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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P9
작품등록일 :
2019.07.20 17:03
최근연재일 :
2019.10.01 17:00
연재수 :
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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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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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2화

DUMMY

“염병.”


우르카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얼굴에는 아직 앳된 티가 엿보였다.

그는 이제 막 성인식을 치른 하얀 늑대 부족의 전사였다.

아니, 정정.

무사히 성인식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는 소년이었다.

태어나고 자라왔던 부족의 성인식은 쉬우면서도 어려웠다.

마을을 벗어나 사람이 살지 않는 외지에서 한 달간 생존하는 게 끝이었다.

그렇다고 방심해서는 안 되었다.

북부 대륙의 땅은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온 정착민에게도 위험이 득실거리는 지역이었다.

굶주린 맹수들과 몬스터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활개쳤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땅이라 식량이 귀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밤의 혹독한 추위는 계속해서 체력을 앗아간다.

맨몸으로 달랑 무기 한 자루 들고, 한 달간 버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르카도 성인식을 치르면서 간담이 서늘할 뻔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그는 부족의 전사들에게 배운 경험과 지식을 살려 역경과 고난을 헤쳐왔다.

드디어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우르카는 기쁜 마음으로 마을로 돌아갈 채비를 챙겼다.

성인식은 끝나지 않았다.

마을까지 도착해야만 부족의 인정을 받고 시련이 끝났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우르카는 들뜬 기분으로 마을에 돌아가려 했지만.

누군가 그의 성인식을 방해하려고 하는 걸까?

하늘에서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눈은 거침없이 흩날려 우르카의 시야를 방해했다.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가기 시작하고, 입과 코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변덕스러운 날씨 만으로는 그의 앞길은 막는 데 한계가 있었다.

우르카는 늑대들을 잡고 만든 가죽옷을 단단하게 여미고 앞길을 헤쳐 나갔다.

눈은 하염없이 내려 그칠 줄을 몰랐다.

꼭 성인식을 방해하려는 듯이, 쌓이고 쌓인 눈이 우르카의 발목을 잡아 끌었다.

그는 푹푹 빠지는 다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걷기를 잠시.


-우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 사이로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우르카는 걸음을 멈추고 한 달간 생사를 함께해 온 창을 집어 들었다.

눈가를 좁혀 폭풍 뒤에 숨은 형체들을 파악하고, 귀를 열어서 눈 밟는 소리에 집중했다.

울음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그럴수록 우르카는 창을 쥔 손에 악력을 가했다.

마침내 울음소리의 주인공이 그림자를 드러냈다.


“하필이면 거지 같은 놈을 만났네.”


우르카는 인상을 구겨질 대로 팍하고 찌푸렸다.

소년의 얼굴에는 나이가 걸맞지 않게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카루라. 무스바하!”


2미터를 넘는 크기, 온몸이 하얀 털로 복슬복슬한 괴생물체가 튀어나왔다.

흡사 인간과 닮은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티라고 불리는 몬스터였다.


“타탈룸. 타탈룸.”

“시발.”


우르카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한 놈이라면 문제없이 상대할 수 있겠지만 놈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놈을 중심으로 다른 예티들이 등장했다.

놈들의 눈빛은 흉흉하게 빛났으며 날카로운 송곳니에서 뚝뚝 침이 떨어졌다.

덩치에 비해 말라비틀어진 뱃가죽이 훤히 보이는 게 얼마나 굶주렸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내바하! 르투비하!”

“크라쿠! 크라쿠!”


놈들이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저 행동의 의미를 알고 있는 우르카가 이를 갈았다.

예티들이 먹이감을 발견하면 먹기 전에 벌이는 의식 같은 거였다.

의식이 끝나자 놈들은 슬금슬금 포위망을 좁혔다.


“내가 곱게 뒈질 것 같냐?”


우르카는 진작에 도망가는 걸 포기했다.

놈들을 따돌릴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눈밭에서 예티들의 달리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몸을 돌려 도망치는 순간, 등에 바람구멍이 생기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르카는 죽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하하. 재밌겠는데?”


죽음을 목전에 둔 우르카는 웃었다.

부족 전사들은 용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우르카는 그들을 보면서 자라왔다.

어리기는 해도 이제는 그도 어엿한 하얀 늑대 부족의 전사.

성인식까지 마친 그에게 두려울 건 없었다.


“덤벼라!”


우르카가 포효를 지르라 예티들이 달려들었다.

창을 앞으로 찔러 몸을 부풀며 위협하는 예티를 제거했다.

창은 놈의 뱃가죽을 찢고 등 뒤로 튀어나왔다.

다른 예티가 달려들자 그는 황급히 창을 원위치로 돌려 옆으로 휘둘렀다.


“타마하!”

“뒤져!”


우르카는 예티들과 눈밭을 뒹굴었다.

눈에 찍힌 발자국들이 불규칙적으로 어질러졌다.

작은 발자국은 우르카의 것이었고, 그보다 세 배나 큰 발자국은 습격자의 족적이었다.

그 눈 위로는 붉은 피가 꽃잎처럼 떨어졌다.


“내가 죽더라도 길동무는 데려간다!”


우르카는 예티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손을 휘둘러 대항했다.

몇몇 예티가 괴성을 지르며 저 멀리 떨어져 나갔다.


“흐아아!”

“타카라!”


모두가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예티들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

우르카는 마을로 돌아가기 위해서.

치열한 공방전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쪽이 우세하게 변했다.


“허억! 허억!”


우르카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입에서는 쉴 틈 없이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나름 잘 버텼으나 홀로 예티들을 상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반면, 예티들은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하얀 털은 창에 찔려 붉은색 털로 바뀌었지만 그뿐이었다.

큰 상처도 아니었기 때문에 놈들은 펄펄했다.


하얀 눈에 푹푹 빠지는 발들은 체력을 잡아먹었다.

날카롭게 벼린 창의 움직임도 무뎌졌다.

예티들은 찔러 들어오는 창날을 간단하게 피해냈다.

이는 곧 우르카에게 치명상으로 이어졌다.


“커억!”


예티의 두꺼운 주먹이 우르카의 복부를 강타했다.

바위가 내려앉은 느낌에 그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공중을 붕 하고 날아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다행히도 부드러운 눈이 충격을 완화시켰다.

그렇다고 일어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두개골이 흔들렸고 전신이 비명을 질렀다.


“젠장. 쿨럭!”


우르카는 입가에서 피를 토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꼼짝없이 죽을 위기였다.

그래도 몇 놈을 저승길로 보냈다는 성취감에 우르카는 만족했다.

죽으러 가는 길은 외롭지 않겠어.


‘다른 부족 전사들이 봤다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우르카가 잠시 하늘을 보고 있자, 그림자가 지더니 불쑥 예티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동료의 죽음에 화가 난 얼굴이면서도 다잡은 먹이감에 안도하는 얼굴이었다.

저렇게 필사적인 걸 보면 놈들도 꽤나 굶주렸던 것 같았다.


“타누하!”


예티가 끝장을 내기 위해 양팔을 들어올렸다.

주먹은 거대한 망치처럼 보였다.

뼈가 부러지는 수준으로 끝날 만한 위력이 아니었다.

전신의 뼈들은 박살이 나고 다진 고기가 될 것이다.


우르카가 내려치는 주먹을 보며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섬광이 번쩍하는가 싶더니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들렸다.

우르카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파후!”


우르카의 얼굴 위로 따뜻한 액체가 내려앉았다.

그건 예티의 피였다.

예티는 거대한 손으로 목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피는 손바닥을 뚫고 터져 나왔다.

놈의 발 밑으로 피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뭐야?”


우르카는 뜻밖의 상황에 상황 판단이 늦었다.

그건 다른 예티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움직임을 멈추고 갑자기 등장한 불청객을 바라봤다.


‘사람?’


새롭게 등장한 이의 정체는 사람이었다.

머리는 반들거렸고, 전신은 문신으로 가득했다.

다잡은 물고기를 놓친 예티들이 불청객의 난입에 아우성을 내질렀다.

남자는 신경도 쓰지 않는 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도끼를 들고 가만히 서 있었다.


‘어디 부족이지?’


우르카는 남자에게서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여러 종족이 뒤섞여서 나는 짙은 피 냄새와 북부 대륙 전사만의 거친 땀 냄새.

남부 대륙의 비실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는 남자를 북부 대륙의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우르카가 확신하는 이유는 별거 없었다.

남자의 옷차림은 살벌한 눈보라가 부는데도 가벼웠다.

이건 살얼음 같은 추위에 적응했다는 증거다.

북부 대륙의 사람이라면 혹독한 추위에 헐거 벗고 몇 시간은 버틸 수 있으니까.

물론 장시간 노출되면 얼어 뒤지겠지만.


혹시 마법사인가 하는 생각은 찰나로 그쳤다.

남자의 생김새만 따지자면 신비한 마법을 부리는 족속들로는 보이지 않았다.

드문드문 보이는 흉터들은 주로 몸을 쓰는 게 익숙한 전사의 상징과도 같았다.


남자는 목이 반쯤 베여 숨을 헐떡거리는 예티를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우르카는 탁한 갈색 눈동자와 마주치자 오금이 저리는 걸 느꼈다.

야수처럼 반들거리는 눈동자 뒤로 새까만 어둠이 자리 잡았다.

얼마나 깊은 지 밑바닥은 어림짐작조차 불가능했다.


‘무슨 사람의 눈빛이.’


부족 전사들의 눈빛도 저러지는 않았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던 우르카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눈동자였다.

항상 죽음을 수긍하고 살아가는 자의 눈빛.


우르카는 무의식적으로 눈동자를 피할 뻔했다.

그는 이를 악물며 남자의 눈빛을 버텼다.

긍지 높은 전사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었다.

그럴수록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심장이 제 기능을 잃고 조여오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피할 생각을 못 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무형의 기운이 몸을 짓눌렀다.

우르카는 죽음의 바닷속에서 연신 허우적거렸다.


“살아있군.”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에 우르카는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상태가 꽤 좋지 않은걸.”


우르카의 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이게 다 눈앞의 남자 때문이었다.

등 뒤에서 풀썩거리는 소리가 났다.

우르카와 남자의 눈길이 그쪽으로 향했다.

하얀 몸이 붉은 땅으로 고꾸라졌다.

손도끼에 반쯤 목이 잘려 나간 예티가 낼 수 있던 최후의 소리였다.

놈은 과다출혈로 죽었다.

그 모습에 예티들이 분개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페니르아! 투루카하!”

“···뭐라고 지껄이는지 도통 모르겠군.”


인상을 쓴 남자가 등을 돌려 성난 예티들과 마주했다.

남자는 혼자였다.

그에 비해 예티들은 수가 좀 줄어들었으나 전과 별 차이 없었다.


“내 싸움이야. 내버려 둬.”


우르카는 뒤틀리는 속을 애써 참으며 몸을 일으키려고 노력했다.

한 방에 나가 떨이지는 꼴이라니.

자신이 생각해도 우스웠다.

남자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 몸으로?”

“당연하지. 가던 길이나 가시지.”

“내가 할 소리를 하는군. 구경이나 하고 있어라. 애송아.”

“뭐라고?”

“이미 너는 저 괴물들에게 졌지. 너 차례는 이제 없어. 그러니 저놈들은 내 먹이감이다. 건들지 마라.”


남자의 말이 맞았다.

그가 아니었다면 우르카는 여기서 죽었다.

놈들에게 패배하고 목숨까지 구해진 자신이 참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패배자는 말이 없다.

우르카는 분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 분노를 잊지 마라. 나약한 자의 분노를.”


라이언은 의미 모를 말을 중얼거리더니 사납게 웃었다.

우르카는 앞으로 나아가는 등을 황망히 바라봤다.

태산처럼 거대한 등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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