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 듣는 기계사제

웹소설 > 자유연재 > 게임, 현대판타지

지구사
작품등록일 :
2019.09.02 21:35
최근연재일 :
2019.09.30 21:18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032
추천수 :
25
글자수 :
154,972

작성
19.09.13 21:55
조회
104
추천
1
글자
12쪽

가헤란 토끼밭

DUMMY

“한국? 찌꺼기라 신경 안 쓴다.”


“네? 그게 무슨...”


“더 높은 레벨의 장비. 더 높은 레벨의 사냥터. 효율이 조금만 부족해도 관심에서 사라지잖아. 그네나 시소 타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마왕봉인전처럼 충분히 신경을 쓰면 높은 효율을 뽑아낼 수 있는 콘텐츠도 죄다 버리고. 심지어 스타트 필드는 아예 손 놓았더군? 게임의 척추인 뉴비를 제대로 키울 생각이 없나? 그렇게 시야가 좁아터져선 영원히 밑바닥이나 기어 다니겠지.”


“아··· 예··· 사랑이 깊네요.”


“헛소리할 거면 닥치고 꺼져.”


“마지막으로 한국의 스타 플레이어 분들에게 해주실 말씀 없나요?”


“나대지 말고 지금처럼 찌그러져 있도록 해라. 100년이 있어도 너흰 우릴 못 이기니까.”


“마지막까지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러시아팀의 자이체프 씨였습니다.”

-러시아팀 인터뷰 中


*


아직 여섯 번째 별이 떴다는 알람이 나오기 전.


스타트 필드에 진입한 요한은 도시를 한 바퀴 돈 후에 사냥터로 향했다.


여기저기서 끼에엑, 혹은 깽깽대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가헤란 토끼밭.


초보자 친화적인 이 사냥터의 구성은 열에 아홉은 외 뿔 토끼, 나머지는 쌍 뿔 토끼, 그리고 번외로 보스급인 달 토끼가 있다.


요한의 장비품이라고는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후진 로브와 후진 목도가 전부.


가장 흔한 몬스터인 외 뿔 토끼는 먼저 공격하지 않는 이상 얌전한 모습을 보이지만, 아이템 지원도 받지 않고 요령도 없는 초보자에게 마냥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튜토리얼 필드에 등장하는 그냥 토끼에 비해 날쌘 몸놀림을 자랑했고, 방심해서 뿔에 한 번 찔리면 빈사 상태에 빠질 수 있었다.


하지만 요한에겐 해당 사항 없는 이야기.


압도적인 스텟 때문이다.


본래 낡은 그네를 1800만 번 왕복해야 얻을 수 있는 180 스텟.


이는 아주 단순하게 레벨로 환산하면 36레벨 치다.

아직 스킬이 없는 상태에서 정신은 높아 봤자 의미가 없으니 27레벨인 셈이었다.


요한m : 보스인 달 토끼도 10레벨 중반으로 파티를 짜면 잡을 수 있는 수준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 말대로였다.


요한의 목도는 토끼들보다 빨랐고, 공격을 그대로 받아도 기스나 나는 정도니 원거리 공격을 하는 쌍 뿔 토끼도 문제없었다.

요한은 방어를 도외시한 채 돌격하며, 눈에 보이는 토끼들을 죄다 쓸어버렸다.


요한m : 레벨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냥 동선입니다. 같은 스펙, 같은 시간, 같은 노력을 들여도 제대로 된 사냥 동선을 짠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 사이엔 끔찍한 격차가 발생하지요. 반복적인 노가다가 필요하므로 더더욱 그렇습니다. 게다가 필드 사냥은 주위 플레이어들과의 경쟁이 기본이기 때문에 변수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토끼 밭의 최적화된 동선은 이런 식이죠.


요한m : (사진 첨부)


메시지에 첨부된 첫 번째 사진에 표시된 동선은 언뜻 보기엔 효율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요한m : 하지만 이 동선은 쓰지 않습니다. 왜냐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기도비닉이기 때문이지요. 솔직히 이런 식으로 사냥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나쁜 형태로 눈에 띕니다. 적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상황인지라 조금 답답하더라도 참아주시길 바랍니다.


적을 제대로 특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게임 서포터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요한은 몇 번이고 주의를 받았다. 눈에 보이는 플레이어는 잠정적으로 모두 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라고.


이 경우 적은 PK범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스타트 필드 주위에선 PK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요한은 11대 스타 프리스트였다.


그저 사람들이 요한을 두고 ‘이 새끼 나쁜 새끼래요.’라고 떠들기 시작하는 순간 좌우명을 박탈당하고 스타 플레이어 자격을 잃는다.

앞으로 50일이 지나기 전까지는 바람 앞의 등불이나 다름없는 신세.


요한m : 그러니 요한 님은 이 동선으로 사냥하시면 됩니다.


요한m : (사진 첨부)


요한m : 6번째 정도로 선호되는 동선인데 꼭 칼같이 동선을 지킬 필요는 없고, 주위에 토끼들이 더 보인다 싶으면 마음 내키는 대로 하세요.


요한은 메시지의 제안대로 움직였다.

그리 특별하지 않은 동선.

그래서 눈에 띄지 않는가 하면 그렇지는 못했다.


퍽!

퍽! 퍽! 퍽!

퍽! 퍽!


요한m : 9일 전이 전혀 안 떠오를 정도로 잘 움직이시는군요.


한 번 목도를 내려칠 때마다, 혹은 휘두를 때마다, 깽깽대며 한 마리씩 사라지는 토끼들.


외 뿔 토끼 한 마리를 상대로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잡는 초보자들의 눈엔 동경과 질시가 가득했다.


“와··· 존나 빠른 거 봐. 새로 키우는 캐릭인가?”


“그냥 전직했는데 일부러 초보자 코스프레 하는 거 아니냐?”


“아까 렙업 이펙트 뜨더라. 그나저나 아바타가 저 정도면 현실에서도 장난 아닐 것 같은데 말이나 함 걸어보까...”


“니 주제에?”


기도비닉에 실패한 걸까?


아니었다.


“장비는 완전 초보자인데?”


“악세사리 쪽이겠지.”


“오버스펙 악세는 개비싸지 않나?”


“흔히 보이는 관종이잖아. 씨발 나 같으면 저딴 짓 하면서 관심 구걸 할 바에야 전신 오버스펙 도배하고 반달곰 잡으러 간다. 고렙만 되면 온갖 관심 다 받을 수 있을 텐데···”


“응? 그건 아니다. 쟨 비주얼이 되잖아. 너는··· 크큭.”


“아니, 이 새끼가?”


요한은 굳이 오버스펙 장비를 끼지 않더라도 당장 상위 사냥터로 갈 수 있는 상태.

그러나 레벨업 속도가 비상식적인 모습을 보이는 순간 받을 관심은, 당장 여기서 받는 관종취급보다 훨씬 눈에 띌 터였다.

빠른 레벨업도 20 정도가 한계일 거라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그 후로도 수많은 초보자가 요한을 두고 떠들었지만, 어째 대부분의 이야기가 기승전아바타로 끝나는지라 요한은 완전히 주위에 신경을 끄고 사냥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요한이 사냥터를 동선에 따라 두세 바퀴 도니, 그 후부터는 시간 대비 더욱 많은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요한의 거침없는 모습을 눈여겨본 초보자들이 요한의 동선을 피해 다녔기 때문이었다.


과연 지금까지 요한이 잡은 토끼는 몇 마리일까?

요한은 딱 200마리까지만 세었다.


모르긴 몰라도 대충 500마리는 너끈하게 넘을 만치 잡았을 무렵, 요한의 귀에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아악!”


“자자 잠깐만!? 뒤질 거면 혼자 뒤져! 나한테 오지 마!”


“이걸 못 피한다고? 진짜 굼...”


“븅신 새끼! 잘난 척하더니 꼴좋다!”


요한은 그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피해가며 사냥을 재개했다.

정확히는, 재개하려고 했다.

몇 걸음 가기도 전에,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이 떴다.


요한m : 요한 님. 저거 안 궁금합니까?


게임서포터들은 요한의 화면을 동기화해서 보는 중일 것이므로, 요한은 여기서 육성으로 대답해도 됐다.

하지만 그래 버리면 다른 플레이어들에겐 허공에 떠드는 꼴처럼 보일 것이었다.

그래서 요한은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자판을 썼다.


요한 : 궁금합니다.


요한m : 아니··· 근데 왜 안 보러 가시고?


요한 : 토끼 잡아야죠.


요한m :


한동안 메시지가 오지 않길래 요한이 다시 목도를 꾹 쥔 순간 메시지가 날아왔다.


요한m : 잠깐만요!


요한m : 저희가 궁금하니까


요한m : 가서 확인합시다.


요한m : 그리고 앞으론 말 줄여서 보내셔도 됩니다.


뭐가 그리 급한지 메시지들이 띄엄띄엄 찢어져서 날아온다.

요한은 마지막 부분을 지그시 보다가 답장을 보냈다.


요한 : 알겠음.


열 명도 넘는 플레이어들이 강강술래라도 하듯 널찍한 원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10레벨 이상의 전직한 사람들이 산발적으로 이리저리 움직여댔다. 모두는 목이 꺾어져라 하늘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거기에 토끼가 있었다.


요한이 여태 사냥터에서 잡아온 토끼들과는 달리 외견은 튜토리얼 필드에서 잡은 보통 토끼처럼 보였다.

뿔이 나 있지 않은 머리. 하얀 털. 새빨간 눈.


몸통에 옹기종기 모인 팔다리.


귀엽다고도 평할 수 있을 것이다.


레벨이 충분하다면.


토끼는 밤하늘을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꽉 찬 보름달이 그 토끼를 비췄다.


요한m : 토끼밭 보스인 달 토끼입니다. 근데 좀 이상하군요. 버그인가?


토끼 밭은 어디까지나 초보자를 위해 마련된 사냥터. 튜토리얼 필드의 연장선에 있다.


요한은 압도적인 스텟으로 그 과정을 건너뛰었지만, 외 뿔 토끼는 오직 공격과 방어만이 능사가 아니란 사실을 알려주고 쌍 뿔 토끼를 상대한 초보자는 원거리 공격의 대처법을 자동으로 체득하게 된다.


이 초보친화적인 설계 사상은 보스 몹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달 토끼는 적당한 긴장감과 정복 시의 보람을 알려주는 녀석이어야 했다. 그러니까, 창 이상의 레인지를 가진 무기로 공격하면 닿을 범위에 있어야 하는데···


“씨바아아아아아알!! 저거 왜 안 내려오냐고!!”


플레이어 하나가 달 토끼에게 삿대질하며 울화통을 터뜨렸다.

그런들 달 토끼가 그 소원을 들어줄 리 없다.


“미친 새끼들아! 왜 못맞추냐고!”


“네가 해 봐라. 빙신아. 범위 끝에 걸려있는데 우리더러 어쩌라고?”


달 토끼는 활과 마법의 범위 끝 부분에서 약을 올리듯이 움직였다.

지금까지 몇 번 공격이 닿았으나, 금방 떨어질 것 같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끄떡도 하지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비-융


달 토끼가 기묘한 울음소리를 낼 때마다.


피 융-


보름달에서 달빛이 떨어진다. 그리고 그 달빛에 적중당한 플레이어는 움직일 수 없게 되고, 계속 떨어지는 달빛을 맞다가 사망했다.


이 소동을 보고 주변에서 모여들고 있는데도 계속 죽어 나가니 정작 플레이어 총원이 늘지 않았다.

달빛은 충분히 플레이어들이 피할 수 있는 속도로 떨어졌으나, 가끔 빛이 떨어지다 말고 경로가 살짝 틀어졌다.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잔뜩 짜증을 부리는 기능밖에 없던 탱커마저 끝장나버렸다.


요한은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깡스텟만 높은 자신은 저걸 잡을 방법이 없다. 사거리가 닿지 않으니까.


이미 궁금증도 풀렸으니 이제 슬슬 빠질 차례가 아닌가 생각하며,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한m : 알아왔어요. 악성이 문제였습니다. 원래 초보자를 위한 보스인데, 악성에 물들고, 만월 버프까지 맞아서, 설계 사상이 무시되는 수준까지 강화된 결과가 저거라고 합니다. 5% 확률인데 잘도 당첨됐군요. 왜 하필 저런 공략 성공률도 무지막지하게 낮은 녀석을...


요한 : 빠져도 됨?


요한m : 음··· 외국 포럼에 공략법이 올라와 있긴 한데 파티원이 좀 필요해서 어렵겠네요. 천천히 움직여서 빠지세요. 악성 보스는 아주 높은 확률로 도주자한테 어그로가 끌립니다.


요한은 플레이어가 죽어 나가는 모습을 눈에 담은 채,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지금껏 여러 플레이어가 요한을 지나갔지만, 요한의 행동을 신경 쓰는 이들은 없었다.

해외에서 ‘루나 틱 래빗’라 불리는 이 몹의 정체를 짐작한 사람은 없었지만, 그들은 이 게임의 공식 중 하나를 숙지하고 있었다.


본 적도 없는 희귀한 몹!=레어 템!


“서너 대만 더 맞추면 되겠다!”


“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서, 괜히 앞에서 깔딱대지 말고 저리 가 있어.”


“너야말로······”


이제 충분히 멀어졌다 싶었던 요한이 다시금 사냥을 재개하려던 순간이었다.


비-이-


“...?”


달 토끼의 두 눈이 희번덕였다.


폴짝 폴짝 폴짝 폴짝···


아무 방향으로 규칙성 없이 뛰던 달토끼가 갑자기 한 방향으로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요한이 있는 방향이었다.

말인즉, 규칙성이 생겼다는 뜻.


“뭔진 몰라도 기회다! 일제 사격!”


“네가 누군데 명령 질이야 진짜···”


그리 말하면서도 궁수는 착실하게 활시위를 당겼다. 다른 원거리 수단을 가진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10분이 넘도록 제대로 된 공격을 성공하지 못한 플레이어들은 아주 잔뜩 약이 오른 상태였다.


이윽고 그들의 분전이 보답 받을 순간이 왔다.


작가의말

추천도 자릿수가 바뀌었군요...

이건 월요일에 힘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말 잘 듣는 기계사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6 뭐하세요? 19.09.30 17 0 12쪽
25 몽둥이 휘두르는 사제 19.09.28 14 0 15쪽
24 수색 난항 19.09.27 14 0 15쪽
23 물밑에서 일어나는 일 19.09.26 14 0 13쪽
22 그림자 비약 19.09.25 14 0 12쪽
21 그림자 노인 19.09.24 20 0 13쪽
20 전담 마크 19.09.23 28 0 14쪽
19 어쩌다 보니 망함 19.09.21 22 0 14쪽
18 기계사제 전직 19.09.20 24 0 13쪽
17 전직 과정 19.09.19 24 0 13쪽
16 예비 19.09.18 20 0 19쪽
15 이 녀석이? 19.09.17 20 0 17쪽
14 톱니바퀴의 신 19.09.16 20 0 12쪽
13 달 토끼 사냥(?) 19.09.16 26 0 12쪽
» 가헤란 토끼밭 19.09.13 105 1 12쪽
11 그래. 남친은 없어. 19.09.12 27 1 13쪽
10 학대의 정의 19.09.11 26 1 12쪽
9 변화? 19.09.10 35 1 13쪽
8 취미는 그네타기 19.09.09 28 1 13쪽
7 튜토리얼 필드 19.09.07 27 2 13쪽
6 설득 19.09.06 35 2 12쪽
5 뭔가 이상한 회의 19.09.05 46 2 16쪽
4 아바타 제작 조건 19.09.04 46 3 12쪽
3 어려운 자리 19.09.03 62 3 13쪽
2 특별한 인간 19.09.02 115 3 12쪽
1 프롤로그 - 이런 세상 19.09.02 204 5 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