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회동(2)
나의 사무실에서 이진호 교수를 만났다. 나의 사무실은 넓지만 썰렁하다. 책상과 손님용 소파, 소형 회의용 탁자가 전부다.
이진호 교수는 사무실을 둘러보고 소파에 앉으면서 말했다.
“왜 이렇게 썰렁해?”
“개발 업무 외는 전부 사장단에게 넘겨주어서 지금은 크게 하는 일이 없습니다.”
“젊은 나이에 남에게 모든 걸 맡기고 노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닌데.”
“하하하······ 그래도 개발 부문은 관여하고 있으니 전혀 손을 놓은 것은 아닙니다.”
비서가 들어와서 주문한 커피와 차를 내놓는다. 이진호 교수는 커피를 나는 차를 마셨다.
나는 미리 소파 앞 탁자에 놓여있던 서류철을 들어 첫 페이지를 이진호 교수에게 보여 주면서 말했다.
“오늘 교수님과 상의할 일은 기초과학 연구기금입니다. 여기를 보시면 기획안이 있습니다.”
이진호 교수는 서류철을 나에게 받아서 내용을 읽었다. 나는 그가 다 읽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이윽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서류를 본 후 이진호 교수는 서류철을 탁자에 놓고 나를 보면서 말했다.
“지케이 그룹에서 매년 백억 원을 연구 기금으로 출원하여 대학교수들의 기초과학 연구에 사용하겠다는 제안이므로 공대 교수들이 매우 좋아하겠네.”
“79년부터 서울대와 몇 가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것을 교수님을 알고 있을 겁니다. 올해부터는 서울대뿐만 아니라 전국 대학으로 확대하여 지원하려고 합니다.”
“기획안을 보면 연구기금을 5천만 원에서 1억 원으로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100억 원이면 최소 백 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지원할 수 있으니 교수들이 반길걸세.
또한 기금을 관리할 기금 재단을 만든다고 되어 있는데 누가 재단을 운영할 생각인가?”
“그 문제로 교수님과 상의하고 싶습니다. 제가 내년에 군 문제로 해외에 2년간 나가 있어야 합니다. 회사 업무는 신임 박성균 회장이 맡을 겁니다. 연구기금을 관리할 재단을 맡을 분은 제 주위에서 교수님을 제외하고 생각나는 분이 없습니다. “
“나를 생각해줘서 고맙지만, 나보다 공대 학과장님 같은 분들을 모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네.”
“내년에 한소프트를 미국에 기업 공개할 계획입니다. 그러면 교수님이 가진 주식의 예상 자산은 6천만 불로 예상합니다. “
“6천만 불!”
이진호 교수는 숨이 막혔다. 매년 몇천만 원의 배당금을 받아서 회사가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신이 가진 주식이 6천만 불어치로 변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일찍이 내가 그에게 말했을 때 믿지 않고 다만 몇억 원만 되어도 괜찮은 투자라고 자위했었다.
결과는 그의 예상을 한창 넘었다.
“그렇습니다. 이제 교수님은 6천만 불의 자산가가 됩니다. 그런 분이라면 연구기금에 손을 대지 않을 거라고 믿고 맡길 수가 있지요.”
“흠···..”
이진호 교수는 생각에 잠겼다. 본인은 조교수에서 얼마 전에 정교수가 되었다. 기금을 관리하는 재단 책임자가 되면 엄청난 로비가 들어올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지끈 아파진다.
“교수님 혼자서 기금을 관리하라는 제안 아닙니다. 교수님이 재단 이사가 되어서 전체적으로 기금을 관리하시고 별도로 기금운용 위원회를 만들어 거기에서 최종적으로 기금 사용을 승인하는 방향으로 운영할 계획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기금운용 위원회는 몇 명으로 구성할 생각이냐?”
“교수님에게 전적으로 기금운용 위원회 숫자와 위원 선정권을 드리겠습니다.”
“자네가 나를 믿으니 맡겠네.”
한국 기초과학 연구기금 재단이 설립되어 이사장은 박성균 지케이 회장이 선임되었고 재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할 재단 이사에 이진호 교수가 임명되었다. 재단 사무실은 본사 빌딩 10층에 마련됐다.
기금으로 연구 개발된 제품의 특허로 얻는 이익은 프로젝트팀 50%, 대학 25%, 지케이 그룹 25%로 배분하되 제품 생산의 우선권은 지케이 그룹에 주는 것으로 진행하였다.
연구 기금은 초기 백억 원에서 2백억 원, 5백억 원, 천억 원으로 증가하여 한국에서 노벨상을 받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바지하였다.
기금운용 위원회는 이진호 교수가 추천한 교수 열 분을 임명하여 기금을 요청한 프로젝트에 대해서 심사를 하였다. 초기에는 말이 많았지만, 비교적 공평하게 운영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나와 박성균 회장이 청와대를 찾아갔다. 엄격한 보안 심사를 받고 영빈관으로 갔다. 전번에 만났던 허문도 씨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 옆에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허문도 씨가 소개하였다.
“허화평 비서관입니다.”
“임선규입니다.”
나는 3허 중에서 두 번째 허 씨를 만났다. 군인 출신답게 눈빛이 살아있었다. 악수하는 데 아픔을 느꼈다.
“만나서 반갑네.”
“저도 비서관님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사람들이 부회장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여 삼두육비 괴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잘생긴 청년임 줄 몰랐네.”
“과찬입니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군 사업입니다.”
“과공은 비례라네. 부회장이 없었다면 지케이 그룹의 모체인 한소프트나 한컴퓨터가 오늘처럼 성장할 수가 있었겠는가?”
“저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그를 경계하면서 겸양을 표시했다. 그가 한소프트나 한컴퓨터를 언급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터라 걱정이 은근히 되었다. 한소프트와 한컴퓨터 지분 49%를 한국 지케이 투자에 넘겨주었지만, 나는 두 회사의 주식을 여전히 많이 보유하고 있어서 이들이 빼앗으려고 행동으로 나서면 곤란했다.
이때 대통령이 왔다. 그는 나와 반갑게 악수를 하였다.
모두가 좌석에 앉자 대통령이 말했다.
“나는 임 부회장이 국가가 하지 못한 일에 과감하게 투자하여 제7광구에서 일본에 앞서서 유전을 찾아낸 일은 정말 국가적인 쾌거라고 할 수 있네.
오늘 자넬 이리로 부른 이유는 행사장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를 듣고 상으로 자네가 부탁하는 일이 올바른 일이라면 들어주고 싶어서네.”
“이렇게 청와대로 초청하여 주어서 감사합니다. 저도 각하와 같이 일본보다 먼저 유전을 발견하여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각하께서 저에게 상을 굳이 주신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각하께서 아시겠지만, 저희 지케이 그룹의 주력 사업은 컴퓨터 분야입니다.
미래는 정보화 시대입니다. 한국 지케이 그룹의 모기업인 미국 지케이 투자가 미국에 설립한 한네트가 온라인 데이터 사업으로 정보 분야에 이미 진출하였습니다.
그러나 국내는 온라인 데이터 서비스 분야가 전무합니다. 그래서 각하께서 허락해주신다면 온라인 데이터 서비스 업체를 만들어 미래에 대비하겠습니다.
지케이 자원 개발 회사처럼 저희가 온라인 데이터 회사를 만든다면 자본금은 저희가 부담하고 40% 지분을 한국전기통신공사에 넘기겠습니다.”
나의 대답을 듣고 대통령은 허문도와 허화평 비서관을 보고 의견을 물었다. 두 사람은 온라인 서비스에 대해서 무지하여 확답을 피했다. 그들은 내가 온라인 데이터 서비스 사업을 성공시켜 지케이 자원개발 회사처럼 막대한 이익을 낼까 의심을 품었다.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사업은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사업입니다. 저희에게 사업권을 준다면 매년 2백억 원씩 10년간 2천억 원을 투자할 계획입니다. 즉 한국전기통신공사는 8백억 원의 투자비를 아끼는 셈입니다. 더구나 40% 지분이 있으니 이익이 생긴다면 그만큼 가져가는 셈이지요.”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그 정도 투자가 들어가는 사업이라면 나중에 얻는 이익도 엄청나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온라인 데이터 서비스는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전화선을 이용합니다. 온라인 데이터 서비스가 성장할수록 전화료를 받는 통신공사의 이익이 급증합니다. 저희는 온라인 데이터 서비스로 이익을 얻겠지만, 통신공사가 얻는 이익에 비하면 매우 적은 편에 속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이 사업을 하려는 목적은 온라인 데이터 서비스가 이루어지면 이와 관련된 부수 업체가 많이 생겨 국내 정보 산업이 경쟁력을 가지고 국제 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데 있습니다.”
“흠···.. 자네 회사 이익보다 국내 업체 경쟁력을 기르겠다고? 자네들 의견은 어떤가?”
우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허문도 비서관은 찬성을 표했다.
“지케이 그룹이 국가를 대신해서 2천억 원을 투자하겠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허화평 비서관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지케이 자원개발에 제7광구 유전 개발권을 줘서 국민들이 특혜를 주었다고 의심을 눈초리를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온라인 서비스데이터 사업권을 지케이 그룹에 준다면 특혜 의혹에 불을 지피는 상승 효과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특혜 소지를 없애려면 이번에 공기업으로 전환한 한영 중공업을 정부가 보유한 주식 전량을 현재 가격인 4천2백억 원에 지케이 그룹이 인수하여 회생시킨다면 국민들이 수긍을 하겠지요.”
한영 중공업의 모체는 대연 양행이다. 중공업 합리화 조치로 대유 그룹으로 넘어갔었다. 대유 그룹 김 회장이 나름대로 정상화하려고 노력했지만, 부실의 늪이 깊어서 적자를 메우기 어려워 국가에 2천억 원의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미 공짜나 다름없이 주었는데 추가로 자금을 지원해달라고 보채니 아무리 정권이 대유 그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고 해도 너무한 처사라고 판단한 정부는 준 것을 도로 빼앗아 공기업으로 전환했다.
공기업으로 전환시켜 놓았지만, 회사 초기라서 들어가는 돈은 많은데 벌어들이는 돈이 적어서 적자가 심각하여 내부적으로 공기업화는 실패작으로 보았다. 한영 중공업 공기업화를 주도한 허화평 비서관은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그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영 중공업을 다시 대기업에 떠넘겨야 하는데 그냥 주면 특혜 의혹이 있는지라 온라인 데이터 사업과 묶어서 처리하면 여론에서 유리할 것 같았다. 그의 눈에 우리는 호구로 보였다.
허화평 비서관 이야기를 들은 대통령은 미소를 지었다. 그도 한영 중공업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떠넘기면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허 비서관 말이 맞네. 기름이 쏟아져 지케이 자원개발에 돈이 들어올 터이니 제 값을 치르고 한영 중공업을 인수하게. 그러면 자네가 원하는 온라인 데이터 사업권을 주겠네.”
나는 박성균 회장을 보며 한숨을 쉬고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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