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신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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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웅(痴熊)
작품등록일 :
2019.08.26 00:09
최근연재일 :
2019.09.30 08:16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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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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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3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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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 한솥밥을 먹으면, 그게 식구다.

이글은 픽션입니다. 나오는 인물, 대상, 지명등은 철저히 검증되지 않았으며, 그 나머지도 작가의 상상력에 기반을 두었음을 미리 밝힙니다.




DUMMY

"예예. 선장님 되도록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후유~"

통화를 끝낸 수호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매정하게 말을 하고 밖으로 나왔지만, 이 조그만 섬에서 식량을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결국 통장의 남은 돈을 탈탈 털어서, 마지막 쌀과 부식을 주문했다.


문제는 앞으로였다.

더는 돈이 나올 곳도, 식량을 구할 길도 없었다.

이번에 주문한 식량마저 바닥이 나면, 나태 지옥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지옥을 구경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전에 어떻게든 돈을 구해야 하는데 말이지."

혼자 중얼거리며, 집안을 바라보는 수호.


현실의 생존은 '돈'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수호였다.

그런데 안의 인물들은 지금껏, 돈 한번 벌어본 적 없는 잘나신 '신님'들.

그렇다고 저들을 쫓아낼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결국 어떻게 해서든 저들과 함께 돈을 벌어야, 이 험한 세상 잘~ 살아나갈 수 있었다.


이런저런 걱정에 기운이 빠진 수호가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터덜터덜 집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거참 한나절을 굶어서 그런가? 이젠 냄새도 헛것을 맡네. 어디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나는데."

집안을 들어서자 수호의 코끝을 스치는 고소한 향기.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수호는 그것을 따라, 마당으로 향했다.


마당으로 들어서자, 가택신들이 작은 모닥불 주위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굽고 있었다.


"아니, 이게 뭐예요?"


"어여와라. 문지기가 사냥해 온 것 아니냐."


"우리 문지기가 조금 단순해서 그렇지, 얼마나 생활력이 강한데."


"문지기 오빠 짱~"


그들은 모닥불에 구워지고 있는 정체 모를 고기에 눈을 떼지 못하고는, 문지기를 연신 치켜세우고 있었다.


"흐흐, 봤냐? 내가 이정도야. 사냥, 그까짓 거 별로 어렵지도 않더구먼."

어깨에 뽕이 잔뜩 들어가 기고만장해져 있는 문지기신.


"어휴, 대단하시네요. 내 눈에는 짐승이라곤 보이지도 않던데."

수호도 이번 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밤마다 들리는 울음소리에 분명 이 섬 어딘가에, 산짐승들이 있겠다고 어림짐작을 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걸 잡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특별한 사냥도구도 없이 저렇게 손쉽게 짐승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이거, 괜히 걱정했나 보네. 하다못해 제일 모자라 보이던 문지기신도 저런 능력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하려고.'

인간의 몸이 되었다 해도, 역시 신은 신인가보다.


솔직히 수호로서는 이 상황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

아무리 신이었다지만, 인간으로서는 생 초짜 중의 초짜.

수호는 그들이 몇 끼를 굶어봐야, 자신들의 처지를 실감하고는 좀 더 적극적으로 생활에 임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리 손쉽게 먹을 것을 구했으니...


'저 양반들 정신 차리게 하기는 글렀군.'

자신의 계획이 틀어져, 내심 실망스러운 수호였다.


이윽고 고기가 모두 익었는지, 가택신들이 굽고 있던 꼬치를 하나씩 집어 들었다.


"뭐 딱히 주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솥밥먹는 처지에 차별하면 쓰나. 너도 하나 먹어라."


"고, 고맙습니다."

문지기가 말을 하며, 꼬치 하나를 수호에게 건넨다.

살짝 감동한 수호.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의절한 채 이른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수호였다.

많은 사람을 겪었지만, 이렇게 계산 없이 무언가를 선뜻 수호에게 주었던 이는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기브앤 테이크'.

그가 아는 세상은, 그게 당연한 곳이었다.


수호가 받아든 꼬치에는 커다란 닭이 한 마리 통째로 꽂혀 있다.

조왕신이 손질한 것인지, 내장까지 깔끔하게 제거되어 먹음직스럽게 익혀진 닭이었다.


"잠깐. 이, 이 닭 어디서 잡으신 거예요?"

순간 뭔가 불길한 느낌이 뒤통수를 스치고 지나간 수호가, 황급하게 문지기에게 물어본다.


"내가 말이야. 뭐 먹을 게 없나 집주변을 둘러보는데, 글쎄 집 뒤에 이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거야. 그것도 다 무너져가는 조그만 구조물 안에 숨어서 말이야."


"그래서 내가 몰래 다가가, 한방에 구조물까지 무너뜨리고 모두 잡아 버렸지. 흐흐흐"

무슨 전승담(戰勝談)을 이야기하듯, 문지기가 신이 나서 말을 한다.

그리고 주위의 다른 신들이 마치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집 뒤편이라면, 혹시 그 텃밭 옆에 말하는 거예요? 합판으로 막아놓은 구조물."


"어? 너도 알고 있었냐? 맞아 거기."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문지기와 꼬치의 닭을 번갈아 쳐다보는 수호였다.


"아니 저한테 왜, 정말 왜 그러시는 거예요? 그게 닭장일 거라는 생각은 한번도 안 해 본 겁니까?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주 닭장 안에 있던 닭을 깡그리 잡아 오셨네."


"엉, 그게 닭장이었어? 너무 허름해서, 난 또 야생 닭들이 거기에 둥지라도 튼 줄 알았지. 그리고 남기면 뭐 해? 일인 일닭. 그게 진리지."

문지기의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화를 꾹 참고 있던 수호의 머리꼭지가 홱 하고 돌아 버렸다.


"이제 어쩌실 거예요? 도둑놈처럼. 왜 남의 멀쩡한 닭장을 부수고, 함부로 닭을 잡냐고요, 잡기를."


"뭐 도, 도둑놈. 이시키가 말이면 단 줄 아나. 야, 너 몇 살이야? 어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테 대들어. 정말 죽고 싶어?"


"예예. 어차피 죽지도 못하는 놈. 소원이니 제발 죽여 주세요. 굶으나, 맞으나. 어차피 고통은 똑같겠구만."

수호와 문지기의 드잡이질을 바라보고 있던 다른 신들이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

각자의 꼬치를 들고 슬그머니 일어나서 자리를 피했다.


애초에 둘을 말릴 생각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 * *


“야야, 니들이 어린애들이야? 어디 신성한 귀문에서 쌈박질이야, 쌈박질이.”

한바탕 드잡이질이 끝난 후, 문지기와 수호를 나란히 앉혀놓고 무리를 대표해서 연신 잔소리를 해대는 성주신.

그의 말을 듣고 있는지 마는지, 수호와 문지기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앉아서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흥. 고작 닭 몇 마리 잡았다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데 그럼 어쩌라고요.”


“아니, 그게 보통 닭입니까? 하루에 달걀을 무려 열 개나 낳는 복덩이들이라고요. 한 명 당 한 개씩 돌아가고도, 무려 두 개나 남는데. 앞으로 단백질은 어떻게 보충할 겁니까?”


“그렇다고 나를 도둑놈 취급해? 내가 이래 봬도 어디 가서 ‘법 없이도 살 신’이란 소리를 듣던 놈이야. 이거 왜 이래?”


“아이고, 그놈의 법은 어디 무법천지에서 들여왔어요?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성주신의 중재에도 서로 잘났다고 유치한 말싸움을 하는 문지기와 수호였다.


“그~~마~~안”

보다 못한 성주신의 엄청난 호통과 함께,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들의 언쟁이 순식간에 끝이 나 버린다.


“이놈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내가 우습냐? 병신 핫바지로 보여?”


“그게, 이 자식이 하도 까불어서.”


“문지기 신님이 하도 어이없는 짓을 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결국 성주신의 분노에, 급히 사과하는 문지기와 수호였다.


“문지기. 아무리 모르고 그랬다고 해도, 실수했으면 사과를 해야지. 동생이라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나가면 돼?”


“그리고, 수호도 그래. 같은 식구가 실수했으면, 너그럽게 용서 할 수도 있는 거지. '도둑놈'이라니. 너보다 한참 윗줄인데, 그렇게 막말을 하는 것 아니다.”

성주신이 제법 진중하게 둘을 타이르기 시작했다.


“식구요?”


“ 같이 한솥밥 먹었는데, 식구지 그럼 뭐야?”

수호의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 성주신.

그의 얘기에 수호의 정신이 매우 혼란스러워 졌다.


‘근본도 없는 놈을, 어떻게 믿어?’


‘이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한 건데.’


‘애미, 에비가 없으니, 그런 것도 못 배웠지.’


고등학교를 때려치우고 일찍 사회 전선에 뛰어든 수호.

신문 배달, 우유 배달, 편의점 알바부터 식당 설거지에 심지어 노가다까지.

먹고살기 위해, 그동안 수호가 안 해 본 일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을 겪어야 했던 건 당연지사.

물론 개 중에는 사려 깊고 착한 사람도 많았지만, 자신의 학벌과 불우한 가정환경을 들먹이며 무시하고 조롱하던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어느 날 온몸에 열이 나고, 손 하나 까딱 일수 없을 정도로 아픈 적이 있었다.

누구 하나 의지할 곳, 연락할 곳도 없던 수호.

‘이렇게 죽는 건가?’싶은 공포가 엄습해 왔다.


때마침, 울리는 자신의 핸드폰.

수호는 안간힘을 다해, 기다시피 가서는 겨우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살려달라고. 지금 너무 아프다고.', 거의 죽어가는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때 핸드폰 너머로,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새끼가 어디서 뻥을 치고 있어. 야 이, XXX야. 너 때문에 내가 몇 시간 동안 고생하고 있는 줄 알아? 너 잘렸으니까, 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마라. 아주 죽여 버리는 수가 있다.”

성질 고약한 아르바이트 점주의 목소리였다.


뭐. 욕먹고, 무시당하는 건 괜찮았다.

언제나 있었던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전화를 끊으며, 멀리서 들려오는 점주의 마지막 한마디.


“이래서 고아 새끼들은 상종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뚝.”


그날 수호는 정신을 잃을 때까지, 돌아가신 어머니를 찾으며 계속 울었다.

아픈 것 보다도 점주의 그 마지막 한마디가 가슴에 비수처럼 박혀, 너무나도 서럽고 힘들었다.


이후로 수호는 더 악착같이 돈을 벌었고, 돈 한 푼에 손을 벌벌 떠는 ‘돈벌레’가 되어야만 했다.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수호에게, ‘돈’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호에게 '식구'란,

신이 자신에게 결코 허락하지 않은, 감히 넘볼 수 없는 것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런데 저 치는 스스럼 없이, 자신을 식구라고 부르고 있었다.

자신에게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그 잘나신 '신'께서 말이다.


“그리고 자꾸 ‘무슨 신님’ 이렇게 부르는데, 그러지 마라. 괜히 거리감 느낀다. 어차피 우리도 처음부터 신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야."


"다들 사연 가지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것뿐이지. 게다가 지금은 우리도 인간이잖아?”

성주신이 잠시 말을 끊고는 착잡한 얼굴로 주위를 쓱 둘러보았다.

'다들 그렇지 않냐?'는 표정이었다.


“너~ 내 밥 먹고, 살 좀 쪄야 쓰겄다. 허우대가 그 모냥이면 워쩐다냐."


“어? 나도 오빠가 한 명 더 생긴 거야?”


“ 삽질 하나는, 내가 기가 막히게 알려주마.”


“끄덕, 끄덕”


"앞으로 한번만 더 형한테 덤비면, 아주 뒈질 줄 알아."


“..."


성주신의 말에 모두 동의하는 듯, 가택신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허락을 했다.

아무튼, 넉살 하나는 대단한 그들이다.


"알겠어요.그럼. 성주 아재, 조왕 할매, 토지 삼촌, 우물 할배, 측신 누님, 문지기 형님, 삼신 누이. 됐죠?"


"이건 어디까지나, 길게 부르기 번거로워서 그러는 겁니다. 흠흠”

성주신의 말에 수호가 한 명, 한 명의 호칭을 불러 보고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분위기가 왠지 어색해, 급하게 방을 나왔던 것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부탁드리며. 악의적인 비판이 아닌, 건전한 비판이나 응원의 댓글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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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대신, 저는 돈을 믿습니다. 19.09.03 188 6 12쪽
8 8. 가택신들의 관찰일지. 19.09.02 179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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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한솥밥을 먹으면, 그게 식구다. 19.08.30 220 5 12쪽
5 5. 그게, 남의 일이 아닐텐데. 19.08.29 247 5 11쪽
4 4. 우릴 불렀으면, 책임져야지. 19.08.28 282 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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