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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다른 세계를 해킹하는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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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비를긋다
작품등록일 :
2019.08.22 00:57
최근연재일 :
2019.10.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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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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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2,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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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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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7. 밤하늘

DUMMY

17. 밤하늘


정체불명의 노인, 릴리, 그리고 나는 빠른 속도로 바람을 맞으며 이동하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참 많았다. 아직 <로스트 월드 3>가 출시되기 전, 캘리포니아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에 갔을 때 본 것보다도 더 많은 별들이 검은 하늘을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북두칠성이나 큰 곰 자리 같은 게 보이지 않는 생경한 밤하늘은 약간 공포스러웠다. 이게 꿈속인지 뭔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여기가 지구, 적어도 지구의 북반구가 아닌 건 확실했다.


땋아 내린 릴리의 짙은 금발 머리 가닥이 이따금 바람에 날려 내 뺨에 부딪혀 왔다. 릴리는 그것도 모르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바깥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래, 많이 땄소?” 노인이 물었다.


“글쎄요. 정확하게는 모릅니다만, 한 번 세어볼까요?” 나는 노인의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하며 대답했다. 어쩌다 싸움에 휘말렸는지, 도대체 도박은 왜 한 건지, 여관 주인 패거리를 쓰러뜨린 다음에 어쩌려고 했는지를 물어보는 대신 얼마를 땄냐고 물으니 할 말이 없었다.


“그게 뭐 중요하겠소. 어제는 각인도 하지 못했지요? 돈이 없어서?” 그는 마지막 문장을 올려서 마쳤다. 돈이 없다는 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그런 말투였다.


“네. 그렇습니다. 정말로 수중에 1골드도 없었으니까요. ” 내가 어제 각인을 했는지 안 했는지 노인이 알고 있다는 신기한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지도 못하고 나는 돈이 정말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며 말했다.


“그래서 도박을 한 거요?”


“도박이 설마, 불법입니까?” 나는 조마조마해서 물었다.


노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젊은이, 재미있구려. 듣던 것과는 다르구먼. ”


“불법은 아닌가 보군요. 저는 정말 돈이 없어서. ”


“돈이 없다면 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지 않겠소?”


“오크라도 죽이고 약탈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나는 갑자기 네이어스가 아닌 김준우가 되어서 물었다. 킬데어에서 생산적인 일이 뭔지 묻고 싶었다.


“하하, 젊은이. 신랄하구먼. ”


생산적인 일이 무엇인지, 도박 따위보다 건설적인 뭔가를 하라는 얘기가 이어질 줄 알았는데 노인은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생산적인 일이 뭘까 생각하다가 어느새 도박에서 얼마를 땄는지 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적어도 25골드는 넘게 벌었다. 어제 80골드를 벌 때보다는 시간이 더 걸린 것 같지만, 오늘은 잃기 전에 일어났다. 내가 일어났다기보다는 여기 노인이 나를 말려준 셈이지만.


노인은 내 수고를 덜어주기도 했다. 나는 다섯 명을 상대로 이길 자신이 있었지만, 크게 다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었다. 어제 그라인하임 시장 거리에서 신참내기 불량배 둘을 혼내준 이후 너무 의기양양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상대를 잘못 만나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어디로 가는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노인도 릴리도 가만히 있자,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 같아 나는 물었다.


“나는 내 집에 갈 거고, 젊은이는 젊은이 집에 가야지, 뭐 있겠소? 아 참, 집이 없다고 했죠? 하긴 떠돌이 양반들은 대개 집이 없긴 하지. ”


킬데어에든 지구별 한국에든 캘리포니아에든 집이 없는 것이 사실인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저는요?” 바깥쪽을 쳐다보던 릴리가 고개를 돌아 노인을 보면서 물었다.


“릴리는 학교에 가야지. 내가 아는 학교에 넣어 주마. ”


“우와, 정말요? 학교 얘기 좀 해주세요. ” 릴리는 눈이 똘망똘망해지면서 물었다.


노인은 학교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교실이라는 게 있고 기숙사가 있고, 뭐 뻔한 얘기였다. 학교에 교실이나 선생님이 있다는 당연한 얘기를 하는 걸 보면, 일반 대중을 위한 의무 교육이 없는 세상인 건 분명했다. 지구별 한국 학교와 별다를 게 없는 이야기만 계속해서 이어지자, 나는 따분해져서 물었다.


“마법은요? 마법은 언제부터 배워요?”


“마법? 마법을 왜 배워?” 노인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면서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마법 학교 가는 거 아니었어요?”


“마법 학교? 그런 것도 있나? 젊은이는 도대체 어디 출신이길래?”


노인이 마치 도둑이라도 쳐다보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해서 나를 쳐다보자 나는 갑자기 당황했다. 아까부터 나에 대해 이것저것 아는 것이 많은 노인이었다. 듣던 것과 다르다니. 도대체 나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누구한테 들었다는 건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어제 각인을 하지 못한 건 또 어떻게 아는 건가? 아무래도 이 노인이 그 오크 현인과 모종의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인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두 사람뿐이다. 목소리만 들었던 키리 여자, 그리고 그 오크 현인.


이 노인의 얼굴은 아무리 뜯어봐도 인간 종족인 게 틀림없지만, 오크와 키리가 대화하는 것도 들은 나다. 종족 간 교류가 없는 것도 아니다. 다종족 길드도 얼마든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모험가 길드보다는 직종 길드, 그러니까 대장장이나 제약사 길드라면 다종족 길드가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안다.


“어디 출신이냐고!” 노인이 다시 말했다.


“킬데어 출신이죠! 아니, 시타델 출신인가?” 나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구, 한국, 캘리포니아 출신이라고 했다가 고문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나. 더구나 이 노인의 실력은 아까 생생하게 목격하고 몸으로 경험했다. 이 노인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국물도 없다는 걸 아주 잘 깨닫고 있단 말이다.


“농담이었네. ” 갑자기 노인은 씩 웃으며 말했다. 뭐가 체한 것처럼 가슴에 걸려 있던 게 내려갔다. 어휴, 정말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노인은 릴리와 나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학교에서 몇 년 동안 공부하고 나면, 그때 뭘 할지 정하면 되는 거지. 혹시 그때 마법이라도 배우고 싶으면 나를 찾아오렴, 릴리. ”


“네. ” 릴리는 별 감흥 없는 목소리로, 바깥 풍경을 계속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그런데 마법을 배우고 싶으면 찾아오라는 말에 나도 자동으로 반응을 해버렸다.


“헛, 혹시 저는···” 노인의 실력을 봤으니, 그 제자가 돼서 그 기술의 절반만 배워도···


“아니, 정말 젊은이 자꾸 왜 이러나? 공부도 할 만큼 하고, 멀쩡한 직업도 갖고 있는 사람이. ” 노인이 삐딱한 자세로 한쪽 눈을 치켜뜨면서 나를 보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 쏘아붙이는 노인의 말투에 나는 소금 뿌린 배추처럼 풀이 죽었다.


“뭐 내가 혹시 싸움 말려준 대가라도 내놓으라고 할까 봐 그러는 건가? 그러면 각인 수수료 모자랄까 봐?”


“네?” 자꾸 각인 비용 얘기를 하니 더 당황스러웠다.


“자네,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는 걸 보면 내가 합승 마차 값이라도 받아야겠네. 돈 좀 줘봐. ” 노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아, 그러니까, 그게··· 얼마 드려야 하죠?” 나는 동전 자루를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물었다.


“정말, 젊은이는 농담을 이해를 못 하는군. 도대체 킬데어 젊은이 맞나 수상해. ”


“영감님, 정말 재미있으십니다. 하하하! 젊은이가 쩔쩔매니까 더 재미있네요. ” 앞자리에 앉은 마부가 큰 소리로 말했다.


릴리는 합승 마차를 처음 타보는 건지, 처음부터 한순간도 빠짐없이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운 밤이라서 사실 뭐 보이는 것도 없었다. 중세의 킬데어는 21세기 지구별과는 다르다. 야경이랄 게 뭐 없다. 아마 여관 ‘술통과 주사위’의 불빛이 가장 현란한 야경 중 하나일 것이다. 시타델에도 그렇게 큰 여관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시타델에서는 자정 이후 소란 행위가 금지되므로, 그렇게 떠들썩한 방식으로 영업하는 술집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릴리는 뭐가 되고 싶어?” 나는 조용한 게 서먹해서 릴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네? 뭐가 되다뇨?” 릴리가 대답했다. 지금까지 노인의 질문에 단답형으로 대답하면서 바깥 풍경만 바라보던 릴리가 나를 돌아보며 되물었다.


“허허, 정말 젊은이는 예측불허구만. ” 노인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잠깐 생각했다. 아무래도 중세에는 장래에 뭐가 된다느니 하는 개념이 없었을 것이다. 농부 아들은 농부가 되고, 우유 짜던 아줌마의 딸은 우유 짜는 처녀가 되는 것이다. 인도의 하층민 삶에 대해 고발한 다큐를 본 기억이 났다. 불가촉천민으로서, 깨어 있는 시간 내내 하루 종일 빨래만 하면서 간신히 입에 풀칠하는 사람 이야기였는데, 그의 아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니 아버지처럼 훌륭한 빨래꾼이 되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릴리는 원래 부잣집 딸이었던 것 아닌가? 오늘 도박판에서 단편적으로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면, 릴리의 아버지는 무려 백작이었는데, 도박에 빠져서 돈은 다 날리고 아내는 죽고 딸은 술집에 팔아먹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본인도 그 술집에 고용돼서 딜러를 하고 있다. 본인이야 적성을 살렸으니 좋은 직장을 구한 것이지만, 릴리가 설마 그런 일을 하고 싶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일단 수습을 하기 위해 릴리에게 대답했다.


“학교 가서 공부한 다음에 뭐 마법사가 되고 싶다든가. ”


“그게 제 맘대로 되나요. ” 릴리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다시 바깥 풍경을 쳐다보았다.


“이보게 젊은이, 릴리가 아직 말도 하지 못하는 아기였을 때, 이미 군터 씨 집안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고. 릴리가 부잣집 딸이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해. ” 노인은 내 귀에 속삭였다.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어르신은 릴리를 마법사로 키우실 생각이십니까?” 노인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자, 나는 묻고 싶었던 것을 냉큼 물었다. 내 관심은 온통, 이 어마무시한 마법사의 제자 자리에 쏠려 있었다.


“하하하. ” 노인은 그냥 웃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노인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보았다. 나는 그가 무엇을 보는지 궁금해서 그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의 별들을 배경으로 갑자기 유성이 하나 날아들었다.


“아량, 그러니까 샤더라는 단어는 이렇게 쓴다우. ” 노인이 말을 마치자, 유성이 방향을 바꿔가며 밤하늘에 글자를 썼다. 룬 문자를 읽을 줄 아는 킬데어의 나, 네이어스는 그 글자를 소리 내 읽었다.


“샤더. ”


“그렇소, 젊은이. 아까 릴리와 군터를 구해주려던 자네의 행동에 사실 감동했소. 여관 주인 양반에게 아량이라는 게 있었다면 그런 일이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겠지. 아까 자네의 그 행동이 남을 도우려고 한 것이든, 불의를 못 참아서 그런 것이든, 그냥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아주 훌륭한 행동이었다고, 말해주고 싶구려. ”


밤하늘에 글씨를 써 놓고 내게 한 바탕 덕담을 하는 노인의 목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기시감, 아니 기청감 같은 게 들었다. 그래서 나는 서둘러 물었다.


“오늘은 이게 끝인가 보죠?”


노인은 하늘을 보던 고개를 돌려 나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그리고 등을 후려치면서 말했다.


“역시, 재밌어, 자네는. 오늘은 이게 끝이냐니 무슨 말인가? 이게 무슨 유랑극단 공연이라도 된단 말인가? 하하하. ”


나는 그 오크 현인처럼 옆자리의 노인이 빛에 휩싸여 사라질 줄 알고 물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를 보고 한바탕 웃더니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릴리는 지치지도 않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차가 덜컹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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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0. 진짜 해킹 19.09.29 38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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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2. 융문의 괴수 19.09.11 60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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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8. 고급 여관 19.09.07 66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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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 노인의 저글링 19.09.05 73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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