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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다른 세계를 해킹하는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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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비를긋다
작품등록일 :
2019.08.22 00:57
최근연재일 :
2019.10.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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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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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61
글자수 :
202,860

작성
19.09.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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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8. 고급 여관

DUMMY

18. 고급 여관


그라인하임에 도착했다. 합승 마차 마부는 겨우 세 명을 태우고 여섯 명 몫의 삯을 받아 입가가 귀에 걸렸다. 고맙다고 연신 절을 하고 나서, 마부가 마차를 몰고 떠나자, 노인은 내게 물었다.


“어디 잘 데는 있고?”


“전 시간을 봐서, 가능하다면 아예 시타델까지 가려고 합니다. 새 타고요. ”


“하긴, 그렇지. 자넨 자네 일이 있을 테니까. 잘 가보게나. ” 노인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그렇게 말하고는, 손등이 보이도록 손을 흔들어 잘 가라는 제스처를 했다.


“여러 가지로 감사했습니다. ” 나는 꾸벅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여러 가지로 감사한 것도 사실이고, 노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하면서 노인과 외줄 타기 대화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이 대단한 노인에게 뭔가를 배우거나 정보를 얻어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또 노인이 오늘 어디에서 하룻밤을 묵을 것인지, 아니 이 노인 정도 되면 잠을 안 자도 되는 것은 아닌지도 궁금했다. 릴리를 맡긴다는 그 아는 사람이 하는 학교도 어디인지 궁금하고, 지금 당장 학교로 갈 것인지, 어디에선가 하루를 묵고 갈 것인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뭐든지 다 아는 것 같은 노인에게 더 이상 말꼬리를 잡히기 싫었다. 새 승강장이 있는 첨탑 쪽으로 걸어가다 뒤를 돌아보니 노인과 릴리가 어둠 저쪽 편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가로등이 있었지만 그다지 밝지 않았다.


첨탑 입구에 도착해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꼭대기까지 올려다 주는 지게꾼을 찾았다. 그런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보초병이 내게 물었다.


“뭐 찾는 거라도 있소?”


“지게꾼이 한 명도 없네요. ”


“지금 이 시간에 첨탑에 올라가겠다는 거요?”


“혹시, 이 시간에는 새가 운행을 안 하나요?”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이 어두운 밤에 공중에서 새들이 부딪치기라도 하면 모두 함께 개죽음인데, 어느 조련사가 돈 좀 벌자고 그 짓을 하겠소. ”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


처음 듣는 얘기다. 게임에 그런 게 어딨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밤 시간에 새 운행을 안 한다고 하면 유저들이 전부 들고일어날 것이다. 나처럼 팔자가 좋아서 하루 종일 게임을 하는 사람도 짜증 나겠지만, 회사에서 일하다가 파김치가 돼서 돌아와 자기 전에 한두 시간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달래려는 직장인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런데 그런 <로스트 월드 3>라는 지구별에서 서비스하는 MMORPG 이야기고, 여긴 진짜로 킬데어라는 곳이다. 귓말도 안되고 패치 노트도 띄우지 못하는 세상에서, 야간비행을 하라고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그러다가는 생텍쥐페리의 소설 <야간비행>에서처럼 조련사들의 목숨이 줄줄이 날아갈 것이다. 뭐,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승리자 리비에르’처럼, 경영진이야 좋겠지만 말이다.


노인은 왜 새를 타러 가겠다던 나를 말리지 않았을까, 잠깐 생각했다. 아까부터 느끼는 거지만, 노인은 나의 정체, 그러니까 지구인 김준우의 아바타라고 할 수 있는 내 정체성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느끼는 거지만 오크 현인과 느낌이 상당히 비슷하다. 오크 현인처럼 나를 어디로 날려 보낸다든가 하는 일은 하지 않았지만, ‘술통과 주사위’에서 싸움을 말리던 장면은 오크 현인보다 더 현란하지 않았던가. 내가 다른 세계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노인은 내가 하나씩 부딪쳐 가면서 이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을 배우라는 의미에서 그냥 놔둔 것 아닐까.


어쩌면, 이렇게 남의 의도를 좋게 생각해주는 것도, ‘샤더’, 즉 아량이다.


그러나 노인과 릴리를 따라갔다면 더 재미있는 구경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쉽기도 했다. 어쨌든 빛에 휩싸여 사라지곤 했던 오크 현인과는 달리, 노인은 그냥 걸어갔다. 벌써 밤 열 시나 되었는데 말의 속도로 이동해봤자 두 시간 내에 갈 만한 곳은 없었다. 두세 시간이 지나면 샌디에이고에서 자는 중인 내 육체가 깨어날 시간이다. 그 전에 시타델에 갔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으니 어디 여관에라도 가야 했다. 지도를 펼쳐 봤자 내 위치가 자동으로 표시되는 것도 아니고, 케케묵은 양피지에서 냄새나 풀풀 날릴 뿐이다. 그래서 나는 보초병에게 길을 물었다.


“가까운 여관이 어디 있습니까?”


“계단 내려가서 두 블럭만 남쪽으로 가면 여관 ‘행운의 말굽(Lucky Horseshoe)’이 있소. ”


나는 보초병이 가르쳐준 대로 여관을 찾아갔다. 예상대로, ‘술통과 주사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여관이었다. 그라인하임에는 다른 여관들도 많을 것이므로, 이 여관만 보고 그라인하임의 여관들이 전부 형편없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초라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제일 좋은 방이 얼마냐고 물었다. 여관 안주인은 약간 놀란 얼굴로 내 행색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금세 영업용 미소를 얼굴에 깔고 웃으며 말했다.


“귀족이신 걸 몰라뵈고 죄송하네요. 제일 좋은 방을 내드리겠습니다. 예전에 백작 나리도 주무셨던 방입니다. ”


나는 귀족이 아니라고 말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캐릭터 만들 때 귀족이니 평민이니 하는 설정은 없었던 것 같은데, 모르는 부분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귀족 사칭죄라도 뒤집어쓰게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별로 그럴 일은 없어 보였다.


방에는 금고가 있었다. ‘술통과 주사위’에서는 제일 싼 방에서 다른 여행객들과 섞여 자느라 귀중품을 여관 주인에게 맡겼다. 그런데 여기는 금고가 있으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금고에 중요한 물건들을 넣고 자물쇠로 잠그면 그만이다. 열쇠만 몸에 지니고 있으면 된다. 방 입구에서 나를 지켜보던 여관 안주인에게 나는 물었다.


“뭐 먹을 것 좀 있습니까? 방으로 가져다주실 수 있나요?”


“닭이라도 한 마리 잡아 올릴까요?”


“그거 좋죠. 닭튀김 가능합니까?”


“네? 닭을 튀긴다고요?” 주인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되물었다. 누가 봤다면, 내가 돌을 금으로 바꿔달라는 요구라도 했다고 생각할 표정이었다.


“안되나 보군요. 뭐 구워주셔도 좋고 쪄주셔도 좋고. 닭고기 먹겠습니다. ”


여관 안주인은 방값의 반과 닭고기 요리값을 지금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닭 한 마리에 10실버, 방값은 40실버였다. <로스트 월드 3>에서는 물론이고, 어떤 게임에서도 지금까지 이렇게 비싼 방에서 자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나를 대신하는 게임 캐릭터지만 좋은 방에서 잔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럴 이유가 없었다. 여관이 바로 옆에 있어도 노숙이 가능하면 노숙을 하고는 했다. 그러다가 몬스터가 습격이라도 하면 돈도 벌고 경험치도 얻으니 노숙이 더 좋다.


여관 안주인에게 30실버를 줄 때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가 가져온 닭고기를 보니 돈 아깝다는 생각이 몇 배로 커졌다. 이건 냄새부터가 별로 먹고 싶지가 않았다.


“빵 없습니까? 빵 좀 주세요. ”


다행인지 빵이 있었다. 게다가 여관 안주인은 비싼 방에서 자면서 닭고기까지 시킨 나에게 빵을 공짜로 가져다주었다. 물론 신선한 빵은 아니었다. 언제 만든 건지는 몰라도 빵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헉. ”


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빵에 이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빵을 좀 갈라서 먹을까 했지만, 이도 들어가지 않는 빵이 겨우 손힘으로 갈라질 리가 없었다. 그래서 빵을 오른손에 들고 침대 모서리에 내리쳤다.


“으아아악!”


빵에서 벌레 여러 마리가 기어 나왔다. 자세히 보니 빵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그게 그 녀석들 보금자리였던 모양이다. 나는 빵을 집어 던지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촛불 근처에 날벌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마 어딘가에는 쥐구멍도 있을 것이다. 침대를 들면 쥐 한 부대 정도가 나오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빈대는? 침대에 빈대라도 있다면 정말 크게 다칠 수 있다. 킬데어 사람 네이어스는 몰라도 한국 사람 김준우는 아마 죽을지도 모른다. 빈대에 물려보기는커녕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도 없다.


여관에서 가장 좋은 방에 왔지만, 침대에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구석 자리에 나무 의자를 놓고 앉았다. 헝겊으로 된 침구류 따위에는 벌레가 숨어 있겠지만 그냥 나무로 된 의자는 괜찮을 것 같았다. 바닥에 신발이 닿으면 거기서부터 내 몸이 오염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발까지 의자 위로 올렸다. 그렇게 의자에 앉아서 나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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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1. 아를레키노의 구직 활동 19.09.10 58 3 7쪽
21 20. 해커의 자괴감 19.09.09 64 3 8쪽
20 19. 토너먼트 19.09.08 64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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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 노인의 저글링 19.09.05 73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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