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다헨 비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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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fle
작품등록일 :
2019.09.09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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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7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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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찰관(5)

DUMMY

목이 잘리고,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리고, 절단면이 수축해 뼈가 드러나고, 피가 흘러 굳어가며 비린내를 풍기는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숨이 끊어지지 않은 이들이 흘리는 신음은 그녀의 정신을 깎아냈다.


“으, 으으으......”


“죽, 여......”


“차라리......”


시끄럽다는 이유만으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도록 마력으로 억눌린 목에서 새나오는 소리는 차라리 고통의 비명이 나을 정도로 처절하고, 공포스러웠다.

단 한순간의 목격이었지만 새하얗게 질린 벨루아가 필사적으로 눈을 감으려했다.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라헬의 손가락이 눈꺼풀을 고정하고 몸을 옥죄었다.

벨루아에게 허락된 것은 그저 온몸을 떨면서 눈앞의 참상을 바라보는 것 뿐이었다.


“시, 싫어......싫어, 누가, 누가 나 좀......!”


“똑바로 봐. 두 눈을 크게 뜨고, 네 앞에 있는 참상을 목격하고, 기억해!”


“대체, 대체 나한테 왜, 왜 이러는 거야......!”


“앞으로 네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모습이고, 반드시 명심해야 모습이야. 네가 하는 판단이 불러올 수 있는 아주 작은 규모의 사건이니까.”


“그게,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라고......!”


고개를 저으려는 벨루아를 통제하며 라헬이 말했다.


“상관있어. 아주 많이.”


라헬이 한걸음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붙잡힌 벨루아와 함께.

불과 한걸음이었지만 코가 마비될 것 같은 구역질나는 비릿함과 신발바닥을 적시는 질척한 느낌에 벨루아의 떨림이 심해졌다.


“자, 봐. 그리고 생각해. 저 녀석들이 어째서 이렇게 된 건지. 어째서 저들은 여기서 죽고, 사지가 잘려 죽어가야 하는 것인지. 모든 일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이, 이유.......”


벨루아는 생각했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력을 다해 생각했다. 그래야만 지금의 끔찍함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공포에 얼어붙은 사고를 억지로 움직이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과연 저들이 이런 상황에 처한 이유가 무엇인지. 저들이 이 용병대라는 재난을 맞이한 이유가 무엇인지.

평소였다면, 최소한 그녀가 자신의 영지, 측근들의 곁에만 있었어도 운이 없었을 뿐이라며 비웃었겠지만 굳어버린 사고는 보다 근본적인, 솔직한 답을 내도록 했다.


“내, 내가 있어서......나를, 나를 죽, 죽이려고.....!”


“그래. 너를 죽이려고 했지. 하지만 왜? 어째서 저들은 너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지? 저들과 너는 딱히 접점도 없을 텐데? 너는 그저 힘 있는 귀족가의 아가씨일 뿐이고, 일흔두 상원의 한명일 뿐인데?”


“내가, 내가 감찰관이라서......내가, 내가......”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주저했다. 그것은 그녀가 속으로 감춰두고 있던 은밀한 내심이면서 자존심이며 치부였으니까.

하지만 공포는 때때로 사람을 솔직하게 만드는 데에 무척이나 유용했다.


“내가......욕심을, 내서......”


“무슨 욕심을 낸 거지?”


“......따르지 않고서, 내 유능함을 보이려고, 내 능력을 보이려고 개인적인 조사를......!”


“언제지? 그 조사를 한 게?”


“감찰관으로 임명받기, 사흘 전......”


“그래. 잘 했어. 착한 아이네.”


옅게 속삭이며 라헬이 그녀의 두 눈을 가렸다. 그러자 곧장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쓰러지는 그녀를 받아든 라헬이 룬의 곁으로 다가왔다.


“잠들었나.”


“아가씨한테는 험한 경험이었을 테니까.”


처음으로 맞이한 유혈과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적, 도망치지 못하도록 묶은 손길.

그 모든 것이 그녀를 한계까지 몰아갔다. 결국 끝을 알리는 라헬의 손길에 곧장 정신을 잃고서 탈진해 잠들든 것이다.


“아직까지 가르쳐 줄 게 많지만 그건 깨어나서 해도 좋겠지.”


“......신경 많이 쓰네?”


질투가 날 정도라는 말을 삼키는 그녀에게 룬은 웃음기 섞인 답을 했다.


“나름의 의리라는 거지. 그 아저씨와 나 사이에 있는.”


‘내가 배운 방식에 비한다면 철저하게 온건하기는 하지만.’


비록 방식은 거칠고, 배려라고는 티끌만큼도 찾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의 자신을 이루고 있는 것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그의 가르침이었으니까.

그 빚을 조금 갚는다고 룬은 생각했다.


“뭐, 중요한 건 아니니 넘어가고......”


룬의 시선이 반대쪽을 바라봤다.


“진짜 중요한 건 저쪽인가.”


룬의 시선이 닿는 지점. 그곳의 바로 앞에서 아르다헨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마주하고 있었다.


* * *


실론과 딜이 시신과 부상자들을 한곳에 모을 때, 라헬이 벨루아에게 그 참상을 목도시킬 때.

아르다헨은 감각을 되새기고 있었다. 조금 전, 딜이 처리한 습격자들이 숨어있던 장소들을 떠올리며 그곳에 머물러 있던 기척들을 떠올려 기억하고 있었다.


‘암살자, 은신한 이들의 기척.’


마을을 나서 두 번에 걸쳐 확장된 감각. 그건 태어나 두 번째, 세 번째로 느끼는 새로운 감각이었다.

아직까지 단 한번도 다뤄본 적이 없는 새로운 장난감.

오감과도, 육감과도 전혀 다른 개념의 완전히 새로운 감각이었다.

마치, 정신이 몸의 밖으로 뻗어나가 직접 만지고, 듣고, 느끼고, 맡는 것만 같은 감각.

그렇기에 배울 것도, 익힐 것도, 익숙해져야 할 것도 많았다. 획득한 감각을 능숙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그렇기에 새로이 접한 감각을 떠올려 감각에, 기억에 새겨 넣었다.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자신의 기척을 억제하며 상대를 노리는 것은 야생에서의 맹수들과 닮았으면서도 달랐다.

거칠고 사나운 그들과 달리 이들은 좀 더 억제되어 있었고, 좀 더 정교했으며 좀 더 음험했다.

그래, 마치 이 앞의 감각처럼.


“!”


숨어있던 암살자의 기척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어있었다. 이미 암살자의 범위 안에 들어가 있었고, 순간의 기척 변화에 들킨 것을 깨달은 습격자가 검을 앞세워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해야 하지?’


심장을 노리고서 곧장 날아오는 검을 보며 생각했다.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기에 이미 피하기에는 늦어버렸다. 결국 방법은 쳐내는 것 뿐.


“흐읍!”


짧게 숨을 들이쉬며 역수로 바꾼 검을 정확히 궤적을 향해 휘둘렀다. 노리는 지점은 정확히 상대의 검 중앙.

찰나의 순간 상대와 마주친 검이 아무런 저항 없이 지나가 상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보며 아르다헨의 눈이 커졌다.


‘무슨?!’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 상대의 검은 안개처럼 변했다. 정확히 충돌하는 부분만이 아주 작게.

애초에 상대는 필살의 일격을 날린 것을 아르다헨은 너무 늦게 깨달았다.

자신의 검이 닿는 곳은 상대의 어깨. 상대의 검이 닿는 곳은 자신의 심장.

자신은 죽고, 상대는 중상이거나 혹은 경상으로 끝날 터였다.

상대를 죽이지 않는다면.


‘.....’


이 상황, 이 순간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아르다헨은 알고 있었다. 쓸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쓰게 된다면 자신은 살고, 상대는 죽게 된다.

자신은 아무런 상처도 없이 일어설 것이고, 상대는 일말의 가능성도 없이 완전히 죽게 될 것이다.

잠시의 순간, 잠시의 고민.

이내 아르다헨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며 팔이 흔들리고, 검이 춤췄다.

몸을 앞으로 기울여 굽혀지는 팔의 범위를 늘리고, 팔뚝의 완갑으로 검을 흘리며 손을 꺾으며 뻗었다.

완갑을 베며 흐르던 검은 팔마저 자르기 직전 역수로 쥐여진 검에 닿아 위로 솟구치고, 체중을 받아 앞을 향하던 아르다헨의 검은 상대의 목줄기를 베었다.


“크, 커, 커컥......!”


베여진 목을 부여잡고서 빠져나가는 생기를 놓지 않으려 발악하는 상대를 지켜보는 것도 잠시.

완전히 숨이 끊어진 상대의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아르다헨을 향해 룬이 다가왔다.


“......시험입니까.”


“......눈치가 빠르군.”


룬이 감탄했다는 듯 장난스레 말하자 가라앉은 목소리가 답해왔다.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 먼 거리에 숨은 이들도 모조리 다 처리했는데 바로 근처에 숨은 자를 놓쳤다? 의도적인 게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실수죠.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닿을 수 있는 결론입니다.”


“그 간단한 걸 해내지 못하는 것들이 많거든.”


살인. 그 무게의 엄중함은 베테랑조차 전투 직후에 이성을 마비되도록 만든다.


“그런 면에서 너는 참 별종이야. 생각 외로 멀쩡해.”


“이게 멀쩡한 거로 보이십니까?”


아르다헨이 오른 손을 들어 보였다. 여전히 역수로 검을 쥐고 있는 손.

하지만 그 손은 이미 ‘쥐고 있다’라는 행동을 하지 못할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검은 그저 손과의 마찰에 걸려 쥐여져 있을 뿐.


“그게 멀쩡한 거지. 적어도 토하거나 질질 짜면서 엄마를 부르지는 않잖아?”


“......”


룬이 쓰러진 시체를 툭, 찼다.


“이 녀석, 제법 쓸만한 특질을 가지고 있었는데 운이 없었네. 아마 암살이었으면 네가 지지 않았을까?”


“글쎄요.”


차분하지만 완전히 무덤덤하지도 않은 목소리에 룬이 씨익, 미소를 그렸다.


“확실히 난놈은 난놈이야.”


“......”


“알아? 내가 처음 살인을 했을 때, 진짜 그런 지랄도 없었지. 온 사방을 뛰어다니면서 고함을 질러대고, 검을 휘둘러서 나무 가지란 가지는 죄 잘라놓고, 토하고.”


룬이 쪼그려 앉아 습격자의 몸을 뒤지며 이야기를 늘어놨다.


“그렇게 한 사흘을 보내고 나니까 나아지더라고. 그리고 실감이 났지. 내가 살인을 했다. 내 손에는 이제 씻을 수 없는 피가 묻었다. 하지만 거기에 내 잘못은 없다.”


“......그렇습니까.”


“뭐, 그렇게 안 하면 미칠 것 같았으니까. 그런 거야. 사람을 죽인다는 건. 몬스터와도, 짐승과도 달라. 내가 사람인데 사람을 죽인다. 멀쩡하던 사람을 미치광이로 만드는 거지. 그 무게가.”


습격자의 몸에서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는지 혀를 차며 일어선 룬이 아르다헨과 시선을 마주했다.

누군가는 닳고 닳았다 할 것이고, 누군가는 많은 경험을 했다 말할 그런 눈으로.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놈은 병사가, 장수가, 용병이 되는 거고, 견디지 못하는 놈은 평범하게 살거나 혹은 무게에 짓눌려 미쳐버리는 거지. 미쳐서 자신을 죽이거나, 자신을 죽일 용기가 없어 타인을 죽이거나.”


“제가 무게를 견딜 수 있는지, 그걸 보고 싶으셨던 겁니까.”


“그래. 견디지 못할 놈이면 그냥 보내버릴 생각이었지. 미칠지도 모르는 얼간이, 쓸모없는 겁쟁이. 둘다 사양이거든.”


“......”


“하지만 뭐, 역시나. 사실 네가 무난히 극복할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 내가 본 너는 고작해야 살인 정도에 중심이 무너질 정도로 나약한 녀석은 아니었으니까.”


“중심, 입니까.”


“그래. 중심. 자신만의 기준, 정의, 신념. 인간을 일어서게 하는 것. 영웅을 영웅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 대다수가 튼튼하지 못한 것.”


룬이 아르다헨의 가슴을 툭 쳤다.


“근데 너는 튼튼할 거 같았거든. 그 눈만 봐도 알아. 고집과는 다른, 어떤 딱딱한 걸로 가득한 눈을 가지고 있거든. 그런 녀석들은 설령 사지가 부러지고 시궁창에 쳐 박혀도 반드시 다시 기어오르지.”




여러분의 관심과 댓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특히 댓글이 큰 힘이 됩니다. 특히 댓글이 큰 힘이 됩니다. 진짜루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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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시우간(2) 19.09.28 83 3 11쪽
15 시우간(1) 19.09.26 86 3 12쪽
14 다섯왕의 무덤 19.09.25 116 4 12쪽
13 쥬펠란 용병대(3) 19.09.24 108 4 13쪽
12 쥬펠란 용병대(2) 19.09.23 117 6 12쪽
11 쥬펠란 용병대(1) 19.09.20 129 7 13쪽
10 용병(3) 19.09.19 122 5 12쪽
9 용병(2) 19.09.18 127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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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첫걸음(3) 19.09.16 148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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