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히어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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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마바
작품등록일 :
2019.08.1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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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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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0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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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DUMMY

23.

“제정신이 아닌데?”


제리가 말한다. 나는 어깨를 으쓱한다.


나는 신작 콘티를 평가를 받기 위해 사람들을 모았다. 도심의 카페. 제리와 댄스가 테이블 양 옆에 앉아있다.


“제정신인지는 나중에 생각하고, 그래서 어떤 거 같냐?”


“네가 굳이 감옥에 가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는데. 그래. 감옥가면 굶지는 않겠다.”


제리가 나를 보면서 말한다.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잖아.”


“심각하지. 드힌이 주인공이잖아.”


제리가 내 콘티를 잡고 흔들면서 말한다.


“제레미도 드힌을 썼는데 무사히 넘어갔잖아.”


“이거랑 그거랑 같냐?”


“다를 게 뭐냐.”


제리가 손가락을 펴든다.


“제레미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마추어 만화가였고, 너는 알거 다 아는 프로 만화가고. 내가 직접 주의사항도 불러줬잖아. 네가 이해했다고 대답까지 했고.”


“나도 지금 아마추어야. 네가 뭔 소리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 법원 가서도 그렇게 말해봐라.”


“사장님도 나를 내쫓고 나서 마음 한편에는 미안함이 남았을 거라고. 그러니 고소하지 않으실 수도 있어.”


“사장님이 미안함 같은 복잡한 감정을 느끼신다고? 안 그러실걸. 바로 고소하시겠지.”


“네 생각은 어때? 이게 그렇게 나쁜 생각 같아?”


나는 지원을 바라고 댄스에게 묻는다.


“되게 위험할 거 같은데요?”


“뭐 아마추어는 위험한 작품도 낼 수 있는 거 아니냐?”


“그래도 이건 좀 도가 지나친 거 같아요. 제 만화에서 드힌의 비중은 그리 높지 않았잖아요. 여기서는 주인공이고요.”


제리가 말 잘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거야 그거. 알겠냐? 이건 미친 생각이라고. 내용도 미친 내용이야.”


“좋은 쪽으로 미친 내용?”


“미친 쪽으로 미친 내용. 작가협회도 아트웍스도 다들 자기 얘기라고 생각할걸? 둘이 합심해서 너를 장작불 위에 올려놓을 거다. 그리고 뼈도 안남을 때까지 구워버리겠지.”


“나를 구우려면 한참 걸릴걸?”


“지방이 많아서 금방 녹아내리겠지. 촛불처럼.”


“어쨌든 파급력은 있을 거라는 얘기잖아.”


“그거야 그렇지. 어그로는 확실히 끌리겠다.”


“그거면 됐지.”


“뭐 한달 살고 죽을 예정이냐. 되긴 뭐가 돼.”


“그 뒤에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커피를 홀짝인다.


“헨리 선배님. 이렇게 급할 필요는 없잖아요. 천천히 신작 준비하세요.”


“아냐. 내가 봤을 때 아마추어 만화가는 임팩트가 있어야해. 화제 거리 같은 걸 만들어야지. 안 그러면 아무도 안 볼 거야.”


“난 모르겠다. 불판 위에서 뜨겁다고 징징대지나 마라. 그때 가서는 못 구해주니까.”


댄스가 바통을 이어받아 설득을 시작한다.


“최종 목표는 코믹스 회사에 취직하는 거잖아요. 악명을 높여서 어떻게 취직을 하겠어요.”


“코믹스 계의 빌런들이 모인 회사도 있겠지. 그런 곳에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헨리. 만화를 너무 많이 그려서 잊었나본데 여기는 현실세계야. 빌런들은 다 감옥에 있어. 너도 곧 그렇게 될 거고.”


제리가 굉장히 이성적인 말투로 말한다.


“음.”


나는 할 말이 없다. 솔직히 이렇게 격렬한 반대에 부딪힐 줄은 몰랐다. 내 계획에 회의가 든다.


“그래. 너희 말이 맞는 거 같기도 해.”


“같기도 해가 아니라 맞는 거지.”


“후. 그래 이건 아닌 거 같다.”


나는 콘티를 주섬주섬 모아 가방에 넣는다. 두 사람은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나를 본다.


“아니면. 조금씩 올려보는 건 어떨까? 한 페이지씩. 반응 봐가면서. 반응이 별로면 삭제하면 되지. 안 그래?”


나는 관대한 제안이라는 듯이 말한다. 두 사람의 표정이 다시 안 좋아진다.


“아니, 하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어떨까 싶어서. 괜찮은 생각이잖아?”


표정은 여전히 안 좋다.


“알았어. 안 할게.”


그제야 그들은 편안한 표정이 된다.


“좋은 생각이었던 거 같은데.”


내가 아쉬움에 중얼거린다.


“잊어버리고 다른 거 해. 어쩌다 그런 멍청한 생각을 한 거냐?”


“그냥. 제레미도 드힌을 그려서 취직했으니 나도 해볼까 싶어서.”


“진짜 단순하게 생각하네.”


“새 히어로를 찾으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여유 있게 생각하세요. 조금씩 인기를 쌓아간다는 느낌으로요.”


댄스가 선배로서 조언한다.


“그러다가 내 계좌 잔고가 먼저 떨어지면.”


“그러면 일을 하시면 되죠. 다른 일을요. 만화 안 그린다고 죽는 건 아니에요.”


“저 녀석은 죽을 수도 있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제리가 통찰력을 발휘한다.


“어....... 그러면 빨리 소재를 찾아야겠네요. 새 히어로도 구상하시고요.”


내 신작 얘기가 끝나자 우리는 댄스의 근황 얘기를 한다. 댄스도 새 이슈를 냈는데 잘 팔린 모양이다. 제리는 신나서 자기 작가를 자랑한다.


“이 친구 아주 복덩이야. 우리 회사를 먹여 살린다니까.”


“뭘요. 다 훌륭하신 편집자님 덕분이죠.”


“허허, 이 친구 말하는 것 좀 봐. 겸손하기까지?”


“이런 것도 다 편집자님한테 배운 거죠.”


나는 심각한 얼굴로 둘을 본다. 둘은 떠들다가 내 표정을 보고 씩 웃는다.


“제레미가 그렇게 잘 나가냐?”


내가 묻는다. 별로 안 궁금한데 묻는 듯한 말투로.


“별 거 아니에요.”


댄스가 손을 젓는다.


“별 거 아니긴. 엄청 잘 팔리지. 드힌으로 환산하면....... 한 20드힌 정도 될까?”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잖냐.”


“뭐. 이래야 좀 자극이 되지. 너도 빨리 그려서 취직을 해. 어디든 말이야.”


제리가 말한다.


“알았다고.”


나는 투덜대면서 일어난다.


“뭐야. 어디 가게?”


“점심시간 끝났잖아.”


내가 말한다. 둘은 핸드폰을 본다.


“그러네.”


우리는 일어나 카페에서 나간다. 제리와 댄스는 아트웍스로 가고 나는 집으로 걷는다. 나는 둘이 걷는 모습을 본다. 내게도 저런 때가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나는 집까지 걸어간다. 꽤나 멀지만 괜찮다. 어차피 소재도 새로 구해야하니까. 산책하는 셈 치지.


길을 걷는 데 갑자기 차 한 대가 내 옆에 멈춰 선다. 차에서 남자가 튀어나온다. 나는 놀라며 그를 본다. 피터다.


“아, 여기서 뵙다니 신기하군요.”


피터가 인사도 없이 대뜸 말한다.


“뭡니까. 저를 미행한 겁니까?”


“제가 왜 미행을 하겠어요?”


“그럼 왜 여기 있죠?”


“아트웍스 일을 마무리하러 가는 중입니다.”


“아직도 그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겁니까?”


“괴롭히다니요. 저는 작가의 권리 증진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피터가 말한다. 상당히 뻔뻔한 말투로.


“뭐 그러신가요? 어쨌든 저랑은 별 상관없는 일이네요. 저는 잘렸으니까.”


“그렇지 않을 겁니다. 당신도 이 일에 엮여있어요.”


피터는 모르나본데 매듭은 잘리면 풀린다.


“그랬는데 잘렸잖아요.”


“회사에서 나갔다고 있었던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아니. 대체 제가 뭘 했다고 이러시는 겁니까?”


“당신은 당신이 뭘 할 수 있는지를 모르고 있어요. 그게 문제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기회가 주어져 있는데 그걸 잡지 않잖아요.”


“저한테는 기회 같은 건 없습니다. 저는 그냥 안 팔리는 만화를 그리던 작가일 뿐이라고요.”


“당신이 우리를 조금만 도와주면 됩니다. 그러면 일을 훨씬 크게 부풀릴 수 있을 거라고요. 히어로 저작권 없이 힘겹게 그려나가고 있을 동료 작가들을 생각하시지요.”


“히어로 저작권이 회사에게 있건 작가에게 있건 무슨 상관입니까. 어차피 계약할 때 다 얘기된 거잖아요. 조건이 마음에 안 드시면 계약할 때 말하고 바꾸세요. 그럼 되잖아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업계에서 어떤 계약이 표준으로 여겨지느냐가 중요해요. 많은 작가들이 현재의 계약을 표준으로 여기고 별 생각 없이 반복하고 있죠. 이런 점은 인식을 바꾸는 걸로도 충분히 바꿀 수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작가들의 인식을 바꿔서 업계 표준 계약을 바꾸려는 거죠.”


너무 머리 아픈 이야기다. 나는 오랫동안 아트웍스 전속 작가로 일했고, 다른 회사들 계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솔직히 회사에서 충분히 챙겨주지 않습니까?”


나는 내가 아는 정보를 말한다. 나도 괜찮게 받았으니 m사 정도면 엄청 많이 주겠지. 피터가 왜 불만인 건지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최근에 회사들이 영화를 통해 벌어들이는 돈을 보세요. 그 돈 중에 코믹스 작가에게 돌아간 건 얼마나 될까요?”


“몰라요.”


“생각해본 적 없죠? 그래서 당신이 이기적이라는 겁니다. 업계인들을 생각해야죠. 계약이 정말 공정했다면 영화 수익의 일부가 코믹스 작가들에게 돌아갔을 겁니다.”


“나한테 그런 복잡한 얘기를 하지 마세요. 저는 그냥 작가입니다. 그냥 작가라고요.”


“그렇습니다. 당신은 작가죠. 저희와 같은 작가요. 작가에게 좋은 시장을 만듭시다.”


“됐습니다. 저는 이제 이 일과 상관없어요. 해고당한 걸로 충분합니다. 더 시달리고 싶지 않아요.”


“상관 없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도 이 일의 일부죠. 곧 알게 되실 겁니다.”


피터는 그렇게 말하고는 차에 다시 올라타고 가버린다. 나는 어안이 벙벙하다. 피터가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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