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대비(對備) - [4]
“시체가 있던 나무 위로 올라가 주변을 살펴보니 산 중턱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봉사, 그것만으로는 도적이라는 근거가 빈약해.”
나의 말에 이청진 군수는 고개를 젓는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겠지요. 하지만 주위에는 말발굽의 흔적이 없었으며, 최소 30구 이상의 시체가 있었습니다. 조선의 국경 너머는 명나라뿐이니 당연히 이 근처에서 벌어진 소행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음.....”
주변 경위와 명나라를 언급하자 이청진 군수의 표정은 싸늘해지며
“봉사.”
“네.”
“그 말을 책임질 수 있는가? 나에게는 병사들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은 있지만 국경지대에서 병사를 움직이려면 명분이 필요하네.”
한마디로 나의 목숨을 걸 수 있냐는 뜻이군.
“하찮은 저의 목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내어드리겠습니다.”
목숨이 걸린 일이지만 나는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고 곧장 대답을 하자 이청진의 눈이 반짝인다.
“갓 봉사 품계를 단 네가 목숨을 건다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나? 혹여, 도적들이 너의 친족을 죽였거나...”
“군수님.”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백성의 안위가 걸린 문제입니다. 백성을 지키기 위해 이곳으로 온 저는 목숨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백성을 위해서.”
나의 말을 읊조리는 군수는 한참을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우리는 조선에 살고 있는 모든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이곳에 있지.”
그는 그렇게 대답을 하며 문밖에 시립해있던 병사에게
“여봐라! 지금 당장 이칠용 현신교위를 불러오도록 해라.”
얘기가 통했는지 종5품인 사람을 찾는다.
나의 눈빛을 눈치 챈 군수는 희미하게 웃으며
“나도 조선의 신하로서 백성을 지킬 의무가 있네. 자네만 백성을 위하는 게 아니라고.”
멋쩍게 웃는다.
* * *
두만강 근처에 있는 산이라면 당연히 백두산을 꼽을 수 있다.
“근처에 백성의 목숨을 해치는 악독한 도적떼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휘하에 있는 문관과 무관들이 집합하자 군수는 지도에 그려져 있는 백두산을 가리키며 얘기를 한다.
“오늘 이곳으로 배속 받은 봉사 이순신이 백성들의 시체가 발견되었고 백두산 중턱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봤다고 했다.”
모든 관료들은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책임을 져라. 이거지?
나는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두만강으로 올라오는 길목은 우리가 방어를 할 곳이 아니라 도적떼들은 그것을 노리고 백성들을 죽인 것 같았습니다. 도적떼는 말이 없어 걸어 다니는 것을 보아하니 멀리 가지 않고 이 근방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근처에 있는 백성이라면 어찌 하실 생각이오?”
설명을 하자 나의 말을 잠자코 듣던 문인 중 한명이 나에게 말을 한다.
“또 다른 백성의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확신 할 수 있소? 백성이 아니라는 증좌가 있냐 말이오.”
“가축이나 달구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는 게 증좌입니다.”
두만강에서 사는 유목민이 아니라는 정황은 많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은 땅이 척박해 보리와 쌀농사를 하는 것보다는 가축 농사를 키운다.
특히 국경지대는 언제 다른 이민족들이 조선으로 침략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땅 농사를 짓는 것은 어불성설.
‘이것도 모르는 자가 문관이라...?’
한심하지만 속으로 삭히며 설명을 하자 그의 얼굴이 붉어지며
“그것이 어찌 증좌가 될 수 있냐 말이오!”
“그만!”
저 한심한 것은 두만강에 있으면서도 백성들이 뭘 하는지 아니, 이해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으니 기초적인 것도 모르고 있는 것이겠지.
그가 무식함을 뽐내자 가만히 듣고 있던 군수는 중재를 한다.
“선교랑.”
“네.”
저런 자가 종6품 선교랑이라고? 내가 속으로 혀를 차던 도중에도 군수는 싸늘하게 선교랑을 바라보며
“자네는 이곳에 온 이후로 뭘 했나?”
“저 말씀입니까? 당연히 휘하 장수들을 관리했으며 악독한 오랑캐들이 오지 못하게...”
“그만하게나.”
군수도 휘하의 문관이 저리 멍청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지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으며 신음을 흘린다.
선교랑이 휘하 장수들을 관리를 한다? 아무리 무관은 문관들에게 찬밥신세라고 하지만 저리 대놓고 얘기하는 자들은 없을 것이다.
나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처럼 주위에 서 있는 무관 장수들의 눈빛은 급격하게 험악해진다.
“자네가 무슨 명분으로 장수들을 관리한다는 거지?”
“당연히 저는 종6품으로서 조선을 위해 관리를 해야 합니다.”
마치, 원흉과 똑같은 자다.
여기서 계속 진행이 되면 저 사교랑은 군수의 눈 밖으로 밀려날 것이지만 지금은 이게 급한 것이 아니다.
“군수님.”
군수의 심기가 점점 불편해지는 것을 느낀 나는 다급히 부르자
“왜 그런가?”
“지금은 도적떼에 집중하셔야 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토벌을 해야지 이곳에서 사는 백성들은 목숨을 위협받지 않고 평온한 삶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나의 말에 군수는 나를 오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네, 오지랖이 넓군.”
내가 하는 말을 바로 눈치 챈 군수 표정을 굳히며
“그래, 자네는 백성을 위해 목숨을 걸었는데 한시가 급하지. 자네가 보았던 곳으로 가세.”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군수는 결국 토벌명령을 내리자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는 듯 의기양양하던 사교랑은 소태를 씹은 표정으로 변한다.
* * *
“여깁니다.”
김이 피어나는 장소 근처까지 말을 타고 온 나는 급히 멈추며 말에서 내린다.
“이제부터는 산보로 가겠습니다.”
“왜지? 아직 말이 올라갈 수 있는 평탄한 길이 많은데?”
군수는 나의 행동이 흥미로운지 질문을 던진다.
이것에 대한 진의를 진짜 모르고 말하는 것일까? 나를 시험을 하는 것일까?
군수의 속내를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말을 타고 올라갈시 먼 곳에서 도적들이 우리가 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되도록 가려질 수 있는 수풀이나 나무의 사이로 올라가야 합니다.”
사실대로 얘기하자 군수는 호탕하게 웃으며
“자네 그런 것은 어디서 배웠나?”
“...병법서입니다.”
전장이라고 말을 할 것을 도로 주워 담으며 병법서라고 둘러댄다.
“자네 병법서도 읽나? 이거 귀하신 분이 왔군. 여기 있는 장수들은 용맹하지만 병법에 무지했는데 잘되었군. 토벌을 끝내면 나와 대작을 하겠나?.”
마지막 말은 나의 곁으로 바짝 붙더니 조용히 속삭인다.
‘술을 하자는 건가?’
이럴 때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뇌물을 주고받기 위함이며, 두 번째는 마음에 드는 이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알겠습니다.”
군수의 속내를 읽을 겸 수락을 하고 산을 타기 시작한다.
약 20명의 병사들은 손에 환도를 들고 등에 각궁을 멘 채 은밀하게 이동을 하는 것을 지켜보던 나는 속으로 감탄을 한다.
‘정예군이다.’
보폭도 일정하면서도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오랜 기간 동안 고된 훈련을 받아온 것이 틀림없다.
‘이런 병사들을 지휘하는 군수라면...’
추후 대작을 하며 속내를 알아본 뒤 만일 내가 생각하던 두 번째라면 서책에 이름을 써도 될 것 같다.
앞장서서 한참을 산을 타고 올라가던 나는 무언가를 보자 급히 정지하라고 이른다.
“자네 말이 옳았네.”
나의 옆에 다가와 앞을 보는 군수는 탄식을 흘린다.
벌거벗은 여성들은 기둥에 묶여 혼절을 했는지 미동을 하지 않고 그 앞에서는 모닥불을 피우고 묶이지 않는 여색을 탐하는 도적들이 눈에 보인다.
‘하나, 둘, 셋...여섯?’
여색을 탐하거나 술을 마시는 이들의 숫자를 세던 이순신의 고개가 살짝 흔들리자
“지금 뭐하는가? 얼른 저들을 죽이고 백성들을 풀어줘야 하지 않겠나?”
“군수님, 냉정하셔야 합니다.”
내가 짐작한 도적의 숫자는 8명 그 이상인데 불과 6명밖에 없다고?
맹렬하게 머리를 굴리며 생각하던 와중 도적들의 만행을 참지 못한 군수는 화가 끝까지 치밀어 올랐는지
“눈앞에 보이는 도적들을 토벌해라!”
휘하의 장수들과 함께 앞으로 뛰어나간다.
“아뿔싸...”
그제야 이순신의 눈에 들어오는 이상한 것이 포착이 된다.
여색을 탐하지 않는 3명의 도적이 어디 있는지 계속 찾던 도중 나무 위에서 주변의 보초를 서다가 뛰쳐나간 병사들을 보고서 활을 들고 시위를 당기는 모습이 생생하게 보이자
‘제발...’
입술을 깨물며 등 뒤에 멘 각궁을 급히 꺼내 손에 쥐고서 화살을 시위에 걸고서 그대로 당긴다.
팅.
시위를 놓자마자 곧장 화살 통에서 화살을 꺼내 바로 시위를 걸고 그대로 다른 도적의 미간을 조준해서 쏜다.
터억.
터억.
나무 위에서 두 구의 시체가 떨어지자 남은 도적은 급히 나무 밑으로 내려와 그대로 줄행랑을 친다.
“백성들을 건드리고서도 무사할 줄 아느냐?”
점점 멀어지는 도적의 잔상에 다시 시위를 당기다가 놓자.
“끄아아악!”
급소를 피했는지 도망가던 도적의 비명소리가 백두산을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그리고 뛰쳐나간 군수와 병사들은 여색을 탐하던 도적들을 죽이거나 생포를 한 것이 보이자 그제야 긴장을 놓는다.
“활 솜씨가 대단하군.”
아까 군수가 처음에 불러서 만났던 이칠용 현신교위는 어느 순간 나에게 다가와 내가 죽인 시체를 바라보며 감탄을 한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런 것 치고는 전부 미간을 노렸네만... 어찌 되었건 자네 덕분에 백성의 목숨을 앗아가는 도적떼를 잡았어.”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치하를 한다.
“어디서 왔나? 주변에 너와 똑같은 도적들이 더 있나?”
급소를 피했지만 다리를 맞아 도망을 못간 도적의 심문을 맡게 된 난 새파랗게 질린 도적에게 묻는다.
“나으리 제발 살려주세요.”
“살려달라?”
나의 옆에서 지켜보던 이칠용은 혀를 차며
“봉사 자네는 옆으로 빠져 있게.”
진도가 안 나간다고 판단하고서 나를 뒤로 물린다. 그러자 도적의 안색은 새파랗다 못해 새하얗게 질리며
“다 말하겠습니다. 다 말할 테니까 제발...”
“당장 말하지 못하겠느냐!”
짜악.
이칠용은 포승줄에 묶인 채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도적의 뺨을 치자 그의 이가 우수수 뽑히며 한줄기의 핏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너 같은 도적무리 때문에 백성들이 고통받아왔다.”
그런 모습을 보던 나의 눈가에 이채가 생긴다.
‘재미있는 곳이군.’
현재 조정은 부패하다 못해 백성들의 고혈을 있는 힘껏 짜는 탐관오리들 밖에 없다.
그래서 류성룡이 빠른 시일내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과 몇 시진 만나지 않은 이들은 부패한 자들의 사병과 달리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게 나의 눈에는 신기할 따름이다.
* * *
“자네, 배짱이 두둑하군.”
술이 담긴 술잔을 바로 꺾으며 호탕하게 웃는다.
“감사합니다. 하오나 저를 부르신 연유가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한 평생 살아오며 나는 이런 자리는 싫어했었다.
그래서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내가 두렵지 않는가?”
“제가 군수님을 두려워 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제가 두려워 할 자들은 백성들뿐입니다.”
“백성을 두려워한다? 그 이유가 궁금하군.”
나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자 바로 목구멍으로 넘기며
“백성들이 있어야 나라가 있는 법입니다. 당연히 나라의 근간은 백성인데 백성을 무서워하지 않으면 무엇을 무서워해야 하는 겁니까?”
“하하하. 자네의 혀에 기름칠이 잔뜩 발라져있구먼!”
“진심입니다.”
“.....”
나의 말에 그는 술잔을 들던 손을 멈추더니 그대로 나를 바라보며
“진실로 백성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나?”
“그렇습니다.”
“공을 세우려고 무리를 해서가 아니라?”
“공을 세울 기회는 언제든지 옵니다. 하지만 위험에 처한 백성들에겐 두 번이라는 기회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나의 눈과 마주치는 그의 눈에는 회한이 서리며
“...그래,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지 백성이 있는 법. 나는 자네가 마음이 드네. 어떤가?”
그는 나에게 술잔을 들어 올리며
“나와 함께 하는 것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 작가의말
독자마마! 감사한 응원에 힘을 입어 소신 12개의 비축본을 맞추기 위해 1개의 비축본을 연참으로 보답하겠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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