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이라는 거짓말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추리

SYNA시나
작품등록일 :
2019.07.19 12:50
최근연재일 :
2021.02.05 00:57
연재수 :
57 회
조회수 :
2,006
추천수 :
37
글자수 :
251,734

작성
19.07.24 11:57
조회
129
추천
1
글자
9쪽

1. 탐정은 사건을 일으킨다 (5)

DUMMY

그 말을 할 때쯤 점장 아주머니가 작은 다기 티팟과 찻잔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이어 차를 따르자 들었던 대로 망고향이 물씬 피어올랐다.


“송혜린을 기다려. 여기 굉장히 자주 온대. 그렇죠, 점장님?”

“으응, 그 아가씨 단골이지. 늘 세 시에서 네 시 사이에 혼자 오거나 친구들이랑 오거나 해. 찻잎은 5분 있다가 여기 이 트레이에 빼놔요.”


다시 카운터로 돌아가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에 시선을 둔 채로 윤에게 말했다.


“서너 시에 온다는데 지금은 한 시예요.”

“평소보다 일찍 왔다 가는 날도 있을 수 있으니까. 여유를 두고 기다리는 거지.”

“흐음. 송혜린 씨를 만나면 어떻게 하나요. 당신이 범인인 것을 알고 있다! 순순히 피해자를 실토해라! 라고 하시진 않을 거잖아요.”

“범인의 주변을 조사할 거라고 말했잖아. 그러니 주변 인물들이 누구누구인지 범인의 인간관계에 대해 파악해봐야지. 자기 인간관계를 가장 잘 아는 건 본인이고. 그러므로 직접 물어볼거야.”

“그런 걸 갑자기 저, 초면에 실례합니다만 인간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하고 물어본다고 알려주진 않잖아요?”

“당연히 다른 이유를 갖다붙여야지. 댈 수 있는 이유는 백만스물 세 가지 정도 있어.”

“백만스물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는 얘기군요······.”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의 거짓말을 알았던 나는 거짓말이 사람을 이루는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어차피 속지도 않으니까 딱히 거짓말에 대해 도덕적인 유감은 없다.

다른 측면의 유감은 하나 있는데 거짓말은 대체로 그 사람의 약한 부분과 이어져있다는 점이다. 그게 눈에 띄어버리면, 그러니까, 올을 잡아당기고 싶어지니까. 추리충동이 날뛰니까.

하지만 이렇게 아무렇게나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는 사람이라면 좀 낫다. 한 두개쯤 실수로 잡아당겨도 진짜 위험한 실마리를 당겼을 확률은 낮다. 그러니 이런 거짓말쟁이는 대하기 차라리 편해진다는 얘기다. 임자가 있댔으니 애인이 있는 모양인데 그 얼굴도 모르는 애인 입장에선 별로 편한 일이 아니겠지만.


“어제 엄청 쉽게 인터넷으로 사람들 사진을 찾았었잖아요. 휴대폰 번호 같은 개인정보도 인터넷으로 쉽게 알 수 있지 않아요? 요즘 황하 강에서 빨래하는 아낙네도 한국 사람들 주민번호를 줄줄 꿰는 세상이라던데.”

“당연히 연락처는 찾았어. 그런데 다짜고짜 모르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서 탐정입네 어쩌네 하면 좀 그렇잖아. 직접 만나서 얘기해야지. 너 사회성이 어떻게 된 거야.”

“사회성이 좋은 분이셔서 거짓말을 그렇게 입에 달고 사는군요.”

“물론이지.”


거짓말에 대한 도덕적 유감이 없는 것과 상대의 뺀질대는 태도가 열받는 건 별개의 문제고, 윤이 앉은 의자 다리를 걷어찬 건 뇌가 아니라 척수의 의지였다. 나는 딱히 찰 생각은 없었다. 정말이다.


“아. 어제 누가 메쳐서 바닥에 부딪힌 등이 너무너무 아프다!”

“의자를 찼는데 왜 등이 아프죠?”

“운동 배웠어?”

“체교과인데요. ······안 그래 보인다는 말 집어넣어요.”


아주 정확하게 ‘그 체구로? 안 그래 보이는데?’라는 말이 윤의 입술까지 거의 닿았다가 도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게 시각적으로도 보일 지경이었다.


“전공 얘기하면 다 그런 표정이긴 하더라고요.”

“내가 직접 메쳐져봐서 이 정도 표정만 짓는거야. 아니면 더한 표정이었을걸. 그야 너 일단 엄청 작고. 아무리봐도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 쪽일 것 같다고.

게다가 툭 치면 쓰러질 것같이 허약한 게 아무리 봐도 운동 싫어할 것 같은 인상이야. 체육소녀스러운 부분이라곤 숏컷이랑 낙낙한 옷차림 밖에 없잖아. 그것도 자칫 잘못하면 남자애로 오해받겠다만.”

“그냥 대놓고 욕을 해요.”


윤은 전혀 데미지를 받지 않은 표정으로 대화의 물길을 약간 틀었다.


“주로 어떤 운동 하는데?”

“태권도 했고, 검도 했고, 합기도 해서 세 개 단 합치면 5단인가 6단인가······ 단 없는 운동으로는 수영하고요.”

“수영 말곤 과거형이네.”

“수영 말곤 이젠 열심히 안 하니까.”

“왜?”

“사생활 물어보는 고용주가 제일 최악인 거 아세요? 업무로 만난 사람은 업무 얘기만 합시다.”

“아직 고용주 아니니까 괜찮잖아.”


정말 자기 멋대로 귀에 걸었다 코에 걸었다 하는군. 내가 대꾸하지 않자 윤은 밖을 흘긋 쳐다보았다. 굳이 카운터 근처 자리를 고른 건 바깥에 나다니는 사람을 확인하려는 목적이었을까. 혜린처럼 보이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시간도 많은데 우리 서로에 대한 얘기나 좀 하자. 나를 아직 완전히 못 믿겠다는 태도인게 이해는 되는데 섭섭하니까 뭐라도 더 얘기해주고 싶고 그래서 말 붙이는거야. 네 얘기 하기 싫으면 나한테 궁금한 거 물어보는 걸로.”


빤히 쳐다보다가, 노력이 가상하니까 한 마디 정돈 물어봐주기로 했다.


“어떻게 탐정이 됐나요?”

“정신차리니까?”

“······.”


가상해하지 말 걸 그랬다.


“아니······ 정말 그런 표현밖에는 할 게 없는데.”


윤이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여태까지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간에서는 처음 보는 표정이었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조금 흥미가 생겼다.


“탐정이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던 건가요? 떠밀리듯이 하다보니까, 같은 느낌인가?”

“너는 탐정이 되고 싶었어?”

“말 돌리지 말고요. 궁금한 거 물어보라면서요.”


이런, 그 말 하지 말 걸 그랬나. 라고 들어보지 않아도 거짓말일게 뻔한 연극조의 숨소리를 휴 내뱉은 윤이 차근차근 말을 이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었거든. 나는 그 사람을 위해 탐정이 되었지. 아, 이 사람도 의뢰인이니까 더 자세한 건 말할 수 없어. 알지? 탐정의 규칙. 그렇지만 그렇게만 말해버리면 네게 뭐든 물어보라고 한 의미가 없으니까.

······그래, 나는 누군가 나를 원해준다는 감각이 필요했다고 해둘까. 그러니 꼭 탐정일 필요는 없었을거야.”

“······탐정은 여기저기서 찾으니까, 라는 느낌이군요.”

“응, 그렇지. 맞아. 다들 필요할 때만 찾으니까 확실히 필요한 사람인 거 아니야?”

“근데 그건 당신을 필요로 하는 것과는 좀 다르지 않아요?”

“글쎄······ 진짜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 의 정의는 뭘까? 라고 묻고 싶어지는 질문인 걸. 우선은 진짜 나, 가 무엇일까도 정의해야할 것 같지?”

“무엇이라고 정의하세요?”

“이번엔 내가 질문했어.”


쳇.


“누구와도 명확히 구분되는 오리지널리티가 나를 결정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자면?”


답은 알고 있었고 그다지 유감이 있지도 않지만 어쩐지 스스로 말하기는 싫다. 적절한 비교인진 잘 모르겠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은 그게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고들 한다. 애초에 쭉 그렇게 살아와서 그 이외의 삶의 방식은 모르므로 비교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편이 발생한다면 그건 그냥 불편일 뿐, 딱히 자신의 다름과 연관짓지 않는다. 요컨대 새벽에 누군가 고성방가를 해서 깼을 때 우리는 그게 귀가 들리는 탓에 겪는 불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저는 귀가 안 들려요. 라는 말을 스스로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조금은 머뭇거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정도의 감정으로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저의 경우는 거짓말을 알아차린다는 거요.”


눈을 동그랗게 뜬 윤이 물었다.


“역사상 한 명이야?”

“네?”

“거짓말을 알아차리는 건 역사상 너 한 명뿐이었냐고. 그게 아니라면 오리지널리티라고 할 순 없는걸?”


생각도 못한 반론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말을 수정했다.


“······잘못 말했군요. 자신의 삶을 형성한 가장 큰 요소, 라고 고치도록 해요.”

“그럼 그 요소가 사라지고 난 뒤의 너는 네가 아니게 돼?”

“그런 가정은 많이 해 봤지만 기억은 남으니까 무리예요.”

“어떤 기억이 남는데?”


문득 질문의 주도권이 어느새 윤에게 넘어가 있었단 걸 깨달았다. 항의하려던 순간 귓속으로 청량한 풍경 소리가 파고들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면, 시선의 끝이 가 닿는 문간에 장미꽃 귀걸이를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어깨를 굽이쳐 흐르는, 분명히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을 법한 긴 생머리. 햇살을 휘감은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존재를 드러내는 귀걸이. 마치 인형처럼 깜빡, 여린 눈꺼풀에 가려졌다 드러나는 커다란 눈. 시간이 멈출만치 아름다운 여자였다.

나는 들이켰던 숨을 다시 내뱉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탐정이라는 거짓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7 6. 탐정은 계획을 망친다 (2) 21.02.05 18 0 12쪽
56 6. 탐정은 계획을 망친다 (1) 20.11.01 21 0 11쪽
55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完) 20.09.09 23 0 14쪽
54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7) 20.08.21 16 0 9쪽
53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6) 20.07.29 20 0 11쪽
52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5) 20.06.23 23 0 10쪽
51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4) 20.06.07 21 0 11쪽
50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3) 20.05.30 19 0 10쪽
49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2) 20.05.20 20 0 10쪽
48 5. 탐정은 의뢰인이 필요하다 (1) 20.05.11 22 0 9쪽
47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完) 20.03.30 26 0 9쪽
46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3) 20.03.30 20 0 9쪽
45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2) 20.03.23 18 0 12쪽
44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1) 20.03.23 16 0 11쪽
43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0) 20.03.03 33 0 10쪽
42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9) 20.03.03 14 0 11쪽
41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8) 20.02.25 22 0 11쪽
40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7) 20.02.25 22 0 11쪽
39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6) 20.02.15 23 0 9쪽
38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5) 20.02.15 33 0 9쪽
37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4) 20.02.11 26 0 11쪽
36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3) 20.02.11 21 0 10쪽
35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2) 20.02.04 26 1 10쪽
34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1) 20.02.04 23 1 11쪽
33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完) 20.01.16 27 1 8쪽
32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8) 20.01.16 20 1 9쪽
31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7) 20.01.07 28 1 9쪽
30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6) 20.01.07 24 1 10쪽
29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5) 20.01.07 30 1 10쪽
28 3. 탐정은 과거를 바꾼다 (4) 19.12.24 62 1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