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다헨 비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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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f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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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9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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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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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찰관(1)

DUMMY

8. 감찰관


벨루아와 그녀의 보좌관을 포함한 쥬펠란 용병대는 말을 타고서 곧장 서부를 향해 내달렸다.

원래라면 역마차를 타고 움직였겠지만 벨루아가 말을 빌릴 수 있었던 덕분에 일행은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설마하니 감찰관이라는 공식적인 직함을 가지고 왔을 줄은 몰랐습니다.”


“설마 귀족을 대상으로 감사를 하는 데 그럴 듯한 직함 하나 없이 보냈을까요.”


“비밀리에 조사한다고 했으니 당연히 몰래 움직이는 것 아닌가 했습니다만.”


룬의 말에 벨루아가 살풋 웃었다.


“제가 아무런 직함도 없이 움직이면 정보국 소속이라는 걸 광고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아마도 귀족들은 저를 그저 부친의 영향력으로 운 좋게 감찰관 자리를 손에 넣은 풋내기로 보고 있겠죠.”


“뭐, 그편이 이쪽에서도 움직이기는 한결 편하겠군요.”


“네. 상대가 얕잡아 봐준다면 고마운 일이죠.”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그녀는 이 임무를 맡기 전 자신의 상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번 임무는 강경파 귀족들의 세를 꺾어 놓기 위함이다. 일리드. 너라면 이게 무슨 뜻인지 잘 알 것이라 믿는다.’


최근, 오래된 악연으로 이어진 구르텐 측에서 사신이 왔었다.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제외하고 남은 결론은 서로간의 원한을 잊고서 우호의 증진을 위해 왕자와 공주를 결혼시키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의.

그 제의에 왕실을 비롯한 원로원은 찬성했다. 구르텐과의 국경은 휴텐이 소요하는 군비의 2할을 차지했다.

그런 막대한 군비를 감축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한 여유를 다른 쪽으로 돌릴 수 있다는 뜻.

즉, 왕실의 재정이 넉넉해진다는 말이었다.

이에 하원에서는 찬성했다. 해당 지역의 세율이 낮아질 전망이 보였으니까. 하지만 상원에서는 반대했다.

정확히는 상원의 귀족 중 해당 지역의 군사들을 통제하는 변경백을 위시한 군사력 강한 귀족들이 반대했다.

중앙군의 수가 줄어들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군사 역시 줄여야 했다. 휴텐의 법에서 귀족의 사병의 수는 절대 중앙군의 배를 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으니까.

그 말은 곧 그들의 세력의 약화와 축소를 뜻하는 것이었기에 그들은 기를 쓰고 반대했다.

더불어 온건파와 중도파는 그들이 왕실과의 협상으로 일말의 콩고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며 방관 중 이었다.

그런 지지부진한 상황이 일주일간 이어진 끝에 왕실 측에서 칼을 빼들었다.

약 1년 전 정보국에서 제기된 의혹을 조사해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기로 결정한 것.

그 의혹이 바로 귀족들이 주도하는 군수물자의 횡령이었다.


“저기 성벽이 보이는 군요.”


1차 목적지이자 모든 착복의 연쇄가 가장 처음 시작되는 곳. 슬렌 자작령 페탈의 회색빛 성벽이 저 멀리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 이번 건만 잘 해결한다면......’


햇빛을 받아 새하얗게 빛을 반사하는 성벽을 보며 그녀의 눈이 결연한 빛을 품었다.


* * *


페탈에 도착한 일행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중앙대로에 상점을 내고 있는 한 상인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상인 역시 정보국의 소속인 듯 일행을 상점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인도한 그는 책상 위에 가득 쌓인 서류 속에서 한 뭉치의 서류를 꺼내 들었다.

손가락 두 개 정도의 두께를 지닌 두툼한 서류를 받아든 벨루아가 몇장을 들춰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하셨어요. 기대 이상의 자료네요.”


“별말씀을.”


잠깐의 치하와 인사를 끝으로 곧장 상점을 나서는 그녀를 보며 룬은 고개를 기우뚱거렸다.


“일이 오래 걸릴 줄 알았습니다만.”


“오래 있으면 오히려 의심을 사게 되겠죠.”


룬이 엄지로 자신의 뒤쪽을 가리켰다.


“저기 저 머저리들을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 말에 벨루아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감시가 붙었나요?”


“감시, 라기에는 모지리들이기는 하지만 미행이 붙었다는 건 맞습니다. 성에 들어온 직후에부터 따라오더군요.”


“원하신다면 깔끔하게 처리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빙긋 웃는 딜의 모습에 벨루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럴 필요는 없어요. 지금 저들을 배제했다가는 오히려 관심을 끌게 되겠죠. 그저 지금은 일반적인 용병파티처럼 행동하는 편이 나아요.”


“그러시다면야.”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딜이 입을 다물자 룬이 벨루아에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우선은 받은 정보를 정리한 후에 어디에서부터 파고들지 생각을 해 봐야겠죠. 슬렌 자작이 어디까지 숨겨두었을지 모르니까요.”


“그렇습니까......”


말 끝을 흐리던 룬이 슬쩍 오른손을 흔들었다. 검지와 중지를 구부정하게 핀 채로 세 번.

그 신호를 본 딜이 눈을 빛냈다.


-무슨 일이야, 대장?


소매에서 꺼낸 통신 구슬을 슬쩍 입에 집어넣은 딜이 물었다. 그러자 룬에게서 메시지가 들려왔다.


-네가 고생 좀 해줘야겠다.


-뭘 시킬건데?


-여기서 진행되는 군수물자의 흐름. 그리고 중간에 착복이 일어날 만한 요소 같은 거. 누군가 착복을 하고 있는 걸 찾으면 더 좋고.


지시에 딜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건 이쪽의 아가씨랑 잘난 정보국에서 할 일 아니었어?


-맡겼다가는 한세월 걸릴 것 같아서 그런다.


-아아, 귀찮은데.


투덜거리며 알겠다 말하는 딜의 말을 듣고서 입을 가리고 구슬을 빼낸 룬이 벨루아와 보조를 맞춰 걸었다.

그려면서 룬의 시선은 과거의 어떤 장면을 쫓고 있었다.


‘지금 저 아가씨가 하는 행동들......아무리 봐도 정보국의 행사라고는 볼 수 없군.’


과거 룬이 스승과 함께 다니며 보았던 휴텐의 정보국은 이정도로 허술한 행사를 하지 않았다.

정보원들끼리의 접촉도 없었고, 자신을 정보원이라 밝히는 이도, 정보원 저럼 보이는 이도 스승을 찾아온 사람 단 한명이었다.

그 정도로 철저한 이들이 정보국인데 이 정도로 허술한 인사를 이런 큰일에 배정한다?


‘이상하군. 아니, 수상쩍은가.’


룬의 생각에 확률은 크게 두가지.

애초에 정보국 혹은 원로원에서 이번 일에 무게를 두지 않고 있거나, 이번 일 자체가 위장으로서 역할이거나.


‘생각에 후자가 유력하기는 한데......’


벨루아의 말처럼 원로원에서 귀족들의 세를 꺾으려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 터였다.

이 나라의 권력은 셋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안정적이며 공평한 체제를 이루었지만 동시에 끝없는 정쟁을 만들었으니까.

왕실의 친인척과 친 왕실 인사들로 구성된 원로원.

귀족들로 이루어져 막대한 부와 힘을 지닌 상원.

평민들의 여론을 대변하며 움직이는 하원.

원로원과 상원이 서로의 힘을 견제하여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거기에 하원이 균형추를 움직여 대세를 결정한다.

이것이 휴텐의 정치체계였다. 제국으로부터 독립하며 휴텐을 건국한 현왕 휴텐이 남긴 유산.

잠시 고민을 이어가던 룬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뭐, 어찌 되었건 큰 관계는 없겠군. 이쪽이 미끼라면 오히려 좋겠지. 드러내 놓고 다닐테니 위험할 일은 오히려 적겠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항상 드러내 놓고 하는 일은 위험하지 않았다. 보는 눈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숨겨진 그늘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항상 위험했다. 그곳은 여차하면 목숨부터 끊고 보는 작자들이 널려 있었으니.


‘그러니 아가씨, 잘 해 보자고.’


룬이 씨익 웃으며 숙소로 들어서는 벨루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아마도 저 아가씨는 지금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를 가능성이 높았다. 그 자신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지도.


‘보아하니 일을 성공적으로 마쳐서 얻고싶은 것이 있는 것 같던데......’


그렇다고 해서 열성을 다해 도와줄 만큼의 의리는 없었다. 애초에 자신들이 받은 의뢰는 그것이 아니었으니까.

룬은 손을 흔들어 딜을 부른 뒤 작게 속삭였다.


‘너무 무리해서 파헤치지 말고 적당히 하도록 해. 그리고 혹시 전문가들을 만나게 되면 굳이 싸우지 말고 적당히 챙겨서 빠져나와.’


‘......무슨 이유라도 있어요?’


룬이 씨익 웃었다.


‘별거 아니야. 그냥, 일이 조금 편해졌을 뿐. 그러니 너도 편하게 하면 돼.’


* * *


숙소에서 하루를 보낸 이후 벨루아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밤사이 서류를 모두 확인한 그녀는 감찰관의 명패를 이용해 군수물자를 관리하는 상단에 들이닥쳐 조사를 시작했다.

군수물자와 관련된 장부를 확인하고, 실제 현장에 가 물자를 착복할 수 있는 구석이 있는지 살폈다.

하지만 결과는 시원치 않았다.


“그래, 무슨 문제가 발견되었던가요?”


“......아뇨, 문제 없더군요.”


말단 직원들의 사소한 횡령이 있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어디를 가건 적당히 보아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기껏해야 한줌 정도의 곡물. 분수를 알고 그 이상만 되지 않는다면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는 수치였다.

모든 수치가 1리 안쪽의 오차를 유지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 점이 벨루아를 불편하게 했다. 더해서 그녀의 앞에 앉아 있는 남자 역시도.


“그거 다행이군요. 사실 처음 감찰관이 와서 조사를 시작했을 때에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 하하! 사실 많이 불안했습니다.”


너스레를 떨며 소란스럽게 말하는 남자를 보며 그녀는 이를 갈았다.


‘그야 당연히 불안했겠지. 실제로 당신은 착복했으니까.’


그녀는 확신했다. 장부의 곳곳에 누군가가 착복하고 그것을 숨긴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일반적인 감찰이었다면 몰랐을 터였지만 그녀는 이미 사전에 일부 관련 정보를 받았기에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심증에 머무는 수준이었다. 확실한 물증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만큼 자작은 철저하게 장부를 조작했다.

그녀로서도 흔적만 찾을 수 있을 뿐, 장부만으로는 혐의를 입증할 수 없을 정도로.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쉽게 일이 풀릴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대놓고 탐색을 들어올 것이라고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빌어먹을 인간......!’


자작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조사를 시작하고서 사흘이 흐른 시점이었다.

그날 이후 그가 이런 저런 이유로 붙잡고 늘어지자 그녀는 조사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용병을 고용했지만 그녀가 감찰에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은 그녀 자신과 수하 한명 뿐이었다.

하지만 예의를 들먹이며 계속해서 식사나 티타임 따위에 초대해 자신이 묶여버린 이상 조사를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수하뿐.

하지만 과연 수하가 제대로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그는 기껏해야 자신의 가문에서 데려온 심복일 뿐 유능한 이는 아니었다.

사실상 조사를 할 수 있는 것은 그녀 자신뿐이라는 것.

하지만 그녀는 하루의 3할을 자작에게 붙들려 있었다.

그 덕에 조사는 거의 진척이 없는 상황. 한번에 오래 붙들고 있는 것도 아닌 자주 그녀를 방해한 덕분이었다.


“빌어먹을 인간!”


쾅!

숙소의 방에서 들려오는 후려치는 소리에 피식 웃은 룬이 술을 따르자 옆에 있던 아르다헨이 물었다.


“저대로 둬도 괜찮은 겁니까?”


“뭐가?”


술을 들이키며 나른하게 묻는 룬에게 아르다헨이 턱을 까딱였다.


“의뢰주 말입니다. 저대로 둬도 상관없는 건가요? 대장은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 같던데, 아닙니까?”


“아아, 이거?”


피식 웃은 룬이 품에서 수첩 하나를 꺼내 들었다. 딜이 상단의 비밀금고에서 훔쳐낸 착복의 증거품이었다.

장난처럼 수첩을 팔랑거리며 룬은 술을 다시 따랐다.


“막내야.”


“네.”


“내가 좋은 충고 하나 해 주마.”


단숨에 들이키며 룬이 작게 속삭였다.


“절대, 정치하는 것들을 믿지 마. 힘을 가진 놈들을 절대 믿어서는 안 돼. 그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이야.”


“......어째서입니까?”


“어째서냐고?”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말아 올리며 룬이 말했다.


“그게 그 작자들과 우리들 용병의 처지니까. 그치들은 원하면 언제든 우리 목을 날려버릴 수 있어. 귀족 모독으로 고발해도 되고, 그냥 현상금을 걸어버려도 돼지. 그럼 우리는 그냥 당해야 해. 그게 이 신분이라는 거거든.”


어째서일까. 그 말을 하는 룬은 지독하게 차갑고, 증오로 가득하며 냉소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런 기색도 잠시. 이내 실실 웃으며 수첩을 품에 넣은 룬이 잔을 내밀었다.


“이런 이야기는 그만하고 마셔. 우리는 그저 우리 일을 하면 되니까. 그게 용병이 하는 전부야.”


아르다헨은 묵묵히 술을 삼켰다. 어쩐지 술이 평소보다 쓰게 느껴졌다.




여러분의 관심과 댓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특히 댓글이 큰 힘이 됩니다. 특히 댓글이 큰 힘이 됩니다. 진짜루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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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시우간(2) 19.09.28 83 3 11쪽
15 시우간(1) 19.09.26 86 3 12쪽
14 다섯왕의 무덤 19.09.25 116 4 12쪽
13 쥬펠란 용병대(3) 19.09.24 108 4 13쪽
12 쥬펠란 용병대(2) 19.09.23 118 6 12쪽
11 쥬펠란 용병대(1) 19.09.20 129 7 13쪽
10 용병(3) 19.09.19 12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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