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랜드의 자룡과 하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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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꽈리
작품등록일 :
2019.07.31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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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23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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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포탈이 열리고 (2)

DUMMY

여인의 시체를 끌어안고 꺼억꺼억 짐승처럼 메마른 울음을 토해내는 자룡을 발견하고 다가가던 하후은 역시 미처 알지 못했다.


미소의 피에 흠뻑 젖은 청강검의 검날에서 시작된 이상한 기운이,

봄날 아지랭이처럼 꾸물거리는 기운이,

미소의 시체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땅바닥에 깔려나가고 있음을.


자룡만 노려보며 조심스레 다가가던 하후은.

자신의 몸이 그 요상하게 꾸물거리고 있는 원안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찾았다. 이 치사한 놈!”


하후은이 소리쳤다.

자룡은 귀머거리가 된 듯 등을 보인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서 일어나 칼을 잡아라. 등짝에 칼을 꽂지 않겠다. 어서 일어나.”


하후은은 적의 등에 칼을 꽂는 비열한 행위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는 자룡에게 화가 치밀었다.


“사람 개무시하네. 그래 니가 나보다 잘 싸운다 이거지.”


미소를 읽은 슬픔에 제정신이 아닌 자룡.

상황 파악 못하고 혼자 주절대는 하후은.


“그래 니가 나보다 조금, 쪼금, 아주 쪼오금 더 잘 싸운다. 인정해주지. 그래도 이렇게 사람말 무시하면 더는 못 참는다. 어서 칼을 잡아라!”


자룡은 자신의 등 뒤에서 뭔가가 시끄럽게 웅웅대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 잡소리가 사람의 목소리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정체불명의 원은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퍼져나가고 있었다.


“야! 나, 비겁해진다. 비겁해지고 말거야. 등에 칼 꽂는다, 진짜루다가.”


하후은은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마을 외곽 저 멀리서 간혹 함성 소리가 들려 올 뿐이였다.

조자룡의 등 뒤에 칼을 꽂아도 목격자는 없을 것이다.

하후은이 수다쟁이에 규범과 규율 따위는 애저녁에 돼지우리에 처박은 인간이었지만

비겁한 짓을 한 적은 없었다.

나름대로의 공명정대함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정말로 자룡의 등에 칼을 꽂는다면?


‘장판파의 요괴를 처단했다는 명성이 조조 군내에 널리 퍼지겠지. 그러면 이전에 저질렀던 잘못도 상쇄되고...’


하후은이 칼을 쥔 손에 힘이 빡 들어갔다.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룡의 등에 칼을 꽂아도 아무도 모를것이다.’


이때쯤에는 자룡도 등 뒤에 조조의 병사가 있음을 알았다.

알고 있었으나 이대로 미소의 시체를 끌어안고 함께 죽고 싶었다.


하지만 ‘아두’가 있었다.

유황숙에게 아두를 찾아서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던가.

미소도 죽어가면서 ‘아두’를 부탁하지 않았는가.

살아야한다.


등 뒤에서 살기와 검기를 동시에 느꼈다.

하후은이 칼을 들고 공격을 해왔다.

자룡은 미소의 가슴에 꽂혀있던 청강검을 빼들고 몸을 휙 돌려 하후은의 칼에 맞섰다.

이때 청강검이 뽑히는 순간 미소의 가슴에서 핏방울이 솟구치며 피보라가 되어 땅바닥에 뿌려졌다.

피가 뿌려진 땅바닥에서 아지랑이처럼 스물거리던 이상한 기운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그리고 허공에서 두 사람의 검이 부딪쳤다.


-챙강


힘겨루기에 들어간 두 사람.

자룡은 자신의 가슴께 포대기에 잠들어있는 아두 때문에 행동이 불편했다.


“비겁한 놈! 등 뒤에서 공격하다니.”


자룡이 하후은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치사한 놈! 못 듣는 척 하더니.”


하후은이 마주보며 으르렁댔다.


둘이 칼날을 부딪힌 채 힘겨루기에 들어간 사이 땅바닥의 원은 급격하게 넓어지며 두 사람이 서있는 공간까지 넓어졌다.


안개처럼 스믈거리며 이상한 기운이 두 사람의 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그제서야 뭔가 이상함을 느낀 자룡과 하후은이 바닥을 내려다봤다.

그런데 몸이 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

“이게 뭐야? 조자룡 네 이놈 이젠 사술도 쓰느냐.”


자룡과 하후은의 몸이 무중력 상태라도 된 듯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가 싶더니 충격파가 일어나 공간이 크게 일그러졌다.

그러다 무중력 공간이 소용돌이처럼 천천히 회오리쳤다.

땅 위에서 무릎정도 높이에 떠 있던 자룡은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전에 ‘아두’를 품에 꼭 끌어 안았다.

밖에서 보면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는 거대한 물방울 안에 사람이 갇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한번 묵직한 충격파가 터지고 물방울 구체 안에 갇혀서 빙글빙글 돌아가던 자룡과 하후은, 아두가 사라져버렸다.

아지랑이 물방울 구체는 그 소임을 다했다는 듯 스르륵 땅으로 스며들 듯이 자취를 감췄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해지는 우물가.

황량한 우물가에는 자룡의 볼을 쓰다듬던 미소의 손이 추욱 늘어져 있다.



* *


가을 단풍이 우거진 산길을 따라 한무리의 남녀가 각자 짐을 메거나 이고 올라가고 있었다.

40대에서 이십대로 보이는 남자들은 딱 봐도 꽤 무게가 나갈듯한 박스를 등에 메고 있었고

대부분 이십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자들은 커다란 비닐백에 행사용품으로 보이는 물건들을 들고 있었다.


산길에 짐을 들고는 있었지만 남녀 모두 말쑥한 차림새다.

남자들은 검은색 양복으로 통일되있고 여자들은 회색계열의 롱스커트 원피스를 입고 있는데 다리쪽이 무릎 위까지 트여있어서 치파오를 연상케했다.


마치 산 위에 호텔이라도 있고 그 호텔의 레스토랑 종업원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와 급히 식재료 박스와 생일파티 이벤트 물품을 옮기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00현에 위치한 이 산에는 산 정상은 물론이고 산 중턱에도 호텔은 고사하고 다 쓰러져가는 여관 하나도 없었다.

그럼 이 레스토랑의 종업원처럼 보이는 남녀들은 다 뭐란 말인가?


가을이라 선선한 바람이 불어주고 있음에도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 송글 맺히도록 부지런히 발걸음을 놀리며 올라가고 있는데 행렬 뒷편에서 남자 한명이 외쳤다.


“왼편으로 밀착!”


이미 여러번 겪은 일인지 행렬의 남녀들이 익숙하게 오솔길의 왼편으로 달라붙었다.

그렇게 오솔길에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 공간으로 어깨에 가마를 을러맨 인력거 두 대가 지나갔다.

앞에 가는 한대는 등산복 차림새의 중년 남성이 앉아있고 뒤 쫓아가는 가마에는 ‘나 파티하러 가요’ 광고하는 드레스를 걸친 젊은 여성이 타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얼굴에는 파티용 가면을 쓰고 있었다. 여우 가면을 쓴 여자가 동물원에서

미어캣을 구경하듯이 쪼르르 서있는 한무리의 남녀를 바라봤다.

가면에 가리어진 얼굴이라 불쌍하게 보는지 신기하게 보는지 표정을 읽을수가 없었다.

멀어지는 가마를 보며 맨 앞줄의 40대 남자가 잠시 쉬었다 가자는 말에 다들 짐을 바닥에 내려놓고 쉬었다.


“돈 많으면 금수강산, 돈 없으면 적막강산이라더니.. 여긴 죄다 적막강산이네.”


누군가 투덜대는 것을 신호로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서빙하는 걸로 알고 왔는데 뭐 이런 걸 다 시켜”


“상황이 그렇게 된 걸 우리가 이해해야지 뭐.”


“남자는 그나마 신발이라도 편하지. 하이힐이야. 하이힐. 우리 여자들은.”


“여자는 가벼운 거 들었잖아.”


“어유 바꿔. 자, 바꿔. 바꿔. 어유 남자가 되가지고. 여기 소정씨를 봐. 남자들만큼 무거운 걸 들고도 아무 소리 안 하잖아.”


소정이라고 지목된 스무살 초반의 여자가 물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다가 다투는 사람들을 보며 싱긋 웃었다.


“ 전 괜찮아요. 다투지 말고 얼른 올라가죠. 가서 쉬어요. ”


소정의 말에 맨 앞줄의 40대 남자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40대 남자는 주임의 직책을 맡고 있었고 그가 땀을 훔치며 말했다.


“자, 갑시다.”


사람들은 다시 몸을 움직였다. 별로 산세가 깊을 것도 없고, 고산준령이란 단어랑은 애초에 거리가 있는, 별 특색없는 야산이라 산책 삼아 쉬엄쉬엄 올라가면 마춤할 오솔길이었지만

산행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과 신발, 그리고 짐을 들고 있는 탓에 숨이 깔딱거릴 즈음에서야 오솔길의 끝, 그들이 짐을 부려 놓아야 할 목적지에 당도할 수 있었다.


오솔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수목에 가려져 있던 시야가 탁 트이며 들판이 나왔다.

들판에는 리조트 건물 몇채.

그리고 천막들이 보였다.

짐을 들고 온 소정의 일행들이 에구구 앓는 소리를 내며 짐을 내려놓는 뒷편으로

그들이 도착한 목적지의 풍경이 좌라락 펼쳐지는데.. 천막의 바다다.

산중턱에 위치한 널찍한 들판에 각양각색의 크기와 색깔의 대형 천막과 차양, 천막형 텐트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들판이 끝나고 숲이 시작되는 지점에는 용도불명의 대형 무대 세트도 설치되어 있다.

무대 앞에는 원형 테이블 수십개가 세팅되어 있는 폼이 밤이 되면 디너쇼라도 할 기세였다.

원형 테이블이 끝나는 지점에는 길다란 테이블에 야외 뷔페가 차려져있었다.

아직 음식이 담겨있지 않는 빈 그릇들이 더 많고 약간의 케익과 과일, 커피와 차. 와인이 준비되어 있지만 곧 음식이 준비될 것이라는 걸 소정은 알 수 있었다.


소정과 나머지 일행들이 힘들게 들고 온 박스와 짐들이 저 뷔페의 메인 요리에 해당하는 식재료들이였다.

주방 파트에서 실수가 생겨 메인 식재료를 버리는 통에 급하게 공수해 오고, 당시에 남아도는 인력이 서빙쪽 담당 인원들이라 생각지도 못한 노동을 하게 된 거였다.


예정된 일이 아닌 추가된 노동이였기에 사람들은 불평 불만을 터뜨렸지만 소정은 묵묵히 일을 했다. 뭐 세상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산전수전 다 겪어낸 노병의 풍모를 풍기며 일회일비 하지 않는 믿음직스런 모습으로 일했다.

지금도 짐을 부려놓고 사람들은 시원한 냉수 마시기에 바쁘지만 소정은 먼저 주방 인원을 도와서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40대 남자가 그런 소정을 흡족한 마음으로 눈여겨 봤다. 자신을 눈여겨 보는 조장의 눈빛을 소정은 눈여겨 봐두며 그 눈빛에 부응하듯 더더욱 열심히 일했다.


소정은 알고 있었다. 저 물러터지고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는 남자가 실상은 이 곳에 일하러 온 알바들을 체크하고 있는 감독관이란 것을.

저 남자는 알바들 틈에 섞여 함께 일하면서 불평분자를 가려냈다.

불평분자로 낙인찍히면 다음 알바 자리는 날아가는 것이다.

‘이 곳’ 의 알바는 페이가 쎄다.

별 힘들 것도 없는 일을 오일동안만 하면 어지간한 식당일이나 패스트푸드 점에서 한달치 일하는 것과 맞먹는 돈이 나왔다.


일이 자주 없다는 게 흠이고 언제 일이 들어올 지 모르고, 일이 들어오면 오일간 묶여지내느라 기존 직장에서 휴가를 얻어내기 힘든 점이 있었지만 한달치를 단 오일만에 버는데 그 정도 흠이 뭔 대수란 말인가.

게다가 소정은 여기 오기 전에 직장은 짤리고 월세는 밀리고 우울이 파도를 치는 위기상황이었다.


40대 위장 알바 감독관의 눈도장을 확실히 받았다고 여긴 소정이 그제서야 허리를 피고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마시며 다시 한 번 ‘이 곳’ 의 풍경을 둘러봤다.


‘이 곳’ 은 유물 블랙마켓이었다.

중국에서 도굴된 유물은 물론, 유럽, 중동, 아메리카 등지의 고대의 유물들까지 취급했다.

중국이 경제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전에는 유물 블랙마켓은 미국과 중동의 부호를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중국이 부상하면서 그 막강한 재력으로 세계시장을 재편했듯이 유물 블랙마켓 역시

차이나 자본이 밀려들면서 재편되었다.

게다가 중국의 부호들 중에는 고대 유물 애호가들이 많았다. 그들은 일반 대중들보다 차별화되기를 원했고 그들의 입맛에 맞춘 유물 블랙마켓이 등장했다.

‘이곳’은 차별화되기를 원하는 중국 부호들을 위해 철저히 엄선된 고객 관리 시스템을 채용했다. 함부로 끼여들 수 없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이 곳’ 의 비밀회원이 된다는 것은 중국에서 ‘진짜’ 성공한 인물이라는 뜻이였다.


“소정씨”


소정이 돌아보자 40대 주임이 쟁반에 샴폐인이 담긴 잔을 들고 서 있었다.


“네, 주임님”


“이걸 저기서 얘기하고 계시는 분들께 드려요. 높으신 분들이니까 서비스에 실수 없도록하고”


주임이 눈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세련된 블랙 투피스 정장을 차려입은 40대 중반의 여성과 가면을 쓴 양복입은 남성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여성은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 말은 저 여성은 ‘이 곳’ 의 직원이라는 의미였다. 아마도 관리자쯤 되지 않을까, 싶었다.

소정은 쟁반을 넘겨받아서 ‘높으신 분’ 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높으신 분’ 들을 위한 서비스는 아무한테나 맡기지 않았다. 주임이나 부주임이 맡았는데 그 임를 소정에게 주었다는 건 주임이 소정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주임의 신뢰를 받았다는 건 다음 일자리도 확실히 ‘콜’을 주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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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임포탈이 열리고 (2) 19.08.23 31 0 13쪽
17 타임포탈이 열리고 (1) 19.08.22 39 0 13쪽
16 장판파의 요괴 (8) 19.08.21 29 0 13쪽
15 장판파의 요괴 (7) 19.08.20 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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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장판파의 요괴 (3) 19.08.15 2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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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장판파의 요괴 (1) 19.08.14 57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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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생존의 길 (1) 19.08.10 36 0 13쪽
6 내 이름은 조자룡 (2) 19.08.06 36 0 13쪽
5 내 이름은 조자룡 (1) +1 19.08.03 50 1 12쪽
4 호기심 많은 신병 (3) 19.08.02 55 0 12쪽
3 호기심 많은 신병 (2) 19.08.01 60 0 12쪽
2 호기심 많은 신병 (1) 19.08.01 8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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