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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다른 세계를 해킹하는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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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비를긋다
작품등록일 :
2019.08.22 00:57
최근연재일 :
2019.10.04 06:00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4,790
추천수 :
161
글자수 :
202,860

작성
19.09.24 06:00
조회
37
추천
2
글자
8쪽

35. 계약 이행

DUMMY

35. 계약 이행


“이거 좋아 보이는군. ”


“그건 제식용 도검입니다. 장례식 때 호위병이 들고 서 있는 거란 말이오. 날도 없잖소?”


“이 단검은요? 날이 아주 잘 서 있구만. ”


“그건 연회용 스테이크 나이프요. 족장님 생신 때만 꺼내 쓰는 건데, 크누트 님이 애지중지하는 귀중품이란 말이오!”


휘황찬란한 금붙이에 매료되어 잠깐동안 정신이 나갔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날이 잘 선 도검 하나와 패링용 단검 하나를 골랐다. 무기를 골라 집을 때마다 프로데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아마도, 상품 가치를 머릿속으로 계산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움찔거리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검과 단검을 허리춤에 차면서 프로데에게 말했다.


“이 정도는 보상으로 받아도 되겠지요? 쪼잔하게 작전 후에 돌려달라는 그런 말은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친구. ”


“알았소. 그럽시다··· 친구. ” 프로데건 누구건, 고블린 친구가 나에게 친구라는 말을 붙일 때 그렇게 뜸 들이는 것은 처음 봤다.


블리츠크릭의 은신처는 샤를로츠 공국의 서쪽 끝에 있다고 했다. 루츠 공국의 동쪽 끝, 그리고 파화라 공국의 남쪽 끝과 만나는 곳이다. 거기에서 조금만 더 서쪽으로 가면 사람들이 ‘불바다 폐허’라고 부르는 지역이 나온다. 킬데어 사람들이 자기들이 사는 별을 뭐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별에서 가장 화산 활동이 활발한 곳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멀리서 보기에는 끝도 보이지 않는 붉은 평원이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 붉은 색은 흙의 색이 아니다. 불의 색이다. 드넓은 지역이 통채로 불타고 있는 것이다. 화산지역이 너무 넓어, 평원처럼 보이는 곳이다. 당연히 정상적인 생물은 살 수 없다. 완벽히 불모의 땅이다.


현대 수준으로 과학이 발전했다면 광업 생산이나 지열 발전을 했을 것이고, 그런 것조차 가능하지 않더라도 관광업이 발달했을 곳이다. 그러나 킬데어는 아직 중세다. 이곳은 아무도 살지 못하는 불모의 땅이고, 버려진 지역이다. 사람들의 사회에서 버려진 정신병자나 불치병 환자들이 숨어 살고 있다. 다른 이유로 숨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도 이곳으로 숨어든다. 블리츠크릭은 왜 이런 곳까지 오게 된 것일까?


제국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낮다는 남서부 지역을, 우리는 한참 동안 움직였다. 반다르 혈맹의 꾀주머니라고 자처하는 프로데도 이번 작전에는 여러 가지로 골머리를 앓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을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부자연스럽다.


새를 타고 이동한다면 좋겠지만, 새 승강장을 만드는 것은 고블린 씨족들 사이에서도 가장 부유하다는 반다르 고블린에게조차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고블린들이 사는 남부 황무지에서 장거리 이동 수단은 바로 배다. 고블린들의 도시는 대개 뱃길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씨족 단위로 흩어져서 서로 싸우는 요즘, 그들에게 장거리 이동 수단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걸어갈 거리도 아니고, 새를 탈 수도 없다면 말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30여 기가 넘는 말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건 누가 봐도 수상하다. 그래서 프로데는 결국 마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30명의 혈맹 병사, 그리고 야하스파의 사제인 프로데와 인간 아를레키노인 네이어스, 이렇게 32명이 마차 다섯 대에 나눠 타고 가고 있다.


“불편하지는 않으시오, 친구?” 프로데가 물었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한 마차에 일곱 명이 타고 이동 중이었지만, 프로데와 내가 탄 마차에는 여섯 명이 타고 있었다. 나름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불만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편하오. 합리적인 것이 고블린적인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소? 체격이 제일 큰 내가 왜 6명이 타는 마차로 이동하는지 모르겠소. 저 뒤에는 다섯 명이 타고 이동하는 마차도 있잖소!”


“그건, 그쪽 마차에 유난히 몸집이 뚱뚱한 병사가 있어서 그런 거요. 배려를 좀 합시다. 합리적인 것도 좋지만, 아량을 좀 베풀란 말이오. ”


하고 싶은 말은 다 했고, 내게는 합리적으로 보이는 건의 사항이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있었다. 더 투덜거린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었다. 하지만 불안한 구석은 여전히 있었다. 무엇보다, 마차 다섯 대가 덜컹거리면서 이동하는 것이 말 30마리가 이동하는 것보다 더 조용하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뭔지 물었다. 프로데가 대답했다.


“말 30마리는 누가 봐도 병력 이동이지만, 마차 다섯 대는 물자 수송으로 봐줄 수도 있잖소?”


“글쎄요. 내가 도망자라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떼거리로 움직이는 마차 부대를 보면 우선 겁부터 먹겠소. 당연히 의심도 할 거고. 잔뜩 긴장해서 주의를 기울일 거란 말이오. ”


“그건, 두고 봅시다. 겁먹고 의심하면서 도망치기 전에 공격하면 그만 아니오?”


그런 논리라면 말 30마리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싸움은 그만두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현상 수배범이 도망가버리면 프로데나 크누트, 아니 반다르 혈맹 차원이 아니라 반다르 씨족 전체 차원에서도 아주 큰 손실일 것이지만, 나에게도 크나큰 손실이다. 일타삼피. 블리츠크릭을 생포하거나 죽이면 내게는 세 가지의 보상이 한꺼번에 굴러들어오게 되어 있다. 그놈이 겁먹고 도망갈까 봐 가장 맘 졸이는 것은 지금 이들이 아니라 바로 나다.


일곱 시쯤 되자 해가 지기 시작했다. 고블린들은 저녁 식사 시간이라고 하면서 각자 주먹밥 같은 것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프로데도 들고 있던 자루에서 뭔가를 꺼냈다. 두 개를 꺼낸 그는 하나를 내게 건네면서 말했다.


“고블린식 영양 주먹밥이오. 이럴 때 제격이지. 눈 딱 감고 드시오, 친구. ”


“주먹밥이라면서 왜 눈을 감고 먹으라는 거요?”


나는 주먹밥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소리를 지를 뻔했다. 주먹밥에 쌀은 별로 없고 고기가 그득한데, 비늘이 달려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주먹밥을 다시 프로데에게 돌려주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쥔 주먹밥을 입에서 떼지도 않으면서 왼손으로 내가 돌려주는 것을 받았다. 그리고 우걱우걱 씹으면서 말했다.


“그러게 내가 눈 딱 감고 먹으라고 하지 않았소. 뱀 고기요. 체력 보충에 이만한 게 있는지 아시오?”


“마차가 흔들려서 속이 좋지 않소. 많이 드시오. ”


“우리 고블린들은 어렸을 적부터 배를 타고 다니면서 뭘 먹다 보니, 멀미라는 단어는 아예 사전에 있지도 않소. 인간 친구한테는 그런 문제가 있다는 걸 깜빡했구먼그래. ”


“얼마나 남은 겁니까, 마부 양반?”


나는 그렇게 물으면서 마부 옆자리로 나가려고 했다. 마차 안에 진동하는 냄새가 뱀 고기 냄새라는 생각을 하니 그걸 굳이 먹지 않아도 얼마든지 구토를 할 만한 상황이었다. 벌써부터 속이 메슥거렸다. 그런데 타고 있던 것이 고블린용 마차라는 사실을 잊었는지, 마부석 지붕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고블린 마차의 마부석에는 비도 막고, 짐을 추가로 실을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지붕이 달려 있다. 그걸 깜빡한 것이다.


마부석의 의자와 지붕 사이의 공간은 인간이 앉기에는 너무 좁다. 나는 마부 옆자리로 나가지는 못하고, 바깥 공기라도 들이마시려고 그쪽으로 통하는 출입구 쪽으로 머리를 내민 채 한참을 갔다. 인구 밀도가 낮아 길이 제대로 깔리지 않은 곳이라서 마차가 심하게 덜컹거렸다. 그럴 때마다 머리나 목이 마차의 여기저기에 부딪혔다. 이러다가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멍투성이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데가 손가락으로 내 등을 살짝 건드리면서 말을 걸었다.


“차 드시오. 굼벵이 차요. 자양강장에 아주 최고지요. 향기도 좋소. ”


나는 고개를 바깥으로 내민 상태로 한바탕 구토를 해댔다. 현상 수배범을 잡고 축하 파티를 하더라도 아마 나는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 아까 그 고급 단검으로 도대체 무슨 고기를 썰어 먹을까. 알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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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3. 로크 조련사 조셉 19.10.02 34 2 8쪽
43 42. 기도하는 롱소드 19.10.01 29 2 8쪽
42 41. 수상한 소포 19.09.30 32 2 8쪽
41 40. 진짜 해킹 19.09.29 39 2 10쪽
40 39. 사라진 보석 19.09.28 29 2 9쪽
39 38. 세 번째 코드 19.09.27 32 2 7쪽
38 37. 죽은 자의 손수건 19.09.26 35 2 7쪽
37 36. 몰이사냥 19.09.25 34 2 11쪽
» 35. 계약 이행 19.09.24 38 2 8쪽
35 34. 형제간의 불화 19.09.23 41 2 7쪽
34 33. 귀국 준비 19.09.22 42 2 8쪽
33 32. 블리츠크릭 19.09.21 40 2 8쪽
32 31. 용병과 고블린 19.09.20 41 2 8쪽
31 30. 큰 아들 하랄드 19.09.19 47 3 9쪽
30 29. 고블린의 초대 19.09.18 57 3 8쪽
29 28. 파설귀 19.09.17 52 3 7쪽
28 27. 뉴스 19.09.16 55 3 9쪽
27 26. 고블린과 친해지기 19.09.15 56 3 7쪽
26 25. 세 번째 과제 19.09.14 53 3 7쪽
25 24. 노력할 계기 19.09.13 51 3 7쪽
24 23. 괴수와 엘릭서 19.09.12 51 3 7쪽
23 22. 융문의 괴수 19.09.11 60 3 8쪽
22 21. 아를레키노의 구직 활동 19.09.10 59 3 7쪽
21 20. 해커의 자괴감 19.09.09 64 3 8쪽
20 19. 토너먼트 19.09.08 64 3 11쪽
19 18. 고급 여관 19.09.07 67 3 9쪽
18 17. 밤하늘 19.09.06 74 3 12쪽
17 16. 노인의 저글링 19.09.05 75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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