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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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7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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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탐색검사 1

DUMMY

----------프롤로그는 공지사항에 있습니다.------------


“져스틴. 이것좀 봐라.”


론리 져스틴의 아버지인 맥 져스틴이 검사소집 통지서를 아들에게 내밀었다.

아침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은 론리가 그것을 펼쳐봤다.



친애하는 론리 져스틴에게.

우리는 당신이 하루빨리 스스로의 길을 인식하고 시민연합에 봉사할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 빛나는 여정의 시작에 도움을 주고자 직업탐색검사를 진행하니 아래에 명시된 시간과 장소에 기다리겠습니다.


일 시 : 2270년 1월 1일. 오전 10시

장 소 : 헉슬리 타워 가동 1305호

협 조 : 잠을 충분히 주무시고 12시간 전부터 격렬한 운동이나 과식을 참아주십시오


이상 끝.

교육진로설계부 서울출장소장



론리는 얼굴을 찌푸렸다.


“날 때부터 사람의 길이 정해져있다면 우리 인생은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어요.”


팍스에서 디벨로이드 엔지니어로 일하는 맥.

그는 아들이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잠시 아침 먹는 것을 늦추고 답변을 고민했다.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해서 방황하는 비극보단 낫지 않을까?”


“스캐너가 정해준 삶이 정말 우리의 길일까요?”


“적어도 나는 그렇구나.”


“아버지도 17살에 검사했어요?”


“아니야. 그땐 스캔이 없었어. 22살에 했어. 학교를 다니고 있던 도중에 했지.

스캔이 나오고 나서도 한참 후에서야 이 제도가 정착됐거든.

30세 이하로 직장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했지.”


“그럼 성인이 다 돼서 검사를 받는 사람들도 있었던 거잖아요.

그때의 결과에 대해 수긍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었어요?”


“적어도 내 주변엔 없었다.

본인의 학업이나 희망하는 진로와 대부분 비슷하게 나와서,

크게 사회에 혼동이 오거나 당사자의 인생이 변경될 정도의 무언가는 없었던 것 같아.

물론 뉴스에서 몇몇이 검사를 거부하거나 결과에 불응하는 의미로 시위를 하다가,

연행됐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은 있다.

기술이 완전할 수는 없잖니.”


“그런데 사회는 기술을 맹목적으로 따르잖아요.

전 무서워요. 제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을까봐.”


맥은 그제서야 아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우유를 마시다 말고 식탁 맞은 편으로 가서 론리를 안아줬다.


“네 또래의 모든 친구들이 그런 고민을 하지.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테니까 걱정마라.

그리고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해도 넌 적응하며 잘 살 수 있을 거다. 행복하게.”


맥은 걱정하는 론리를 달래주고 출근준비를 위해 방으로 왔다.

그의 아내 에이든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간호사인 그녀가 당직을 섰기 때문이다.

맥은 넥타이를 매다가 에이든에게 말했다.


“론리가 직업탐색검사를 불안해해.”


그의 말에 에이든이 벌떡 일어섰다.


“혹시 그 애한테 무슨 일이 생기진 않겠죠?

혹시라도 그 날 그 애가 비밀이라도 알게 될까 걱정이에요.”


“믿어보자고. 론리를.”


※ ※ ※


헉슬리 타워는 직업탐색검사를 받으러 온 청소년들로 북적였다.

론리는 같은 동네에서 자란 옥저가 눈에 띄자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분명히 실없는 소리를 하며 귀찮게 할지도 모른다.

론리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보다,

조용히 자연을 관찰하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와 달리 옥저는 누구와도 곧잘 친해졌고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론리는 자신과 다른 옥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옥저는 자신과 다른 론리를 좋아했다.


「삐익-」


방송잡음에 아이들이 모두 조용해졌다.

이제 수다를 떨던 시절은 지났다는 것을 경고하는 듯했다.


「직업탐색과정에 오신 여러분들 환영합니다.」


방송과 동시에 쪽진 머리를 하고 스커트와 구두를 착용한 성인 여성들이 마네킹처럼 이곳저곳에서 등장했다.

방송의 차분한 목소리와 안내요원들이 만든 분위기에 아이들은 동화됐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앞사람을 따라간다.

그 장면은 마치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성을 버리고 규율을 지킴으로써,

사회 구성원으로 편입되는 엄숙한 의식 같았다.


“너 만약 마인드 스캐너가 네가 원하지 않는 직업을 말하면 어떻게 할 거야?”


론리의 뒤에 누군가 조용히 속삭였다.

뒤돌아보니 애써 피했던 옥저가 있었다.

줄지어 서면서 대열이 바뀌고 결국 다시 마주친 것이다.

론리는 이래서 사람들이 많은 곳이 싫었다.

자신의 의도와 어긋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어떡하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거야.”


“스캐너가 분석한 네 능력을 무시할 거야?”


“난 애초에 기계를 믿지 않아. 결과가 다행스럽게 내 의도대로 나와주길 바랄 뿐이지.”


“소용없을걸. 너와 함께 일할 사람들은 스캐너가 정해준 네 모습을 너로 믿을테니까.”


옥저가 따지듯 말하자 론리는 그를 째려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주변사람들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

나 말고 나를 규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목소리가 너무 컸던 탓에 모두가 그를 쳐다봤다.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관리자처럼 보이는 안내요원이 긴 줄을 뚫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여러분. 오래 기다리시느라 지루하겠지만 조금만 참아주세요.

앞으로 100년은 넘게 즐기실 멋진 인생에 비하면,

이 지루함은 찰나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우리 밸류 컴퍼니에서 개발한 마인드 스캐너는,

인간의 의식을 담당하는 뇌 영역을 샅샅이 분석해 수치로 기록하는 기술의 결정체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상상, 생각, 언어, 정치력, 적합한 사무능력을 분석할 뿐만 아니라,

위기 시 긴급하게 대처할 수 있는 빠른 판단력, 고통을 참을 수 있는 인내심, 몸이 뇌에 반응해 실행하는 반사신경 속도 등의 신체능력까지도 스캔해냅니다.

영혼을 통째로 분석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주죠.

단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녀는 조급하진 않았지만 확신에 찬 표정으로 조근조근 말을 이었다.


“이제 여러분은 가장 적합한 능력이 어떤 것인지에 따라,

해당 직업으로 가기 위한 전문 훈련을 받고 사회에 나가게 됩니다. 이건 축복입니다.

챔핀코 시민정부의 사교육이 사라져 국민들은 부유해졌고,

능력없는 자들이 권모술수로 요직에 앉는다거나,

엉터리 그림을 그려 예술시장에서 사기를 치는 일도 사라졌죠.

이게 다 밸류 컴퍼니의 회장이신 감마님께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열정으로,

마인드 스캐너를 개발한 덕분입니다.”


여자가 계속해서 무언가를 떠들었는데 론리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검사대기실에서 나온 안내요원이 론리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다.

마른침이 꿀꺽하고 삼켜졌다.

문을 열고 들어간 검사실이 차가운 분위기가 아니라 조금 안심이 됐다.

마루타 실험실처럼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의자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을 것을 상상했는데 말이다.


고문 도구 대신 뿔테안경을 쓴 중년남자가 흰 가운을 입고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엔 방금 시트를 갈아낸 테스트용 베드가 놓여있었고,

벽은 온통 스크린으로 둘러 쌓여있었다.

그 스크린에는 아름다운 샹젤리제 거리와 카페테리아가 파노라마로 찍힌 사진이 나타났다.

중년은 스크린을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이 스크린에는 검사받는 사람의 무의식이 시각으로 형상화됩니다.

론리 져스틴 군은 낭만적이고 따뜻한 사람이군요. 여기 침대에 누우시죠.”


“속을 들여다본다니 기분 나빠요.”


론리가 따지듯이 대답하자 중년은 묘한 웃음을 짓고는 묵묵히 스캔장비를 꺼내 케이블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종종 있죠. 기계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의심하는 분들이요.

하지만 전 상관없습니다.

나이가 들고 마땅한 직업을 구할 수 없었던 제가,

이 기계가 나오고 이렇게 적합한 일자리를 얻었으니까요.


스크린에 무의식을 형상화시키는 건 재작년에 도입한 겁니다.

검사받는 사람이 자신의 무의식과 동화된 시각데이터를 접하면,

검사를 받기 전에 조금 더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어서 정확한 검사 결과가 나오거든요.

신기하지 않나요?

자신의 마음속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온전한 자신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거죠.”


도우미는 침대에 누운 론리의 머리에 특수한 자석으로 이루어진 진단장치를 여러 개 부착한 뒤 전원을 켰다.

MRI장치와 같이 거대한 기계에 통째로 몸을 집어넣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러지는 않았다.

다만 침대 옆에 서버컴퓨터가 냉장고 3개를 붙여놓은 정도의 크기로 버티고 있었다.

한 사람의 의식을 정보로 치환하려면 엄청난 용량이 필요할 거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론리의 생각보다 훨씬 커서 조금은 놀랐다.


“이제 전원을 켜면 머리에서 발생하는 자기장과 외부의 전자파가 반응하면서,

졸음이 올 수 있습니다.

측정하는 것만으로도 간섭이 발생하거든요.

그냥 주무셔도 무방합니다.”


※ ※ ※


눈을 감고 누워있던 론리는 어느새 자신이 다른 세상에 와있다는 것을 느꼈다.

바람이 사르르 피부에 녹았기 때문이다.

눈을 뜬 론리는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저 멀리에 서울이 보였다.

여기저기서 디벨로이드를 생산하느라 생긴 아연가루가 하늘을 뒤덮어 새까맸다.


서울에 있는 사람들이 하늘을 나는 론리를 쳐다보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점차 론리를 손가락질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저것 좀 봐! 괴물이 나타났어!”


론리가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서울 이곳저곳을 날아 구경하자,

사람들도 함께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사람이란 원래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관용할 수 없는 존재니까.

그들이 이곳저곳에서 론리에 대해 시민연합정부에 제보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이이잉. 미확인 비행물체 출현. 시민여러분들은 야외활동을 자제하여 주시고 안전한 곳에서 대기해주십시오. 」


경고방송으로 끝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론리를 향해 전투기가 출현했다.


“꿈이라도 전투기는 너무한거 아냐?”


「정신차려!」


순간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이 꿈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론리는 겁이 났다.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고 몸이 떨려왔다.


론리는 본능적으로 전투기를 따돌리기 위해 빠르게 비행했다.

전투기 한 대가 빠르게 론리의 뒤를 따라왔고,

날개부분에서 미사일이 발사되기 전에 하강하고 있었다.


「론리 져스틴! 내 말 들려?」


‘젠장 이 목소리는 뭐야.’


전투기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들리며 연기가 솟아났다.

미사일이 빠르게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무서움에 온 세상이 경보기 속 빨간 불빛처럼 투영됐다.

이 바보같은 꿈이 그만 끝나길 바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미사일에 맞아선 안돼. 피해야돼!」


다시 들리는 목소리에 흠칫 놀라 비행경로를 순간적으로 틀었고,

자신이 있던 자리에 미사일이 펑 하고 폭발한다.

여파에 균형을 잃은 론리는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론리 져스틴. 지금 너에게 닥친 일이 황당한 일인 줄은 알아.

지금 이건 단순한 직업탐색과정이 아니야.


이곳은 네 심층의식과 연결돼있어.

만약 네가 여기서 미사일에 맞거나 사람들에게 붙잡히면,

엄청난 좌절감이 마음에 자리잡을 거다.


그럼 너는 호프리스로 판명되서 옐로카드를 이식받을거야.

전속력으로 지구의 성층권을 벗어나야 돼.」


“제기랄! 넌 누구야?”


「나중에 다 알게 될 테니까 최대한 위로 날아!」


전투기들이 방향을 틀어 머리를 다시 론리에게 향했다.

전투기 뒤에서 부스터로 인한 빛이 번쩍하자,

소리가 순식간에 굉음으로 바뀌며 론리에게 다가왔다.


판단의 시간이다.

이대로 땅에 추락해 이 무서운 꿈을 깨야 하는가.

우선 정체불명 목소리의 말을 듣는다 해도 손해 볼 것은 없다.


반면 눈 질끈 감고 미사일에 맞았다가 정말 노란명찰을 달게 되면 하고 싶은 일이고 뭐고 다 날아간다.

교육은커녕 기초노동만 하며 수용소에서 배급을 받고 살아야 한다.

속도를 높여 최대의 추진력으로 수직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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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진실의 늪 3 19.10.27 32 2 10쪽
78 진실의 늪 2 19.10.26 24 1 9쪽
77 진실의 늪 1 19.10.25 36 2 8쪽
76 적과의 동침 6 19.10.24 35 1 8쪽
75 적과의 동침 5 19.10.24 28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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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적과의 동침 1 19.10.19 2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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