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선율 음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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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8.13 13:24
최근연재일 :
2019.11.25 14:26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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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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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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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23

작성
19.08.13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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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쪽

Intro-선율음악사의 주인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DUMMY

연세대학교에서 신촌역으로 향하는 길에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정겹기도 하면서 밤에 보면 뭔가 무서운 분위기의 굴다리다.


횡단보도에 모인 많은 대학생들 틈에 섞여 길을 건너면 굴다리를 지난다.

굴다리를 나오자마자 보이는 건 신촌의 터줏대감들인 약국들이다.

수 십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약국들은 가히 명물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신촌에는 약국 외에도 명물이라고 불릴 만한 가게가 여러 곳 있다.

그 중에 하나인 연음악사를 찾아가려면 약국을 끼고 골목으로 조금 들어 가야한다.

골목 초입을 조금 지나면 잔잔한 음악소리가 발길을 이끈다.


음악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면 그 옛날 버스정류장 표지판을 연상케하는

작고 파란 간판에 '연음악사'라는 주황색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한때는 LP판과 테이프, 앨범을 사러 오는 손님들이 가끔 들어가는 모습도 보였지만,

음원스트리밍과 다운로드가 대중화된 요즘엔 몇몇 인디음악 마니아들이나 휴가나온 군인들.


그리고 근처 학교의 교복을 입은 아이돌 팬 정도만이 이곳을 찾는다.

그마저도 온라인으로는 간편하게 구입할 수 있는데다가

여러 특전들도 함께 받을 수 있다 보니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30년간 연음악사를 지켜오던 김 씨는 이제 가게도, 자신도 쉬러갈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삶에 치여 단골들의 발길마저 끊긴 이곳에 남은 건 김 씨와 단골들의 추억들

그리고 30여년 간 차곡차곡 쌓인 음악들뿐이었다.


"내일은 가게 정리를 한번 해야겠어."


가게의 세월만큼 때가 낀 재떨이에

담배를 비비며 김씨는 한숨을 내뱉었다.


다음날부터 연음악사의 정리는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됐다.

간혹 가게를 지나는 행인들이 신기하게 쳐다보긴 했지만,

흥미가 오래가진 못했다.


"저기. 가게 내놓으신 거 보고 왔는데요"


그런 김 씨에게 인사를 건넨 것은 20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오. 그럼 성함이?"

"민선율입니다."


가게를 정리하기 위해 부동산에 가게를 올리자 마자 가게를 한번 보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다소 당황했지만, 막상 만나고 보니 선한 인상에 마음이 놓였다.


"그래 그 여기에 무슨 가게 차릴려고 하슈?"


발길이 뜸해진 것은 비단 연음악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몇 해 전만해도 대학생들로 떠들썩했던 신촌은 조금은 조용해졌다.


그중에서도 후미진 이 곳에 가게를 차리려하는 것이 걱정되었는지

김씨는 선율에게 넌지시 물었다.


선율은 그런 김씨의 마음을 짐작한 듯 살짝 미스를 띄며 대답했다.


"그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음악사를 하려구요. 여기 있는 음반들도 다 구매하고 싶고, 어르신만 괜찮으시면 상호도 그대로 쓰고 싶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수는 없으니 '선율 음악사'라고 할 생각입니다."


선율의 이야기를 들은 김 씨는 처음엔 어른으로서 말려야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선율의 사람 좋은 웃음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허허. 먹고 살기 힘들텐데 괜찮겠수?”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서요. 취미라고 해야 할지 욕심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김씨는 사내가 요즘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소위 금수저라고 생각했다.

자세히 보니 선한 인상에서 귀티가 묻어나오는 듯해

세상 물정 모르고 곱게 큰 젊은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자신의 인생을 바친 음악사 일을 취미로 취급하는 듯한 선율의 말에

김 씨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취미로 할 만큼 간단한 일은 아닐세.”


확실히 음악사 일은 녹록치 않다.

비록 손님들의 발길이 많이 끊겼다고는 하지만, 매입부터 전시, 관리까지

손이 닿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닐뿐더러 이런 곳을 찾는 사람들은 꽤나 괴짜인 터라

음악적인 조예도 어느 정도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늙은이 혼자서도 운영하고 있다고 가볍게 볼 일이 아니라는 말이야.”


선율은 김 씨의 으름장에 조금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그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충고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 씨는 뭔가 한소리를 더 해주고 싶었지만 웃는 낯에 침 뱉을 수 없는 법이기도 하고, 이렇게라도 연음악사의 맥이 이어지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선율은 박스로 포장된 음반들을 하나하나 꺼내보며 김 씨의 수완에 감탄했다.


‘단순히 장르와 가수, 시대로만 정리해 놓으신 게 아니다. 확실히 만만하게 볼 일은 아니야.’


선율이 음반까지 전부 구매하려는 것을 몰랐던 김 씨가 포장해 놓은 음반들은 마치 [우울할 때 듣기 좋은 노래] , [카페에서 듣기 좋은 팝] 이라는 제목을 달아 놓은 것처럼 짜임새가 있었다. 하나의 음반을 듣다가 바로 옆에 있는 음반을 이어들어도 감성이 유지될 정도로 맞춤인 배열이었다.


“사장님께서는 음악을 참 좋아하시는군요.”


김 씨는 또 무슨 쉰소리를 하냐며 핀잔을 주려고 했지만,


“저도 참 좋아합니다.”


역시 이 사내의 사람 좋은 웃음에는 못 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말

인트로입니다. 이 글은 단편 겸 제 플레이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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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ro-선율음악사의 주인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19.08.13 244 4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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