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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19.07.3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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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23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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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7. 마녀와 성녀 (2)

DUMMY

88.


제로는 침을 꼴깍 삼키며 정면을 바라봤다.

겨우 눈을 뜬 세리아.

솔직히 도박이었다.

차기작의 등장인물에게 전작의 설정을 넣는다니.

될지 안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실수하면 세리아는 죽는다.


“······으음.”


어쩌면 억지였다.

원작에서 꿈을 이루지 못하고 멈춰버렸던 성녀 세리아. 그녀가 느닷없이 엔딩 월드로 흘러들어가 부득이한 희생을 당했다는 게 너무 분했다.

그래서 억지를 부렸다.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그녀의 죽음을 부정했고, 말도 안 되는 소망을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세리아는 기어코 입을 열었다.


“용사님······?”


눈을 비비고 일어나는 세리아는 더없이 고귀하고 성스러웠다. 그저 붉었던 머리카락은 금빛을 머금어, 적금발이 되었다.

한편 제로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때 아린이 세리아에게 안겨들었다.


“언니!”

“······?”

“언니! 언니! 언니!”


세리아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린의 모습을 보면서, 제로는 씻을 수 없는 죄악감을 느꼈다.

그렇다.

그는 방금 큰 죄를 지었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타인의 소망을 짓밟았다.

뱀심과 다를 게 없었다.

······젠장.

제로가 입술을 꽉 깨무는 사이, 세리아가 입을 열었다.


“용사님······ 이곳은 대체?”


세리아가 말하는 용사라는 단어는 잘못 들은 게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당황하는 것이나, 아린을 낯설어하는 것까지. 당혹한 시선으로 제로를 의지하는 모습은 당연했다.


‘성녀 세리아······.’


상황의 이변을 깨달은 에비나가 제로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된 거냐?”

“잠시, 잠시 혼란스러운 겁니다. 금방······.”


말을 더 잇질 못하겠다.

더는 속여선 안 된다.

방금 그가 한 짓을 솔직히 고백해야 했다. 그의 억지가 만들어낸 불의한 사고에 대해서······.

[비명횡사]로 쓰러진 [마녀 세리아]의 위로 전작의 설정인 [성녀 세리아]를 억지로 덮어씌웠다는 사실을.

때문에 [마녀 세리아]가 지워지고, [성녀 세리아]만 남았다는 사실을.

이들은 알 자격이 있었다.


“에비나님. 잠시 저 좀 보시죠.”


그렇다고 저토록 좋아하는 아린에게 진실을 바로 말할 순 없었다. 대신 에비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챈 사람들도 따라 나왔다.

제로는 바짝 마른 입술을 몇 번 들썩이다 겨우 입을 열었다.

말해야 한다.


“세리아는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이정민이 물었다. 제로는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저쪽에 있는 세리아는 마녀 세리아가 아니라.”

“······?”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리아의 몸속에 있는 ‘성녀 세리아’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지? 주인공 앞에서 사실대로 말했다간 이 세계의 비밀까지 전부 고백하는 꼴이었다.

자칫 개연성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일.

전작 등장인물의 설정을 연재작 등장인물에 심었다는 걸 어떤 독자가 납득할 수 있을까.


‘아니, 어차피 알아야 할 일이야.’


제로는 속으로 숨을 삼켰다.

눈을 뜨지 못하던 세리아가 되살아났다면 그만한 이유가 필요하다. 작가가 설정한 [비명횡사]를 이겨낼 만한 개연성을 설명해야 했다.

그러니까 이정민도 알아야만 한다.


“지금 세리아의 몸속엔 다른 영혼이 들어있어.”


물론 조금의 각색을 더해서.


“다른 영혼이요?”

“응. 세리아의 몸속엔 다른 세계의 세리아가 들어있어. 우리 세계의 ‘섭혼술’이란 비술을 쓴 거야.”

“섭혼술이요?”

“영혼을 넣어 생명력을 촉진시키는 기술이야.”


정확하게는 마족이 인간의 신체에 마령을 심어, 마인을 만드는 기술이었다. 제로의 원작에선 금기로 알려져 있다.

물론 여기선 아니었다.


‘당장 상황을 설명하기엔 훌륭할 뿐이지.’


에비나는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자세히 설명해 보거라.”


제로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서 빠짐없이 전달했다.

어쩌면 ‘마녀 세리아’는 다신 눈을 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자신의 사람을 살리기 위해 억지로 영혼을 불어넣었다는 것까지.

모든 걸 전해들은 사람들은 침묵했다.

케이플락과 구민정은 씁쓸한 얼굴로 제로를 바라봤다.

두 사람은 엔딩 월드의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사건의 전말을 전부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정민이나 에비나는 모른다.

그들의 입장에선 타 세계에서 나타난 침략자나 크게 다를 바 없는 셈이다.


‘용서받을 생각은 없다.’


그가 이런 상황을 전혀 몰랐을까?

아니, 충분히 예상했다.

자칫 잘못하면 마녀 세리아는 사라지고 성녀 세리아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누구보다 먼저 깨달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했다.


그의 설정이,

그의 집념이,

그의 테네시티 신드롬이.


‘세리아를 살리라고 말하고 있으니까.’


[설정 ‘테네시티 신드롬’을 발동합니다]


공교롭게도 제로가 꽂힌 여자는 ‘마녀 세리아’가 아니라, ‘성녀 세리야’였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젠장.


“아저씨?”


아린이 뒤늦게 방에서 나왔다. 제로를 둘러싼 무거운 분위기에 머리를 갸웃했다.

그리고 말한다.


“언니가 좀 보재.”


열린 문틈으로 세리아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덜컥, 방문이 닫히면서 숨 막힐 듯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제로를 바라보는 세리아는 어떤 눈을 하고 있을까.

원망할까?

고마워할까.

어쩌면 반가워해줄지도 모르겠다.

그저 바람이려나······.

연재중단 된 이후로 정식으로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로도 약간 기대감을 안고 있었다.


“여긴 저희의 세계가 아니군요.”

“······눈치 챘습니까?”

“처음엔 잘 몰랐어요. 당황했거든요. 전 분명히 죽었어야 하니까요.”


제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리아도 아직 말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이 나요. 마녀, 재해의 땅, 아린······ 모두 떠올라요.”


제로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지금 ‘성녀 세리아’라면 모르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성녀’가 아닌 걸까?


“용사님.”

“······!”

“당신은 개연성을 비틀었어요.”


제로는 세리아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금발과 적발이 어우러진 머리카락, 그리고 얼굴에 나타난 표정.

그녀는 웃었다.


“고마워요.”


제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성녀 세리아를 살린 일.

한 치의 후회도 하지 않는다. 설령 테네시티 신드롬이 없었더라도, 제로는 그녀를 살렸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고맙다는 말.

적어도 되살아난 그녀에게서,

마녀 세리아의 입술로 들어선 안 되는 단어였다.


“······아닙니다.”


세리아는 말을 잇는다.


“그리고 죄송해요.”

“네?”


웃고 있는 세리아의 눈에서 눈물이 또륵 떨어졌다.


“용사님.”


제로는 세리아의 말을 기다렸다.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어째선지 말을 끊어선 안 될 것 같았다.


“저는 세계를 구하고 싶었어요. 비탄에 빠진 백성을 살리고, 우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죠. 그건 단순히 제가 성녀이기 때문이 아니에요.”


세리아는 닫힌 문을 바라봤다. 쓸쓸한 시선 너머로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저는 성녀가 아니라도 같은 꿈을 소망했을 거예요.”


성녀이기 때문에 세계를 구하는 게 아니다.

세계를 구하기 때문에, 성녀였다.


“전 그런 사람이니까요.”


제로는 입술을 달싹이다 다시 닫았다.

세리아의 말이 무얼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대단한 의미가 없어도 그저 그런 이유로 꿈을 꾸는 이유는 딱 하나였으니까.


“······아이덴티티인가요.”


제로는 쓸쓸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성녀를 보며 앞으로의 이야기를 미리 알 수 있었다.

단호한 그녀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어떤 선택을 하는지도.


“제 소망은 여전해요. 세계를 구하고 싶어요. 백성을 지키고 싶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눈앞의 아이를 울리고 싶진 않아요.”

“······.”

“저를 위해서 무리를 해주신 건 가슴이 뛰도록 감사해요. 신조차 감히 생각하지 못한 기적이었겠죠. 하지만 저는─”

“알겠습니다.”


제로는 한숨을 천천히 내쉬며 대답했다. 여기까지 들었는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턱이 없었다.


“당신의 뜻대로 하세요. 성녀님.”


새삼스럽지만 성녀는 원래 남의 기대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고, 원하는 목표를 위해서 뜻을 꺾지 않는 혁명가와도 같은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녀를 두고 사람들은 종종 ‘이단자’라는 아이러니한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제로는 체념한 얼굴로 물었다.


“방법은 있습니까?”

“네. 이 몸의 주인은 제가 아니니까요.”

“후······ 말려도 안 들으시겠죠?”


세리아는 쓰게 웃었다.

제로는 그 미소를 따라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바보 같다, 정말.


“용사님. 아니, 제로님.”

“말하세요.”

“부디 우리의 엔딩을 그려주세요.”


세리아는 그 말을 끝으로 눈을 스르륵 감았다. 머리색은 여전히 적금발이었지만, 그녀의 몸에 깃들었던 한 기운이 고요해졌다.

제로는 옆으로 몸이 기우는 세리아를 붙잡아 침대에 바로 눕히면서 중얼거렸다.


“······정말 무책임하다니까.”


*


세리아는 하루가 꼬박 지난 후에야 다시 눈을 떴다.


“아린!”

“언니!”


아린과 세리아는 진정한 의미에서 재회를 했고, 성녀 세리아가 눈을 떴던 일련의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제로는 세리아를 흘겨봤다.

성녀 세리아가 어떻게 된 건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단순히 [설정]으로 변해버렸는지, 정말 소멸해버렸는지.

다만 몸의 원래 주인인 마녀 세리아가 다시 눈을 떴고, 많은 사람들의 환대를 받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에요?”


세리아의 기억은 센트럴 시티에서 탈출할 시점에서 멈춰 있었다. 어젯밤 잠시 눈을 떴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많은 일이 있었어.”


아린은 세리아의 옆에 자리를 잡고 조잘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린의 설명은 생각보다 재밌는 편이라 병문안을 왔던 마녀들도 귀 기울여 들었다.

꽤나 대장정에 가까운 이야기가 끝나고, 시간이 흐른 뒤.

병문안을 왔년 마녀들이 돌아갔을 때였다.

오래 움직이지 않아 제대로 걷기 힘든 듯 세리아는 목발에 겨우 몸을 기대며 다가왔다.


“저를 살려주셨다고요.”

“도리어 죽일 뻔했는걸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 제로님.”

“네?”

“당신은 절 살렸어요. 전 진심으로 감사해요.”


제로는 세리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살짝 흘러내린 적금발이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글쎄요. 제 몸에 다른 사람의 영혼이 들어왔다는 얘기는 조금 무서웠어요.”

“······.”

“하지만 괜찮아요.”


세리아는 웃었다.

어제처럼 눈물이 함께 흘러내렸던 슬픈 웃음 같은 게 아니었다.

아침에 떠오르는 햇살처럼 싱그러운.

너무나도 맑은 웃음이었다.

그녀는 가슴에 손을 폭 얹으며 말했다.


“따뜻하거든요.”


그리고 세리아의 손이 번쩍 빛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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