하겠지?”


커다란 미끼를 걸어놓으면 설득은 쉬웠다. 대회 준비 역시 닷새면 충분하지만, 아들이 몸과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을 주고 싶었기 때문에 보름이라는 유예기간을 뒀다.


“충분합니다.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그 맹세대로 화문철은 압도적인 실력을 뽐내며 비무 대회를 제패했다.


물론 버러지를 꺾고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시켜주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었기에 화문철은 수련을 이어나갔다. 영악으로 모자란 내공을 채우고 아버지에게 무학 강의를 들으며 뼈를 깎는 노력을 한 보람이 있는지 중원으로 나오기 전날 밤에 절정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문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자 뿜어내던 기운을 한층 더 사납고 거칠게 만들었다.


‘네 놈을 잡기 위해 이 몸이 필사적으로 수련했건만 기억조차 못 하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자신을 보자마자 갑작스럽게 난폭한 행동을 하는 그의 모습에 상문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서는 손을 휘휘 내저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기의 파동을 가볍게 지워냈다.


“나무아미타불. 무슨 인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곳에서 행패를 부리시다니 올바른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솟구쳤다. 거기에 더해 버러지 주제에 자신에게 충고한다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었기에 화문철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화문철은 본격적으로 내공까지 끌어올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우선 맡은 임무부터 해치우고 난 다음에야 저 버러지를 상대해야 한다. 나는 지금 숭뢰회의 이름으로 공적인 업무를 하는 중이야.’


자신의 임무는 성혈정화교의 흑막을 밝히고 그들의 자금원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물론 성혈정화교가 추진하던 사업은 십만대산이 만든 것이기에 이미 알고 있는 데다가 통째로 삼킬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과 연관된 상단을 삼키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물론 복건에서부터 십만대산까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도 겪었지만 짜고 치는 연극을 하면서 부수입 정도는 올려도 되겠다는 생각에 영금장을 찾아온 것이었다.


성혈정화교의 사도를 제압해 혈정을 가져가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뒷주머니를 차러 왔지만, 예상 밖의 일에 당황했다. 그러나 그는 당황함과 복수심을 함께 갈무리했다.


“기억을 못 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장주님을 뵈러 왔으니 일단 길을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물론 상문을 만난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여길 접수하는 대로 상문을 손봐줘서 실추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상문은 그럴 생각이 없는지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굉장히 불쾌했지만, 소림승이 자신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기에 그를 지나치려했다.


“나무아미타불.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시면서 어찌 이리 당당하신 겁니까.”


너무나도 당당하게 안으로 진입하려던 것을 상문이 막자 화문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와 동시에 간신히 갈무리했던 사나운 기운이 쏟아지며 상문을 압박했다.


손을 내젓는 것만으로도 기운을 와해시킬 수 있는 상문에게는 효과가 없지만, 옆에 있던 서 서기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자 다시 손을 내저어 기운을 흩어냈다. 이번에는 조금 전처럼 제 앞을 막고 있던 것만 흩어낸 것이 아니라 사나운 기운의 원천을 차단하기 위해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저 발산하기만 하는 화문철과는 다르게 상문은 커다란 손바닥으로 내리누르는 것처럼 기운의 발산을 막았다. 갑작스럽게 몸이 무거워지자 화문철은 당황했다.


‘저놈의 짓인가!’


상문 말고는 자신을 방해할 정도의 고수가 보이지 않았다. 절정고수가 되자마자 중원으로 나왔기에 수련이 부족하지만, 자신이 저 버러지보다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에 파훼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무식한 공격은 그대로 맞받아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이미 늦었으니 꿰뚫어야겠군. 송곳처럼 가다듬어서 저 자에게만 집중해야겠어.’


상문에게 기운을 집중하기 시작한 화문철이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오히려 기세가 거세지자 상문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방침을 바꿀 뿐이었다. 단순히 위에서 아래로 내리누르는 것뿐만이 아니라 주변을 손바닥으로 감싸듯 압박했다.


‘크윽!’


사도의 기운을 제압하던 것보다 느슨하게 압박했지만, 효과는 뛰어났다.


위에서 짓눌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방에서 옥죄는 감각에 화문철은 뿜어내던 기운을 거두고 상문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공을 끌어올렸다.


‘좋아.’


내공을 끌어올려 대항하자 자신을 옥죄던 기운이 사라졌다. 물을 한계까지 집어넣은 돼지 오줌보가 터지듯 파열하며 사라진 것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자신에게 모욕을 준 머저리에게 벌을 주기 위해 출수했다.


숭뢰회라는 이름답게 화문철의 무공은 쾌와 강이 주를 이뤘다. 만물에 깃든 기운 중에서 가장 강하면서도 빠른 번개를 무공으로 옮겼기에 기괴한 움직임을 보이면서도 다른 무공보다 한발 빠르게 상대를 찌르고 베는 초식이 주를 이뤘다. 게다가 가장 강한 기운을 무공에 녹여낸 만큼 단순한 파괴력 역시 칠대지파 중에서 수위를 다툴 정도였다.


하지만 상문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그가 검을 뽑아 들고 자신을 겨누는 순간 상문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빠르게 앞으로 튀어나와 그의 품으로 파고들어 공격할 거리를 주지 않음과 동시에 주먹을 휘둘러 그의 얼굴을 힘껏 쳤다.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그가 그대로 땅에 내리꽂혔지만, 상문은 사나운 기운을 내쫓을 때와 마찬가지로 손을 한 번 휘젓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나무아미타불.”


갑작스러운 공격이었지만 자신의 행동은 정당방위였기에 후회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 이 상황을 어디선가 본 것 같았기에 그를 내려다보며 고민했다.


‘본산에서 봤었나?’


법호를 노리기 위해 자신을 미끼로 쓰려던 화문철이었지만 상문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연무장에서 대련할 때도 그가 출수하기 전에 일격에 쓰러뜨렸다.


그때는 그가 직선으로 날아가 그를 추종하던 후기지수들을 쓰러뜨렸지만, 지금은 땅바닥에 처박혔다는 것이 달랐다. 하지만 상문은 한참이나 고민하고 나서야 기억 저편에 묻혀있던 화문철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좋은 인연은 아니기에 상문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게다가 자신이 존경하는 사부님에게 위해를 끼치려다가 엮인 인연인 만큼 좋은 감정이 남아있을 리 만무했기에 상문의 표정이 구겨졌다.


살짝 불쾌해서 얼굴을 구겼을 뿐인데 흡사 야차나 다름없는 얼굴로 변하자 상문을 바라보던 문지기가 흠칫 놀랐고, 그 모습을 본 상문은 마른세수하며 표정을 되돌렸다.


“우선 불청객부터 치워야겠군요. 이 시주님이 어디서 오셨는지 보셨습니까?”


문지기는 평소의 얼굴로 되돌아간 상문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상문은 난처하다는 듯 턱을 괴었다.


“불법 침입인데 그냥 관아로 넘기면 안 되나?”


콩닥거리던 가슴을 진정시킨 서호전이 화문철을 관아에 넘기자는 말을 하자 상문은 좋은 생각이라는 말과 함께 그를 어깨에 들쳐 멨다. 하지만 상문이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포졸들과 포두가 등장했고, 이런 일이 익숙한지 앞으로 나서서 포두에게 주머니를 하나 찔러줬다.


“요즘 고생이 많으십니다. 바쁘신데 이렇게 빨리 와주시니 저희가 안심하고 장사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영금장 같은 곳이 안전해야지요.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서호전은 그를 불법 침입자라고 말하며 옥에 가둬 달라고 부탁했고, 평소 영금장과 안면이 있던 포두는 빠르게 주머니를 품 안으로 넣고선 훈훈하게 화답했다.


“아침부터 크게 액땜했으니 오늘 일은 잘 풀릴 걸세. 오늘은 청면장부터 시작하는 날이었지? 빨리 가세.”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시간을 지체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상문은 바쁘게 움직이는 서호전의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도 화문철이 갑작스럽게 복건성에 등장한 이유를 생각했다.


‘목 시주님도 혈교 문제로 복건까지 오셨으니 이 자 역시 올 만하겠구나. 잠깐, 성혈정화교를 토벌하러 온 사람들이 이렇게나 말썽이라니.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야.’


수상쩍은 교리를 퍼트리며 사람을 현혹하거나 힘으로 남의 것을 빼앗으면서 겉으로는 고결한 척하는 성혈정화교를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할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잿밥에만 관심을 보이는 화문철의 모습에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실망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커다란 창고에 도착한 서호전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짐을 나르기 시작했고, 상문 역시 자연스럽게 그의 뒤를 따라 커다란 자루를 양손에 하나씩 들었다.


“자네가 있으니 일이 편하구먼. 빨리 끝내고 쉬세.”


서호전이 평소보다 더 호들갑 떨며 처진 분위기를 끌어올리자 상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들어 올린 자루들을 수레에 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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