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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죽음에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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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필
작품등록일 :
2019.08.14 01:32
최근연재일 :
2019.09.0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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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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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1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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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나는 운이 좋아본 적이 없다(2)

DUMMY

이미 사시미 칼에 찔려 넝마 상태였던 옷은 시체더미에서 묻은 피와 갑옷기름으로 더욱 엉망이 되어 냄새는 냄새대로 나고 피부에 꾸덕하게 달라붙어 걷는 내내 찝찝함을 참기 힘들었다.


“이봐. 잠깐 얘기 좀 하지.”


그런 걸레짝이 된 옷 너머 어깨로 손을 올리며 누군가 나를 잡아 세웠다.

이번에도 단장이었다.

결코 대화를 나누자는 말투로 대화를 건네온 것은 아니었다.


“넌 뭐하는 놈이냐? 민간인들은 한참 전에 호송대로 전부 대피시켰는데 무기도 갑옷도 없이 전쟁터 한복판에 서있다니..”


뭐하는 놈이냐라.. 그 질문은 나 스스로에게도 묻고 싶었다.

나는 한 평생을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왔다.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직위와 부를 가지기 위해 피터지게 법을 공부했고,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 중 하나인 임용고시에 합격했다.

지금은?

나아갈 방향도 동력도 없다.

살면서 이토록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처음이라 더욱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물론 단장이 원하는 대답은 이런 자아성찰이 아니겠지.

그런데 과연 사실대로 말해도 될까? 괜히 그 광신도들이 고깝게 여겨 나도 불태워 죽이는 건 아닐까?

그 이전에 사실대로 말한들 이들이 사실이라 받아들여 줄지도 의문이다.


“저는..”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다보면 늘어나는 능력들이 한 다섯 가지쯤 있다.

그 중 첫 번째, ‘임기응변’의 목차 일 번.


“외국에서 왔습니다. 상업적인 목적이었는데 갑자기 습격을 받아 가지고 온 물건들을 전부 잃어버렸어요. 피난민들을 따라 도망가려다 때를 놓쳤고요. 후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거짓말이다.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은 채 망연자실하여 의심한 사람들이 도리어 죄책감을 느끼는 초고도의 거짓말.


“이국의 상인인가.. 대답에 따라서는 첩자로 여겨 즉결처형도 가능했네만 다행이군.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유감이네. 그래도 여기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일세.”


아직까지 이에 속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단장 역시 마찬가지여서 여전히 나를 경계하는 눈치였음에도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앨빈이라 하네. 이 일대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치안대장이지.”

“신현서라고 합니다.”

“특이한 이름이구만. 다른 대륙에서 온 건가?”

“다른.. 예.”


얼버무렸다.


“자네는 아무래도 시기를 잘못 타고 왔군. 이 나라는 암흑기로 접어들고 있으니..”

“암흑기.. 전쟁 때문에요?”

“하! 얻어 맞기만 하는 걸 전쟁이라고 하는 줄은 모르겠구만! 왕도에선 제 목숨 귀한 줄만 알고 이런 변방은 관심조차 없네. 벌써 사흘 전이지. 놈들이 국경을 넘어와 네 개의 마을이나 궤멸시켜 버린 것이.. 그 동안 왕은 물론 도시의 영주까지도 우리에게 단검 한 자루 던져준 적이 없단 말일세.”

“그 괴물들은 정체가 뭡니까? 뭘 원하는 거죠?”


내 질문에 앨빈이 잠깐 뜸을 들이며 다시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그대는 분명 평화로운 땅에서 왔겠군.”

“뭐.. 여기에 비하면요.”

“데트리, 에로르, 녹사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돼지새끼들이네. 우린 보통 오크라고 부르지. 분명히 신들께서는 놈들을 만들 때 실수를 한 게 분명해. 놈들이 원하는 것.. 그게 지금 가장 큰 문제로 보이네. 뭘 원하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거든.”

“오크.. 많이 들어본 이름이네..”

“방금 그 털짐승들은 우르그라는 놈들인데, 봤으니 알겠지만 그 거대한 몸집과 흉포한 성격 때문에 기르는 것이 호리병으로 우물 채우기라더군. 방법은 몰라도 놈들을 기르는 건 오크들 뿐이지.”


앨빈이 나를 향해 몸을 돌아 세우더니 양 쪽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의 얼굴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비장했다.


“놈들은 인간에 비해 머릿수도 적고 미개해서 문명을 이루지 못한다네. 하지만 몹시, 엄청나게 위험해. 연민도 두려움도 없는 놈들이란 말이네. 앞으로는 반드시 이런 전장을 피하도록 하게. 자네가 살아남은 건 어디까지나 기적에 불과하니까.”


이전에 언급했던 내용을 기억하는가?

좋은 일이 일어난다면 나쁜 일도 일어나는 것이 세상이라는 거.

나에게 일어나는 기적은 항상 살아있는 게 전부였다.

이제 또 칼끝에 선듯 위태로운 목숨줄을 붙잡는 일들만 일어나겠구나.


앨빈과 현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어느새 피난민들이 모인 임시거점이 눈에 들어왔다.

누렇게 바랜 천과 나무로 지어진 천막들 한 쪽 구석에는 식량이나 물, 의류 같은 생필품들이 한눈에 보기에도 제법 넉넉히 쌓여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양에도 빽빽이 들어선 피난민들과 이제 또 합류할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충분치 않을 것 같았다.

앨빈은 임시거점의 군병들 무리에 합류했고, 내게 허용된 행동반경은 그저 여기저기 서성이는 정도였다.


“후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기웃거리는 것이 질려 한 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너무도 진하게 잔상이 남은 전쟁터의 모습 때문에 내가 여기에 있게 된 이유조차 잊고 있었다.

내가 가진 전투기술이라곤 군대에서 배운 사격술이 전부다.

이곳이 어떤 시대적 환경을 갖추고 있는지 면밀히 파악하진 못했지만 금속제 갑옷을 입고 창을 휘두르는 이곳에 자동소총이 있을 리는 없다.

나는 칼 든 강도에게도 목숨을 위협받는 곳에서 왔는데 여기서는 집채만 한 늑대가 튀어나온다.

저 군병들처럼 창을 다루는 법을 배워볼까 하다가도 운동 한 번 안하고 앉은 자리에서 공부만 했던 내가 저 쇳덩어리를 들 수나 있을지도 의문이고, 그렇다고 여태껏 피터지게 공부해온 헌법이 여기에서 작용할리도 없으니, 완전히 알몸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기분이다.

그뿐인가? 여기서 늑대한테 물려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살인마저 옹호하는 싸이코 집단이 언제 쓸모없다는 낙인을 찍어 불 태워 죽일 지도 모른다.

머리로는 침착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숨통을 조여 오는 상황들이 꾸준히 조급함을 만들어냈다.


“끄아악!!”

“우르그다!!”


이 개 같은 상황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 순간에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말 그대로 ‘사방에서’.


“이 더러운 자식들! 왜 추격병력이 없나 싶더니..”


적들의 등장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역시 앨빈이었다.

연이은 전투에 지칠 법도 하건만 그의 랜스는 또다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우르그는 지금 눈에 보이는 것만 네 마리.. 극도의 스트레스로 속이 뒤틀린다.

나는 살아오면서 딱히 정의감이나 영웅심을 불태운 적이 없다.

할머니를 제외하면 항상 내가 먼저였고, 남들을 생각할 여유는 사치와도 같았다.

원래 목숨이 달린 일에는 그런 건가? 놀라울 정도로 서로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자기 자신은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것처럼 도망가기에 바쁜 그 모습들이 오직 스스로만 생각하면 살아온 나에게조차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멍하니 멈춰 있을 시간은 없었다.


심장이 아플 정도로 세게 뛴다.

귓속에서 시곗바늘이 똑딱거리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문득 큐브를 잡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알고 있는 단어가 이미지처럼 떠올랐지만 읽히지는 않는, 그러나 처음보단 조금 선명해진 느낌이었다.


“커헉..!”


양 옆에서 함께 도망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지더니 이내 내 상체가 무언가 무거운 것에 짓눌려 앞으로 기울었다.

기울다가 땅에 닿은 몸은 땅과의 마찰로 또 다시 피투성이가 되었다.

더 나아가지 못하고 몸을 돌린 곳엔 노란 눈을 빛내며 침을 폭포수 마냥 흘려대는 우르그가 있었다.

필사적으로 돌을 던져도 모래를 뿌려도 우르그에게 효과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귀에서 똑딱이는 소리는 빨라졌고, 심장은 더 거세게 뛰었다.

단어의 이미지는 조금 더 선명해졌다.


“어서 도망가라! 창병 결집!”


앨빈은 또 한 번 내 목숨을 구하며 우르그를 막아섰다.

이미 모두 당했는지 그의 명령에 모여드는 병사는 없었다.

먹이를 눈앞에 둔 우르그는 힘껏 도약해 달려들었고, 앨빈이 든 랜스의 끄트머리가 달려드는 우르그의 가슴께를 노렸다.

두꺼운 털가죽을 뚫고 들어간 앨빈의 랜스를 타고 우르그의 피가 흘러내렸다.

성공적인 공격, 그러나 충분치는 않았다.


“크으윽..! 젠장..!”


앨빈은 체중을 실어 랜스를 더 밀어 넣으려다 힘에 부쳤는지 한 쪽 무릎이 무너져 땅에 닿았다.

역시 그는 지쳐있는 상태였다.

우르그에게는 이것이 기회였을 것이다.

놈은 단번에 앨빈을 물어 들어 올리고는 우지직 소리를 내며 갑옷 째로 씹어대기 시작했다.

괴물의 이빨이 부서진 갑옷 조각과 함께 온 몸을 파고들며 뼈는 뼈대로 부러지고 살은 살대로 찢겨갔다.

그런 와중에도, 앨빈은 손에 쥔 랜스를 놓치지 않았다.

정말이지 존경받아야 마땅한 정신력이었다.


“깨개갱!!”


앨빈의 몸은 우르그의 몸짓대로 공중으로 치솟았다가 다시 땅으로 곤두박질친 뒤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우르그는 머리가 울릴 정도로 격하게 깨갱거렸는데, 눈에 박힌 랜스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이뤄진 공격인데도 꽤나 깊숙이 박혀 피가 철철 흐르는 것이, 앨빈에게는 최후의 일격 같은 것이었는가 보다.

먹이를 먹는 데에도 실패하고 한 쪽 눈까지 잃은 우르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던 것도 잠시, 곧바로 나를 휙 돌아봤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으로도 타고난 전사의 몸을 가진 앨빈 보다는 갑옷도 무기도 없는 내가 훨씬 먹이에 가까워 보이겠지.


살고 싶었다.

이왕이면 남들처럼.

살고자 하는 의지는 강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환경이 따라주지 않았다.

빼앗기기만 하며 살아온 인생이었다.

돈을 빼앗기고, 청춘을 빼앗기고, 가족을 빼앗기고, 이제는 어찌어찌 부지한 목숨까지 빼앗길 참이구나.


‘아.. 그거였구나.’


우르그의 송곳니가 내 목덜미에 가까워질수록 죽음이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째깍거리는 소리는 점점 빨라지다가 이내 완전히 연결되는 음이 되었고, 단어의 이미지는 이제 완전히 뚜렷해졌다.

‘죽음’.

그 단어의 뜻을 인지한 순간 똑딱이며 귓속을 울리던 소리가 뚝 끊겼다.


우적-


--


“이제 여러분 모두 선물을 받으셨군요!”


뭐지?


“큐브는 아모스 신께서 직접 빚으신 물건이며 여러분들을 죽음이 아닌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 줄 구원입니다.”


살아 있는 건가?


“때가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겁니다.”


결이 희미하게 보이는 천장과 벽면.

그리고 나와 똑같이 어리둥절한 사람들.

아마 바티스라는 이름이었던 꽤나 큰 모자를 쓴 늙은이.

처음 사후세계라고 인식했던 수수한 장소였다.

칼에 찔린 상처도, 바닥에 쓸린 상처도, 우르그에게 뜯겨나간 상처도 없었다.

마치 그 상처들이 땀에 씻겨 내려가기라도 한 것처럼 식은땀만 흥건했고, 손에는 빛마저 빨아들이는 것 같은 검은색 큐브가 쥐어져있었다.


'데자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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