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귀신, 죽은 이유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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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량벌
작품등록일 :
2019.09.19 15:26
최근연재일 :
2020.01.0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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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0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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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일차 - 제보

DUMMY

"CCTV 같은 겁니까?"

"그것도 있고 제가 직접 찍은 것도 있습니다."


내가 죽을 때의 모습을 직접 본다는 게 어떤 것일지, 그리고 나는 살아 있을 때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했다.


- 보지 않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그래도....... 보고 싶어요."


저승사자 누나가 어떤 심정으로 보지 않기를 바랐는지는 알 것 같다. 하지만 피하지 말아야 할 일도 있다.


"이게 CCTV 화면입니다."

"자동차밖에 없네요."

"교통정보를 수집하는 CCTV라서 도로에 중심이 맞춰져 있으니 그렇죠."

"주변에 사설 CCTV는 없나요?"

"지금 경찰이 그건 조사중이라고 하더군요."

"그럼 이 CCTV는 어떻게 입수를?"

"잡지사 기자도 기잡니다 기자."


노트북의 작은 화면으로 재생되고 있는 영상에는 신호에 따라 오가는 차량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여깁니다. 지금 여기 한번 보세요."

"사람이 있네요."


카메라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으로 직진 신호가 떨어지고 자동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건널목에는 신호를 놓친 사람이 한 명 서 있었다.


"아이고!"

"보셨죠?"


직진 신호가 떨어지고 10초 남짓, 건널목에 서 있던 남자가 도로 쪽으로 넘어지더니 속도를 붙여서 다가오던 덤프트럭에 깔려버렸다.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워낙 가까운 거리에서 넘어졌고, 이게 경차가 아니지 않습니까."

"트럭 기사는 많이 놀랬겠네요."

"경찰에서 조사받고 귀가조치 받았는데 지금은 입원해서 심리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완전히 얼이 빠져서."


반복되는 재생화면 속에서 나는 수도 없이 트럭에 깔렸다. 많이 아팠을까.


"그런데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는 것 같은데요? 김동현씨한테 지병 같은게 있었나요? 아니면 대회를 앞두고 너무 무리했다거나......"

"지병 같은건 없었던 것 같고 운동선수라서 평소에도 건강했다고 합니다."

"굉장히 자세히 아시네요?"

"기자잖습니까. 기자."


박 부장이 재생되던 화면을 닫고 다른 영상 파일을 재생시키기 전에 다른 담배에 다시 불을 붙였다.


"이 영상을 보시면 이상한 게 보이실 겁니다."

"이게 직접 찍으셨다는?"


조금 전에 본 영상과는 각도도 달랐고 무엇보다 영상의 중심은 건널목에 서 있는 김동현, 나였다. 10여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찍은 영상으로 보였다. 각각 다른 영상이지만 나는 같은 방법으로 죽어갔다. 그리고...... 슬펐다.


"어?"

"보셨어요?"

"다시 한번요."


나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무천도령은 뭔가를 본 모양이다. 더 크게 보인다는 것 말고는 이상한 점이 없었던 것 같은데.


"어? 어? 저거 그냥 넘어지는 게 아니라...... 확 밀리는데요?"

"그렇죠? 찍으면서는 판토마임 같은 걸 하는 줄 알았습니다. 물론 저기서 저런 방법으로 판토마임을 할 사람은 없겠지만."


반복 재생 되는 장면에서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도로로 쓰러지듯 넘어진 것 같았던 장면이었다. 확대해서 반복되는 장면 속의 나는 잠시 옷깃을 바로 세우고 어깨를 들썩하는가 싶더니 누가 강하게 미는 듯이 허리가 뒤로 젖혀지며 도로로 밀려 넘어졌고 그 위로 덤프트럭이 덮쳤다. 발을 헛디디거나 한 것도 아니었고 주변에 사람도 없었다.


"영상에 소리가 없네요?"

"소리를 꺼놔서 그렇죠."


박 부장은 노트북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 자동차 엔진소리와 뒤섞여 간헐적으로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


"근데 여기 희미하게 연기처럼 올라오는 건 뭡니까? 담배 피우면서 찍으셨습니까?"

"아뇨, 요즘 누가 길거리에서 담배를......"


박 부장이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거의 다 타들어 간 담배를 서둘러 껐다.


'어휴, 추으'


노트북에서 흘러나온 박 부장의 목소리였다.


"이거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글쎄요? 기억은 안 나는데 소리만 들었을 땐 '어휴 추워'라고 하는 것 같네요."

"그럼 그 하얀 연기가 입김인가요?"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지금 계절이 저 시간에 입김이 나올 계절은......"


지금이 해가 떨어지지 않은 시간에 입김이 나올 계절은 아니었다. 박 부장 본인의 말에 의하면 담배 연기도 아니었다.


"아! 맞다. 저거 '어휴 추워'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저때 낮이라고 외투도 안 입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한기가 느껴져서 저절로 저런 소리가 나왔어요. 입김은 나왔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한기를 느꼈다......"


무천도령이 알듯 모를듯한 표정을 지었다.


"도사님, 이제 제 차례입니다. 저에게 연락을 주신 용건은 뭡니까?"

"김동현씨가 어떻게 죽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일단 목격자이시거나 한 건 아니시고 사고자와는 어떤 관계십니까?"

"지금 김동현씨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여기 있는 건 맞지만 박 부장 입장에서는 저 말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우리의 전통 무속을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만."

"무시하셔도 됩니다. 익숙한 일이라서 상관없습니다."

"저도 하는 일이 이렇고 또 오컬트 쪽이 전공이기는 한데."

"아까 찻상 박살 나는 거 보셨죠?"


무천도령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박 부장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은 채로 벌어져 있었다.


"제가 봤을 때 김동현씨의 일은 우연한 사고라기보다는 귀신들의 장난으로 벌어진 일입니다."

"귀신들의 장난요?"

"한기가 느껴지셨다는 것도 그렇고 저 사고 하나로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제 느낌으로는 그렇습니다."

"촬영한 사고는 김동현씨 밖에 없지만, 제보는 많았고 실제로 사고가 일어난 걸 확인한 것도 많습니다."


박 부장은 크로스백을 뒤적거리더니 두꺼운 파일을 하나 꺼내 보였다.


"제가 제보받은 사고가 실린 기사들과 그 외 다른 자료들입니다."

"사고 전에 미리 제보를 받으셨다는 건데"

"하루 전날 전화로 제보를 받았는데...... 그런 제보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도사님은 믿어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마누라도 믿어주지 않지만."

"물론 믿습니다."


세상에 없는 동지를 얻은 듯한 눈빛을 교환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사고는 충남 당진이군요."

"김동현씨 사고 바로 전에 제보받은 겁니다."


제철소 용광로에 실족사한 내용의 기사였다.


"기사는 이렇게 났는데 제가 따로 조사해보니 주변 동료들은 오히려 실족이 이해가 안 간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어떤 부분을요?"

"일단 극단적인 선택일 가능성은 전혀 없었고 사고가 난 위치가 안전장치들이 많이 마련되어 있어서 발을 헛디딘다고 사고가 날 장소가 아니라고 합니다."

"김동현씨 사고처럼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했다면......"

"사고 현장이 공장 내부라서 제가 직접 확인은 못 했습니다. CCTV 같은 것도 제가 확보하지는 못했구요."

"어쩌면 악귀."


악귀. 현재로서는 충분히 설명이 가능했다. 내가 사고를 당한 범어네거리에도 분명히 악귀가 있었다. '충분한 설명'이라는 데서 잠시 웃음이 났다. 어느새 나는 이쪽 세계의 논리에 익숙해져 있었다. 단 사흘만에.


"악령들의 장난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옥황상제를 거역하는 령들이고 하느님을 따르지 않는 천사들이죠."

"그 정도는 저도 압니다. 옥황상제 쪽 해석은 신선하기는 합니다만."

"많이 아셔서 좋으시겠네요."


둘은 전생에 원수였던 것이 확실해 보였다.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도 싸움요소를 만드는 능력이 최강, 만렙수준이었다.


"그나저나 김동현씨는 지금 어떤 상태입니까?"

"무슨 상태요? 귀신이 상태랄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냥 말이 많고 엄청 시끄럽습니다."


차라리 악귀가 되어서 물리력을 가지고 싶어졌다.


"그만 일어나야겠네요. 이 파일은 도사님께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사무실에도 자료들은 따로 있어서 상관없습니다."

"언제 따로 시간 넉넉하게 가지고 한번 오세요. 잡귀를 너무 많이 달고 다니십니다."

"그래서 요즘 이렇게 힘들고 피곤한 걸까요?"

"충분히 그럴 가능성은 있습니다만 우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 보심이......"


박 부장의 직업이나 취재랍시고 다니는 장소들을 생각해보면 왜 저렇게 역대급으로 귀신들을 달고 다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박 부장이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능력도 없는데 거기에라도 의지하면서 따라다니는 귀신들이 문득 측은해 보였다.


- 측은지심인가?

"좀 그렇네요."

- 두려워하기도 하고 측은지심이 느껴지기도 하고. 일반적인 령들은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어떤데요?"

- 슬프거나 아프거나 기쁠 뿐이다.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감정의 기억이라......"


그게 어떤 의미인지, 어떤 느낌인지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기쁜 감정만을 기억하는 것이라면 축복받은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맞다! 어제도 제보 전화가 왔었습니다."

"그 제보 전화라는 게 한사람한테 오는 겁니까?"

"발신번호 제한이 걸려있어서 번호로는 확인이 안 되지만 목소리로는 같은 사람인게 확실합니다. 그 여자가 장소와 시간만 이야기해 주죠."

"어제 제보는 어떤 제보였는데요?"

"여기 앞에 있는 큰 도로 사거리에요. 시간도 한 이십 분 정도 남았네요."

"그럼 같이 가봅시다."


나도 집을 나서는 두 사람을 따라갔다. 저승사자 누나는 당연히 나와 함께했지만 두 장군과 지예는 집에 남았다. 코너를 두 개 정도 돌아 박 부장이 이야기하는 사거리에 도착했고 나는 주변을 주시했다.


"사거리 어디에서 사고가 날지 모르니 저는 저쪽 반대편에 가 있겠습니다."

"부장님 혼자 괜찮으시겠습니까?"

"허허허. 도사님도 혼자시잖아요."

"저는 혼자가 아닙니다."


박 부장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건널목을 지나 우리가 있는 곳 맞은편 사거리 쪽으로 걸어갔다.


- 나는 이 주변을 주시할 테니 자네는 박 부장의 주변을 잘 보고 있어야 한다.

"이미 그러고 있어요. 근데 활이 안 생기면 어쩌죠?"

-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더 좋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더 좋겠지만 지금까지 제보가 맞아왔고 지금 이 장소도 제보받은 것이 맞다면 그런 상황은 무조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무천형은 악귀가 나타나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요?"

"사람들 많이 왔다 갔다 하는 이런 곳에서는 나한테 말 걸지 마라."

"왜요?"


무천도령이 나를 짜증 난다는 듯이 쳐다봤다.


"남들이 볼 땐 나 혼자 허공에 대고 궁시렁 거리는 걸로 보일거 아냐!"


하지만 이미 주변에 몇몇 사람들은 무천도령을 그렇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길래 무복이라도 다른 것으로 갈아입고 나오든지......


- 잡담은 그만두고 집중해야 한다.


핀잔을 듣고 다시 바라본 박 부장은 핸드폰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호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빼서 핸드폰을 잡더니 핸드폰을 잡고 있던 손을 입에 가져가 입김을 불어 넣는 듯 보였다.


'부아아아아아앙!'


쇠가 갈려 나가는 듯한 날카로운 굉음과 함께 신호 대기 중이던 작은 승용차 한 대가 총알같이 튀어 나가며 피할 틈도 없었던 박 부장을 그대로 덮쳐버렸다.


"저, 저......."


놀란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무천도령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곳은 박 부장이 있던 위치가 아니라 건널목의 반대편이었다.


"악귀!"


작가의말

작가는 오컬트에 대해서 공부 중


1



“제가 많이 시끄럽나요?”

- 많이 시끄럽지.

“평균치 아닌가요?”

- 양궁이 아니라 래퍼였으면 대성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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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14일차 - 부고 +1 19.11.23 127 1 11쪽
62 13일차 - 거짓의 거짓 +1 19.11.22 12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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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12일차 - 배움 19.11.16 17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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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7일차 - 의암 19.10.25 20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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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7일차 - 방울 소리 19.10.23 219 2 12쪽
31 7일차 - 무기고 19.10.22 260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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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4일차 - 금마(金魔) +1 19.10.10 286 1 8쪽
16 4일차 - 빙의 19.10.10 289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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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차 - 제보 +1 19.10.03 271 4 12쪽
10 3일차 - 동종업 +1 19.10.02 280 4 10쪽
9 3일차 - 방문 +1 19.10.01 298 4 10쪽
8 2일차 - 단서 +1 19.09.30 297 4 10쪽
7 2일차 - 귀로(歸路) +1 19.09.27 343 5 7쪽
6 2일차 - 또 둘의 가족 19.09.26 364 5 9쪽
5 1일차 - 진혼(鎭魂) 19.09.25 419 5 13쪽
4 1일차 - 업보 19.09.24 456 4 9쪽
3 정체 +1 19.09.20 542 7 12쪽
2 일단 가보는 거야 +1 19.09.19 658 7 12쪽
1 죽음과의 만남 +1 19.09.19 898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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