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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아이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문낭호
작품등록일 :
2019.07.30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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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30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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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0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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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샤타르將棋 (7)

DUMMY

보긴에웨르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참교 임규의 배는 군선인데다 그리 큰 배는 아니라 선실이 많지는 않았다. 당연히 개인선실도 많지는 않아, 임규는 개인선실 둘을 살바르와 마모치누아 일행에게 내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병사들과 선실을 쓰는 대신에, 자신의 선실을 개염지에게 내주었다. 즉, 개염지의 초대로 들어온 이 선실은, 본디 참교 임규의 선실이라는 것이었다.


선실은 참교 임규의 성격을 드러내 보여주듯이, 썰렁하다 싶을 정도로 별다른 장식들이 보이지 않았다. 임규가 평소에 일 할 때에 쓰는 것 같아 보이는 작은 책상 하나와, 문방사우(文房四友). 그리고 서류 같은 걸 보관하는 걸로 보이는 책장이 둘 정도 있었고, 거기에 손님을 맞이할 때 쓸 법한 탁자와 의자 정도가 있었다. 침상도 한 사람이 몸을 뉘일 수 있을 정도로, 딱 필요한 것만 갖춘 모양새였다.


그 필요한 것만 갖춰진 가구들도 별 다른 장식도 없이, 딱 용도만 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그것만 봐도, 참교 임규가 꽤나 소박하고 검박한 성격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배를 지휘하는 것을 보면 제법 능력도 있어 보이고, 이런 성격이라면 부하들도 제법 따를 터였다. 그런데 아직 참교인 것은, 그저 나이가 문제인 것일까.


“한승어사.”


보긴에웨르를 선실로 초대하고 차 한 잔을 내준 후, 개염지는 한동안 임규의 책장을 뒤졌다. 따로 찾는 것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보긴에웨르는 조용히 방을 훑어보고 있던 참이었다.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이제야 찾던 것을 찾았는지, 개염지가 책자 하나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보긴에웨르의 앞에 앉았다. 보긴에웨르는 전혀 죄송할 필요 없으시다고 손을 내저으며, 개염지가 탁자에 내려놓은 책을 흘끔 곁눈질해 보았다.


문전역람(問戰繹覽)이었다.


“한승어사, 배로 여행하는 지금이 아니면, 언제 마음 놓고 한승어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개염지가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으며 말했다. 보긴에웨르는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시며 말을 아꼈다. 솔직한 생각으로 명양부에 들어가고 나면 훨씬 시간이 많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생각을 내놓지는 않고,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가산군주께서 말씀하시면, 제 시간을 내는 것이야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말이라도 그리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한승어사.”


개염지는 하얗고 긴 손가락을 들어, 탁자에 내려놓은 자신의 찻잔을 어루만졌다. 보긴에웨르는 문전역람을 바라보다가, 자연스레 이끌리듯 시선을 그 긴 손가락에 향했다.


“한승어사께선 제국 세첸의 제자시지요.”

“그렇지요.”


보긴에웨르는 못내 부끄러운 마음에 다시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자신들과 함께 계속 함께해 오던 개염지의 것은 아닐 테고, 아마도 참교 임규가 즐기던 것인 모양이었다. 향이 깔끔하고 상쾌했다. 좋은 차였다.


“부끄러운 제자이긴 합니다만.”


이 먼 산왕국까지도 보긴에웨르의 이름이 들릴 정도니, 부끄럽다 말할 정도는 아닐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개염지는 굳이 보긴에웨르에게 덧붙여 말하지는 않았다.


“한승어사, 저는 이 문전역람을 보고 만장 어터르친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문전역람에 나온 병진과 전술, 무엇하나 감탄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지요.”

“그러셨군요.”


그저 미소를 보일 수밖에, 보긴에웨르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문전역람을 쓴 만장 어터르친은 존경받는 어르신이고, 스승인 세첸 네르구이의 윗사람이었다. 거기에다 문전역람을 엮은 것 또한 자신의 스승인 세첸 네르구이였다.


“문전역람이 이 먼 산왕국에도 제법 알려져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 굳이 보긴에웨르는 그렇게 관심을 보였다.


“산왕국에는 아무래도 병서가 적습니다.”


보긴에웨르가 크게 생각지 않고 던진 말에, 의외로 개염지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대답했다.


“병서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풍조가 짙지요. 저희가 싸울 상대라고는 귀국뿐이고, 귀국과의 경계보다는 하르부가와의 경계가 길구요. 귀국이 올 길마다 성을 쌓고 요새를 쌓았으니, 침입을 그리 걱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개염지의 말에 보긴에웨르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개염지의 말이었지만, 보긴에웨르는 쉽사리 믿기지도 않았다. 산왕국과 제국은 오랫동안 다퉈왔고, 사상자가 나오는 충돌 또한 여전히 경계에서 자주 일어났다. 보긴에웨르가 상서령복으로 일할 때에, 일 년에도 수십 번씩 받는 보고가 산왕국 정찰대와 충돌이 일어났다는 보고였다.


“저희 동호경에서는 항상 하르부가와 산왕국이 근심이다보니, 쉬이 믿기지 않는 말씀입니다.”

“병사들을 호령하는 이들과, 명양부에서 내려다보며 말하는 이들이 다른 것이지요. 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만.”


그렇게 말하며 개염지는 미소 지었다. 보긴에웨르는 스스로 산왕국이 근심 중에 하나라고 말해놓고도 걱정이었으나, 개염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오히려, 제국에서도 군권을 쥔 이들과 관리들은 다르지 않느냐는 개염지의 말에, 보긴에웨르가 관모를 쓴 머리를 어색하게 긁적였다.


“그러면, 논하자고 하신 말씀은?”

“아바마마께서 동호변경백께 친서를 보내신 것으로 압니다. 상서령복이실 때에, 그 친서를 보셨는지요?”

“보았지요.”

“저희는 진심입니다, 한승어사.”


보긴에웨르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다시 찻잔을 들었다. 차를 한 모금 들이키며, 곁눈질로 개염지를 바라보았다.


이 자리에서? 이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하자는 것인가?


“글쎄요. 가산군주께서도 아시겠지만, 제가 그런 이야기를 나누어도 될지...”


보긴에웨르는 조심스러웠다. 상서령복의 자리는 내려놓았고, 한승어사의 직함은 실상 사칭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니, 실상 보긴에웨르가 뭐라고 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문제는, 가산군주 개염지가 그런 보긴에웨르의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신으로서 오셨지 않습니까, 한승어사.”


개염지의 은빛 눈동자가 반짝였다.


“게다가, 한승어사께서 언제까지 탱게르어뤄 바깥을 돌 거라 생각지도 않구요.”


보긴에웨르는 씁쓸하게 웃었다. 확실히, 그것만큼은 개염지가 말한 대로였다.


“지금 당장 무엇을 약속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한승어사. 저는 저의 아버지 심양왕(沈陽王) 개훤(開䁔)의 장자입니다, 한승어사 보긴에웨르.”


보긴에웨르는 개염지가 말하는 의미를 즉시 알아들었다. 산왕국은 장자가 왕위를 이어받고, 제국의 옥패수탐과 같은 전통은 없었다. 즉, 개염지 본인에게 별 일이 없는 이상에는, 개염지가 산왕국의 왕위에 오른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개염지가 말하는 것은 이런 뜻임에 틀림없었다. 지금 당장 서로 간에 무엇을 약속하지 못하여도 좋다. 그러나 보긴에웨르는 한승상의 자리에 오를 것이고, 개염지는 산왕국의 왕위에 오를 것이다.


그 때에, 옛 약속을 지킬 수 있다면 서로 간에 나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말씀하시는 바는 잘 알겠습니다.”


보긴에웨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실상, 산왕국과 우리 제국 간에 다툼이 없다면, 서로 간에 나쁠 것이 없겠지요.”


보긴에웨르는 여전히 찻잔을 어루만지는 개염지의 하얀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시선을 더욱 내려 마찬가지로 찻잔을 만지고 있는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가산군주?”

“어렵겠지요.”


개염지는 태연히 대답하면서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보긴에웨르의 시선이 다시 개염지의 손가락으로 향했다가, 개염지의 얼굴로 향했다. 도자기로 빚은 듯 맑고 하얀 얼굴에는, 의외로 별다른 걱정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은 그리 될 것입니다.”


보긴에웨르는 대답하는 대신에, 개염지의 말을 기다렸다. 개염지는 손을 들어, 얼굴께로 흘러내린 은색의 머리칼을 정리했다. 희고 긴 손가락에 걸린 머리칼이, 귀를 타고 개염지의 목선을 따라 흘러내렸다.


“산왕국은 제국을 침공할 힘이 없습니다, 한승어사.”


개염지의 말에, 보긴에웨르는 놀란 눈으로 개염지의 눈을 바라보았다.


제국은 산왕국에 있는 개염지의 입장에서 보자면, 적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스스로도 제국의 높은 자리에 오를 거라 말한 자신의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보긴에웨르는 알 수 없었다.


“제국은 산왕국과 싸울 의지가 없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초지(草地)보다 산이 많은 땅이니, 제국 입장에선 먹음직스럽지 않은 땅입니다. 얻을 것은 적고, 잃을 것은 많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시면, 한승어사께서는 제게 얻을 것이 있을 것입니다.”


보긴에웨르는 피식, 웃고 말았다.


“저희 황녀님과 교류가 잦다 들었습니다만.”

“차우마랄 황녀님과는, 서신으로나마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아무래도 제 생각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군요.”


보긴에웨르는 고개를 저으며, 찻잔을 들어 얼마 남지 않은 차를 들이켰다. 그리고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친절한 미소를 가산군주 개염지에게 보여주려 애썼다.


“식사 때인 것 같은데, 조식을 드시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떻습니까?”


그리고는, 개염지에게 먼저 허락을 구하지 않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습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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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16. 남호南護 (1) 19.10.16 26 0 12쪽
127 15. 샤타르將棋 (完) 19.10.15 27 0 16쪽
126 15. 샤타르將棋 (9) 19.10.14 25 0 12쪽
125 15. 샤타르將棋 (8) 19.10.11 28 0 12쪽
» 15. 샤타르將棋 (7) 19.10.10 28 0 10쪽
123 15. 샤타르將棋 (6) 19.10.09 27 0 12쪽
122 15. 샤타르將棋 (5) 19.10.08 27 0 11쪽
121 15. 샤타르將棋 (4) 19.10.07 25 0 10쪽
120 15. 샤타르將棋 (3) 19.10.06 27 0 14쪽
119 15. 샤타르將棋 (2) 19.10.04 29 0 13쪽
118 15. 샤타르將棋 (1) 19.10.03 27 0 13쪽
117 14. 복호伏虎 (完) 19.10.01 23 0 14쪽
116 14. 복호伏虎 (9) 19.09.30 24 0 13쪽
115 14. 복호伏虎 (8) 19.09.29 25 0 10쪽
114 14. 복호伏虎 (7) 19.09.28 23 0 11쪽
113 14. 복호伏虎 (6) 19.09.26 29 0 11쪽
112 14. 복호伏虎 (5) 19.09.25 30 0 11쪽
111 14. 복호伏虎 (4) 19.09.24 27 0 13쪽
110 14. 복호伏虎 (3) 19.09.23 31 0 11쪽
109 14. 복호伏虎 (2) 19.09.22 29 0 14쪽
108 14. 복호伏虎 (1) 19.09.21 31 0 12쪽
107 13. 칸汗;王 (完) 19.09.20 3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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