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선율 음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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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8.13 13:24
최근연재일 :
2019.11.25 14:26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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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2
추천수 :
30
글자수 :
20,923

작성
19.09.0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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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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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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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쪽

track 7.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DUMMY

상현은 눈에 난 다래끼가 신경 쓰여 참을 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첫 출근이 코앞인데 다래끼가 날 게 뭐람.’


흔히 말하는 코스모스 졸업(정작 졸업식은 무더운 여름에 했지만)을 한 상현은 운이 좋게도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할 수 있었다. 일손이 부족해 하루라도 빨리 출근하길 원하는 눈치였지만, 지방에 있는 집에도 다녀오고 이사준비도 해야 했기에 9월의 첫 날에 출근하는 것으로 이야기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은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공무원. 하다못해 대학원에 들어가지도 않은 상현을 나무랐지만, 상현이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했던 건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였지 흔히들 말하는 성공가도를 달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관심 없는 일들을 하는 걸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부터 이해가 안 가지.’


상현은 1학년 때부터 꾸준히 글을 써온 동기 도언이 얼마 전 공모전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노력을 비웃을 생각은 없지만,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위해 아등바등 거리는 것보다 도언이 이뤄낸 것이야 말로 성공이라고. 상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뭐, 사회적으론 패배자의 합리화, 여우의 신포도 라고 매도당해도 딱히 반박은 못하겠지만 말이지.’


사람들은 종종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의심하고, 매도한다.

졸업을 앞두고야 겨우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작은 규모의 회사에 들어가게 됐지만, 주변의 시선 같은 건 눈에 작게 돋아난 다래끼보다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도 마지막이네.’


상현이 이물감이 느껴지는 눈을 긁지 않는 것은 양 손에 들고 있는 짐들 때문이었다.

오늘은 신입생 때부터 햇수로 7년 가까이 살던 신촌을 떠나는 날이다.


짐을 싸기 전엔 언제 다 하냐 싶었던 짐정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자취방의 가구들은 대부분 옵션으로 달려있던 것들이었고,

그나마 무거운 짐이라면 조금 큰 게이밍 노트북이었다.


옷가지를 접어 넣고, 신발과 군복을 적당히 구겨 넣어보니

상현의 7년은 큰 상자 두 개에 들어간 것이 전부였다.


상자 두 개 옮기자고 이삿짐센터를 부르기도 뭐했던 터라

상현은 차 한 대를 빌려 직접 옮기기로 했다.


좁은 골목을 비집고 차를 끌고 나가다보니 낡은 주택, 가파른 언덕이 하나하나 다 정겨웠다.

문득 감상에 젖은 상현은 잠시 차를 세워 상자를 뒤적거렸다.


“여기 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 신촌의 연 음악사에서 산 CD였다.

선배들에게 신촌의 명물이라고 소개받아 종종 들렀던 음악사.

김 씨라고 불리시던. 무뚝뚝한 주인아저씨가 군복을 입은 상현에게 힘내라며

어깨를 두드렸던 것이 생각나 조금 웃음이 났다.


‘그러고 보니 거기도 주인이 바뀌었다던데.’


새삼 자신도, 이 거리도 점점 변해가리라는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저은 상현은

다시 운전석에 올라 CD를 재생했다.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익숙하고 따뜻한 멜로디와 담담한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졌다.


[내가 자라고 정든 이 거리를 난 가끔 그리워하겠지만 이렇게 나는 떠나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 평소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도 박수만 치는 상현이었지만.

오늘은 흘러나오는 노래를 큰 목소리로 따라 불렀다.


[더 넓은 세상으로]


[김동률 정규 5집 monologue, 출발]


작가의말

개강입니다. 다들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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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track 8. 무너진 나의 도시 오가는 말들 속을 난 헤매고 19.11.25 36 0 4쪽
» track 7.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19.09.02 55 2 4쪽
8 track 6. 다시 누군가에게 내 맘을 준다는 게 겁이 나 19.08.24 54 3 6쪽
7 track 5. 아 나로 하여금 이토록 가슴이 뛰고, 벅차오르게 만드는 사람 그대라는 것만 알아요 19.08.22 67 1 7쪽
6 track 4. 어쩌면 너는 내가 꽉 머릿속에 붙잡아 놓고서 방 안에 키운 코끼리였나봐 +1 19.08.19 89 3 5쪽
5 track 3. 들어주겠니. 바람이라도. 내 마음 모두 날려줘 19.08.16 111 5 5쪽
4 track 2. 친구들은 조금씩 다 적응해가고, 분주함에 익숙한 듯 표정 없어 +1 19.08.14 136 4 6쪽
3 track 1.5 그녀의 고양이 19.08.13 157 4 2쪽
2 track 1. 안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2 19.08.13 194 4 5쪽
1 Intro-선율음악사의 주인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19.08.13 244 4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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