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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귀환했더니 최강 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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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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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2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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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8. 결전

DUMMY

나를 포함 17인의 정예 병력은 무장을 갖추었다. 렐리기오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 현대 기술이 집약된 방어구는 큰 의미가 없었다. 때문에 헌터들은 활동성과 방한에 주를 둔 복장을 착용했다.

약간의 식량이 든 배낭을 메고 주둔지를 떠났다. 8인의 구(舊) 영웅과, 다시 8인의 현(現) 영웅의 위엄은 가히 태산과 같았다. 여기 있는 16명은 대한민국 전력의 7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까지입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군용 버스에서 내릴 때, 심수로가 우리를 배웅했다. 나는 내심 그가 함께 싸우겠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심수로는 자기가 앉은 직책의 무거움을 아는 남자였다. 혹여 상황이 나쁘게 흘러갔을 경우 모든 질책을 받아낼 인물이 자신뿐임을 알고 있는 것이리라.


“수로 형. 얼굴 좀 펴. 일 끝나고 소주나 한잔하자고.”

“그래. 그러도록 하자.”


표기태와 심수로가 진한 악수를 했다. 두 사람의 얼굴엔 아쉬움이 짙었다. 2년 만의 재회를 만끽할 틈도 없었으니까.

운명이란 이렇게 야속한 법이다. 내가 할 일은 저들의 술 약속이 깨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초인들의 뜀 속도는 무지하게 빨랐으나, 축복을 사용하면 따라잡지 못할 것도 없었다.


“퍽 즐거워 보이네요, 저 사람들.”


김아림이 행렬의 끝자락에 선 이들을 보며 내게 말했다. 나는 뒤쪽을 흘끔 바라보았다.

구 S등급 헌터들, 그리고 그들과 동시대에서 활동했던 네 명의 S등급 헌터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난밤을 꼴깍 지새웠음에도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에 반해 사천왕은 조금 동떨어져 있다. 데뷔한 지 이제 1년 7개월에 불과한 그들로서는 대화에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하는 느낌일 테니까요.”


지나가는 투로 대꾸했다. 김아림은 시선을 거둔 뒤 나와 보폭을 맞추었다.


“얘기 들었어요. 저 사람들 냉동인간으로 보관돼 있었고, 그쪽이 치료해줬다면서요?”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죠.”

“뭐든지 다 고칠 수 있는 거예요? 죽을병까지도?”

“상황 따라 달라요. 왜요? 누구 고치고 싶은 사람이라도 있어요?”

“아뇨, 딱히 그런 건 아니고. 나중에 신세 질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요? 그때 지인 DC 같은 거 되나 싶어서요.”

“돈도 많으신 양반이 DC는 무슨···.”

“음? 왜요? 나 돈 없는데.”

“차라리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세요.”

“진짜라고요!”


이후 김아림은 자신이 돈이 없는 이유를 50가지 정도 늘어놓았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자기가 쇼핑중독이라는 얘기였다. 이곳에 오기 전에도 자신의 애인-여자다.-에게 7억짜리 슈퍼카를 선물해줬단다. 덧붙여 애인의 사치가 날이 갈수록 늘어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어쩌라는 거야?’


쓸데라곤 약에 쓸래도 찾아볼 수 없는 푸념을 왜 듣고 있어야 하나, 싶을 무렵이었다. 딱 적당한 시기에 괴물이 등장했다.


이제는 폐허가 돼버린 강릉 시내. 풍화된 건물 뒤로 육중한 몸집을 자랑하는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딱히 갖다 붙일 생명체가 없는, 독창적인 생김새의 괴물이었다.

몸집은 집채만 하고 네발로 거닌다. 딱히 대가리라고 이름 붙일 기관은 없었다. 등 쪽에 우뚝 솟은 혹에는 촉수가 수십 갈래 퍼져 있었다.


“쿠어어어어어!”


놈이 괴성을 내질렀다. 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했더니, 녀석의 배에 붙어있는 아가리가 범인이었다.


사담을 나누던 헌터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눈빛부터가 달라졌다.


모민구가 철갑 건틀릿으로 무장한 손을 굳게 말아쥐었다.


“은호야. 저놈은 몇 급 정도 될 것 같냐?”

“글쎄올시다. 자다 일어났더니 감이 무뎌져서, 원.”


차은호의 환도에 푸른 오라가 용솟음쳤다. 그것을 본 김아림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오랜만에 실력 발휘해볼까? 후배님들은 잠시 물러나 계십쇼.”

“방심하지 마. 저거 A등급 이상이니까.”

“어휴. A등급쯤이야.”


김갑호가 철창을 내세우며 말했다. 이아령은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한 뒤 두 자루의 대거를 교차했다.

현 S등급 헌터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다가 뒤로 물러났다.


“쿠어어어어어!”


괴물이 주변 건물을 부수며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촉수가 날아들었다.

찰나의 순간, 구 8인의 영웅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쾅―!


격렬한 파열음과 함께 괴물이 바닥에 퍼졌다. 몸체가 십수 개로 토막 났고, 하늘에선 조각난 축수 다발이 떨어져 내렸다. 모든 일은 눈 깜짝할 사이 일어났다.

중간 과정은 생략되고 원인과 결과만 남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만 못하네.”

“그러게 말이야.”


구 영웅들이 구시렁댔다.

굼벵이 앞에서 주름잡으려고 하는 말은 아닌 듯하다. 어쨌든 표정이 진지해 보였으니 말이다. 방금 광경을 본 현 S등급 헌터들의 반응도 담담했다.


“저 정도면 어느 정도예요?”


난 바로 옆에 있는 김아림에게 물었다. 그녀는 고민하는 척도 안 하고 말을 내뱉었다.


“그냥저냥 보통은 하는 것 같네요. 근데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그냥 한 번 물어봤어요. 사천왕이 느끼기에 저분들의 실력이 어떤가 싶어서요.”


김아림은 그런가 보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균열이었다면 괴물의 코어를 챙겼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괴물과 몇 차례 더 접전을 치렀다. 개중에는 렐리기오급은 아니나, 한 균열의 보스는 될 녀석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16인의 협공을 5분 이상 막아내는 놈은 극히 드물었다. 내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군에서 집어준 좌표에 다다랐을 무렵. 성물이 내게 동화하기 시작했다. 혈관에 성수가 가득 채워지는 것 같은 이 기분은 언제 느껴도 신비로웠다.

반지와 목걸이의 떨림이 점차 거세졌고, 어느새 육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구체와 가까워졌다.


“지랄 났네.”


오하나는 멀리 보이는 광경에 담백한 감상평을 남겼다. 딱 적당한 표현이었다.


거대하고 까만 구가 공중에 떠 있었다. 그것은 너무도 까매서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아래로는 개미 군집을 방불케 하는 괴물 군세가 있었다.

검정 구 주위로 강력한 폭풍이 몰아쳤다. 괴물들은 회오리에 휩쓸려 까만 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까만 구체는 주둥이요, 회오리는 빨대이고, 괴물은 라떼에 떠다니는 초코 알갱이 같았다.


“아직 늦지 않았네요.”


나는 16인의 헌터에게 강력한 버프를 내려주었다. 성물의 힘을 잔뜩 받았으니 중첩에 중첩을 거듭해도 전혀 부담되지 않았다.

넓은 호수의 물을 찻잔으로 푸던, 고무대야로 푸던 달라지는 게 없는 것처럼.


“어?”

“이 힘은 뭐야?”

“···너도 그래?”


버프를 처음 겪는 이들의 반응은 전부 비슷하다. 사람들은 원인을 알지 못하는 힘에 당황했고, 그건 S등급 헌터라고 다르지 않았다.


“제가 한 겁니다. 해가 되는 건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네? 강호 씨가요?”

“지금 내가 느끼는 이거. 그쪽이 한 거라고요?”


사람들이 기겁하는 반응을 보였다. 몇 사람은 헛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허···. 김강호 씨는··· 대체 뭐 하는 분입니까?”


석진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내게 질문했다. 적대적인 어조는 아니었다. 그저 허탈해하는 듯했다.

렐리기오를 앞에 두고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뭐한 상황이다. 나는 그저 전설의 성검 듀란달을 소환한 뒤 움켜쥐었다.

사람들은 허공에서 검이 생겨나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난 석진의 말에 담담히 대답했다.


“그냥 뭐 이것저것 하는 사람입니다. 긴장하십시오. 괴물들이 몰려옵니다.”


우리는 일제히 앞을 보았다. 아직은 멀다고 느껴지는 곳에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수천의 괴물이 달려왔다.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다.


“렐리기오가 두 번째 페이즈에 돌입하기 전에 끝내야 해요.”

“···두 번째 페이··· 뭐요?”


김아림이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나는 담담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냥 눈에 보이는 거 싹 다 죽이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거야 우리 전문이긴 한데···.”

“그래. 한번 날뛰어 보자고!”


그때 모민구가 앞으로 나서며 함성을 내질렀다. 그를 따라 나머지 헌터들도 전의를 불태웠다.


“저 빌어먹을 용 새끼도 2년 만이네.”

“그래. 딱 2년 만이네. 아직도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지만.”

“얼른 해치우고 술이나 마시러 가자!”


그들은 수천 마리의 괴물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기세만 놓고 보면 렐리기오의 목도 두세 번은 썰어버릴 듯했다.

뜻대로 될지가 문제이지만.


“갑시다.”


우리는 고함을 지르며 튀어 나갔다.

제2의 강릉사태, 그 마지막 전투가 지금 시작됐다.


***


제각기 다른 괴성을 흘리며 다가오는 괴물 군세. 그것은 어찌 보면 장대한 파도 같기도 했다. 그만큼 장관인 광경이었다.

하나 그것은 명백한 비극이다. 지구에서 잘라내야 하는 암세포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이리라. 메스 대신 무시무시한 냉병기를 놀리는 의사.


괴물 무리를 향해 무수한 검기가 쏟아졌다. 어중간한 괴물은 그저 닿는 것만으로도 소멸해버렸다.

17개의 점과 괴물의 벽이 이제 닿을 듯 가까워졌다. 그 무렵 듀란달이 빛을 내뿜었다.

빛은 이 일대를 집어삼키는 반구형 영역으로 발전했다. 힐 존. 이제 헌터들은 머리나 심장이 단숨에 파괴되지 않는 한 죽지 않을 것이다.

마침내 육탄 격돌이 일어났다.


“캬아아아악!”

“크라라라라!”

“하압!”

“하아아!”


괴성과 함성이 뒤섞였다. 열여섯 명의 정상급 헌터는 한 마리의 늑대가 되어 전장을 누볐다. 각각의 무기가 곡선과 직선을 번갈아 그리며 전장에 붉은 물감을 흩뿌렸다.


S급의 잠재력에 버프라는 감초를 더해주자 최강의 시너지를 발휘했다. 헌터들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어지간한 괴물이 아니라면 조금도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경지에 도달한 우리에게 머릿수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쿠오오오오오!”


등에 산을 짊어진 것 같은 거대 거북이가 포효했다. 녀석이 육중한 발을 들어 내 머리 위로 떨어뜨렸다. 나는 피하지 않고 보호막을 전개했다. 거북이의 앞발을 공중에서 걸려 멈추었다.

바로 다음 순간 듀란달이 아찔한 섬광을 내뿜었다. 거대 거북이는 반으로 갈라지며 쓰러졌다. 곧이어 땅을 울리는 요란한 소음이 발생했다.

나는 놈의 시체를 밟고 올라선 뒤 높게 도약했다. 그대로 허공을 차며 날아올랐다.


‘놈이 깨어나기 전에!’


적당한 지점에 이르렀을 때 듀란달을 넓게 휘둘렀다. 신성력이 쏟아지며 영롱한 검기가 방출됐다.

검기는 구체 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한데, 검기가 명중하기 직전 구체 안에서 날개 달린 괴물들이 수없이 튀어나왔다. 놈들이 몸을 대 검기를 받아냈다.


“별 미친.”


마치 시체에 꼬인 파리 떼를 보는 것 같다.

나는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렀다. 한 획에 하나씩 검기가 방출됐고, 구체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날개 달린 괴물들이 계속 등장하며 검기를 받아냈다. 종이도 수백 장 쌓이면 총알을 막아내지 않던가? 하잘것없는 조무래기들도 수가 쌓이니 단단한 장벽이 됐다.


‘젠장. 듀란달이 아니라 그 검만 나왔더라면!’


머릿속에 검 한 자루가 떠올랐다. 그러나 못 먹는 감에 불과하다. 나는 아예 놈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구체로 바싹 다가갔다.


“윽!”


폭풍이 몹시 거셌다. 잠시만 방심하면 휩쓸려 들어갈 정도였다.


“키에에에엑!”

“께륵! 께륵!”


내가 가까워지자 괴물들이 나를 덮쳤다. 방어막으로 몸을 보호하고 더욱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괴물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그래. 몰려들어라.’


나는 최적의 때를 기다렸다. 어차피 조무래기는 나의 보호막을 뚫을 수 없을 테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날짐승 괴물에게 뒤덮인 꼴이 되었다. 사방에서 괴물이 울어댔다.


‘더럽게 꽥꽥 거리네.’


나는 듀란달에 신성력을 집중시켰다. 신성력은 모이고 모여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넘실댔다.

더. 더.

듀란달의 검신이 마구 진동했다. 한계에 다다랐다는 표시였다. 임계 지점에 이른 순간 나는 신성력을 터뜨렸다.

찬란한 빛이 하늘을 황금색으로 물들였다. 날 둘러쌌던 괴물들은 모조리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이게 빛의 힘이다. 모지리들아.’


빛은 예로부터 평화를 상징했다. 왠지 아는가? 빛은 평화와 동시에 압도적인 무력을 뜻하기 때문이다.

불, 물, 흙, 바람 등 세상을 구성하는 원소는 모두 빛에서 비롯됐다. 그 육신이 피와 살로 이루어져 있다면 빛을 거역할 수는 없을지어다.

그렇기에 빛은 강했다.


구체의 방어에 공백이 생겼다. 난 주저 없이 검기를 쏘아 보냈다. 검기는 성공적으로 성흔을 새겼다.


잠깐 아래 상황을 보았다. 벌떼처럼 밀려들던 괴물들도 어느새 반절이나 증발한 상태였다. 좋아 이 기세라면···.


쿠쿵―!


그때였다. 천지를 진동시키는 광음이 전장에 휘몰아쳤다. 잽싸게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까만 구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한 점에서 시작된 금이 구체 전체를 감싸는 데는 3초도 걸리지 않았다. 불길하다. 성흔 때문에 저러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촤라락―!


일순 구체가 살얼음 깨지듯 깨졌다. 유리 조각 같은 파편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때 거대한 팔···. 아니, 저걸 과연 팔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마치 신화 속 나오는 부유섬 같은데?

어쨌건 그 거대한 물체가 나를 향해 뻗어 왔다. 나는 검기를 몇 개 내지르다가 황급히 몸을 빼냈다.


‘···저게 말이 되냐?’


렐리기오는 본래도 80m에 달하는 거체(巨體)였다. 그런데 새로이 등장한 녀석은 그것보다 3배는 더 컸다. 거의 4배 가까이 될 것 같다.

숨이 턱 막혔다. 세상에 300m짜리 생명체라니.


놈이 한때 드래곤이었다는 증거는 이제 형체뿐 남지 않았다. 대가리에 우뚝 솟은 뿔이며, 비늘이 모두 걷히고 뒤덮인 암흑색 피부며.

렐리기오는 이제 악룡(惡龍)이 아닌 악마(惡魔) 그 자체였다.


“끼이이아아아아아아악!”


놈이 포효했다. 그 단순한 행동이 하늘을 울리고 땅을 진동케 했다. 고막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골치 아프게 됐네!’


녀석의 주위를 돌며 듀란달을 휘둘렀다. 검기는 거침없이 녀석의 몸에 메다 꽂혔지만, 놈이 워낙 거대해서 성흔이 티끌처럼 보였다.


이어서 더욱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놈의 전신에 새까만 불꽃이 피어올랐다. 거의 100m 거리에 떨어져 있었음에도 열기가 뻗쳤다.


‘성흔이··· 사라지고 있다···.’


칠흑의 불길이 일렁일 때마다 성흔이 사라졌다.

시험 삼아 몇 개의 검기를 날려 보냈으나, 소용없었다. 모두 불길에 집어 삼켜졌다.


녀석의 몸이 땅으로 떨어졌다.


“모두 피해!”


쿵―!


“우악!”

“꺅!”


파괴적인 중량. 그것이 상공 300m에서 떨어져 내렸다. 렐리기오의 입장에선 살짝 뛰어올랐다가 내려앉은 정도였겠지만, 땅은 비명을 질러댔다.

대지가 갈라지며 뒤집혔다. 주위에 있던 건물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모조리 무너져 내렸다.


헌터들은 발 빠르게 몸을 피해냈고 모두 목숨을 부지했다. 오히려 절망적인 건 괴물 측이었다.

반절 정도 남았던 괴물은 렐리기오에게 깔려 죽거나,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흑염에 타죽었다. 그것도 아니면 뒤집힌 대지에 산 채로 매장됐다.


“크라라! 크라라라라라라!”


녀석이 아가리를 쩍 벌렸다. 그 안쪽은 소름이 돋을 만큼 컴컴한 어둠으로 가득 들어찼다. 일순 어둠에 더 큰 어둠이 모여들었다.


“저, 저건 위험하겠는데?”


누군가 말했다.

틀렸다. 저것만 위험한 게 아니라 모든 게 위험하다. 하지만 그것을 지적해주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머릿속에 죽음이라는 두 글자만 떠올랐다.


“산개해!”


나의 외침과 동시에 헌터들이 동서남북으로 퍼졌다.

나는 몸을 내뺌과 동시에 보호막을 전개하여 녀석의 주둥이 근처에 놔두었다.


부와아악―!


잠시 세상이 번쩍였다.

그 뒤에는 지옥의 열기가 겨울바람을 완전히 몰아냈다.

보호막은 잠시 버티는가 싶더니 이내 깨져버렸고 불꽃은 바닥에 넓게 퍼졌다.

등 뒤로 화염 더미가 굶주린 짐승처럼 달려왔다. 나는 보호막을 몇 겹으로 쌓아 화염의 진행속도를 늦추며 발을 놀렸다.


‘예전에 만났던 악마랑은 비교 자체가 안 돼. 저 정도면 거의 대악마 아니야?’


한때 인류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세웠다는 12체의 대악마. 그때 처음으로 여신 아우로가니안이 성직자의 몸으로 현신했고, 나흘간의 싸움 끝에 놈들을 다시 지옥으로 돌려보냈다. 그 이야기는 이계에서 아주 유명했다.

대악마의 위용이 실제로 얼마나 대단한지는 겪어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갖다 붙일 수 있는 최악의 타이틀이 바로 대악마였다.


적어도 눈앞에 있는 폭룡은 그 타이틀에 부족하지 않을 성싶었다.


“맙소사···.”


나와 같은 방향으로 도망치던 석진이 탄식을 흘렸다.

불길이 닿았던 대지가 완전히 녹아 용암이 되었다. 그 모습이 흡사 불지옥처럼 느껴졌다.


“하앗!”

“핫!”


반대편에서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헌터들이 렐리기오를 향해 검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멍청이들. 그런 장난 같은 것으로 저 괴물을 잡겠다는 거냐? 너무 천진난만한 발상 아니야?


“하···.”


한숨과 함께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엿같이 꼬여가는 현실을 온몸으로 부정하고 싶었다.


‘생각하자.’


원거리 타격으로 렐리기오에게 피해를 주기란 불가능하다. 신성력이 담긴 검기조차 씹어먹는 녀석이니까.

설상가상 직접 타격을 하려고 해도 저 불길 때문에 다가가기조차 힘들다.

어떡한담? 어떡해야 좋을까?

나는 필사적으로 고민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뇌리가 번뜩였다.


그래. 녀석을 죽일 방법은 아직 남아 있다. 그리고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자는 오직 나뿐.

나는 결심을 굳히고 소리쳤다.


“모두 잘 들으십시오! 녀석이 다음번 불을 뿜을 때가 기회입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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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042. 강릉사태 +28 19.10.03 15,947 482 14쪽
41 041. 폭풍전야 +28 19.10.02 15,817 512 16쪽
40 040. 폭풍전야 +44 19.10.01 16,075 535 14쪽
39 039. 폭풍전야 +19 19.09.30 17,216 510 15쪽
38 038. 확장 +28 19.09.29 18,172 513 16쪽
37 037. 확장 +20 19.09.28 18,488 558 14쪽
36 036. 치유의 집 +34 19.09.27 18,638 58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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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028. 조우 +26 19.09.19 23,331 601 15쪽
27 027. 의뢰 +26 19.09.18 24,240 588 15쪽
26 026. 의뢰 +28 19.09.17 24,954 59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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