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종인류의 달과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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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플로
그림/삽화
염현수
작품등록일 :
2019.08.16 17:37
최근연재일 :
2019.10.3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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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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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1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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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모든 것이 잘못된 접촉,1

DUMMY

“부함장, 지금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어떠한 신탁을 구하듯이 묻는 새로 부임한 함장의 질문에 남몰래 진저리를 치며, 나파스 니렌 부함장은 지금쯤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휴양지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을 전 함장이 내심 그리워졌다. 최소한 나암 키프케 함장은 무능력하기는 했지만 하급자의 고충이나 심정을 잘 이해하고 배려해주었다. 그것이야 말로 ‘라니트라 바바오 호’를 지금까지 유지해 온 원동력일지도 몰랐다.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못한 곳을 대범하게 항해한다는, 첫 파종선이 지구를 떠나기 전에도 존재했을 정도로 오래된 캐치프라이즈에 적합한 배가 있다면, 바바오 호가 바로 딱 맞는 배일 것이라고 부함장은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는, 바바오 호가 그저 쓰레기장으로 직행하지 않도록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 부임한 마이니 레페르 함장은 뚱뚱한 중년의 남자로, 우주에 나가본 경험은 두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은 데다가, 심지어 그것도 엔진 관리인 보조이거나 장거리 항행선 수경재배 보조인 경우가 전부였다. 바바오 호를 소유하고 있는 흐브리탄 탐험 주식회사가 이런 사내를 정상적인 절차로 고용할 리는 없으니, 어디서 뒷돈 깨나 쓴 것이 틀림없었다.


거기다 또 돈은 많아서 부함장 자신은 꿈도 꾸지 못하는 개인 요트를 보유하고 있기는 했지만, 불안하다는 이유로 거금을 들여 전문 항해사들을 고용했다. 부함장이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라니트라 바바오 호에게는 겁쟁이가 필요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위험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함장님. 선원들의 사기도 충천한데다 각종 장비와 예비 물품 또한 온전한 상태입니다. 이번 탐사 또한 잘 될 것이라고 저는 장담합니다.”


“음, 좋아.”


키프케 함장은 다시금 만족스럽게 의자 안으로 파고들었다. 니렌 부함장은 순간적으로 하극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함장의 머리를 한 대 갈겨주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어찌되었든 간에 무능한 함장을 대신해서 바바오 호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쪽은 자신이지 않은가.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함장이 말을 꺼냈다.


“레닛, 스캐너를 최대 출력으로 가동시키고 공역을 샅샅이 수색하게. 이번 탐사마저 허탕치고 싶지는 않단 말이야.”


“예, 함장님. 스캐너를 최대 출력으로 가동시키겠습니다.”


레닛 주파브라 작전참모는 무감정한 태도로 대답했다. 니렌은 항상 작전참모라는 단어가 항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전참모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올 때 마다, 자유롭고 창조적이어야 할 함 내에 딱딱하고 무기질적인 감정을 불어넣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신임 함장의 결정이었고, 이 함장은 투자자들과 상당한 친목이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비록 레닛이 함교 전반의 운영을 감독하고 그의 일을 잘 수행하기는 했지만. 역시 직함이 모든 것을 망쳐 놓는 법이다.


“함장님, 스캐너가 뭔가 이상한 걸 건져냈습니다. 소행성이 아닌 건 확실합니다.”


“오류일 가능성은 없고?”



함장이 되물었다. 말투에서 긴장의 낌새가 느껴졌다.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 항성계로 도약하기 하루 전에 반사광과 레이더 검사를 끝마쳤으니까요. 그래도 선외작업이 필요할지도 모르니, EVA팀을 보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주복을 걸치고 밖으로 나갈 때까지 5분도 걸리지 않을 겁니다”


“좋아, 그럼 부함장 자네는 의견이 있나? 아무래도 나보다는 자네가 이 바닥 생활을 오래 해보았으니 말이네.”


“무엇이든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얻기 전까지는 대답하기 힘들다는 말을 드리고 싶군요. 특히 미지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말입니다.”


잠깐 동안 함교에 침묵이 흘렀다. 레페르 함장은 부함장을 재단하듯 바라보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자네도 모른다는 이야기로군.”


함장은 퉁명스러운 아이처럼 입을 삐쭉였다.


“좋아, 레닛. 탐사 프로브를 발사하도록. 난 고해상도 영상과 명확한 정보를 원하네.”


“예, 함장님. 지금 발사 준비를...”


레닛의 말이 멎었다. 잠깐 동안 화면을 노려보다가 계기판의 단추를 눌러 주 화면에 복잡한 그래프와 3차원 단면도를 투영했다. 함장은 약간 어리둥절한 기색이었지만 나암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음... 그 이상한 물건이 우리 쪽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상대거리는 1억 2000만 킬로미터, 상대속도는 우리 기준으로 마이너스 2000, 그 쪽 기준으로 플러스 2000입니다. 오류는 없습니다.”


“외부활동팀은? 스캐너는 확인했나? 배 밖에서 살펴보라고 하게.” 나암 함장이 물었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외부활동팀이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는 의자를 돌려 자신이 맡은 화면을 노려보았다.


“EVA팀으로부터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광학 망원경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고 위상배열 레이더와 라이다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중성미자 감지기와 중력파 감지기 또한 마찬가지로 깨끗합니다. 함장님,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는 저 물체가 뭐든 간에 사람 손을 거친 것은 확실합니다.”


“외계인일 수 있을까? 우리가 첫 접촉의 당사자가 될 가능성이 있네. 레닛, 모든 주파수로 환영 메시지를 내보내게. 난 어떠한 사소한 오점으로 인해서 우리의 이름이 역사책에 불명예스럽게 기재되는 것을 원하진 않아. 레닛, 우선- ”


니렌 부함장은 빠른 심호흡으로 정신을 가다듬은 후 재빠르게 끼어들었다.


“죄송합니다만, 함장님. 모든 존경심으로, 우리가 지금 외계인을 맞이하고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류가 별들을 답사한지 5000년이 넘어가지만 아직까지 앵무새나 고양이를 뛰어넘는 지성을 가진 생물과 맞닥뜨린 적은 없습니다."


“자네가 고양이를 싫어한다는 건 알아. 더럽고 제멋대로 행동하는데다가 말도 듣지 않으니 말이야. 암, 말도 잘 듣지를 않지.”


“함장님.”


나파스 니렌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최대한 다듬으려고 노력했다. 레닛을 비롯한 다른 함교 승무원들이 힐끗 거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자책했다. 바보 같으니, 어린아이처럼 찡얼거린다고 해서 일이 될 것 같은가? 가뜩이나 위태한 상황에 최고 현장 지휘관 둘 사이에 분쟁이라도 벌어진다면 바바오 호는 끝장이다.


“...제 지금까지의 무례한 언동에 대해 사죄하겠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일이 없도록 저 스스로 다그치겠습니다.”


“암, 그래야지. 잘 결정했네. 자네는 젊어. 앞으로도 계속 기회가 있을 걸세.”


함장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레닛, 환영 메시지를 모든 대역으로 방송하고 스캐너를 최대 출력으로 가동시켜서 대상에 대한 광대역 스캔을 실시하게. 난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원해.”


“예, 함장님. 혹시 주위 다른 국가의 우주선이 아닐까요? 헤미르 성간국가와 뷰스스사란 수중공동체가 이쪽 영역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저희와 같은 탐사선일 것 같습니다. 흠, 그러고 보니 뷰스스사란 수중공동체는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아시다시피 그 친구들은 인간이지만 아가미가 달려있지 않습니까. 뭐, 트브리슈 친구들도 아가미가 있긴 합니다만. 어찌 되었든 단순 스펙트럼 분석으로만 보기에도 이 항성계에 얼음을 포함한 물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위대한 집단은 어떨까?


눈치 없이 누군가가 꺼낸 말에 함교가 침묵에 잠겼다. 니렌은 함교에 있는 대원들 중 출신지가 집단의 확장영역과 가까운 몇몇은, ‘위대한 집단’이 점령한 행성이나 우주 거주지에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생과 사를 함께할 사람들의 신상에 통달하는 것은 부함장의 업무 가운데 하나였으니까.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런 정보를 알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니렌은 침을 삼켜 목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아니, 그럴 것 같지는 않네. 위대한 집단이 새로운 항성계에 관심을 가지진 않을 거야. 그치들의 웅대한 목적에 어긋나니까.”


“맞습니다, 부함장님. 그 유전자조작을 일삼는 놈들이 여기까지 올 이유는 없죠.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뷰스스사란이 이 항성계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습니다. 헤미르도 마찬가지고요. 이건 단지 제 의견일 뿐입니다만.”


함장은 레닛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 난 하급자의 의견을 듣는 게 좋네.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하게.”


함장은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의자에 더욱 깊숙이 웅크렸다. 부함장도 이번에는 레닛의 말에 요점이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파국 이후 지구를 떠난 파종선들은 가능한 한 많은 행성에 인류를 퍼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거기에는 환경 적응성을 높이기 위해 광범위한 유전자 조작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부함장은 우주 어딘가에서 인류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파종선을 향해 심심한 유감을 표했다. 끝없는 공허 속에서 혼자서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니. 글쎄, 적어도 우리에겐 끝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탐사 프로브 대상과 접근 중. 심도 탐사 최대 거리에 접근함. 현재 탐사 프로브와 대상과의 거리는 30000킬로미터. 영상정보를 제외한 정보는 양자 결맞음 통신으로 거리에 상관없이 상대속도는 초당 6킬로미터입니다. 아, 70으로 바뀌었습니다. 함장님, 상대속도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상대편에서 가속을 시작한 모양입니다. 거리 때문에 영상정보가 전송되기 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이상하군. 대상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없나?”


“예, 방금 탐사 프로브와 우리 배의 감지기의 정보를 조합해 대상에 대한 정보를 도출했습니다. 지금 바로 개인 콘솔에 띄워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함교에 있는 모든 승무원들은 침묵했다. 화면은 그 어떤 파종인류도 이룩하지 못할 업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직경 백 킬로미터의 인공물이, 똑바로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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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메티시니의 달밤 아래에서[완] 19.10.30 22 0 10쪽
76 아스라한 기억의 소금발을 잡으려 애쓰고,3 19.10.28 24 0 13쪽
75 아스라한 기억의 소금발을 잡으려 애쓰고,2 19.10.26 20 0 12쪽
74 아스라한 기억의 소금발을 잡으려 애쓰고,1 19.10.25 27 0 12쪽
73 대면,4 19.10.25 22 0 10쪽
72 대면,3 19.10.18 29 0 9쪽
71 대면,2 19.10.15 21 0 10쪽
70 대면,1 19.10.14 23 0 11쪽
69 올라가는 길,2 19.10.13 22 0 11쪽
68 올라가는 길,1 19.10.12 30 0 12쪽
67 메티시니 습격,7 19.10.10 24 0 9쪽
66 메티시니 습격,6 19.10.09 152 0 13쪽
65 메티시니 습격,5 19.10.09 27 0 10쪽
64 메티시니 습격,4 19.10.07 22 0 14쪽
63 메티시니 습격,3 19.10.06 21 0 17쪽
62 메티시니 습격,2 19.10.05 31 0 11쪽
61 메티시니 습격,1 19.10.04 30 0 12쪽
60 황제와의 만담 19.10.03 27 0 12쪽
59 집단과 범자, 그리고 그돈나의 과거,2 19.10.02 35 0 7쪽
58 집단과 범자, 그리고 그돈나의 과거,1 19.10.01 24 0 10쪽
57 메티시니-위대한 집단의 수도,3 19.09.30 30 0 12쪽
56 메티시니-위대한 집단의 수도,2 19.09.29 33 0 10쪽
55 메티시니-위대한 집단의 수도,1 19.09.28 41 0 8쪽
54 불안한 협상,4 19.09.27 36 0 9쪽
53 불안한 협상,3 19.09.26 41 0 9쪽
52 불안한 협상,2 19.09.25 31 0 13쪽
51 불안한 협상,1 19.09.24 39 0 10쪽
50 선택과 결정,2 19.09.23 36 0 11쪽
49 선택과 결정,1 19.09.22 33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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