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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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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8.07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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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7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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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화. 사신도

DUMMY

왕은 말이 없었다.

앞에 놓인 그림을 펼쳐보라는 지시도 없었다.

장민은 초조했다.

단지 월식이 있는 날이라서 왕의 심중이 어두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일부러 이 날에 맞춰 그림을 대령하라고 했던건 왕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무엇 하나 반기지 않은 채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벌써 일각이 넘게 네 개의

두루마리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방안 공기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한손의 염주를 돌리려 해도 지금 이 안의 공기는 염주알이 맞물리는 소리마저 허용치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왕의 침묵을 거스르고 싶지는 않았다.


스윽.


용포가 침전 바닥에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장민은 그 서늘한 소리에 감았던 눈을 떴다.

왕이 일어서는걸 보고 장민도 서둘러 일어나 옆으로 비켜섰다.

왕이 두루마리 앞에 절을 올렸다.

그 움직임이 하도 깊고 서러워서 장민은 코끝이 시려왔다.


‘나무관세음보살’


왕은 두루마리에 손을 얹고 또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번에는 뭔가 축문을 외듯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장민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 장민의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소리가 그와 똑같을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문틈사이로 살짝 바람이 불어오는 듯하더니 두루마리가 좌우로 살짝 흔들렸다.

제일 오른쪽의 두루마리에서 푸른 연기가 피어났다.

그리고 다른 두루마리에서 붉은 연기가 새어나오는 듯 하더니 또다시 검은 연기와 흰 연기가 뒤섞이면서 다시 네 개의 그림 속으로 스며들었다.

왕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새나왔다.


“이제 그만 가거라.”


속으로 불경을 외던 장민이 염주를 내려놓았다.


“아직 그림을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본들, 달라질게 있겠느냐.”

“하오나 전하.”

“나의 진심과 너의 재주를 이 안에 쏟아 부었다면 하늘도 우리의 뜻을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럼 전하의 명으로 움직인다는 작은 정표라도 담아주십시오.”

“정표라...그것이 화를 불러올 수도 있을터인데.”

“그 화가 두렵다면 그림을 그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왕이 고개를 저었다.


“밖에 있느냐?”


문이 열리고 환관이 들어왔다.


“예, 전하.”

“월식은 얼마나 지났느냐?”

“날이 흐려 선명하지는 않으나 이제 막 손톱만큼 검어진 듯합니다.”


왕이 장민쪽으로 두루마리를 밀어놓자 환관이 얼른 다가 와서 두루마리를 정리하려고 손을 댔다. 순간 두루마리가 부르르 떨리면서 흰 연기를 뿜어냈다. 환관이 뒤로 자빠졌다.


“저,.. 전하.”


환관의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벌벌 떨리는 소리로 입을 열었다.

왕이 괜찮다고 손짓을 했지만 환관은 쉬이 다가서지도 못하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전하...불에 데인 듯. 가시에 찔린 듯...”


환관이 제 손을 살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자 장민이 다가와 두루마리를 묶었다.

그제야 흰 연기는 다시 그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장민은 왕을 향해 절을 올렸다.

왕에게 작은 표식이라도 남겨달라고 했던 말은 이제 필요 없어졌다.

이 그림 네 장이 누구의 손도 허용치 않는다는 것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


개경을 떠난지 사흘째.

동쪽 끝 삼척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반나절은 더 걸어야한다.

월식을 틈타 어두운 산길을 걸어 도성을 막 빠져나와 쉼 없이 걸었다.

하루라도 빨리 동서남북 가야할 곳에 당도하려면 그래야했다.

이틀 만에 발바닥이 갈라지고 물집이 잡혔지만 장민은 쉬지 않고 걸었다.

암자가 나타날 때 마다 부처님께 절했고 작은 돌탑하나를 봐도 지나치지 않고 왕의 평안을 기원하는 불경을 읊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나라가 흉흉하다보니 백성들 살림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도 도적떼가 들끓는다던데 장민은 용케 그 환난을 피해갔다. 행색이 중의 차림인데다 기골이 장대한 육척장신이다 보니 지나는 사람이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때로 장민이 등에 걸머진 두루마리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장민이 한번 쏘아보기만 하면 이내 가던 길을 가곤 했다.

하지만 삼척을 목전에 두고 장민은 발목이 잡혔다.


“어이, 이리 오너라!”


해가 막 질 무렵, 장민의 눈앞에 산도적 세 명이 마주섰다.

보이는건 세명이었지만 숲속 바람이 이는 소리로 보면 몇 명 더 근처에 숨어 있는 듯 했다.

장민이 모른 척 지나치려는데 놈 중의 하나가 장민의 삿갓을 툭 쳤다.

구멍 난 삿갓이 땅에 떨어져 저만치 굴러갔다.


“하이고, 중놈 아니신가. 중놈께서 어딜 이리 바삐 가시나? 어디서 괴기 삶는 냄새라도 맡으셨나?”


놈들은 즈이들끼리 낄낄대며 웃더니 한 놈이 장민의 등 뒤로 와서 두루마리를 툭툭 쳤다.

장민은 그 전에 이미 등 뒤의 두루마리가 떨리고 뜨거워지고 있는게 느껴졌지만 놈은 눈치 채지 못하고 덜컥 그림에 손을 댔다. 그리고는 뒤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그 결에 나머지 두 놈이 얼른 뒤로 물러서며 싸울 태세를 갖췄다.


“뭐야, 왜 그래?”

“이거 이거 수상한데? 저놈 저거 등 뒤에 매단거 불기둥이라도 숨긴거 같아.”

“야, 너 취했냐, 어느 미친놈이 불기둥을 숨기고 다녀? 그림 말아 놓은거 같은데?”


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산속 어딘가로 번개가 내리쳤다.

그리고 지축을 흔드는 천둥소리.


쿵콰콰르르릉!


“으아악~”


두루마리에 손을 댔던 놈이 머리를 싸매고 벌벌 떨었다.

겉보기엔 세상 무서울게 없는 사내들이었지만 겨우 천둥 번개소리에 움츠려드는 꼴을 보면서 장민은 다시 가던 길로 나섰다.

두목인 듯 보이는 놈이 장민을 막아섰다.


“그거 내려놔.”

“비키시오.”


두목은 되려 한걸음 더 장민에게 다가섰다.


“구경 좀 하자고. 그게 뭔데 우리 동생이 저렇게 주저앉아서 오줌을 질질 싸고 있냐고.”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에이씨, 비오잖아. 빨리 보고 각자 갈길 가자니까, 중놈아.”


빗방울이 그림에 떨어지기 시작하자 그림에서 허연 연기가 솟아올랐다.


“저봐, 저거 봐. 봤지 형님? 저게 그림일 리가...”


사내 둘은 놀라 뒤로 물러섰지만 두목은 무섭지 않은 양 그림에 손을 대고 벗겨내려고 애썼다. 인두에 지진 듯 그의 손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열기에 두목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내 얼굴이 점점 편안해지면서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비 때문이었다.

그림이 비를 맞으면서 기운을 잃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 두목이 그림을 벗겨내려고 하자 장민이 얼른 몸을 돌렸다.


“물러서라. 왕의 명을 받드는 중이다.”

“왕? 그게 뭐지? 이 나라에 왕이란게 있긴 했나?”

“무엄하다.”

“아이고 무서워라. 중놈이 인상 쓰고 덤비는걸 보니 아직 수양이 덜 됐네. 중님은 산에 가서 독경이나 더 하시고 그거 내려놔. 왕의 명은 우리가 대신 행해줄테니.”


비는 쏟아지고 등이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지자 장민은 조급해졌다.

비를 피해야한다.

기름을 먹인 비단이긴 해도 더 이상 비를 맞았다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쭈그러들지 모른다.


퍽퍽!


난데없이 날아온 주먹에 장민이 비틀거렸다.

순식간에 코피가 터져 땅바닥을 적시고 이내 빗물에 씻겨 내려갔다.

한 놈이 바랑을 벗기려 하고 한 놈은 장민을 때려눕혔다.

예상대로 숲속에서 몇 놈이 더 나타나서 장민에게 발길질을 해댔다.


헉. 억. 안 돼.


장민에게서 단말마같은 비명이 새어 나왔다.

눈두덩이 터지고 감겨지는 눈 사이로 그림을 들쳐 메고 멀어지는 놈들의 모습이 보였다.


‘전하...’


이미 사방이 어두워졌고 멀리 큰 번개가 하늘을 갈랐다.


쿠르릉 쾅쾅!


*****


“곽도사! 일어나. 응?”


누군가 곽노수의 다리를 툭툭 찼다. 곽노수가 눈을 떴다.


“여긴 어디요?”

“이 양반 졸업할 때 됐다고 교실 번호까지 까먹은거요?”


창틀 너머로 쏟아지는 빗줄기가 보였다.

장마다.


“3219번.”

“네,, 3219번”


문밖의 부름소리에 곽노수는 저절로 복창했다.


그렇다. 여기는 00교도소 13번 방. 나는 3219번 곽노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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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 동전 던지기 19.08.14 14 0 12쪽
15 15. 수상한 나무상자 19.08.13 1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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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 8인회의 동상이몽 19.08.12 15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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