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한 이세계가 평행세계의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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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우
작품등록일 :
2019.07.22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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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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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2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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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1. 이세계와의 조우

DUMMY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저를 놀리시는 거예요?"


파출소로 소년을 인솔하려는 순간, 소년은 강력하게 거부했다.


"안 가요!"

"애야, 우리야말로 영문을 모르겠구나."


퇴근을 앞둔 지친 직장인의 얼굴을 한 두 사람이 매우 피곤하고 안 되어보였으나 섣불리 따라갈 수는 없었다.


"도깨비, 장산범, 그런 게 위험하니까 같이 가자고 하면 누가 가요. 유치원생도 아니고."

"뭐···?"

"그냥, 그냥 저 알아서 할게요. 원래 보육원으로 돌아가든, 다른 곳을 찾든."


그러니까 그냥 저를 보내주세요, 말을 끝낸 소년이 대합실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ㅡㅡ!!"


중년의 남성들이 날쌘 소년을 바로 쫓기엔 무리였다.

역 바깥으로 나온 소년은 되는대로 화단 수풀 사이에 몸을 숨겼다.

일단 어떻게든 밖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날이 밝아 첫차가 움직이면 다른 보호소를 찾아서 갈 심산이었다. 막무가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애야!"


뒤늦게 쫓아온 경찰이 소년을 찾아 크게 불렀다.


"뭔가 짜증이 났다면 미안하다. 그렇지만 정말로 위험해. 이리 와주련."


경찰은 이리저리 후레쉬를 비추며 소년에게 애원했다.


"경장님!"


이어서 역무원이 따라 나왔다.


"이 근처 어딘가에 숨은 것 같습니다. CCTV에 찍혔네요."


역무원의 말을 들으며 소년은 입술을 깨물었다.


"요 녀석!"


후레쉬에 소년의 실루엣이 비추자마자 경찰이 뛰어와 손목을 잡았다.

그 때였다.

어둠이 깔린 거리에 스산하고 찹찹한 공기가 피어오르고, 이내 한기가 몸을 파고들었다.


"이런, 나타났나보네요. 일단 다시 역 안으로 들어가시죠."


역무원이 다가와 소곤거렸고, 경장은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쉬잇, 소년에게 주의를 주었다.

뭔가 심상찮음을 느낀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고 어른들을 따라 발소리를 죽인 채 역 안으로 들어가 벽에 바싹 몸을 붙였다.


"오늘도 왔네요."


역무원이 한숨을 쉬며 말하자 소년이 창문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어 바깥을 살폈다.


"헉!"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네발짐승으로 보이는 것은 기괴한 모양새였다.

비단실처럼 고운 백색의 털들은 짐승이 움직일 때마다 가늘게 흩날리며 빛이 났으나 이상할 정도로 온 몸에 빽빽하게 들어차있어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끼긱ㅡ 끼기기긱ㅡ'


푸른 안광을 번쩍거리며 벌린 커다란 입에는 송곳니 같은 것들이 빽빽하게 차있었다. 단단하고 뾰족한 이가 기암괴석처럼 박힌 입 속은 징그럽기 그지없었다.

사람이 거대한 천을 뒤집어쓰고 네발로 기어 다니는 것 같은 해괴한 모양새에 소년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 했다.


'컹컹컹ㅡ'


어디선가 개가 맹렬하게 짖었다. 그 소리에 소년이 참았던 숨을 탁 뱉어냈다.


'으르르르, 왈! 왈왈!!!!'

'컹컹ㅡ!!!!'


어디 사는지 모를 개 한 마리가 짖은 것을 기점으로 사방에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네 개들이 떼로 짖는 듯 했다.

장산범이 큰 입을 쩍 벌리고 가만히 있더니 -마치 즐거워서 웃는 것처럼 보였다.- 이내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소리가 터져나왔다.


'컹컹컹ㅡ! 으르르르, 왈! 왈왈!!! 컹컹ㅡ!!!'


방금 짖은 개들의 소리가 그대로 괴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흉내를 내는 소리는 맹렬했으나 달빛에 일렁이는 하얀 털과 이리저리 사사삭 움직이는 몸짓은 지극히도 평온해보였다.

기괴하다는 게 아닌 말로 저 짐승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눈부시게 반짝이는 털이 사람을 홀릴 것만 같았다.

바람도 제대로 불지 않는 밤, 무언가에 나부끼는 짐승이 역 근처에서 점차 멀어지자 다시 역무원이 소근거리며 말했다.


"좀만 더 있으면 사라지겠죠. 너무 쳐다보지 마라, 애야."

"예, 그럴 거예요. 너는 안심해도 된단다. 아저씨들이 지켜주마."

"······."

"그러고보니 이름도 못 물어봤구나. 이름이 뭐니? 나이는 몇 살이고."


장난이나 거짓된 무언가가 아니었다.

괴물이, 아마도 장산범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을 무언가가 진짜로 존재하고 있었다.

넋이 반쯤 나간 채로 소년은 입을 열었다.


"이성운이예요. 나이는 열다섯이고요."

"그래, 성운아. 많이 놀랐을텐데··· 일단 자세한 건 서로 가서 얘기하자꾸나."

"네."


주위를 계속 살피던 역무원은 장산범이 어딘가로 사라진 것을 확인하곤 이제 된 것 같다며 끙차 소리를 내면서 쪼그려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경장이 역무원을 향해 인사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했을 말이 유독 무겁게 들려왔다.

경장은 주차된 차로 성운을 데려가며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왔다.


"이런 일들에 대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니?"

"전혀요."

"이상하다. 학교는 다녔고?"

"네."

"학교에서도 안 알려줬다 이 말이지?"

"···네."

"허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대화의 연속이었다.


"오히려 제가 묻고 싶은데요."


성운이 차에 올라타며 물었다.


"밤에 장산범이 돌아다니니까 조심하라는 걸 대체 어디서 알려준다는 거예요? 저는 저걸 본 것도 오늘이 난생 처음인데."

"허, 그럴 리가 없을텐데."


대화는 핀트가 묘하게 어긋난 채로 계속 이어졌다.


"살면서 한번쯤은 당연히 보게 되지 않니? 교과서에도 나와 있고."

"그게 교과서에 나와요?"

"그래. 저승사자, 도깨비, 구미호, 장산범···"

"그거 다 뻥이잖아요. 무슨 말씀 하시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서로 한국말을 하고 있는 것은 맞는데, 대화가 분명하게 통하는 것 같지 않으니 답답해서 팔짝 뛸 노릇이었다.

오 분 여 간의 거리를 운전하며 둘은 옥신각신 대화를 멈추지 않았고, 아무런 해답을 내리지 못한 채로 파출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우선 내리자. 신원조회라도 해보면 뭐가 나오겠지."

"네."


작은 파출소는 한산했다. 다른 경찰관이 늦은 시간에 경찰서에 온 성운이 의아한 듯, 한 번 쳐다보았다가 다시 모니터 너머에 집중했다.


"이름, 이성운. 남자···. 주민등록번호 좀 불러줄래?"

"051015, 30···"


13자리의 숫자를 부르자 경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뒷자리에 30은 있을 수가 없는데?"

"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답답한 마음에 주머니의 학생증을 꺼내 들이밀었다.


"여기 주민번호가 안 써있기는 한데, 아무튼 보세요. 학교도 잘 다니고 있었다고요."


학생증을 받아든 경장의 표정이 더욱 이상해졌다.


"이 학교는 없는 학교 같은데."

"···예?"

"아무래도 이상하구나. 위훔 쪽에서 뭔가 알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 뒷자리가 3이면 티훔인가."


그건 또 뭐야, 기운이 다 빠진 성운은 이제 물어볼 힘도 없었다.


"뭐가 잘 안 돼요?"


그때, 다른 경찰관이 말을 걸어왔다.


"아, 김 순경. 잘 왔네."


경장이 반가운 듯 고개를 들었다.


"역 종점에서 인솔해온 아이인데, 뭔가 좀···."

"왜요?"

"우리 입장에선 당연한 걸 모른다고 하니까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 이 아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흐음···."


성운은 골칫거리로 전락한 것 같은 느낌과 풀리지 않는 답답함이 싫어 발로 애꿎은 땅만 툭툭 차댔다.


"'훔'으로밖에는 안 보이는데,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3으로 시작한댔으니 '티훔'이려나요."

"'티훔'이면 내가 말한 것들을 모를 리 더더욱 없어. 애초에 '훔'들도 기본적으로 아는 내용들인데."

"저기요."


참다못한 성운이 입을 열었다.


"'훔'은 뭐고 '티훔'은 또 뭐에요. 정말 무슨 말씀하시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뭐?"


다른 순경의 표정까지 경악으로 물들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저 아픈 곳 없어요. 제가 이해 안 가는 건 아저씨들이고요.

괴담에나 나오는 괴물을 실제로 본 것만 해도 믿기지 않는데, 그것들을 당연하게 말하시니까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하지만 얘, 아니 성운아. 괴담이라니?"


'1+1은 2다'를 납득하지 못하는 아이를 보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서로의 눈길이 답답함을 담은 채로 허공에서 엉켰다.


"뭐랄까, 마치···."


젊은 순경이 잠시의 침묵 뒤에 입을 열었다.


"다른 세계에서 살다 온 것처럼 말하는구나."


무거운 침묵이 다시 내려앉았다.


"···이정도로 말이 안 통하는 거 보면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겠군."


경장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파보이는 것 같지도 않고, 어른을 놀리려는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으니 말이야. '위훔'이 그런 걸 발견했던가?"


'다른 세계'를 납득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을 꺼내는 경장을 보고 놀란 건 오히려 성운 쪽이었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책, 소설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를 중년의 남자어른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을 보고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위훔' 쪽에 연락은 해두마. 내일이면 자세한 건 대충 알 수 있겠지."

"···감사, 합니다."


처음으로 한 감사인사는 더듬거리는데다가 아주 작은 목소리였으나 경장은 괜찮다는 듯이 등을 두드려주었다.


"아까부터 생각했지만 당차고 씩씩한 아이구나. 다른 세계가 있다니, 솔직히 완전히 믿지는 못하겠지만 아예 못 믿을만한 것도 아니지.

'위훔'들은 '훔'이 생각도 하지 못한 여러 발견을 해내니까 말이야."


성운은 조금 쑥쓰러운 얼굴로 말을 듣고 서 있다가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에 대하여 물어봤다.


"근데 '훔'은 뭐고 '위훔'은 뭐예요?"

"아, 미안하다. 낯선 말들이겠구나. 음, 뭐라고 해야하나···."


경장은 고민하는 듯 했다.


"어디까지의 개념으로 설명해야할지, 우선··· '훔'은 아무런 능력이 없는 일반 사람들을 말한단다. 우리나라의 6할 정도의 인구가 '훔'이지."

"능력이요?"

"그래.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엔 존재해."

"마법 같은 건가요?"

"오, 그래. 그거야. 마법."

"마법사가 있다는 말씀이세요? 순간이동도 하고, 초능력 같은 것들도 쓰고, 사람의 기억도 읽고, 시간도 되돌리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구나. 사람의 기억을 읽거나 시간을 되돌리는 건 하지 못 해.

그래, 아무튼 그 마법사를 여기선 '위훔'이라고 부른단다. 3할 정도를 차지하는 사람들이고."

"그럼 나머지는 '티훔'이겠네요?"

"그래. '티훔'은 좀 더 영적인 힘을 쓰는 사람들에 가깝지. '무당'이라고 하면 알아듣니?"

"네. 귀신도 보고, 빙의도 하잖아요. 신들리면 미래도 점쳐주고."

"잘 아는구나."

"제가 살던 곳은 '위훔'보다야 '티훔'이 훨씬 더 흔했거든요."


성운이 하품을 하며 말하자 경장이 담요를 가져다주었다.


"시간이 늦었구나. 네가 살던 곳의 이야기도 듣고 싶은데."

"별 거 없어요. 여기랑 완전 똑같아요. 제가 헷갈렸을 만큼요.

이상한 괴물들도 없고, '위훔'도 없고요."


성운이 눈을 느리게 꿈뻑이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장산범을 봤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면 아무도 안 믿을 거예요. 그리고, 그리고···."


성운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어른스럽고 센 척하는, 사춘기와 함께 이차성징이 나타나려고 하는 남자애였으나 아직 완전히 애 티를 벗지 못한 모습이 잠 든 얼굴 언저리에 남아있었다.

부모도 없이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말을 역무원에게 전해 들었던 경장은 성운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잘 자렴."


담요를 끌어올려 잘 덮고, 상냥한 밤 인사를 받으며 잠이 드는 것으로 성운의 하루가 끝났다.

성운이 눈을 뜬 것은 다음 날, '마법사관부'로 향하는 차 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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