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선율 음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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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8.13 13:24
최근연재일 :
2019.11.25 14:26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140
추천수 :
30
글자수 :
20,923

작성
19.08.13 13:29
조회
193
추천
4
글자
5쪽

track 1. 안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DUMMY

혜연은 어둑해진 하늘을 올려다봤다.

자세히 보니 완전히 까맣다기보단 조금 진한 남청색이다.

아마 여름에만 볼 수 있는 그런 애매한 저녁 하늘.

괜시리 씁쓸해진 혜연은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다시 시작하자. 지금 대답하기 곤란하면 내일도 올 테니까 그 때 이야기해줘’


계속해서 혜연의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이 그의 목소리가 되어 다시 그녀를 붙잡는다.

밤새 울고, 혼자서 못하던 술을 마시면서도 결론이 나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고백을 해온 건 그였다.

첫눈에 반했다는 그런 뻔한 이야기가, 너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오글거리는 이야기도

혜연에게는 봄날의 영화 같았다.


서로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하루에도 수없이 했었다.

잦은 애정표현 때문에 주변에서 핀잔을 들은 적도 많았다.

만나지 못한 날엔 그가 전화기를 붙잡고 노래를 불러준 적도 있었다.

나름 연습했다는 서툰 기타소리에 조금 눈물이 나기도 했었다.


이별을 고한 건 그였다.

군대를 가야한다는 흔한 대학생의 이별도,

알고 보니 양다리였다는 아침드라마 같은 이별도 아닌

‘너와 있어도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는.

담담하고 잔인한 이유에서였다.


내게 매력이 없던 걸까.

혜연이 그를 붙잡기 위해 했던 수많은 생각 속에는 죄책감마저 담겨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붙잡아봤지만 그는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그녀를 떠나갔다.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그에 대한 험담을 하며, 잘 헤어졌다는 격려를 했다.

나쁜 놈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그녀는 계속 울었다.


한 달 정도가 지난 후, 그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그의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혜연은 그날도 밤새 울었다.


그로부터 또 얼마 후

혜연은 자신의 집 앞에서 기다리는 그에게

다시 시작하자는, 역시 네가 아니면 안되겠다는

뻔뻔한 이야기를 들었다.


가장 짜증이 났던 건 그의 이야기에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고 얼버무린 자신이었다.

그렇게 많이 울고, 욕도 많이 해놓고 일말의 기대를 갖는 자신이 멍청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좋았던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안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혜연은 작게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신입생 때 선배들로부터 신촌의 명물이라고 소개받았던 연음악사.

간판은 선율음악사라고 되어있었지만, 위치도 인테리어도 같았다.


노래소리에 홀린 듯 가게 안으로 들어간 혜연을 맞아준 것은

사람 좋게 웃는 젊은 남자였다.


“어서오세요. 선율음악사입니다.”


“아..네.. 저기 혹시 아까 그 노래 제목이 뭔가요?”


“아까 노래라고 하시면.. 아. 아마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였겠네요.

지금은 절판되어서 그 버전은 구하기가 어렵지만요.”


“그렇군요...”


쭈뼛거리는 혜연을 보던 젊은 남자는 이내 사람좋은 미소와 함께 카운터에서 나왔다.


“혹시 헤드셋 끼고 들어보실래요? 그 곡이 10번 트랙이니까...”


젊은 남자는 아르바이트생인지 싹싹하게 혜연에게 음반을 듣는 법을 알려주고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이렇게 미리 들어보면 안 사기도 뭐한데...

장삿속에 당한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친김에 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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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가세요.”


아르바이트생의 사람 좋은 웃음을 뒤로하고 혜연은 집으로 향했다.

역시나 집 앞에는 그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혜연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혜연아.”


“생각을 해봤어. 역시 안 될 것 같아. 그리고 앞으로 집앞으로 찾아오는 일 없었으면 좋겠어.”


혜연은 그의 말을 끊고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전했다.


“내가 미안해. 그 때 내가 너한테 그런 이야기를 한 건...”


“됐어. 신경 안 써도 돼.”


혜연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더 이상 너랑 있어도 설레지 않거든.”


혜연은 자신이 멋지게 웃었는지 잠시 걱정했지만, 시무룩한 표정을 한 채 쓸쓸히 등을 돌리고 걸어가는 그의 등 뒤에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는 것은 잊지 않았다.


후련한 기분으로 올려다 본 밤하늘엔 더 이상 애매함 같은 것은 남지 않았다.


[브로콜리 너마저 1집 보편적인 노래, 앵콜요청금지]


작가의말

단편이다보니 글마다 분량이 천차만별일 예정이지만 아마도 많이 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네요. 그냥 편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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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rack 2. 친구들은 조금씩 다 적응해가고, 분주함에 익숙한 듯 표정 없어 +1 19.08.14 136 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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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ck 1. 안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2 19.08.13 194 4 5쪽
1 Intro-선율음악사의 주인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19.08.13 243 4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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