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다른 세계를 해킹하는 회사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완결

비를긋다
작품등록일 :
2019.08.22 00:57
최근연재일 :
2019.10.04 06:00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4,693
추천수 :
161
글자수 :
202,860

작성
19.09.18 06:00
조회
53
추천
3
글자
8쪽

29. 고블린의 초대

DUMMY

29. 고블린의 초대


밤낮으로 고블린들의 심부름을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중간중간에는 길드에서 가는 소규모의 공격대에도 참여했다. 그동안 하지 않고 남겨두었던 퀘스트도 남부 지역부터 깡그리 해결하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에 꽤 쓸만한 장갑을 전리품으로 획득했고, 재료를 모아 가죽 바지도 괜찮은 것으로 장만했다.


토너먼트는 8강을 거쳐 4강이 진행 중이었다. 4강 경기부터는 삼판양승제로 되어 있었다. 4강 첫 대진에서는 화광마가 별 어려움 없이 승리했다. 상대방은 토네이도킹이라는 이름의 검귀, 즉 공격형 전사였다. 나를 16강에서 가볍게 제압한 앙팡테리블을 꺾고 올라온 상대였다. 그런데 그 둘이 격돌한 8강 경기는 많은 사람들의 빈축을 샀다. 앙팡테리블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서 있었기 때문이다.


16강 경기에서 앙팡테리블이 보여주었던 컨트롤을 기억하는지, 토네이도킹은 아무런 동작도 하지 않는 상대에게 접근도 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마치 권투선수처럼 앞뒤로 뛰면서 상대 근처를 알짱거리던 토네이도킹은 잽을 넣듯이 가볍게 평타를 날렸다. 한 방을 맞고도 상대방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자, 토네이도킹은 신이 나서 화려한 기술을 마구 날렸다. 앙팡테리블은 샌드백처럼 연타를 맞고 쓰러졌다. 관중들은 야유를 보냈다.


잘못을 했다면 앙팡테리블이 한 것이지, 토네이도킹이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8강 경기를 거저먹고 올라온 토네이도킹이 화광마와 4강에서 격돌하자, 관중들은 일방적으로 화광마를 응원했다. 실력 차이도 분명했다. 화광마는 16강, 8강에 이어 4강 경기도 가볍게 이기고 올라갔다. 세트 스코어 2:0으로 세 번째 경기를 할 필요도 없었다.


4강 두 번째 대전은 사냥꾼 아이스탑 대 자객 파설귀였다. 파설귀는 토너먼트 이틀 전에 길드에 가입해서 말이 많았다. 길마는 길드원들이 자극을 받으라는 의미에서 실력이 뛰어난 그녀를 한시적으로 길드에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파설귀는 길드에 가입해서 토너먼트를 이기고 먹튀해도 되냐고 물었고, 길마는 길드에 가입해서 30일만 채워준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고 대답했다.


외부에서 온 용병이 토너먼트 상금을 먹튀하게 생겼으니, 4강 대진에 앞서 모든 길드원들은 사냥꾼 아이스탑을 응원했다. 자기 돈을 들여 연습 상대를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누가 결승에 올라갈지에 대해 이견은 별로 없었다. 길드원들은 모두 아이스탑을 응원하고 있었지만, 파설귀가 결승전에 올라가는 걸 그가 막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귀국 준비도 차근차근 해나갔다. 8월 중순의 어느날, 중고차 견적을 받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카맥스에 다녀왔다. 2년 전에 구입했던 것보다 6천 달러가 떨어져서 속이 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감가상각이라는 것을 보통 사람이 느껴볼 기회는 아마 차를 팔 때뿐일 것이다. 일단 견적 화면을 휴대폰으로 찍어 놓았다. 중고차 딜러를 몇 군데에 전화를 돌려서 더 나은 가격을 줄 수 없는지 물어볼 예정이다. 어차피 카맥스 견적은 유효 기간이 일주일이니 그 전에 팔아야 한다. 더 좋은 가격을 제시하는 딜러를 만나지 못하면 그냥 카맥스에 넘기기로 했다.


귀국 준비를 하려니, 2년 동안 신경도 쓰지 않던 한국 소식을 좀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머룬5가 내한공연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머룬5라니! 작년 가을, 엘에이 공연에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던 차였는데 마침 잘 됐다. 겨우 두 시간이지만 운전하기도 귀찮고, 왠지 티켓도 너무 비싼 것 같아 포기했었는데, 나중에 생각이 날 때마다 아까워하고는 했다. 그런데 이제 서울에서 공연이라니! 귀국 직후 9월 초 공연이라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다.


그러나 머룬5 내한 공연이 매년 있는 것도 아니고, 표가 아직까지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표를 구해보려고 사이트에 접속해보니 표가 단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할 김준우가 아니다. 매일 접속하다 보면, 포기하는 표가 나오게 되어 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생기는 법이다. 수천 명 중에 적어도 한두 명은, 어렵게 구한 표를 포기해야 할 사정이 생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게임을 하면서 중간중간, 어디로 이동하는 시간 같은 짬을 이용해서 표가 나오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고블린들에 대한 우호 점수는 지칠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올라갔다. 8월 18일, 일요일 밤에 잠이 들고 나서 킬데어에 진입했을 때였다. 누군가가 침대에 누워 자던 나를 격하게 흔들어 깨웠다. 고블린 침대에 누워 곱사등이처럼 몸을 구부리고 자다 보니 허리가 아팠다.


“뭡니까, 친구?”


눈을 뜨자 보이는 고블린에게 나는 물었다. 고블린들과 오래 지내다 보니 저절로 친구라는 말이 나왔다. 아직 고블린들의 얼굴을 구분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아무에게나 친구라고 불렀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나를 아는 것처럼 말했다.


“나야 나, 올라프(Olaf)라고. 연합회 사무총장 올라프. 지금 아주 중요한 사업 얘기가 있으니까 나랑 같이 가야 해. 빨리 옷 입고 내려오라고, 친구!”


속사포처럼 말을 던져 놓고 그는 문을 쾅 닫으며 나갔다. 아르몽에서 제일 좋은 고블린 여관, ‘육분의’에서 지내는 것도 일주일이 넘었다. 반다르 고블린의 3대 세력인 연합회, 형제회, 혈맹 모두가 나를 잘 아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이 여관 어느 방에서 지내는지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보이는 족족 잡아 죽인다는 자체 규약이 있는 프랑크 고블린을 제외하면, 10여 개 고블린 씨족이 모두 나에게 우호적이었다. 장담은 못 하지만, 만약 내가 샤를로츠 영주가 된다면, 우호적인 고블린들을 전부 규합해서 프랑크 고블린을 멸망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잠깐만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은 철없는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고블린 씨족들이 전부 인간 네이어스와 친구라고 해서, 그들 사이에도 우호적인 감정이 있으리란 법은 없다. 아주 오랫동안 제국의 대 고블린 정책은 이이제이였다. 그들 사이에 악감정이 대대로 쌓여온 것은 제국의 정책에도 원인이 있다. 그런 역할을 오랫동안 해온 제국이 고블린 씨족들을 하나의 깃발 아래 통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전투 복장으로 갈아입고 1층으로 내려오니 올라프가 보였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의자에 딱딱 쳐가면서 시계를 보고 있었다. 옷 갈아입으면서 밍기적 거리는 나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시간이 사라져가는 것을 한탄하는 자세였다. 내가 계단을 내려오는 기척이 느껴지자, 그는 곧바로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며 외쳤다.


“뭐 하는 거야, 친구! 그깟 계단을 뭐 하나씩 내려오고 있어! 냉큼 뛰어내려! 빨리 가자구, 친구!”


하도 재촉을 해대는 통에, 나는 계단을 나는 듯이 내려왔다. 단골인 나를 위해 테이블에 계란 프라이와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올라프는 내 손을 잡아채고 문을 열었다.


“저딴 것보다 훨씬 비싼 걸 먹게 해줄 테니, 당장 가자구, 친구!”


밖에는 연합회 마크가 새겨진 고급 마차가 대기 중이었다. 올라프가 나를 밀어 넣고 나서 자신도 올라타자, 문을 두드리며 앞의 마부에게 소리를 질렀다.


“오이빈드(Oyvind), 뭐 하는 거야? 출발 안 해? 남는 게 시간이다 이거야? 나는 1분 1초가 아까운 사람이라고, 친구!”


1분 1초가 아깝다는 말이 마치 나를 향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 하지만 나는 영업용 미소를 짓고 올라프를 바라보았다. 고블린들의 협력이 없다면 질 좋은 비늘 진주를 구할 방법은 없다. 비늘 진주를 구하는 것은 코드 브레이커로서 내게 떨어진 세 번째 과제이기도 하다. 최상급의 비늘 진주를 구하면, 나는 좋은 무기도 얻게 되고 세 번째 코드도 얻게 된다. 그 생각을 하면 인상이 구겨진 고블린 앞이라도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다른 세계를 해킹하는 회사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6 45. 귀환불능점 19.10.04 47 3 7쪽
45 44. 도시의 그림자 19.10.03 35 2 11쪽
44 43. 로크 조련사 조셉 19.10.02 34 2 8쪽
43 42. 기도하는 롱소드 19.10.01 28 2 8쪽
42 41. 수상한 소포 19.09.30 32 2 8쪽
41 40. 진짜 해킹 19.09.29 38 2 10쪽
40 39. 사라진 보석 19.09.28 28 2 9쪽
39 38. 세 번째 코드 19.09.27 31 2 7쪽
38 37. 죽은 자의 손수건 19.09.26 34 2 7쪽
37 36. 몰이사냥 19.09.25 34 2 11쪽
36 35. 계약 이행 19.09.24 37 2 8쪽
35 34. 형제간의 불화 19.09.23 41 2 7쪽
34 33. 귀국 준비 19.09.22 41 2 8쪽
33 32. 블리츠크릭 19.09.21 39 2 8쪽
32 31. 용병과 고블린 19.09.20 39 2 8쪽
31 30. 큰 아들 하랄드 19.09.19 46 3 9쪽
» 29. 고블린의 초대 19.09.18 54 3 8쪽
29 28. 파설귀 19.09.17 52 3 7쪽
28 27. 뉴스 19.09.16 55 3 9쪽
27 26. 고블린과 친해지기 19.09.15 56 3 7쪽
26 25. 세 번째 과제 19.09.14 53 3 7쪽
25 24. 노력할 계기 19.09.13 51 3 7쪽
24 23. 괴수와 엘릭서 19.09.12 50 3 7쪽
23 22. 융문의 괴수 19.09.11 60 3 8쪽
22 21. 아를레키노의 구직 활동 19.09.10 58 3 7쪽
21 20. 해커의 자괴감 19.09.09 64 3 8쪽
20 19. 토너먼트 19.09.08 64 3 11쪽
19 18. 고급 여관 19.09.07 66 3 9쪽
18 17. 밤하늘 19.09.06 74 3 12쪽
17 16. 노인의 저글링 19.09.05 73 3 7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를긋다'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