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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다른 세계를 해킹하는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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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비를긋다
작품등록일 :
2019.08.22 00:57
최근연재일 :
2019.10.04 06:00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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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61
글자수 :
202,860

작성
19.09.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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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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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7쪽

26. 고블린과 친해지기

DUMMY

26. 고블린과 친해지기


몇 개의 문을 지나친 다음, 안내인은 문 하나를 열고 내게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고블린 몸집에 맞지 않는, 지나치게 호화롭고 커다란 가죽 의자에 앉아 있던 고블린이 일어나서 인사했다. 안내인은 그에게 내가 최상급 비늘 진주를 구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가죽 의자에서 일어난 고블린이 호들갑이라는 것의 진수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최상급 비늘 진주라고요! 최상급 비늘 진주! 그런 물건은 아무나 다룰 수 있는 게 아니죠! 오랫동안 보석과에 있었더니 이런 일이! 정말 딱 맞춰서 오셨습니다. 마침, 금고에 딱 맞는 물건이 있거든요. 이런 고귀한 보석을 거래하게 되다니! 단돈 500골드에 모시겠습니다. 비늘 진주의 고귀함에 비하면 거저 드리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친구!”


500골드? 그런 화폐 단위가 존재하기는 하나? 반다르 고블린은 거래의 귀재라고 들었다. 분명히 목표하는 금액의 몇 배를 불러본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우선 물건을 보여달라고 했다. 내게 잠깐 기다리라고 한 다음, 그는 안내인의 귀에 대고 뭔가를 속삭였다. 안내인이 나가더니, 경비병 네 명과 함께 돌아왔다. 아마 내 행색을 보고 강도 짓이라도 할 만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오늘 첫 거래를 하시는 분이니, 저희도 규정상 어쩔 수 없습니다, 친구여.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이 건물에는 총 200명의 중무장 경비병이 상주하고 있고, 샤를로츠 공작 직속 호위병 부대와도 핫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


중세 시대에 핫라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달리기나 말타기를 잘하는 연락병 정도일 것이다. 그는 책상 뒤쪽 금고에서 한참을 꼼지락거리더니 보석 상자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눈으로만 봐주십시오, 친구. ”


비늘 진주라는 걸 처음으로 봤다.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상앗빛 진주 표면이 비늘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책상 뒤 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그 비늘 무늬에 닿아 난반사를 일으키니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게 빛났다.


“이게 최상급인가요? 무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최상품이 필요합니다. ”


“이게 당연히 최상품입니다. 어디에 또 이런 물건이 있겠습니까?”


“너무 작아요. 분명히 더 좋은 것이 세상에 있을 겁니다. ” 나는 근거도 없이 넘겨짚기를 했다.


“하하, 친구여. 설마 ‘한(Khan)의 눈물’이라도 필요하다는 겁니까? 사제가 쓸 목걸이를 만드는 건가요? 아니, 무기라고 하셨죠. 설마, 롱소드를 만들려는 건 아니겠죠? 롱소드를 만든다면 진주를 갈아 넣어야 합니다. 미친 짓이죠. ”


“한의 눈물? 그건 어디에서 구할 수 있죠? 세상에서 제일 좋은 비늘 진주가 필요합니다. ”


“이 친구, 제정신이 아닌 것 같군. 끌어내. ” 그는 갑자기 내게서 고개를 돌리고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나는 네 명의 고블린 병사들에게 팔다리를 하나씩 잡힌 채로 끌려 나왔다. 건물 밖 도로에다 나를 던지면서 안내인이 말했다.


“좋은 하루 보내라고, 친구!”


사람을 집어 던지면서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주 빈말은 아닌 것처럼 들렸다. 고블린 표정이 원래 웃는 상이라서 그렇게 들렸나 보다. 나는 일어나서 옷을 툭툭 털었다. 그리고 ‘한의 눈물’에 대해서 고블린이 한 말을 되새겨 보았다.


보석에 이름이 붙을 정도면 당연히 최고급품이다. ‘한의 눈물’은 원래 반다르 씨족의 족장 고블린이 목에 걸고 다니던 물건이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은 프랑크 씨족의 족장 목에 걸려 있다. 반다르 족장이 애지중지하는 손자가 프랑크 씨족에게 붙잡혀 인질이 됐고, 반다르 족장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희귀한 비늘 진주인 ‘한의 눈물’을 건네주고 손자를 돌려받았다. 고블린의 전설에 따르면 ‘한의 눈물’을 가진 자는 고블린 씨족들을 통합해서 대제국을 건설하는 영웅이 된다는데, 현재 상황을 보면 전설은 그냥 전설인 모양이다.


나는 강하게 확신하고 있었다. 말라키 씨의 입을 통해 내게 과제를 건넨 해저의 목소리는 다름 아닌 ‘한의 눈물’을 원하고 있다고. 그렇다면 이번 과제는 앞의 두 과제와는 수준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첫 번째 과제는 늑대를 죽이는 것이라기보다는 룬 문자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아내는 것이었다. 오크 스무 명을 해치우는 두 번째 과제는 시간제한이 있기는 했지만, 내용으로 봐서는 아주 싱거운 과제였다.


그런데 세 번째 과제가 ‘한의 눈물’을 손에 넣는 것이라면, 이건 수십 명이 공격대를 만들어도 쉽지 않은 과제다. 고블린 1개 씨족이라면 확실히 북부 오크의 크랄란 연맹이나 서부 오크의 슈투라 동맹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 그래도 여전히 1개 세력 전체를 상대하는 것이다. 변경 지방의 작은 마을을 침략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는 혹시나 해서 지나가던 순찰병에게 물었다.


“혹시, 프랑크 고블린에 대한 토벌 작전 같은 건 없나요? 있다면 저도 좀 끼고 싶어서요. ”


“그런 건 없습니다. 오랑캐는 오랑캐로 제어한다는 것이 제국, 그리고 샤를로츠 공국의 공식 입장입니다. 서로 싸우게 놔두면 되지 거기에 우리가 왜 끼어듭니까?”


맞는 말이었다. 프랑크 고블린이라면 고블린 10여개 씨족 중에서도 가장 아싸에 속한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씨족들의 견제가 만만치 않은데 굳이 돈을 쓰고 인명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토벌 같은 걸 할 이유가 없다.


나는 일단 고블린들의 잔심부름이나 좀 하면서 그들과 친해져 보기로 했다. 우선 반다르 연합회 사무소에 가보았으나, 한번 내쫓은 사람은 기억을 하고 있는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부둣가에 가서 서성거리다가 일을 겨우 받았는데, 배 위에 올라가서 쥐를 잡는 것이었다. 출항하기 전에 쥐를 소탕해야 항해 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숲에서 늑대나 곰을 사냥하더라도 훨씬 벌이가 좋을 시간에, 나는 배에 올라가 어두운 창고와 부엌, 침대칸을 뒤지면서 쥐를 잡았다. 몇 시간 동안 잡은 쥐 수십 마리를 자루에 담아 와서 나는 선주에게 보여주었다. 단안경과 실크 모자를 쓴 작달막한 고블린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루를 열어 보여주는 나를 보며 즐거워했다. 제국에서 오랑캐 취급을 받는 고블린이지만, 지금 당장은 인간 모험가에게 심부름을 시키며 갑질을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치고는 꽤 성실하구만, 친구. 혹시 쥐 말고 다른 것도 잘 잡나?” 그는 단안경을 만지작거리면서 내게 물었다. 그의 크고 뾰족한 귀가 씰룩거리는 게 보였다.


“그럼요, 나으리. 오크는 물론이고 늑대인간이나 회색곰도 잘 잡습니다. 뭘 잡아드릴까요?” 허리를 푹 숙여서 고블린에게 눈을 맞춘 채, 나는 최대한 비굴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 하나 잡아주게, 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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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4. 도시의 그림자 19.10.03 34 2 11쪽
44 43. 로크 조련사 조셉 19.10.02 34 2 8쪽
43 42. 기도하는 롱소드 19.10.01 28 2 8쪽
42 41. 수상한 소포 19.09.30 32 2 8쪽
41 40. 진짜 해킹 19.09.29 36 2 10쪽
40 39. 사라진 보석 19.09.28 28 2 9쪽
39 38. 세 번째 코드 19.09.27 31 2 7쪽
38 37. 죽은 자의 손수건 19.09.26 34 2 7쪽
37 36. 몰이사냥 19.09.25 33 2 11쪽
36 35. 계약 이행 19.09.24 37 2 8쪽
35 34. 형제간의 불화 19.09.23 40 2 7쪽
34 33. 귀국 준비 19.09.22 41 2 8쪽
33 32. 블리츠크릭 19.09.21 39 2 8쪽
32 31. 용병과 고블린 19.09.20 39 2 8쪽
31 30. 큰 아들 하랄드 19.09.19 46 3 9쪽
30 29. 고블린의 초대 19.09.18 53 3 8쪽
29 28. 파설귀 19.09.17 51 3 7쪽
28 27. 뉴스 19.09.16 55 3 9쪽
» 26. 고블린과 친해지기 19.09.15 56 3 7쪽
26 25. 세 번째 과제 19.09.14 53 3 7쪽
25 24. 노력할 계기 19.09.13 50 3 7쪽
24 23. 괴수와 엘릭서 19.09.12 50 3 7쪽
23 22. 융문의 괴수 19.09.11 60 3 8쪽
22 21. 아를레키노의 구직 활동 19.09.10 58 3 7쪽
21 20. 해커의 자괴감 19.09.09 64 3 8쪽
20 19. 토너먼트 19.09.08 64 3 11쪽
19 18. 고급 여관 19.09.07 66 3 9쪽
18 17. 밤하늘 19.09.06 73 3 12쪽
17 16. 노인의 저글링 19.09.05 73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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