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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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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8.07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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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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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백호도의 저주

DUMMY

다음 뉴스입니다.

고구려 강서고분에서 발견된 그림으로 잘 알려진 사신도.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우리에게 꽤 익숙한 그림이지요. 일필휘지로 휘두른 듯한 생동감 넘치는 사신의 모습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고구려인들의 민족적 기상과 예술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신도, 바로 청림미술관의 백호도와 몇 년 전 TV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됐던 청룡도, 그리고 해외로 밀반출 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작도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계실겁니다. 세 작품 모두 한 사람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지만 언제, 누가, 왜 그렸는지 정확한 연대와 작자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는데요. 사신도의 마지막 한 장, 바로 현무도의 행방이 일본에서 전해졌습니다. 도쿄 현우진 특파원의 보도입니다.


“그만.”


정회장의 손짓에 김세원은 태블릿에 담아온 일요일 정오 뉴스를 중단시켰다.


드르륵.

드르르륵.


한 시간 전 쯤 사신도 관련 뉴스가 나가고 난 뒤 부터 정회장과 김세원의 핸드폰에서는 쉴새 없이 진동음이 울려댔다. 취재요청 문자는 말 그대로 폭탄처럼 들어오고 있었고 미술관과 사무실 전화에도 불이 났다. 개중에는 아는 기자들도 있었지만 이럴 때는 차라리 안 받는 편이 낫다.


“또 저놈의 민족적 기상, 예술혼. 뭐 볼 줄이나 알면서 나불대는건지.”


정회장이 자신의 핸드폰을 소파에 던져놓고 골프 퍼팅기 앞으로 다가섰다. 김세원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때문에 공의 위치가 잘 보이지 않을까봐 블라인드로 실내 조도를 조절하고 한발 건너 정회장을 마주볼 수 있는 자리에 섰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보자에게 당분간 발설하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는데.”

“그런데 그 사람이 어째 우리 김실장 말을 안 들었을까?”


정회장이 공을 살짝 밀었다.


“아야야야! 에이, 또 샜네.”

“상체를 좀 더 숙여 보시는게..”


하지만 공은 연거푸 샛길로 빠지고 말았다.


“아, 맘에 안 드네. 김실장 한번 쳐봐”


이럴 때 조준을 정확히 할지 살짝 빗나가게 해서 파트너와 똑같이 실패로 몰아갈지는 그날 상대방의 기분에 달려있다. 지금 정회장은 짜증지수 100이다. 별일 아닌 척 떨림 없는 목소리로 가장하고 있지만 김세원이 현무도에 대한 보고를 시작했던 지난주부터 정회장에게서 미세한 변화가 보였다. 모든 스케줄은 취소되었고 회장실은 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딱히 누굴 만나고 뭔가 명령을 내리는 것도 없이 정회장은 그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거나 몇 걸음 걸으며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그도 그럴 듯이 30년 전 잃어버린 자식이 살아있다는데, 마음 같아서는 일본열도를 뒤져서라도 현무도를 찾아오고 싶을 것이다.


그 바람을 산산이 부셔버린 김세원에게 태연하게 골프채를 건네는 정회장.

이럴 땐 그 심사를 읽으려 눈치볼 것도 없이 단 번에 공을 쳐버리고 얼른 이 자리를 떠야한다. 김세원은 자세한번 교정하지 않고 한 번에 홀인을 성공시켰다.


“나이스~ 내가 이래서 김실장을 좋아해.”

“제가 무라카미씨를 다시 만나보고”

“아니, 그냥 둬. 딴에는 몸값 한번 올려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뉴스 인터뷰에서도 현무도를 봤다는 말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일본 학회 때 저한테 한소리하고 똑같아요. 봤지만 언제 어디서 봤는지는 말해줄 수 없다. 하지만 믿어야한다.”

“그거 믿는 바람에 김실장이 지금 이렇게 쫄아있는잖아. 내 앞에서.”

“그러니까 제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정회장은 금세 싫증이 났는지 골프채를 지팡이 삼아 짚고 창가로 향했다. 미술관 뒤편 정회장이 가꿔놓은 숲길에 제법 꽃이 많이 피었다. 정원사가 지나가다가 정회장을 발견하고는 90도로 허리 굽혀 인사를 건네자 정회장은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돌아섰다.


“어떻게?”

“무라카미씨 주변 인물들 조사하고 있습니다.”

“싸구려 수집가, 아니면 촌동네 사학자 나부랭이들, 뭐 그런?”

“아, 그게 저.”

“저런 종자들 한 두번 보나, 그냥 두면 고개 숙이게 돼있어. 김실장도 그자가 와서 무릎 꿇길 바라잖아.”

“하지만 회장님이 오랫동안 기다리시던건데..”

“내가 당장 죽는 것도 아니고. 언젠간 이 손에 들어오겠지. 안 그래 김실장?”

“네.”

“백호도 특별 전시회나 한번 준비해봐. 최대한 빨리.”


회장실을 나온 김세원은 그제야 심호흡을 했다.


“망할 늙은이.”


얼결에 튀어나온 말에 김세원은 흠칫 주변을 둘러봤다. 누군가 그 말을 들었다면 정회장을 향한 일갈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 정회장이 누군가? 큐레이터 김세원을 만들어준 사수였고 은인인 사람. 그럼에도 김세원은 지금 터져 나온 마음의 소리가 누굴 향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


에둘러 말하는 화법으로 20년 동안 자신의 목줄을 잡고 있는 사람이 정회장이다. 어찌 보면 그건 그만큼 정회장이 자신을 믿기 때문이라는 판단이 서기는 해도 이젠 상사의 일거수일투족에 익숙할 만도 한데 정회장 앞에 서면 언제나 초긴장상태에 초죽음이 되곤 했다. 오히려 정회장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지적이고 유머러스하며 다정한 젠틀맨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그렇다고 모시는 상사의 실체는 보이는 것과 다르다고 까발릴 수도 없으니 밥벌이 때문에라도 여길 박차고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난달 김세원은 한일 민속학 세미나를 위해 교토에 들렀다가 재야사학자라는 무라카미상을 만났다. 작은 키에 큼직한 뿔테안경을 쓰고 30년은 족히 넘었을 것 같은 낡은 갈색 양복을 입은 모양새가 ‘나 학자요, 함부로 굴지 마시오’라는 말을 이마에 써 붙이고 사는 부류였다.


“청림미술관 학예사시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저희 미술관을 잘 아십니까?”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저도 한국에 갔을 때 가본 적이 있습니다. 규모나 소장품들로 봐도 한국에 있는 개인 미술관 중에서 가장 훌륭하지요.”

“감사합니다.”

“백호도는 언제 공개하실 예정입니까?”

“백호도를 아세요? 전시된 적이 없는데..”

“들었어요. 전시회 준비 할 때마다 청림그룹에 변고가 생긴다고.”


젠장. 들어도 하필.


“우연일 뿐입니다.”

“그럼 볼 수 있기는 한겁니까?”

“작품 보존상태가 좋지 않아서 아직 수장고에 보관중입니다.”

”현무도도 과히 보존상태는 좋지 않습디다.”

“현무도라면?”


김세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현무도요. 크기가 한 이만 하던가. ”


청림미술관 수장고에 보관중인 백호도는 병풍 두 폭 쯤 되는 크기로 비단에 그려진 그림이다. 무라카미가 짧은 팔을 휘두르며 문짝만한 그림이라는걸 설명할 때 김세원은 그게 자신에게 보내는 미끼라는걸 눈치 챘어야 했다.


지난번 TV에서 공개된 청룡도 역시 같은 크기에 같은 재료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감정단에서 발표했으니 무라카미도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과연 그가 현무도를 진짜 본 것인지, 본 척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기에 그를 붙잡고 소재를 확인하는 수 밖에 없었다. 김세원은 귀국 일정도 미루고 2박 3일 동안 무라카미를 쫓아다니다가 그의 연구실에서 어렵게 만났다. 하지만 그는 본적이 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소장자와 행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김실장님. 난 봤다는 사실만 얘기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은 알려고 하지마세요. 그분이 원치 않습니다.”

“그 분이라면 소장자를 말씀하시는건가요?”

“그럼 누구겠어요?”

“그럼 그분도 저희가 현무도를 찾고 있다는걸 알고 계시다는 말씀이시네요.”

“그 쪽 뿐만이 아닙니다. 귀한걸 알아보는 눈은 다 비슷하지 않겠어요?”

“알겠습니다. 돌아가서 회장님께 보고 드리겠습니다. 지시가 내려 올 때까지 만이라도”

“지시라니요? 뭔가 대단히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네요. 우리는 학회에서 잠깐 만났을 뿐입니다.”

“아니, 제 말씀은.”

“그만 돌아가 주십시오. 여긴 제 연구실입니다.”


망할 늙은이.


김세원은 모니터를 열면서 또 한 번 망할 늙은이를 되뇌었다. 백호도 특별전시회라면 망할 늙은이 무라카미를 밟아줄 기회를 만들 수 있을 될 것이다. 학자랍시고 허세를 부린거라면 한일 양쪽으로 개망신을 줘서 이 바닥에서 매장을 시켜버리는 수도 있다. 국내에서 그렇게 묻어버린 사학 쌈마이들이 한둘이던가. 그런 점에서 미술관의 전권을 일임한 정회장에게 감사해야 한다.


지금까지 김세원이 준비한 백호도 전시회만 네 번째다. 하지만

한번은 정회장 부친의 사망.

한번은 청림미술관 화재,

그리고 2012은 청림그룹의 자회사인 청림항공의 사고.


세간에는 백호도의 저주라는 소문도 돌았지만 정회장은 애도기간이라는 의미로 박물관을 휴관하면서 자연스럽게 백호도 전시를 중단시켰다. 말이 안 되는 소리라 생각했지만 우연이 세 번이나 반복되다 보니 김세원도 소문에 흔들린게 사실이다.


이번엔 무사히 치를 수 있을지.

김세원은 미술관 전시스케줄 확인에 들어갔다.

그때 문자한통이 들어왔다.


‘이필만 사장 사망’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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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 시간이 없다 19.09.06 7 0 14쪽
32 32. 아들 19.09.04 6 0 12쪽
31 31. 컬쳐클럽의 실체 19.09.03 7 0 14쪽
30 30. 저주 19.09.02 6 0 11쪽
29 29. 각자의 방식 19.09.01 6 0 13쪽
28 28화. 47분 32초 19.08.24 12 0 14쪽
27 27화. 쓰레기들 19.08.24 10 0 13쪽
26 26. 새로운 사건 19.08.23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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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 멈춰버린 상여 19.08.20 8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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