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 모험가 (1)
“하하하, 색다른 경험이로군. 그렇지 않은가?”
“시끄러. 말 도둑놈.”
난 이 마당에서도 하하거리는 센더 녀석에게 톡 쏘아붙이고는 수풀이 우릴 잘 가리고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나서 다시금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런 내 옆에 마찬가지로 엎드려 있던 센더는 유감스럽다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또 한 번 하하 웃는다.
음.. 알고는 있었지만 이놈은 정말 뭐가 됐든 일단 하하거리고 보는군.
“하하하, 그렇게 말한다니 유감이야. 그래도 그 덕분에 일단 따돌리지 않았나.”
끙.. 확실히 센더가 챠펠린의 서문으로 탈출하며 말을 무려 여덟 필이나 끌고 올 때는 이놈이 미쳤나 싶었다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덕분에 이단심판회의 추적을 뿌리치고 있었다. 물론 이대로 숨죽인 채로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어떻게 된 일인고 하니.. 우리는 공주와 헤어진 이후, 도시를 샅샅이 뒤지고 있던 이단심판회의 성기사에게 슬쩍 모습을 비춰준 후에 챠펠린을 탈출했다.
그런데 그 탈출을 위해서 센더가 말 여덟 필을 훔쳐왔고 그렇게 우리는 각각 말에 올라 여섯 필의 말을 몰아가며 한발 늦게 우리를 쫓아온 이단심판회와 숨 막히는 추격전을 벌였다.
그 와중에 있었던 센더의 기가 막힌 기마술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에나, 난 내 말을 타는 것도 힘든 판국이었는데 그는 무려 여섯 필의 주인 없는 말이 흐트러짐 없이 우리와 함께 전력으로 달리도록 몰아가며 달린 것이다.
뭐.. 말 그대로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게다가 이 센더라는 녀석이 어찌나 무서운 수완가인지를 증명해주는 것이, 그 훔쳐온 말은 다름 아니라 이단심판회의 성기사들의 말이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맨 처음 우리를 발견하고 쫓아온 무리들은 말도 없이 발로 뛰어서 우리를 추격해올 수밖에 없었다. 발로 말을 어떻게 쫓아오겠나 싶었지만, 황당하게도 그들은 거의 말과 비슷한 속도로 우리를 추격해왔다.
아니, 최고속도 자체는 말보다 빠른 것 같았다. 당연히 마법의 힘이었을 테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 첫 무리를 어렵사리 떨쳐낼 수 있었다.
마법으로 아무리 속도와 힘을 올린들, 그걸 행하는 것이 인간인 이상 완전 무장을 갖춘 채로 전력질주하는 상태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그 뒤를 쫓아 말을 갖춘 채 챠펠린에서 쏟아져 나온 나머지 성기사들. 출발이 늦은 탓에 우리와의 거리차이는 꽤 있었지만 그들은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끈덕지게 따라붙었다.
그리고 여기서 센더가 말을 무리해서 여덟 마리나 끌고 온 이유가 밝혀졌다. 그는 말을 두 마리씩 나누어 묶은 뒤 네 갈래로 나누어 달리게끔 수를 쓴 것이었다.
당연히 성기사들은 갈팡질팡하다가 급히 네 무리로 나뉘어 추격을 계속했지만, 이미 그때 우린 말에서 내린 채 근처에 숨어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흩어지고 나자 숲길을 통해 몰래몰래 조금씩 이동해온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참.. 간단한듯 하면서도 참으로 적절한 절묘한 계략이자 수완이다. 역시나 만만찮은 녀석이야.
“야, 근데 그 속도를 빠르게 하는 마법은 말한텐 못 걸어?”
홀로 잠시 전의 상황을 되짚어보고 있던 나는 문득 궁금한 점이 떠올라서 센더에게 물었다.
“신성마법은 그리 녹녹한 것이 아니라네. 마법자체에 따라붙는 제약이 좀 많아. 또 발동과 적용의 매커니즘이 절대적으로 수식되지는 않기에 인간을 오브젝트로 하는 마법이 다른 생물체에게 모두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네. 게다가 기본적으로 교황청은 신성마법의 ‘가호’ 를 받을 존재를 그들의 신자로만 제한하고 있어. 동물에게 강화마법을? 후후, 교황청의 신자가 아니면 옆에서 죽어가는 이들조차 치유해주지 않는 자들이 그럴 리가 있는가.”
여기서 사실 걸 수 있는데 성기사들이 그건 미처 생각 못했다! 라고 했으면 좀 웃겼을 텐데..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매우 감명 받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그것은 즉, 이야기의 초반부분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는 소리다.
어쨌든 센더녀석은 늘 그렇게나 하하거리는 녀석인데도 교황청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만은 시니컬해진다고 해야 할까? 하여튼 굉장히 냉담하게 말한다.
어디까지나 내 추측에 불과하지만 교황청에 개인적으로도 뿌리 깊은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만큼.
“..그런데 너, 이제 어쩔 참이야? 나야 애초에 이단심판회에게 얼굴도 안보였고 천상 떠돌이지만 넌 그들이 정체를 잘 아는데다가, 또 왕자잖아.”
좀 늦긴 했지만, 나는 처음 다크문의 본거지에서 탈출하면서부터 가졌던 의문에 대해서 물었다. 내가 무신경 했다기보다는 정말 그때부터 쉴 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정말 나도 그렇지만 센더 이 녀석도 대단한 강골이다. 현재 우리는 다크문의 본거지에서 그렇게 싸우고 나서 바로 밤새 말을 달리고 지금 또 한바탕 추격전을 거친 상태.
캬르한 산맥에서 십년을 구른 내 몸도 이젠 슬슬 제대로 휴식을 취해야 한다며 비명을 질러대고 있는 상황인만큼, 나보다 상대적으로 체격조건이 딸리는 센더는 모르긴 해도 아마 극심하게 피로한 상태일 것이다.
그런데도 별반 그런 티를 내지 않는다. 뭐, 정확히 말하면 내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음이 이젠 조금씩 보이고 있다 만은.
“걱정해줘서 고맙네. 하지만 나는 이미 교황청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기로 결심한 입장이야. 솔직히 아직까지는 비밀리에 활동하려고 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들이 내 행적을 밝혀내는 건 어차피 머지않아 일어날 일이었지. 그러니 생각보다 약간 빨리 발각된 것 일 뿐, 이렇게 무사히 빠져나온 이상 어차피 내 계산범위 내의 일이네.”
“왕국은 어쩌고? 잘은 몰라도 교황청이 루펠만을 가만두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하하, 루펠만 왕국에 대해서 나는 이미 많은 것을 잊었어. 왕국에서도 마찬가지일 테고. 괜찮을 거라네.”
센더는 여느 때처럼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지만 그 웃음은 어딘가 모르게 씁쓸해 보였다. 역시.. 그랬었나?
“역시, 네가 쫓겨날 때의 ‘모종의 사건’ 이라는게.. 형이 널 배신한거로군?”
“..짐작하고 있었나?”
분명 예전에 그가 말하길, 처음 타니엔 제1왕자와 제2왕자인 라이센더, 즉 센더가 함께 손잡고 자국 내의 교황청의 세력과 맞서 싸웠다고 했다.
그런데 ‘모종의 사건’ 으로 패배한 후에 센더는 교황청으로 유배를 떠나야만 했다.
그쯤 되면 뻔한 얘기다. 센더가 말하고 싶어 하지 않을듯하고 나와 관련 없는 이야기라서 당시엔 굳이 언급하지 않았었지만.. 어느 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그의 친형, 즉 제1왕자 타니엔이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배신하고 교황청의 편을 들었을 테지.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타니엔 왕자에게도 뭔가 조치가 취해졌을 테고 그것을 르미엘르 공주가 모를 리가 없으니까.
“형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나는 훨씬 더 극단적이고 혈기 넘치는 교황청의 반대론자였으니.. 독실한 신자인 형님으로서는 용납하기 힘든 선을 넘은 것일 테지. 그래서 원망 같은 건 하고 있지 않아.”
센더는 나름대로 시원스럽게 그렇게 말했지만, 난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당사자인 그는 태연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 사건에서는 제3자인 내가 느끼기에도 협잡의 냄새가 짙게 난다.
무엇보다도.. 곁에서 잠시 같이 지냈을 뿐이지만, 센더 이 녀석은 지나칠 정도로 ‘유능’ 하다. 정도로 표현하자면 정말 터무니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검술 실력에, 무려 신성마법까지 다루는 것은 물론이요, 매사 행동의 빈틈없음과 간간히 엿보이는 그 생각의 깊이는 인간의 그것이 아니다 싶을 정도니까.
실제로 함께하는 내내 그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조차도 곁에 있는 그가 지속적으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었던가.
나도 별 문제없이 선의로 우리를 도와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참동안 의심하며 ‘주의 해야겠다’ 혹은 ‘주의할 필요가 있을지도’ 이런 식으로 줄곧 경계하곤 했었던 것이다. 그것은 거의 본능적인 경계였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너무나 뛰어난 사람은 오히려 끝까지 함께 하기가 힘든 법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 상대가 선량하다고 해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며 알게 모르게 위협적으로 느끼게 되고 마니까.
하물며 왕위를 이을 제1왕자의 입장에서 이 무섭도록 유능한 동생이 얼마나 신경이 쓰였겠는가. 내가 타니엔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것 역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문제다.
“그게 아닐 텐데. 너무 뛰어난 네가 차기 왕권에 위협이 될까봐 몰아낸 거 아니야?”
“..르미엘르 공주가 그렇게 말하던가?”
“아니, 내 생각인데.”
엎드린 자세가 불편해서 살짝 몸을 틀며 태연하게 대답하자 센더는 다시금 웃었다.
“후후, 자네는 참 모를 사람이로군. 어쩔 때보면 한없이 낙천적이고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가도 또 어쩔 땐 무섭도록 예리해. 맞아. 아마도 형님에게 그런 부분이 있었을 테지. 허나, 그렇다고 해도 원망하지는 않을 생각이야. 나는 왕위 같은 것에 대해선 아무 미련도 없으니까.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나의 전부이네.”
“교황청을 쓰러뜨리는 것? 굉장히 집착하는 것 같은데.. 이유가 뭐야? 그들이 악행을 하기에 그렇다~ 라는 이상론 말고. 센더 너한테도 나름의 이유는 있을 것 같거든.”
“하하하, 이건 완전히 내 속내를 다 드러내라는 소리 아닌가. 미안하지만 그건 좀 봐주게. 나는 교황청이 하고 있는 행위들에 대해 분개하고, 또 그 본질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여길 뿐이야.”
늘 그렇듯 여유있게 0웃고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말하는 센더는 쉽게 이야기를 해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뭐, 그가 이야기하기 싫다면 내가 강요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좀 더 편한 자세를 취하기 위해 꼼지락 거렸다. 그러자 이번엔 센더가 내게 물어온다.
“그러는 자네야말로 대체 정체가 뭔가? 아다치를 쓰러뜨릴만한 실력자에 그런 엄청난 무기를 가지고 있는 떠돌이라니, 아무도 믿지 않을걸.”
보아하니 센더도 나에 대해서 그동안 상당히 궁금해왔었던 것인지, 굳이 숨기려고도 하지 않고 호기심을 겉으로 다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정체가 뭐냐고 해봤자.. 진짜 그냥 떠돌이인 걸 어쩌란 말이냐. 나는 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고는 대답했다.
“너도 알겠지만 아다치야 사실 네 덕에 이긴 거고 운도 좋았던 거지. 그리고 이 창 말인데, 사실 나도 처음 알았다고. 보호마법을 뚫을 수 있는 힘이 숨겨져 있을 줄은. 요정의 야장한테 직접 부탁해서 받은 물건이니 매우 좋은 창이긴 하지만 마법무구는 아니라고 들었어.”
“흠, 그 창 내가 한번 봐도 괜찮겠나?”
원래 무인은 남에게 자신의 무기를 함부로 내주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만은.. 난 그다지 망설이지 않고 창을 옆에 내려놓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 역시 굉장히 궁금하던 참이었으니까. 센더는 조심스레 상체를 일으키더니 창을 짚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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