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업자 - The Smugg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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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플레인Y
작품등록일 :
2019.07.28 20:59
최근연재일 :
2019.12.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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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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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8화 - 보이지 않으면 보이게 하라

DUMMY

레드 카디널 호텔 1312호실. 푸른 머리의 이레시아인 남자는 무드 등을 뺀 방 안의 모든 불을 끄고 침대 위에 가만히 앉아서 베란다 밖을 내다보고 있다. 한참이나 야경을 응시하던 그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별안간 다시 일어나, 홀로그램 모니터를 켠다.


“각 방 모두 잘 있나?”


“예, 잘 있습니다.”


“무슨 일이신지요?”


남자의 말에 모니터 속 사람들이 대답한다. 남자의 눈에, 오른쪽 위의 모니터가 비어 있는 것이 보인다. 분명 30분 전만 해도 네 명 다 있었는데, 지금 보니 세 명만 보인다.


“이반은 어디 갔지?”


“그게... 혹시 화장실에 갔을 수도...”


“확실한 거야?”


“사실은 조금 전에 전화해 봤는데, 전화를 안 받습니다!”


“그래?”


이레시아인 남자는 조금 전까지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니 마치 변신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창백하던 얼굴이 온통 뻘겋게 바뀐 채로, 폭발하는 화산처럼 고함을 내지른다.


“또야! 또! 그렇게 내가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보... 보스! 괜찮으십니까?”


부하 중 한 명이 말하자, 남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까의 평온함이 가득 담긴 창백한 얼굴로 돌아온다.


“아... 아니야. 잠깐 머리에 열 좀 빼느라고. 자세한 건 내일 다시 이야기해 보자고.”




침대 아래 바닥에 처박힌 카르토에게, 그때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칼을 든 남자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기회를 노리고 있을 뿐이었다. 만약에 무슨 기척이라도 났다 하면, 그는 그 길로 달려들어 칼을 들어 그를 찌르려 할 것이다... 그는 숨을 죽인 채 이불 속으로 숨었다. 그렇게 해서 일단은 바닥으로 소리 없이 내려가 보려고 했다. 하지만 운이 없었다... 바닥으로 이불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바닥에 엉덩이를 찧으면서 ‘쿵’ 소리가 들렸다. 밖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불을 온몸에 뒤집어썼으니... 저쪽에서는 그 칼 든 남자가 이쪽으로 저벅저벅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든 생각, 아니 생각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딱 한 단어가 떠올랐다...


망했다.


30여년 후 그때 그 상황을 다시 겪을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확실히 다른 건 하나 있다. 이불은 안 뒤집어썼다. 그런데 안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도!


“도망갈 생각 마라, 살테이로인. 그리고 말해라. 베라네가 어디 있는지를!”


동시에, 카르토의 가슴에 뭔가가 짓누르는 듯한 압력이 전해져 온다. 옷에 생긴 자국으로 봐서는, 분명 발이다. 그것은 없어졌다, 생겨났다, 없어졌다, 생겨났다 한다. 일어서고 싶은데, 자꾸 짓누르는 것, 전해져 오는 압박 때문에 일어설 수조차 없다!


“말하지 않으면...”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놈의 입을 열어놓을 거다아아아!”


남자는 이번에는 카르토의 얼굴을 마구 밟아댄다.


“이래도 안 불 거냐! 이래도! 이래도!”


여전히 카르토는 입을 열지 않는다. 문득, 남자의 눈에 카르토의 오른손에서 뭔가 빛줄기가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네 녀석! 또다시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군. 아까 말했을 텐데! 네 능력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나는 네놈을 밟아 놓을 거라고!”




한편, 호텔 28층 엘리베이터 타는 곳. 파자마 차림의 수민과 아이샤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서 있다.


“왜 이렇게 엘리베이터가 안 와?”


좀처럼 올라오지 않는 엘리베이터 표시기를 보며, 수민이 투덜댄다.


“벌써 기다린 지가 3분이 다 되어 간다고.”


“조금만 기다려 봐. 금방 오겠지.”


말은 자신있게 하지만, 정작 그렇게 말하는 아이샤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다. 수민이 살짝 보니, 아이샤는 눈은 자꾸 여기저기 돌아가고, 수시로 침을 삼키고, 손발은 가만히 못 있는 등,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왜 그래?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말라고.”


“아... 고마워.”


그러나 사실, 아이샤의 관심은 딴 데 쏠려 있다. 지갑에 뭔가 없어졌다... 한동안 관심이 멀어졌던 무언가였지만, 호텔에 들어와서 지갑을 열어보니, 딱 그게 없는 게 보였다... 이상하다. 얼리버드 호에서 떨어뜨리기 전만 해도 분명 있었다. 수시로 지갑을 열어 보고, 눈으로 확인했었다. 그런데도 없다는 건... 일단은 확인을 해 볼 수밖에...


아이샤는 일단 수민의 불룩해 보이는 점퍼 주머니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간다. 팔 사이로 손을 집어넣으면 되는데..


“어? 너 뭐 해?”


아뿔싸! 손이 닿았다! 낭패다... 하필이면 막 닿으려는 때... 아이샤의 입은 바짝 마르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왜 그렇게 급한 거야? 엘리베이터 금방 내려와. 기다려.”


휴... 수민은 모르는 듯하다. 아이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 남자, '이반 키릴로프'는 카르토의 오른손을 강하게 짓밟는다. 오른손을 잘게 으깨는 듯한 통증이 전해진다. 오른손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카르토는 입에 조소를 흘릴 뿐이다.


“왜 웃나? 정신이 나간 건 아니겠지?”


“내 오른손만 보면 안 되지.”


“그게 무슨 소리...”


남자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자신의 발밑에 이미 암청색의 공간이 입을 벌리고 있다.


“드디어 도망을 가려고 하는군. 하지만 소용없다. 쫓아서 들어가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말이지!”


이반은 의기양양하게 카르토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건 도박에 가까웠다. 보스는 분명히, 독단적인 행동은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이 살테이로인 녀석을 심문해 베라네의 위치를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다... 그런데, 카르토는 그 암청색 공간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응? 네 녀석, 왜 안 내려가나? 도망가려고 만든 것 아닌가?”


“애초에 이 공간은 내가 들어가려고 만든 공간이 아니거든.”


바로 그때다. 이반의 발밑이 허전하다. 어느새, 발밑의 감각이 없어지고, 머리가 아래쪽으로 쏠린다. 그는, 자신을 향해 입을 벌린 암청색의 공간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순간, 그는 방바닥을 강하게 움켜잡는다. 우선 안도의 한숨부터 내쉰다.


“제법이군. 함정을 파려고 했나 본데, 이런 것쯤은 쉽게 간파할 수 있지.”


이반은 금세 아까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돌아간다. 사실 그가 믿는 구석은 또 하나 있다. 만약 그가 암청색 공간으로 떨어졌다고 해도, 그의 슈트는 적응력이 매우 뛰어나다. 설령 설원에 있다가 사막으로 순간이동했다고 해도, 1초 안에 주변의 환경을 파악, 완벽히 주변에 적응하여 착용자를 풍경 속에 숨겨 주는 것이다. 그 정도이니, 설령 이 정체불명의 공간 안에 떨어진다고 해도, 1초 안에 그는 완벽히 이 암청색의 공간에 숨어 버릴 수 있다. 이것보다 더 완벽할 수 있겠는가!


이럴 수가.


이반의 호흡이 거칠어진다. 빠지지 않는다. 몸이 바닥에, 그 암청색의 입에 들러붙었다. 그것도 상반신만 내민 채로. 하반신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계속 허공을 발길질하고 있다. 그건 그렇고, 이 암청색의 공간... 이반의 허리를 꽉 쥔 채로, 없어지지 않는다!


“도대체 이건 무슨...”


“드디어 잡았군. 이제 그 슈트의 기능을 끄시지그래.”


“도대체 이건 뭐냐! 그리고... 내 하반신은 어디로 간 거야!”


“정 찾지 못하겠으면, 위를 보시든가.”


이반은 머리 위를 올려다본다. 암청색의 원, 아니 사람의 몸통 단면 윤곽의 도형이 보인다. 지금 자신을 꽉 물고 있는 이 암청색 입과 완전히 똑같은 크기의 그것이.


“그 슈트로 어떻게든 몸을 숨기는 데는 성공했겠지만, 너를 감싸고 있는 그 구멍까지 그대로 재현해 버렸군.”


카르토는 이반을 불쌍하다는 듯 내려다보며 말한다.


“이제 끝났어. 거기서 구해주는 사람도 없이 그렇게 바보처럼 있든, 아니면 거기서 나온 다음 꽁꽁 묶여서 네 정체를 불든, 선택하라고.”


이반은 힘없이 고개를 떨군다. 곧이어, 카르토의 발밑의 구멍이 사라지더니, 갈색 슈트를 입은 남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고개를 푹 숙인 그를 보고 있자니, 카르토는 그때가 다시 떠오른다.

EP18.png

카르토는 이불 속에 엎드려서, 신에게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살려 달라고,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칼 든 남자가 다섯 걸음쯤 앞에 들어왔을 때, 그의 손 밑에 이상한 빛줄기가 퍼져나오는 게 보였다. 순간 놀랐다. 누군가 내 목숨을 노리고 다가오는 판에 이 빛줄기는 뭐란 말인가...


다음 순간, 그는 이상한 공간 안에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검고 푸른 공간이었다. 밖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밖의 소리는 들린다. 이곳은 어디란 말인가? 하지만 뭔가 짚이는 건 있었다. 그는 은신처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경쟁 업자나 폭력조직에 쫓길 때 특히 그랬다. 분명 가족들이 초능력이 있으니 카르토 자신도 재능은 있을 텐데, 발현은 언제쯤 되나 하고 기다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듣기로는 목숨을 걸 정도의 위기를 넘기면 발현이 더욱 쉬워지지만,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바로 그때 초능력이 발현되다니, 썩 내키지는 않는 타이밍이었다. 정말이지, ‘가슴 속의 심장이 몸속을 이리저리 돌았다’라는 말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이렇게 죽을 위기를 겪어서 이 힘이 들어왔다니...


그가 초능력자가 된 그 날부터, 그의 일거수일투족 하나하나를 함부로 하지 못했다. 그의 지인들은 그의 초능력을 부러워했지만, 그는 아니었다. 더욱더 행동거지 하나를 조심하고 조그만 것에도 감사하게 되었다. 비록 그가 몸담은 일은 밀무역일지라도, 그가 마약이나 인신매매 같은 길로 빠지지 않게 된 것도 그때의 기억 덕분이리라.




한편 호텔 12층.


“왜 이렇게 늦은 거야?”


호렌이 수민과 아이샤에게 투덜댄다.


“5분이나 지나서 왔잖아. 그 사이에 카르토가 죽었으면 어쩌려고?”


“엘리베이터가 불쑥불쑥 지나가더라. 만원이라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됐고, 1212호실로 바로 가자.”


호렌이 앞장서고, 수민과 아이샤가 뒤를 따른다. 호렌과 아이샤도 그렇지만, 특히 수민의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마치 한발한발 뗄 떼마다 손 같은 게 바닥 아래서 올라와 잡는 듯하다. 무사해야 할 텐데... 제발...


이윽고 1212호실 앞이다. 수민, 호렌, 아이샤는 살금살금 문 바로 앞까지 다가간다. 문을 보니 손잡이 쪽에 팔각형 형태의 이상한 장치가 부착되어 있다. 수민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이리저리 보더니, 손잡이를 살짝 잡아당겨 본다. 그러자 너무도 쉽게, 문이 열린다...


“왜 이제 왔어?”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건 카르토의 목소리.


“상황은 종료된 지 2분이나 지났다고. 그건 그렇고, 문밖에 무슨 장치 같은 게 있더라. 그거 좀 제거해 줬으면 좋겠는데.”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카르토는 말없이 화장실의 문을 열어서, 결박된 채 무릎꿇려 있는 갈색 슈트를 입은 남자를 보여 준다. 수민은 안도와 불안감이 한데 섞인 한숨을 내쉰다.


“아... 알았어. 일단 내가 캠벨 씨하고 VP재단에 연락할 테니까, 이 녀석 좀 잘 맡아 줘. 내일 아침식사 할 때 보자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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