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이라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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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A시나
작품등록일 :
2019.07.19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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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5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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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14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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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탐정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 (2)

DUMMY

격렬하게 양치질 욕구에 시달리고 있을 무렵 태연한 낯짝으로 윤이 사무소에 입성했다. 나는 인사 대신 서류철을 집어던졌다. 정말 아쉽게도 살짝 어깨를 스치고만 지나갔다.


“이거 부장님 플레이야? 지금 이걸 보고서라고 낸 건가? 다시 써오지 못해! 같은 거?”

“헛소리말고 당신 애인이 놓고 간 사랑 담긴 음식 빨리 먹어요. 나만 먹기 진짜 아까우니까.”

“······먹었냐? 미각에 명복을 표할게.”

“먹을 수 밖에 없도록 판 짜놓고 간 건 당신 아니에요 이 위선자야.”

“갈수록 단어선정이 거침없어서 상처받을 것 같은 기분이야.”


나는 코웃음도 치지 않았다.


“자, 방금 거짓말했죠? 강철 멘탈이죠?”

“으음. 그래. 그럼 사과의 의미 겸 고용 계약 이행 겸 밥 사줄테니 나가자. 내가 예약도 해놨어.”


윤이 나를 데려간 곳은 확실히 예약이 필요한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완전히 본격적인 파인 다이닝이어서 테이블에 주르르 놓이는 포크와 나이프를 보고 있자니 서민인 나는 그만 서먹해지고 말았다. 내 표정을 본 윤이 바깥에 있는 것부터 쓰는 거라고 간단히 일러주었다.


“딱히 이런 데 드나들게 생긴 사람은 아닌데 어째 익숙하게 구네요.”

“너 욕설만 안쓰고 욕하기 되게 잘한다. 감탄했어.”

“네? 욕을요? 제가요?”


뻔뻔하게 대꾸하며 올리브유 찍은 식전빵을 먹어보았다. 아까 먹은 처참한 토스트와 비교되어 유난히 맛있었다.

냅킨을 집어 제 무릎에 펼쳐놓은 윤이 문득 푸스스 웃었다.


“애인님 취향이라서. 종종 오거든.”

“······애인이랑 다니는 데에 절 데려오면 안되지 않아요?”

“왜? 애인님 그런 거 신경 안 써.”


하긴 그럴 것 같은 사람이기는 했다. 나는 빠르게 납득하고 말았다.


“의뢰비 들어와서 자금도 풍족한데 그 의뢰 해결은 네가 도와줬으니까 말야. 너한테도 좀 팍팍 써줘야 말이 맞지.”


그-렇죠. 제가 한몫 했지요. 거짓말 없이 속인 누구 덕분에. 아마 그 누구는 속였다는 자각조차 없을 테지만. 차가운 감정을 담아 빈정거려보았다.


“사기꾼 같은데 이럴 땐 또 기묘하게 도의를 따진단 말이죠.”

“점점 할 말 못 할말 안 가리는 거 내 기분탓일까?”

“오늘 기분이 별로신가봐요. 사람 말을 꼬아들으시고.”


우리의 비생산적인 입씨름은 애피타이저가 서빙되어서 종료되었다.

먹음직스러운 빛깔의 연어 타르타르였다. 한 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럽고, 먹기도 전부터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예쁜 플레이팅이었다. 한 가지만 제외하면 완벽한 요리였다.

나는 생선을 못 먹는다는 점만 제외하면.


“······. 착하게 살아야겠다.”


포크로 타르타르를 뜨던 윤이 거창하게 삐끗했다.


“왜 갑자기?”

“오늘 음식에 악재가 끼네요. 저, 생선 못 먹어요.”

“그럴수가. 세상의 즐거움 하나를 모르고 있구나. 별 수 없지. 너 대신 내가 먹는 수밖에.”

“해산물 풀코스 시켜놓은 건 아니죠?”

“정석 코스 요리라 전채, 생선, 육류, 디저트 순서로 나올 거야.”


다행인지 아닌지 좀 애매한 비중이지만 아무튼 포크만 빨고 있진 않아도 될 것 같다. 윤이 먹는 걸 구경하고 있던 나는 불쑥 말했다.


“애인 이야기 해주세요.”

“업무 관계로 만난 사람하고는 업무 얘기만 하고 싶다더니.”

“당신 애인이 먹이고 간 그건 산재라서 업무 얘기 영역인데요.”

“그······ 거 좀 설득되네.”

“애인이어도 도저히 커버를 칠 수가 없죠?”

“커버를 굳이 칠 필요가 있어? 나는 애인님의 그런 부분까지도 사랑하는데.”

“사랑한단 사람이 잘도 날 세워놓고 도망쳤고요.”


윤은 기가 죽는 대신에 기분 나쁘게 히죽댔다.


“어디서 이렇게 성격이 나같은 게 나타났지.”

“욕설 안쓰고 욕하기 스승님으로 모실게요.”

“그만하자. 음······. 곤란에 빠져서 울고 있는 공주님을 우연히 만나서 도와줬어. 내가 왕자님이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왜 이렇게 문학적으로 말해요?”

“애인님이 동화 작가라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대화가 생각나버렸기 때문이다.


“말 옮기는 거 싫으니까 직접 만나서 얘기해보라더니 쉽게 털어놓네요. 일관성 없어요.”


논리적으로 완벽한 궁지에서 윤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지 좀 궁금했는데, 윤의 반응은 이랬다.


“내 말을 일일이 마음에 담아두다니 정말 비효율적으로 사는구나.”


내가 또 의자 다리를 찰 뻔하다가 차지 않고 뻔만 했다는 건 솔직히 누가 상을 줘야 할 부분이다.

애꿎은 의자를 괴롭히는 대신 서빙되어온 스프나 한 술 떴다. 은은한 연두색이 도는 크림 스프다. 한 스푼 떠보니 브로콜리 향이 나는 걸로 봐서 브로콜리를 갈아 넣은 모양이다. 혀끝에 닿자마자 포근한 부드러움이 퍼진다. 한껏 전투적이었던 마음도 사르르 녹아난다.

마음을 다스리는데 성공하자 윤의 애인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캐내야 한다는 목표에 다시 집중할 수 있었다. 크림 스프를 한 술 더 삼킨 다음에, 그저 남의 시시콜콜한 연애사가 궁금한 사람인 양 가장하며 물었다.


“이왕 털어놓을 거면 무슨 곤란이었는지 물어도 돼요?”

“자세히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렸는데, 그걸 되찾는데 도움을 줬다······ 정도로 표현할까.”

“그래서 리사 씨는 윤에게 코가 꿰이고 말았군요.”

“무슨 약점 잡아서 억지로 사귀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야 이렇게 생겨먹은 남자랑 사귀고 있으려면 그 정도 사연은 있어야 할 것 같잖아요?”

“내가 뭐 어때서? 나 정도면 괜찮지?”


윤은 세차게 발끈했다. 하지만 나 정도면 괜찮지, 가 거짓말이었기 때문에 나는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이래서 이 인간과는 대화하긴 편하다.


“그럼 리사 씨가 윤을 더 좋아하는 쪽인가요?”


윤은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지 흥미진진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대답한 것은 윤의 휴대폰이었다. 문자 착신을 알리는 알림음. 윤은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피식 웃었다.


“애인님이 너 한번 제대로 만나보고 싶대.”


잠깐 그 만남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계산해보았다. 오래지 않아 별달리 의미는 없을 것이란 결론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단칼에 매정하게 내치는 건 사회적으로 적절한 응대는 아니니까.


“괜찮지만 이 레스토랑에서 보자고 전해주세요. 요리 할 생각일랑 마시라고.”

“그렇게 전하면 상처받으니까 알아서 잘 돌려 말하도록 하지······. 그럼 언제 시간 돼?”

“일정은 천천히 논의해봐요.”


라는, ‘언제 밥 한 번 먹자.’ 나 다름없는 말로 영원히 일정을 미루었다. 만족스러운 마무리다.

그 즈음에 새로운 요리가 놓였다. 이번엔 오목한 그릇에 하얀 소스를 올린 삶은 게와 새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다행히 내 기준에서 이것들은 생선이 아니다. 고로 먹을 수 있다. 나는 사소하게 기뻐졌고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몰랐는데 배가 고팠던 것 같다.


“집에서 굶고 있는 건 아니지?”


쓸데없는데다 조금 무례한 걱정이 끼어들어서 단칼에 끊어냈다.


“제 입에 들어가는 건 알아서 잘 만들어 먹을 수 있는데요. 자취 오래 해서.”

“엇. 혼자 살아?”

“네.”


그다지 대화하고 싶지 않은 주제여서 짧게 답했다. 고향이 어딘데? 라는 질문을 회피하기 위해(”서울이에요.” “그럼 가족들이랑 왜 같이 안 살고?” 콤보의 예정이 아주 뻔하다.) 먼저 다른 질문을 하기로 했다.


“리사 씨는 어떤 동화를 써요? 궁금하네요. 읽어보고 싶어요.”


리사라는 화제를 골라서인지, 윤은 나의 거주에 대해 더 탐구하는 대신 이 쪽 주제로 순순히 건너왔다.


“출판된 것들 있으니까 검색하면 나오는데?”


하긴 그렇겠다. 깨닫고는 휴대폰을 꺼내 리사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그랬더니 가장 상단에 뜬 책 제목이······


“쓰레기의 모험?”

“그게 제일 유명하지.”

“······대체 무슨 내용이죠?”

“쓰레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쓰레기장에 가지 못하게 된 쓰레기가 친구 쓰레기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을 작품 재료로 쓰려는 현대예술가의 위협을 물리쳐가며 쓰레기장에 도착해 결국 재활용되는 이야기.”

“노··· 이즈 마케팅 같은 건가요. 뇌리에는 확 꽂히네요.”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내 얼굴에서 미묘한 혼란을 감지하기라도 했는지 윤이 쿡쿡 웃었다.


“읽어보면 생각보다 정석적인 동화야. 그리고 애인님이 동화를 쓰는 목적에도 잘 맞는 내용이지.”

“리사 씨가 동화를 쓰는 목적이 뭔데요?”


가볍게 던진 물음이었는데 되돌아온 대답은 가볍지 않았다. 윤은 꿈꾸는 듯, 사랑스러워하는 듯, 안타까운 듯, 걱정하는 듯한 그 모든 감정을 한데 담아서 이렇게 답했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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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4) 20.02.11 26 0 11쪽
36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3) 20.02.11 21 0 10쪽
35 4. 탐정은 범인을 맞닥뜨린다 (2) 20.02.04 26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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