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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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bo
작품등록일 :
2019.08.20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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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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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0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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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늘을 오르는 바라기(5)

DUMMY

모두가 잠든 깊은 밤, 깡철과 우투리가 대문을 박살내며 일수패의 본거지로 쳐들어왔다. 습격을 알리는 보초의 외침에 건물 안에서 무기를 든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의 숫자를 헤아린 깡철이 성에 안 찬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겨우 열네 명? 장난하나. 안에 있는 놈들 모조리 끌고 나와.”


사내들이 고함을 지르며 덤벼들었다. 그러나 싸움이 시작하자마자 가장 앞에 있던 세 명이 두 이시미의 손에 붙들려 헝겊인형처럼 맥없이 하늘을 날았다. 깡철과 우투리의 괴력에 기겁한 불량배 하나가 발을 멈추고 건물 안쪽에 남아있는 동료들을 호출했다. 고작 두 명을 잡기 위해서 마흔 명이 넘는 인원이 마당에 모여들었다. 몽둥이 따위론 상대도 안 됐기에 관아의 눈을 피해 밀수한 환도며 조잡한 활, 하다못해 손도끼와 단도 같은 온갖 무기가 동원됐다.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자 깡철은 신이 나서 일수패를 휩쓸고 다녔다. 거리에서 어깨질이나 하던 실력으로는 아무리 좋은 무기를 들어도 그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일수패는 기본적인 통제조차 되지 않아 허둥지둥 움직이다 서로 몸이 부딪치기 일쑤였다. 오히려 주위에 동료들이 있는 것이 방해가 될 정도였다. 곳곳에서 사내들이 깡철의 주먹을 맞고 쓰러지며 신음을 흘렸다. 뒤늦게 고참쯤 되는 불량배가 우투리를 보며 외쳤다.


“이 자식, 개평이 어떻게 돼도 상관없는 거냐!”


그 말이 도술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 사내를 쥐어패던 우투리는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거기서 한 발자국만 더 움직여도 개평의 목을 따버리겠다.”


“저 녀석들 말 듣지 마라. 개평한테 가기 전에 전부 때려눕히면 돼.”


“개평 옆에 감시를 붙여놨다.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바로 목을 그을 수 있어. 그래도 자신 있으면 어디 덤벼보시지.”


우투리는 전의를 잃고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깡철이 건물 너머로 불안한 시선을 던졌다. 의기양양해진 사내들이 무기를 흔들며 서서히 다가왔다.


“너도 마찬가지다. 개평을 죽이고 싶지 않다면 순순히 우리 말을 따라야 할 거다.”


금세 질서를 회복한 일수패는 부상자를 안으로 들이고 밧줄을 가져오라는 등 부산을 떨었다. 갖은 조롱을 던지며 깡철을 묶으려는 찰나, 건물 뒤편에서 호각소리가 세 번 울렸다.






두 이시미가 정문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을 때 당우와 바리, 영실은 측면의 담장을 넘어서 일수패의 본거지로 잠입했다. 일수패의 본거지는 정문 앞에 패거리가 생활하는 공간을 두고 그 뒤로 여러 동의 창고가 늘어선 구조였다. 창고를 지키고 있던 자들이 부리나케 정문 쪽으로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그늘에 몸을 숨겨 패거리를 통과시킨 일행은 나비를 따라 더욱 안쪽으로 들어갔다.


개평이 갇혀있는 창고는 두 사내에 의해서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었다. 내부에 몇 명이 더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섣불리 접근할 수가 없었다. 이에 영실은 당우에게 했던 것처럼 진한 꽃향기를 바람에 흘려보냈다. 보초를 서고 있던 사내들은 난데없는 꽃향기에 어리둥절하며 주위를 둘러보다 이내 서서히 잠들었다. 가까이 가니 문틈으로 흐릿한 불빛이 새어나왔고 개평의 앙칼진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우투리가 왔으니 너흰 끝이야. 이제 와서 울고불고 빌어도 소용없다고.”


“시끄러워 죽겠네. 누가 이놈 재갈 좀 물려봐.”


“그랬다가 또 물리면 어떡하라고. 난 못 해.”


“좋은 말로 할 때 이 밧줄 풀어. 안 그럼 거꾸로 매달아서 물속에 빠트려버릴 테다.”


개평은 창고 한가운데 기둥에 묶인 채로 악다구니를 쓰고 있었다. 주변엔 물건이 산처럼 쌓여 있었으며 세 명의 불량배가 그를 지키고 있었다. 한 사내가 단도를 빼들어 개평의 턱밑에 들이밀었다.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되나본데 네가 여기 있는 한 우투리는 우리한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놈은 여기 자살을 하러 온 거나 마찬가지라고.”


“우투리가 그딴 협박에 질 것 같아?”


“그놈이 널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잘 알고 있잖아. 참 불쌍한 녀석이야. 이런 쓸모없는 놈 때문에 목숨을 잃어야 한다니. 어쩌면 지금쯤 널 버리고 도망갔을지도 모르지.”


“우투리가 날 버리고 갈 리 없어.”


“방금 전부터 소리가 그쳤는걸. 자신 있으면 녀석이 오나 안 오나 열심히 이름을 불러보라고.”


개평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러던 중 방 안에 꽃향기가 흐드러지더니 사내들의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이게 뭔 냄새야.”


“누가 향수병을 깨트리기라도 한 거냐.”


“어어, 근데 왜 이렇게 졸리지...”


졸음을 이기지 못한 사내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당황한 개평의 앞에 당우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희가 어떻게 여길...”


“구해주러 왔어. 우투리를 만나게 해줄게.”


밧줄을 풀어준 뒤에도 개평은 반신반의하며 그들을 따라나섰다. 창고를 빠져나온 당우는 약속한 대로 호각을 크게 세 번 울렸다. 곧 정문 쪽에서 다시 깡철이 난동을 부리는 소리가 났다. 우투리가 지붕을 넘어서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우투리와 개평은 눈물을 흘리며 감동의 해후를 했다.


“아직 기뻐하기에는 이르다네. 포졸들이 몰려오기 전에 일수패가 숨겨둔 증거를 찾도록 하세.”


깡철과 합류하기 위해 돌아가려는데 한 사내가 헐레벌떡 달려오다 그들과 마주쳤다. 얼굴에 칼자국이 난 사내로, 품에 보따리를 안고 있는 모습이 도망을 치는 듯했다.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개평이 으르렁거리며 외쳤다.


“저 새끼가 두목이야.”


“이런 제기랄!”


일수패의 두목은 곧장 몸을 틀어서 도망치려 했으나 개평이 던진 돌멩이가 그의 뒤통수에 적중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는 우투리가 휘두른 팔에 맞고 정신을 잃었다. 그래도 분이 덜 풀렸는지 개평은 정신을 잃은 몸에다 몇 번이나 발길질을 했다. 두목의 보따리 안에는 그동안 일수패가 천판수에게 상납한 돈과 물건을 빼곡히 적은 장부들이 들어있었다. 뜻밖의 수확에 기뻐하고 있을 때 깡철이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그쪽은 다 정리됐는가.”


“일단 보이는 놈들은 죄다 묶어 놨다. 너희도 끝났으면 어서 움직이자. 방금 포졸들이 한 무리 다가오는 게 보였다.”






누군가 몸을 흔드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난 천판수는 눈앞에 선 영실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밖에도 당우와 바리, 개평과 우투리가 팔짱을 낀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체격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뛰어나간 천판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마당에 모여 무릎을 꿇고 있는 가솔들이었다. 깡철이 그 사이를 돌아다니며 가솔들을 밧줄로 묶고 있었다. 방 안에서 우투리의 손이 튀어나와 그의 목덜미를 붙잡고 다시 제자리에 주저앉혔다. 그제야 영실이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시 만나 반갑네.”


“이 무슨 무례한 짓입니까. 도적놈들과 손을 잡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막무가내일 줄이야.”


“자고 있느라 몰랐나보군. 우린 방금 일수패의 본거지를 치고 오는 길이라네. 이미 자네가 일수패가 손을 잡고 우리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사실쯤은 알고 왔단 말일세.”


영실은 일수패의 두목에게서 획득한 장부를 꺼내 던졌다. 장부를 넘기는 천판수의 손이 미세하게 경련했다.


“참고로 말하지만 시간을 끌어도 소용없다네. 지금쯤 포졸들은 도술로 만들어낸 가짜 깡철을 쫓느라 바쁠 테니.”


“이놈이나 저놈이나 죄다 쓸모없는 놈들뿐이군. 이런 짓을 하고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우리보단 자네의 안위부터 걱정하게.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싶은 것을 겨우 참고 있는 이들이 있거든.”


이글거리는 개평과 우투리의 눈과 마주친 천판수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원하는 게 뭡니까.”


“자네의 재산목록을 적은 장부. 아마 표면적인 것과 떳떳치 못한 일로 벌어들인 재산을 적은 것, 총 두 가지를 가지고 있겠지. 재산이 보관된 창고를 알 수 있는 문서까지 전부 내놓게.”


“그 장부들이 관아에 넘어가면 난 무사하지 못합니다.”


“장부를 내놓지 않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목숨이 날아갈 걸세.”


개평이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우린 장부를 내놓지 않는 편이 더 좋다만.”


“장부를 건네면 저놈들이 날 해치지 못하게 하겠다고 약조해주십시오.”


“맹세하지.”


방 한구석에 놓인 자개장롱으로 다가간 천판수는 서랍을 열고 그 밑바닥을 손으로 더듬었다. 곧 단추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중으로 숨겨진 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부의 내용을 확인한 영실이 고개를 끄덕이며 우투리를 돌아봤다. 우투리가 천판수를 향해 다가왔다.


“이, 이건 약속과 다르지 않습니까!”


“장사꾼이란 자가 생각보다 순진하군. 자네도 우투리와의 약속을 어길 셈이었지 않나.”


죽음을 직감한 천판수는 눈을 감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우투리는 그를 밧줄로 결박할 뿐이었다.


“우린 너 같은 쓰레기가 아니야.”


수치로 얼굴이 벌게진 천판수를 데리고 일행은 마당으로 나왔다. 마침 깡철 또한 가솔들을 전부 밧줄로 묶은 참이었다.


“날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요.”


“그리 멀진 않네.”


대문으로 나오니 소란을 듣고 나온 인근 주민들이 꽤나 많았다.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우투리는 천판수를 대문에 매달았다. 곧 영실이 나서 그동안 천판수가 관아의 눈을 피해 저지른 죄상을 낱낱이 밝히는 연설을 하며 이를 적은 고발장과 증거물을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주민에게 넘겨주었다. 잠시 후, 포졸들이 달려왔을 때 그들은 이미 자리를 뜬 상태였다.


관아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천판수와 일수패의 음모는 점점 더 큰 화제가 되었다. 백성들은 그 간악함에 치를 떨면서 주모자를 극형에 처할 것을 관아에 탄원했다. 결국 나라를 어지럽힌 죄를 물어 천판수를 포함한 몇몇의 주요 인물들은 도성으로 압송이 결정되었다. 남은 잔당들 또한 결코 가볍지 않은 처벌을 받을 것이다.


한편 상평을 떠들썩하게 했던 소년 장사에 대한 이야기는 천판수에게 가리어 더 이상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았다. 다만 어느 날 아침, 그동안 훔친 패물들과 약간의 보상금이 관아 앞에 놓여있었다는 소문이 있을 뿐이었다.






상평에서 조금 떨어진 어느 산속, 청명한 하늘 아래 두 이시미가 공터에서 마주 보고 섰다. 하나는 작열하는 불꽃처럼 새빨간 머리칼을 가졌고 다른 하나는 깊은 호수처럼 검푸른 머리를 가진 이시미였다. 우투리의 옆에서 개평이 불안한 듯 소매를 잡아당겼다.


“꼭 싸울 필요는 없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야.”


“왜 그렇게 저 이시미한테 신경을 쓰는 거야. 이미 한 번 이겼잖아.”


“개평. 널 잃고 내가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를 거야.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너와 떨어지는 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지. 하지만 너는 일수패에게 납치당했고 깡철 일행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나는 영원히 너를 잃었을 거야. 그 후로 많은 생각을 했어.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너를 지키는 게 불가능한 걸까. 어쩌면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그는 개평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비장한 얼굴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해. 다시 한 번 깡철을 이겨서 내가 누구보다 강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 절대, 절대로 지면 안 돼.”


개평이 나무 그늘로 걸어가고 마침내 두 이시미가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이제 얘기는 다 끝난 거냐.”


“기다려줘서 고맙소.”


“오늘은 싸우기 딱 좋은 날씨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두고 어서 싸우기나 합시다.”


“재미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개평의 반대 방향에서는 당우와 영실, 바리가 가슴을 졸이며 깡철을 지켜보고 있었다.


“깡철이 이길 수 있을까요.”


“저번처럼 싸워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하겠지.”


“그래도 나름 생각한 바가 있으니 저리 자신 있는 게 아니겠소.”


그러나 바리의 예상과 달리 깡철은 도움닫기를 하더니 곧장 우투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저돌적인 공격이었다. 물론 우투리는 몇 발자국 움직이는 것만으로 간단히 깡철의 공격을 피했다. 깡철 혼자 허공에 헛손질을 하며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였다.


“이게!”


그 뒤로도 깡철의 맹공은 계속됐다. 주먹이며 발이며 온갖 수단을 썼지만 우투리는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그 많은 공격을 모두 흘려보냈다. 그러면서도 우투리의 반격은 어김없이 적중하니 깡철은 더욱 성급해져서 실수하는 일이 잦아졌다.


마구잡이로 싸우느라 자세가 불안정한 틈을 노리고 우투리가 깡철의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주먹을 내지르는 힘을 역이용해서 깡철을 있는 힘껏 내던졌다. 깡철은 허우적거리며 한참을 날아가 나무들 사이에 떨어졌다. 전신에 나뭇잎이며 흙 같은 게 묻어 꼴이 말이 아니었다. 성난 깡철이 바로 옆에 있는 나무를 뿌리째 뽑아 우투리에게 던졌다. 우투리의 주먹에 닿자 나무는 어마어마한 파열음과 함께 무수한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파편 속에서 나타난 깡철이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그러나 그의 주먹은 우투리의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데 그쳤다.


우투리는 번개처럼 깡철의 복부에 발차기를 꽂은 뒤 무릎으로 머리를 노렸다. 이를 막기 위해 깡철은 두 팔로 안면을 가리고 잔뜩 웅크린 자세가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우투리의 주먹이 노출된 옆구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깡철은 제대로 호흡하지 못하면서도 결코 팔을 내리지 않았다. 이미 패색이 완연했지만 그의 두 눈만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 그만 끝내버려!”


철벽같던 깡철의 두 팔이 허물어진 틈을 놓치지 않고 우투리가 폭발적인 속도로 주먹을 뻗었다. 주먹이 깡철의 인중을 때리면 싸움은 거기서 끝날 터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깡철의 모습이 우투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에 자세를 낮춰 우투리의 주먹을 피한 깡철은 그대로 우투리를 향해 돌진했다. 방심하고 있던 우투리는 깡철의 반응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얼굴에 박치기를 허용했다. 깡철은 그때까지 아껴뒀던 모든 힘을 우투리에게 쏟아 부었다. 그의 주먹이 쉴 새 없이 우투리의 턱과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공격이 멈췄을 때 우투리는 정신이 흐릿해져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보였다. 몇 번이고 자세를 회복하려 했지만 이내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포기해라. 네가 졌다.”


“아직 아니야...”


우투리의 주먹은 깡철에게 한참을 닿지 못하고 허물어졌다. 깡철이 안쓰럽다는 듯 그를 쳐다봤다.


“어째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것이냐.”


“우리는 약하고 쓸모없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졌소. 내 형제를 위해서라도 나는 절대로 쓰러져서는 안 되오.”


그는 허우적거리며 깡철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맥 빠진 주먹이 깡철의 옆구리를 툭툭 건드렸다. 깡철은 복잡한 표정으로 한참을 서 있다 말했다.


“넌 좋은 용이 될 거다.”


“그딴 건 필요 없소.”


“누가 뭐래. 그냥 그렇다는 거지.”


깡철은 두 팔로 우투리의 목을 단단히 조이기 시작했다. 힘이 빠진 우투리의 저항은 무색한 수준이었다. 그의 정신이 서서히 가물가물해졌다.


“그만해. 그러다 죽는다고!”


어느새 달려온 개평이 깡철의 팔에 매달려 소리쳤다.


“우리가 졌어. 이젠 됐으니까 제발 우투리를 놔줘.”


“젠장, 이러니까 꼭 내가 나쁜 놈인 것 같잖아.”


깡철이 팔을 풀자 우투리는 켁켁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개평이 그를 끌어안으며 흐느꼈다.


“미안해...”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그제야 소년들은 한결 짐을 내려놓은 듯한 얼굴이 되었다. 하루를 더 당우 일행과 머물며 우투리는 특히 깡철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개평 또한 이전보단 유순한 태도가 되어 다른 이들과도 곧잘 말을 섞었다. 그리고 밤새도록 고민하던 두 소년은 헤어지는 길에서 등용문을 방문할 생각임을 밝혔다.


“깡철과 이야기하면서 용에 대해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럼 시마리가 왜 우리를 버리고 떠났는지, 그녀와 다른 이시미들은 무엇이 잘못된 건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이걸 가져가도록 하게.”


영실은 종이 위에 무언가를 적어서 우투리에게 건네줬다.


“이게 뭡니까.”


“간단한 소개장일세. 이걸 보여주면 아마 개평도 같이 머물 수 있도록 해줄 걸세.”


“감사합니다.”


“뭐야. 너 등용문에 아는 놈이라도 있는 거냐.”


“잠깐 연이 닿아서.”


우투리, 개평과 헤어지고 길을 가던 당우가 영실을 돌아보았다.


“이시미가 용이 되길 바란다면 사람과 꽃네는 무엇을 바라기에 바라기인 거죠?”


“글쎄, 너무 쉽게 알려주면 재미가 없지. 그건 앞으로 당우 도령이 천천히 생각해보게나.”


작가의말

드디어 3장도 끝이 났습니다. 이시미와 용에 대해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는 앞으로 천천히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다음 장은 무당과 도깨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고자 합니다. 본격적으로 전개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니 부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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