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의 비밀
바칸은 주먹으로 강철 대나무를 두드리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떤 식으로 때릴 때 어떤 소리가 나는지 느끼며 더 나은 타격 방법을 찾아내려 애썼다.
한참 두드리고 나니 힘도 빠지고 주먹도 아팠다. 바칸은 대나무에 등을 기대고 주먹이 회복하기를 기다렸다.
"대장, 나 된 거 같아."
곁에서 지켜보던 톰슨이 불쑥 말을 꺼냈다. 바칸이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벌써? 수련 시작한 지 겨우 반년 정도잖아."
마나 호흡은 마나 수련의 입문 단계다. 입문 다음 단계는 몸에 쌓은 마나와 육체를 결합하는 것이다. 톰슨은 겨우 수련한 지 반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 두 번째 단계로 갈 준비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오늘부터 여기서 나랑 같이 수련하자. 공작이 노예 보내오면 한동안 바쁠 거야. 그전까지는 수련에만 신경 써."
그로부터 며칠 동안 톰슨은 손과 발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특별히 만든 장갑과 신발을 신고 강철 대나무를 쉴 새 없이 때리고 걷어찼다.
"집중해. 주먹 내지르고 다리로 걷어찰 때 마나가 움직인다고 상상해. 간절하게."
강철 대나무를 한참 두드린 톰슨은 체력 소진으로 헐떡였다. 수련할 때 숨을 멈춰야 하기에 평소보다 빨리 소모되었다. 다행히 체력이 원체 뛰어나서 조금만 쉬면 바로 쌩쌩해졌다.
"대장. 그만해야 할 거 같아."
"갑자기 왜?"
"수련이 마음에 안 들어."
톰슨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바칸은 뭔가 있음을 짐작했다.
"뭔데? 혼자 고민하지 말고 말해 봐."
"마나를 수련하고부터 능력이 점점 편해졌어. 예전엔 속에 뭐가 들어찬 것처럼 불편했거든."
톰슨은 그간 쌓은 마나 덕분에 능력이 강해졌다고 여겼다. 몸으로 느낀 거여서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누가 자꾸 말리는 기분이야. 지금 수련을 하면 능력이 사라질 거 같아."
"뭔지 알 거 같아. 가서 미클 불러와."
톰슨은 바로 미클 데리러 출발했다. 바칸은 제발 자신의 가설이 맞았기를 바라며 미클이 오기만 기다렸다.
"무슨 일이야? 한창 바쁜데."
미클은 바칸 대신 영지를 관리하고 다친 사람을 치료하며 보석 세공도 한다. 거기에 곧 비나크 공작이 보내줄 8천 명 노예를 수용할 준비도 해야 한다.
"미클. 마나 호흡을 해봐."
"예전에 해봤는데 감지 못 했잖아."
"그냥 해봐. 지금은 될 거야."
미클은 바른 자세로 바닥에 앉은 다음 마나 호흡을 했다. 몇 분 안 지나 미클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함을 질렀다. 바칸 다음으로 침착한 미클에게서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느꼈어. 마나 느꼈어."
"심층 호흡 가르쳐 줄게. 심층 호흡으로 마나를 몸에 쌓아."
미클은 바칸이 알려준 대로 따라 했다. 반 시간 수련하고 미클이 눈을 떴다.
"편해졌어. 늘 몸에 힘이 넘쳐서 불편했는데 조금 편해졌어."
"좋았어! 좋아. 정말 좋아."
바칸이 주먹으로 강철 대나무를 마구 때렸다. 바칸이 이렇게 흥분한 모습을 처음 본 톰슨과 미클은 깜짝 놀랐다.
"톰슨, 이제부터 마나를 쌓기만 해. 그리고 네 문신과 자주 대화해. 넌 마나를 육체와 결합하는 게 아니라 문신과 연결해야 해."
"문신과 대화하라고?"
"네가 생각만으로 나랑 대화했던 것처럼, 네 문신과 대화하라고."
바칸의 말을 이해한 톰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곧 새로운 문제가 떠올랐다.
"저, 그런데 문신이랑 무슨 얘기 할까?"
문신이랑 무슨 주제로 대화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영지? 여자? 목장?
"들으려고 노력해. 말하고 싶은 거 아무거나 말하고. 문신은 네게 마나와 결합하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애쓸 거야. 네가 자주 말해줘야 문신도 네가 알아듣게 말할 수 있어."
"대장, 그럼 난?"
미클 역시 마나 수련에 성공한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넌 이미 문신과 통했잖아. 그저 마나를 수련하기만 하면 돼. 네 문신은 육체와 관련된 거여서 톰슨처럼 어렵지 않아. 그냥 수련하면 알아서 될 거야."
"대장. 뭔가 알아낸 거지?"
바칸의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보며 톰슨이 질문했다.
"응. 확신은 아니지만, 꽤 자신 있어. 나도 마나 수련 곧 시작할 거 같아."
미클과 톰슨이 떠나고 바칸은 혼자 고민에 빠졌다. 여러 가능성을 떠올리고 부정하며 마나에 대한 가설을 완성해갔다.
'미클과 톰슨은 문신 얻은 후 성공. 존과 톰슨은 마나 수련법이 바뀐 후 성공.'
마나에 관한 지식은 확정적이지 않아 바칸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았다.
'가설을 세운다. 마나 감지는 허공에 있는 마나를 느끼는 게 아니라 자신 몸에 있는 가장 강한 마나를 느끼는 것이다.'
'마나 감응은 자신의 마나와 허공에 있는 마나를 동조하는 것이다. 동조를 통해 허공에 떠다니는 마나가 몸으로 들어온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난 내 마나를 감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내 마나와 허공의 마나가 감응하지 않았다.'
'지금 감응까지 성공한 아이는 셋이다. 감지에만 성공한 아이는 여섯 된다.'
'같은 수련법이어도 개인에 따라 감지하는 마나가 다르다.'
바칸의 이론이 성립하려면 사람마다 마나가 달라야 한다. 그게 아니면 감지에 성공했는데 감응에 실패할 수 없다.
'내가 감지한 마나가 뭔지, 세븐 브레이크가 원하는 마나가 어떤 건지 알아내자.'
바칸은 생각을 멈추고 명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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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르는 태어날 때부터 노예다. 네 살부터 노예 감독관 밑에서 심부름했다. 주로 건망증이 심한 감독관을 도와 물건을 찾았다.
4년 동안 감독관 밑에서 일한 자이르는 커서 감독관이 되겠다는 꿈이 생겼다. 감독관도 총명한 자이르를 꽤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갑자기 낯선 어른들이 와서 자이르를 끌어갔다. 수를 헤아리기 힘든 다른 노예와 함께 커다란 배에 탔다. 서른 척이 넘은 배가 자이르를 비롯한 노예를 싣고 강을 거슬렀다.
하루에 물 한 컵에 밀가루로 만든 떡 한 개만 먹였다. 그렇게 꼬박 이레를 배에 처박혔다.
"내려. 이제부터 너희는 이 영지 노예다."
가장 처음 자이르의 눈길을 끈 것은 커다란 새였다. 높은 곳에 있는데도 여전히 크게 보였다. 다른 노예들도 새를 보며 수군거렸다.
그다음에 눈에 들어온 건 항구에 완전무장한 채 서 있는 병사들이었다. 자이르는 1천까지 셈을 셀 정도로 똑똑한 아이다. 아주 짧은 사이에 병사 숫자가 2백 명 정도라는 걸 알아챘다.
"저 병사를 따라간다."
두 명의 병사가 백 명 정도 노예를 데리고 어마어마하게 멋진 집으로 갔다. 자이르는 최소 5층으로 보이는 돌로 지은 커다란 집에 압도당했다.
"앞으로 걸어. 멈추지 말고 계속 걸으라고."
'돌로 지은 층집 셋. 엄청난 영지다.'
층집 셋은 귀족 여관과 평민 여관 그리고 식당이었다. 자이르는 병사 둘의 인솔을 받아 세 층집 중 하나로 가면서도 주변을 살피는 걸 잊지 않았다.
"악!"
멋진 집에서 비명이 터졌다. 한둘이 지른 소리가 아니었다. 일행을 데리고 가던 병사 둘이 마주 보며 음흉한 표정으로 낄낄거렸다. 자이르는 병사 얼굴에 가득한 장난기를 보고 무서운 일이 아님을 알았다.
'난 절대 소리 지르지 말아야지.'
"엄마야!"
자이르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병사가 이상하게 생긴 물건을 틀자 물이 쏟아졌다. 동그란 파이프에서 물이 계속 쏟아졌다. 저 작은 파이프에 어떻게 저 많은 물을 담았는지 정말 궁금했다.
"옷 벗고 물에 깨끗이 씻어라. 다 씻으면 새 옷하고 신발 준다."
자이르는 바닥에 앉은 채 빠르게 옷을 벗었다. 다리에 힘이 돌아오지 않아 바닥을 기어 물이 나오는 곳으로 갔다. 새 옷도 탐나지만, 신발이 너무 갖고 싶었다.
"마셔도 돼?"
"응. 마시는 물이야."
자이르는 물을 배부르게 마신 다음 몸을 깨끗이 씻었다. 내친김에 머리도 감았다. 목욕을 끝내니 병사가 옷과 신발을 줬다. 옷도 신발도 자이르에겐 조금 컸다. 그러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이르는 처음으로 생긴 신발을 신었다.
"새 옷 받은 놈은 저기 가라."
자이르는 병사가 가리키는 곳으로 갔다. 주변을 둘러보니 전부 아이였다. 책상 위에 종이를 놓고 깃털 펜을 든 어른이 질문했다.
"이름 알아?"
"자이르."
"나이는?"
"8살."
"입 크게 벌려."
자이르가 입을 벌리자 어른은 입안을 한참 쳐다봤다. 그러더니 종이에 뭐라고 적었다.
"저기 문으로 가. 그럼 먹을 걸 줄 거야."
이름과 나이를 모르는 아이들은 다른 문으로 갔다.
자이르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니 먼저 온 아이들이 떡과 고기를 양손으로 들고 먹고 있었다. 자이르는 눈치를 보다가 가장 짧은 줄에 섰다.
떡 두 개에 고기 두 덩이를 받은 자이르는 허겁지겁 입에 집어넣었다. 떡도 흐물흐물 씹기 좋았고 고기도 전혀 딱딱하지 않았다. 급하게 먹으니 갑자기 목이 메었다.
자이르는 두리번거리며 아까 본 물 나오는 파이프를 찾았다. 파이프에 달린 이상하게 생긴 물건을 비틀자 물이 나왔다. 자이르가 하는 모양을 지켜보던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겁쟁이들.'
방금 엄마를 부르며 주저앉았던 일을 까맣게 잊은 자이르는 비명 지르는 아이들을 비웃었다.
"다 먹은 놈들은 저쪽 방으로 간다."
다른 방으로 가니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큰 어른이 있었다. 곁에는 눈이 얼음처럼 차가운 어른이 있었다.
"이름 부르면 앞으로 나온다."
상냥하게 생긴 어른이 종이를 가득 들고 들어왔다. 자이르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손을 번쩍 들고 앞으로 나갔다.
"지금부터 숨 쉬는 방법을 알려준다. 알려주는 대로 숨 쉬고 무슨 느낌인지 말해."
자이르는 어른이 가르쳐준 방법으로 숨을 쉬었다. 조금 지나니 배꼽 근처가 따뜻해졌다. 무더운 여름이지만, 싫지 않은 따스함이었다. 자이르는 신나서 숨을 더 빠르게 쉬었다.
"너 이름이 뭐였지?"
"자이르."
"좋아. 자이르 넌 날 따라와."
종이를 들고 마지막에 나타난 어른을 따라가니 아이 둘이 먼저 와 있었다.
"자, 아까랑 다른 방법으로 숨을 쉴 거야."
자이르는 먼저 온 두 아이와 함께 새로운 방식으로 숨을 쉬었다. 이번엔 배꼽 근처뿐 아니라 코와 목 그리고 명치까지 뜨뜻해졌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 자이르는 숨을 열심히 쉬었다.
"하나 건졌다. 애가 똑똑하기도 하고."
자이르가 눈을 뜨니 눈이 불처럼 타오르는 덩치 큰 어른과 눈이 얼음처럼 차가운 어른이 어느새 와 있었다.
"존, 네가 대장한테 데려가. 나는 서류 읽어야 하고 톰슨은 누가 마나를 느끼는지 판정해야 해."
"알았어."
덩치 큰 어른은 자이르를 덥석 안아서 어깨에 태웠다.
"야, 문에 애 머리 부딪히겠다."
어른은 자이르를 등에 업었다. 건물 밖으로 나간 어른이 빠르게 달렸다. 한참 뒤 자이르는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가 가득한 숲에 도착했다.
"대장. 감응까지 성공했어. 그리고 미클이 똑똑하대."
대장이라고 불린 남자는 금속 갑옷을 입고 금속 투구를 쓴 멋진 어른이었다.
"이름이 뭐지?"
"자이르. 8살."
대답을 마친 자이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렸다. 멋진 어른이 보기 좋은 웃음을 지었다.
"난 바칸이라고 한다. 아틀란티스 영지의 영주야. 그리고 넌 이제부터 내 호위다."
자이르는 호위가 뭔지 몰랐다. 자이르의 세상은 감독관과 노예만 있었다.
"그거 감독관보다 더 세?"
"감독관 백 명보다 더 셀걸."
"좋아. 하겠어."
- 작가의말
선작이 4배로 늘었네요. 책임감도 4배로 된 것 같습니다. 지면만 차지하는 무성의한 내용 없이 알짜로만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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