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다른 세계를 해킹하는 회사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완결

비를긋다
작품등록일 :
2019.08.22 00:57
최근연재일 :
2019.10.04 06:00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4,761
추천수 :
161
글자수 :
202,860

작성
19.09.19 06:00
조회
46
추천
3
글자
9쪽

30. 큰 아들 하랄드

DUMMY

30. 큰 아들 하랄드


연합회 건물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수의 고블린들이 진을 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 문이 열리고 나와 올라프가 내리자, 금색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판금 갑옷을 입은 고블린이 맨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친구! 경비대장 비요른(Bjorn)이야. 설마 날 기억 못 하는 건 아니겠지? 나 같이 개성이 강한 고블린을 말야. 그렇지, 친구?”


“그럼 그럼. 비요른, 잘 지냈지?” 아까 말했듯이 나는 아직 고블린들의 얼굴을 구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말했다.


비요른과 올라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나를 끌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연합회 회장실에 도착하자, 그들은 각자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들어오라는 지시가 떨어지자, 둘은 문을 열고 나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귀금속 담당을 하던 고블린이 앉아 있던 방보다 훨씬 더 큰 방에, 훨씬 더 쓸데없이 고급스러운 의자가 커다란 창을 향해 있다가 나를 향해 180도 돌았다. 그리고 작달막한 고블린이 일어났다. 콧수염을 기른 고블린을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카이저 콧수염을 기른 고블린은 처음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저음의 목소리로 그는 내게 말했다.


“네이어스, 자네 이름은 잘 듣고 있네. 나는 연합회 회장 하랄드라고 하네. 만나서 반갑군, 친구. ”


그가 내민 손을 내가 잡자, 그는 악수깨나 해봤다는 사업가답게 내 손을 꽉 쥐고 흔들었다. 자그마한 고블린 몸집 어디에서 그런 악력이 나오는지 궁금했다. 이 자가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반다르 씨족의 적장자, 하랄드였다.


그와 함께 나는 접객용 테이블에 앉았다. 그의 양옆으로 올라프와 비요른이 시위하듯이 섰다. 차는 딱 두 잔이 나왔다. 나와 하랄드 앞에 차가 놓였다. 문관 스타일인 올라프에 비해, 무관인 비요른은 서 있는 자세가 지나치게 딱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총장과 경비대장이니, 이 둘이 아마 회장 하랄드 다음가는 권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도 감히 겸상을 하지 못하는 회장과 나는 한 테이블에 마주하고 앉은 것이다. 반다르 고블린 사이에서 내 위상이 어느 정도까지 올라갔는지 생각하니 나름 뿌듯했다. 지금 제국 내에서 고블린들과의 우호 점수가 나만큼 높은 플레이어가 과연 있을까?


“일전에 자네가 혈맹 쪽에서 과제를 받은 걸 알고 있네. ” 하랄드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꺼냈다. “그것과 똑같은 과제를 우리가 제시하겠네. 하지만 보상이 더 크지. ”


“제가 받은 과제라면, 현상 수배범 한 녀석을 잡아 오거나 죽이는 것입니다만? 생포해서, 혈맹 쪽이 아니라 연합회로 데려오라는 말씀이십니까?” 나는 찻잔 안의 내용물을 살짝 훔쳐본 다음에 대답했다. 최상급 말린 송충이 차다. 당연히 입도 대지 않을 생각이다.


“그깟 놈, 죽여도 상관없네. 하지만 그놈의 목만은 내가 가져야겠네. 크누트(Knut)는 내 동생이지만, 신중하지가 못해. 일을 그르칠 거야. ”


크누트는 반다르 족장의 막내아들이자 ‘반다르 혈맹’ 맹주의 이름이다. 현상 수배범 블리츠크릭의 처리를 내게 처음 부탁했던 세력이 바로 혈맹이다. 당시 그들은 블리츠크릭이 혈맹의 병사 여러 명을 죽였으므로 반드시 복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크누트가 자네한테 말하지 않은 걸 내가 말해주겠네. ” 하랄드가 목소리를 더 낮게 깔면서 말을 이었다. “내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자네는 아마 ‘한의 눈물’을 찾고 있지, 아마? 그렇지 않나, 친구?”


예나 지금이나 비즈니스는 결국 정보 싸움이다. 상업에 특화한 종족인 고블린에게 정보력이 부족할 리가 없다. 게다가 제국과 직접 교역을 하면서 넓은 지역에 정보망을 가진 반다르 고블린이라면, 아마 정보력만큼은 제국 황제와 맞먹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남쪽 지역에 관한 것이라면 말이다. 나는 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맞습니다, 하랄드 님. ‘한의 눈물’이 필요합니다. 반다르 씨족에게 그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면 말이죠. ”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설 수준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한의 눈물’은 고블린들의 연합 제국을 건설하는 신기의 물건이라고 한다. 그걸 이방인에게 넘긴다는 생각을 곱게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버님도 이제 많이 연로해지셨지. 은퇴가 얼마 안 남았다는 말일세. 적장자인 내가 후계자가 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우리 어머님은 돌아가셨고 크누트의 어머님은 아주 쌩쌩하게 살아 계시지. 그래서 저쪽에 붙은 어리석은 놈들도 꽤 많아졌고 말이야. ”


고블린들과 친해지면서 그들의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고블린들도 과거에 몇 차례 통일 왕국을 세운 적이 있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적장자가 아닌 자가 후계를 이을 때마다 왕국이 무너졌다. 그래서 적장자 승계 원칙을 뜻하는 고유 단어가 생겼을 정도다. 그러나 아직도 적장자 승계는 단지 원칙일 뿐, 종종 어겨진다.


“고블린들이 통일 왕국을 세우지 못하는 건, ‘한의 눈물’이고 자시고 겨우 보석 나부랭이 때문이 아니야. 딱 맞는 인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야. 그리고 인물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적장자 승계 원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지. 후계가 바로 서야, 남자는 뭐든지 큰일을 할 수 있는 거라고. 당연한 거 아닌가, 친구?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게 말하고 하랄드는 뒤쪽 쿠션으로 등을 기댔다. 그렇게 하면서 눈을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동의해주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동의합니다. 보석 따위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죠. ”


“그래, 그거야, 친구! 이제는 애들 자장가에도 오르지 않는 전설 따위, 개나 줘버리라고 해. 나는 ‘한의 눈물’ 따위 필요 없어. 진주가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보석이 많아. 그리고 보석도 결국은 환금성이 제일 중요하지. 아무리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보석이라도 그냥 돌일 뿐이야. 경제는 생물이야. 돈이 돌아야 한다고. 아무리 훌륭한 보석이라도 돌고 돌면서 돈과 교환되지 않으면 그냥 돌덩어리일 뿐이야. ”


하랄드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마치 킬데어의 TED 연설이라도 듣는 느낌이었다. 크누트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이 정도로 소신이 확실한 인물이라면 반다르 고블린 전체를 이끄는 지도자로서 부족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제안하고자 하네. 블리츠크릭, 그 화염 법사 놈을 살려서든 죽여서든 내게 데려오게. 살려서 와주면 더 고맙겠지만, 죽여도 상관없어. 우리 반다르 일족에게 치욕을 안겨준 그놈을 반드시 잡아 오게. 내게 데려오는 것이 중요해. 그렇게만 해준다면, 그놈이 원래 가지고 있던 재산은 물론, 그놈이 우리에게서 훔쳐 간 것까지도 자네에게 모두 주겠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친구? 바로 ‘한의 눈물’을 주겠다는 거야. ”


하랄드가 제안하려던 것의 핵심이 바로 그거였다. ‘한의 눈물’을 내게 보상으로 줘버리겠다는 것. 하랄드는 합리적인 사람이고, 전설 따위보다는 실력을 믿는다고 한다. 그래서 ‘한의 눈물’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내게 이 과제를 처음 제시한 크누트는 블리츠크릭이 ‘한의 눈물’을 훔쳐 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짓말을 했다. 그가 뭔가를 훔치려고 금고를 뒤지고 있었고, 그걸 덮친 혈맹 병사들을 해치고 도망친 것이 블리츠크릭의 죄목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사실은 달랐다. 블리츠크릭은 혈맹 금고에서 아주 중요한 물건을 훔쳤다. 고블린 전설에 나오는 보석, ‘한의 눈물’을. 그것도 모자라서 병사 여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혈맹은 내게 보상금만을 제시했을 뿐, ‘한의 눈물’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혈맹은 복수와 함께 잃어버린 보물을 되찾기를 원하고 있다. 반면, 연합회는 복수만을 원한다. 이렇게 되면 내 선택은 자명하지 않은가. 나는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하랄드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랄드 님. 현상 수배범을 생포해서든 죽여서든 이곳으로 끌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저는 ‘한의 눈물’을 보상으로 받게 되는 거죠? 계약서를 써주십시오. ”


하랄드는 갑자기 한 옥타브는 올라간 목소리로 웃었다. 이마에 손을 올리는 거추장스러운 연기까지 해가면서, 자신이 협상에 성공한 것을 자축하며 웃었다. 한참을 웃으면서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좋아, 친구, 아주 좋아. 하하하하! 이봐 올라프, 계약서는 준비해 놨겠지? 당장 가져오라고. ”


계약서를 훑어보고,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지장을 찍었다. 붉은색의 밀랍이 생각보다 아직 뜨거워서 손가락이 닿을 때 조금 멈칫했다. 하랄드는 검지 손가락에 끼고 있던 커다란 반지를 돌려 보석을 떼어 냈다. 그 아래쪽에 인장이 있었다. 그걸 밀랍에 대고 지그시 눌렀다. 이로써 나는 이중 계약을 한 모험가가 되었다.


“그런데 차는 왜 안 드나, 친구? 이거 아주 귀한 거야. 최상급 말린 송충이 차라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다른 세계를 해킹하는 회사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6 45. 귀환불능점 19.10.04 49 3 7쪽
45 44. 도시의 그림자 19.10.03 37 2 11쪽
44 43. 로크 조련사 조셉 19.10.02 34 2 8쪽
43 42. 기도하는 롱소드 19.10.01 28 2 8쪽
42 41. 수상한 소포 19.09.30 32 2 8쪽
41 40. 진짜 해킹 19.09.29 39 2 10쪽
40 39. 사라진 보석 19.09.28 28 2 9쪽
39 38. 세 번째 코드 19.09.27 31 2 7쪽
38 37. 죽은 자의 손수건 19.09.26 35 2 7쪽
37 36. 몰이사냥 19.09.25 34 2 11쪽
36 35. 계약 이행 19.09.24 37 2 8쪽
35 34. 형제간의 불화 19.09.23 41 2 7쪽
34 33. 귀국 준비 19.09.22 42 2 8쪽
33 32. 블리츠크릭 19.09.21 39 2 8쪽
32 31. 용병과 고블린 19.09.20 40 2 8쪽
» 30. 큰 아들 하랄드 19.09.19 47 3 9쪽
30 29. 고블린의 초대 19.09.18 57 3 8쪽
29 28. 파설귀 19.09.17 52 3 7쪽
28 27. 뉴스 19.09.16 55 3 9쪽
27 26. 고블린과 친해지기 19.09.15 56 3 7쪽
26 25. 세 번째 과제 19.09.14 53 3 7쪽
25 24. 노력할 계기 19.09.13 51 3 7쪽
24 23. 괴수와 엘릭서 19.09.12 50 3 7쪽
23 22. 융문의 괴수 19.09.11 60 3 8쪽
22 21. 아를레키노의 구직 활동 19.09.10 59 3 7쪽
21 20. 해커의 자괴감 19.09.09 64 3 8쪽
20 19. 토너먼트 19.09.08 64 3 11쪽
19 18. 고급 여관 19.09.07 67 3 9쪽
18 17. 밤하늘 19.09.06 74 3 12쪽
17 16. 노인의 저글링 19.09.05 75 3 7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를긋다'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