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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아이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문낭호
작품등록일 :
2019.07.30 01:11
최근연재일 :
2019.09.1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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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7,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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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1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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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7. 성인식成人式 (5)

DUMMY

제국의 회색 여우, 세첸 네르구이는 말을 달리고 있었다.


일곱 천호에는 만장 콘크도, 머리천장 수부타이도 있었다. 그래서 네르구이는 뒤에 남기고 온 일곱 천호는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지친 말이 휘청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네르구이는 말의 속도를 경속보에서 조금도 줄이지 않은 채로, 한쪽 발을 들어 올려 안장에 옆으로 걸터앉듯 했다. 그리고는 속도도 줄이지 않고 옆에서 달리고 있는 등이 빈 말로 다가가, 단숨에 옮겨 탔다. 네르구이가 지금껏 타고 있던 말은 잠깐 속도를 늦추며 쳐졌다가, 등의 무게가 사라진 덕분인지 금방 따라붙어왔다.


오래 달려온 탓에 말도, 네르구이도 상당히 지쳐 있었다. 등자를 디딘 다리도 피곤했다. 하지만 네르구이는 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괜히 나설 때 말을 다섯 마리나 끌고 나온 것이 아니었다.


차강 수울이 가지고 온 소식들이, 네르구이가 이렇게 달릴 수밖에 없도록 했다.


나르 두르에게 동조하여 남호경에서 일어났다는 반란 소식도 신경 쓰였고, 동호경 쪽에서 들려온 하르부가의 움직임에 대한 소식도 신경 쓰였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욱 네르구이가 말의 속도를 줄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대 칸 야와우르에 대한 소식이었다.


전장에서 쓰러질 뻔 했다니, 낙마 할 뻔 했다니.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 진군이 멈추다시피 했다니.


애초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대 칸 야와우르가 아무리 말했다 한들, 그것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었다. 아들의 일이니 맡기라는, 그 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었다. 젊던 시절 자신을 설득했던 그 눈동자에 다시 넘어가주는 것이 아니었다. 꺼져버린 줄 알았던, 그 영혼이 불타오르는 것 같던 눈동자에 애써 속아주는 것이 아니었다.


네르구이는 더 말을 재촉해 속도를 높이지 않으려 애썼다. 지금 속도가 그녀의 말이 가장 오래 달릴 수 있는 속도임을 알고 있었다. 속도를 높이는 만큼, 말이 계속 달릴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 것이었다.


차강 수울이 대 칸 야와우르가 다시 기운을 차리고 일어났다는 말 또한 전하긴 했지만, 네르구이는 가슴 한구석의 불안함을 억누를 수 없었다.


이렇게 보낼 수는 없지요, 이렇게 가실 수는 없습니다, 나의 대 칸.


세첸 네르구이는 지그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뭉근한 불기운처럼 통증이 피곤한 머릿속을 일깨웠다. 언뜻 비릿한 피 냄새와 피 맛이 번져왔다.




계속 내달린 네르구이는, 아침에 출발한 뒤 이틀째 밤에 대 칸 야와우르의 군진에 이르렀다. 최고의 말과 최고의 기량을 갖춘 차강 수울이 꼬박 이틀하고 조금 더 걸렸다는 것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속도였다.


덕분에 그녀가 끌고나온 말 다섯 마리 중에 한 마리는 뒤쳐져 잃어버리고, 한 마리는 도중에 지쳐 죽어, 셋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니 네르구이라고 멀쩡할 리가 없었다. 네르구이가 머리에 쓴 검은 말가이나 검게 염색한 옷이나, 뿌옇게 먼지가 내려 검기보다는 잿빛으로 보일 정도였다.


말의 안장에서 내려 땅을 디딘 네르구이의 다리가 휘청이자, 고삐를 넘겨받았던 아르트 케시크가 깜짝 놀라 네르구이를 부축했다. 네르구이는 바로 괜찮다며 부축을 밀어내고 싶었으나, 오랫동안 지친 몸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야와우르와 전쟁터를 함께하던 젊은 시절이었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자, 네르구이는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말보다 책상을 가까이 한 세월이 몇 년이던가. 그저 나이 탓만을 할 일은 아니었다.


“대 칸 폐하는?”


네르구이의 지친 목이 쇳소리를 내었다.


“나의 대 칸 야와우르께 안내해라, 케시크.”


어깨를 붙잡고 기댄 채였으나, 네르구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를 부축한 아르트 케시크는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 그녀의 상태를 보아서는, 바로 쉬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네르구이는 제국에서 대 칸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직위와 신분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리고 또한, 아르트 케시크의, 그들의 세첸이었다. 걱정 어린 케시크의 시선이 네르구이에게 향했지만, 그 눈을 마주보는 네르구이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여전히 북쪽 땅의 끝, 흙이 사라지고 얼음만이 남는 땅을 보는 듯 했다.


결국, 아르트 케시크는 쉬는 것이 어떠냐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 채 네르구이를 대 칸 야와우르에게로 안내했다. 네르구이는 부축조차 받지 않으려 했으나, 그녀의 지친 몸도, 그녀를 부축한 아르트 케시크도 그것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위대하신 대 칸 야와우르, 깨어 계십니까?”


그 둘이 대 칸의 오르도에 이르자, 문을 지키던 타림이 네르구이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부축을 받으며 오는 모습 때문인지, 미간에 조금 주름을 만든 채였다.


“깨어 있어. 무슨 일이야, 천장 타림.”


안에서 그렇게 대답이 돌아오자, 타림은 오른손을 왼가슴에 올려 네르구이를 향해 군례를 취해 보였다. 네르구이가 군례를 받듯 고개를 끄덕이자, 타림이 다시 입을 열어 오르도 안을 향해 말했다.


“걱정하시던 일이 다가왔습니다, 나의 대 칸 야와우르 폐하.”


네르구이는 타림의 말을 들으며 오르도의 문 앞에 섰다. 부축해 온 아르트 케시크는, 마침내 괜찮다며 밀어내었다. 부들거리며 떨리던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오랫동안 지치고 긴장되어 곱아졌던 허리도 다시 곧게 펴졌다.


아주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 잠깐 동안, 야와우르는 타림이 한 말의 뜻을 생각한 모양이었다.


“들어와, 나의 세첸.”


네르구이의 시선이 타림에게 향하자, 타림은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오르도의 문을 열어 주었다. 네르구이는 답하듯 타림에게 마주 고개를 끄덕인 후, 비틀거리지 않으려고 온 힘을 쓰며 오르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르도 안은 네르구이가 기억하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군사를 갈라 떠나기 전과 달라진 것이라고는, 더 이상 아랫사람들에게 병색을 감출 수도 없이 침상에 반쯤 누운 야와우르 뿐이었다. 네르구이가 떠나기 전까지는, 분명 거동이 어렵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더더욱, 야와우르는 그보다 아래의 사람이 있을 때는 아픈 것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었다. 네르구이 앞에서는 특히 더 그랬었다.


오르도 안으로 채 몇 걸음을 걷기도 전에, 네르구이의 입에서는 탄식이 나오고 말았다.


야와우르는, 그 그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은 척을 하지도 못할 정도로 몸이 좋지 않은 것이었다.


“몰골이 말이 아니군, 나의 세첸. 조금 쉬고 오지 그랬어.”


그러면서도 침상에 반쯤 누워 한다는 말이 이러니. 네르구이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누구 몰골이 더 안 좋은지 따져 보시겠습니까, 나의 대 칸.”

“그래도 아직은 그대의 대 칸이군. 다행한 일 아닌가?”


네르구이의 대 칸은, 몸이 아파 누웠으면서도 여전히 네르구이의 속 터지는 소리를 하는 재주만큼은 대륙 제일이었다.


“설명이라도 한 번 해보시지요. 제가 없는 사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야와우르는 잠시 난처하다는 듯, 고민하며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었다. 네르구이는 제자리에서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 침상 옆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야와우르는 계속 침묵하다, 네르구이가 의자에 앉은 후에야 입을 열었다.


덤덤하게, 있었던 사실만을 늘어놓는 말이었다. 어치르가 원래의 방책을 뜯어다 만든, 이동식 화살받이 겸 방책에 대응하려 짐승들의 오줌보를 동원한 기책(奇策)을 썼다는 내용이었다. 그로 인해 며칠간 피로가 쌓였고, 지금 몸이 좋지 않아진 것은 어디까지나 그 탓이라는 것이 야와우르의 말이었다.


그 말들을 다 듣고 난 뒤에도, 네르구이는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야와우르를 바라보았다. 야와우르는 그녀의 시선을 피해 눈을 돌렸다가, 한참이 지났는데도 네르구이가 아무 말도 없자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의 눈을 마주 보았다.


“나의 야와우르, 몸 상태는 어떻다 합니까.”


간신히, 정말로 간신히 내뱉은 듯한 말이었다. 야와우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초동을 불러다 물어볼까요?”


결국 네르구이가 그렇게 말한 뒤에야, 야와우르는 다시 네르구이의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약을 바꿔야 한다더군.”

“약을요.”

“그래. 오늘 필요한 약재가 도착했다는 모양이야. 그러니 내일이면 새 약을 먹게 되겠지.”


어디가 어떻게 좋지 않다는 말은 모두 들었다. 하지만 야와우르는 그 이야기는 네르구이에게 하지 않았다. 설령 네르구이가 초동을 불러다 물어본다 하더라도, 초동이 말해주지는 않으리라 믿었다. 이미 야와우르가 몇 번이고, 그 이야기만은 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줬기 때문이었다.


앉아서 천리를 내다본다는 제국의 여우라지만, 네르구이도 의술에만큼은 별 재주가 없었다.


그것이 야와우르는 퍽 안심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 나의 세첸. 오늘은 내가 아니라 그대가 초동이 필요해 보여.”


네르구이는 아무 말도 않고, 무릎 위에 올린 주먹을 꽉 쥐었다.


야와우르가 부러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보아하니 초동에게 가서 묻는다고 하더라도, 별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야와우르가 단단히 이야기를 해두었거나, 무슨 약속이 오고 갔거나 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네르구이는 여기에 버티고 앉아, 캐물으려고 작정한다면 대답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럴 자신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것이 네르구이는 섭섭하고, 속상하고, 괴로웠다.


“그럼 자세한 것은 내일 이야기하지요, 나의 대 칸.”


결국 그 먼 길을 단숨에 달려왔음에도, 그 피로에 졌다는 듯이, 네르구이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나의 세첸. 가서 푹 쉬어.”


그 말을 듣자마자, 네르구이는 박차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와우르는 돌아서는 네르구이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몇 번이고 열었다 닫았다. 그러다 마침내 네르구이가 오르도의 문 밖으로 나서기 전에서야, 입을 열어 밖으로 소리를 내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네르구이, 내가 꿈을 꾸었어.”

“꿈이요?”

“나의 새끼 늑대를 보았어.”


그 말에, 네르구이가 고개를 돌려 야와우르를 바라보았다. 네르구이는 그의 눈에서, 작게 타오르는 붉은 불꽃을 보았다.


“나의 범과, 나의 소와, 나의 사슴과, 나의 순록을 보았어.”


그 불꽃은 자신을 보고 있는데도, 네르구이는 먼 곳을 향해 있다고 느꼈다.


“다들, 성인식을 치르는 모양이야.”


어치르도, 오르도, 살리흐도, 차우마랄도, 대 칸의 자식들 모두가 이미 성인식을 치렀다. 성인식을 치르지 않은 것은 막내인 마모치누아 뿐이었다. 쭉 그들의 성인식을 준비해주고, 무사히 마치도록 기원해 온 네르구이는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야와우르도 그것을 모르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네르구이는 야와우르의 말에 굳이 반박하지 않고, 가만히 그가 말을 마치길 기다렸다.


“나의 새끼 늑대가 어느 짐승으로 제 운명의 높이를 가늠하게 될 것 같아?”


네르구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늑대를 보았어, 네르구이. 아주 커다란 늑대.”


마모치누아는 동쪽으로 향했다. 반란으로 혼란했으나, 야와우르가 알고자 한다면 그것을 아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한 것일까. 병증으로 혼몽(昏懜)한 와중에, 가장 가슴에 걸릴 막내라서 그런 것을 본 것일까.


“괜한 소리를 했군. 어서 가서 쉬어, 나의 세첸.”


네르구이는 어서 가보라는 듯 손짓을 하는 야와우르의 웃음을 보자, 돌아서기가 몹시도 힘들었다. 하지만 네르구이는 결국 발걸음을 돌려, 오르도를 나섰다.


“타림.”

“말씀하십시오, 우리의 세첸.”

“나의 대 칸께서 정신을 잃으셨을 때 근처에 있던 이들을 모두 불러 주시겠습니까.”


타림은 고개를 끄덕인 후, 함께 문 앞에 서 있던 아르트 케시크에게 뭐라고 지시를 내렸다. 피로로 떨리는 허벅지를 꽉 움켜쥐며, 네르구이는 아무래도 오늘 밤이 제법 길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여러분, 항상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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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12. 탕가락盟誓 (5) 19.09.09 10 0 22쪽
94 12. 탕가락盟誓 (4) 19.09.09 8 0 11쪽
93 12. 탕가락盟誓 (3) 19.09.09 12 0 14쪽
92 12. 탕가락盟誓 (2) 19.09.08 11 0 12쪽
91 12. 탕가락盟誓 (1) 19.09.07 1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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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11. 울륵英雄 (9) 19.09.06 15 0 12쪽
88 11. 울륵英雄 (8) 19.09.06 13 0 10쪽
87 11. 울륵英雄 (7) 19.09.05 15 0 11쪽
86 11. 울륵英雄 (6) 19.09.05 13 0 10쪽
85 11. 울륵英雄 (5) 19.09.04 12 0 14쪽
84 11. 울륵英雄 (4) 19.09.04 13 0 13쪽
83 11. 울륵英雄 (3) 19.09.03 13 0 12쪽
82 11. 울륵英雄 (2) 19.09.03 13 0 11쪽
81 11. 울륵英雄 (1) 19.09.02 12 0 10쪽
80 10. 효시嚆矢 (完) 19.09.02 12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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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10. 효시嚆矢 (7) 19.09.01 17 0 10쪽
77 10. 효시嚆矢 (6) 19.08.31 12 0 10쪽
76 10. 효시嚆矢 (5) 19.08.31 12 0 12쪽
75 10. 효시嚆矢 (4) 19.08.31 1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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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10. 효시嚆矢 (1) 19.08.28 14 0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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